착하게 살면 구원받나요?
많은 사람들이 죄와 구원에 대한 감정적인 가르침들을 많이 듣고 있지만, 왜 죄에 대한 피의 희생 제물이 반드시 요구되는가에 관한 성경적인 논리와 이유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롬 6:23) 라고 선고할 때에 여러분은 죄책감과 두려움을 느끼실 것입니다. 왜 두려움과 죄책감이 있습니까?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 (롬 3:23) 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모든 사람들은 율법 즉 십계명을 범하였으므로 율법이 범죄자에게 죽음을 요구하게 된 것입니다. 죄인은 필사적으로 자신이 범한 율법 앞에서 옳다(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을 찾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이 사형 선고가 번복될 수 있을까요?
인간이 자기의 남은 생애 동안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므로 자기 죄를 속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성경은 아무도 오해할 수 없는 언어로 답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롬 3:20).
행위가 인간을 의롭게 할 수 없다는 진리에 대한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만일 한 사람이 물건을 훔치다가 붙잡혀서 감옥에서 십 년 징역을 살아야 한다는 언도를 받았다면, 그는 자기의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자기의 선고받은 연한만 채우면 법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그는 언도된 형을 감옥 속에서 마침으로써 자신을 행위로 구제해 내었기 때문에, 죄 없이 의롭다는 인정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똑같은 방법으로 어떤 살인 죄수가 50년의 선고를 받았다면 행위로 의롭게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언도가 50년이 아니라 사형이라고 간주한다면, 그 죄인이 행위로 자신을 의롭게 만들 수 있습니까? 결코 안 됩니다! 그가 비록 100년 동안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해도 법은 아직 죽음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는 말하기를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도 없느니라 &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히 9:22-28).
이것이 바로 죄인이 결코 행위로서는 구원받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죄의 값은 10년 징역이나 50년의 강제 노동이 아닙니다. 선고는 죽음이요, 피를 흘리는 일 없이 법의 요구가 충족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뒤엎어질 수 없는 것처럼, 율법이 선언한 사형 선고 역시 취소될 수 없는 것입니다.
죄를 허용하는 것은 우주를 영원히 파멸시키는 길입니다. 과거의 죄를 미래의 선한 행동으로 지워버릴 수 없습니다. 법이 죽음을 요구하는 한, 죄인은 자기의 생명을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고서는 그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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