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가장 좋은 소문이 난 교회
본문 ; 살전 1: 1 - 10
요즘은 매스컴 광고에 선전을 잘해야 물건이 잘 팔립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잘 모르지만 신문을 보면 페이지마다 광고가 넘칩니다. 신문이 광고를 위한 신문 제작인지 아니면 뉴스 보도를 위한 신문인지 구분이 되질 않습니다. 어디 신문뿐이겠습니까? TV는 본 내용을 전하기 전후에 반드시 광고를 내보내고 거리의 건물들도 광고판이 되고, 지하철, 버스, 택시에 이르기까지 광고가 붙어 있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21C를 가리켜서 인터넷 시대라고 하는데 인터넷으로 뉴스 검색을 하려고 하면 광고배너가 엄청나게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21C를 PR시대, 광고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광고가 좋은 상품을 만들어 파는 기업들이 이야기만이 아니고 어떤 면에서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소문이 많이 나서 유명해진 교회는 전도도 잘되고, 부흥되는 반면에 나뿐 소문이 난 교회는 지역사회에 신뢰도 잃어버리고 전도도 되지 않고 부흥도 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눈으로, 입으로, 귀로, 읽은 말씀에 좋은 소문이 나서 유명해진 교회가 나옵니다.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좋은 소문이 많이 나서 뭇 교회들이 우러러 바라볼 정도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크게 칭찬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는 알렉산더 대왕을 배출한 마케도니아의 수도입니다. 오늘날 그리스 북부지역에 위치한 최대의 도시입니다. 교통의 요충지입니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갈 때나 유럽에서 아시아 대륙으로 올 때에 마케도니아를 꼭 거쳐야 합니다. 데살로니가는 동서 교통의 요충지대로서 고대부터 도시가 형성되어 있던 곳입니다.
이곳에 교회가 세워진 것은 주후 60년경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할 때였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할 때 유대인들의 방해를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이 복음전도를 방해했고 바울과 그 일행들은 데살로니가에서 내쫓았습니다.
바울은 베뢰아라는 곳에 가서 전도하다가 그곳에까지 유대인들이 찾아와서 방해하자 다시 아덴을 거쳐서 고린도에 내려가서 교회를 개척해서 고린도교회를 크게 부흥 시켰습니다.
얼마 세월이 지난 뒤에 데살로니가에 남아 있던 디모데가 고린도에 내려와서 데살로니가교회 소식을 알려 주었습니다.
데살로니가 소식을 들은 바울은 무척 기뻐하면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격려하고 칭찬하고 가르치기 위해서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 내용 중에서 7절에서 8절에 있는 말씀을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리고 “믿음의 소문이 각 지역에 많이 퍼졌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아시아와 유럽 모든 교회 성도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회의 장점은 각지에 소문이 퍼졌습니다.
물론 데살로니가 교회는 제국의 수도로서 자부심을 가질만합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에 모체 교회로서 자부심을 가질 만합니다. 또 데살로니가는 문화적 전통을 가진 도시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더 큰 자부심을 가질 만합니다.
외면적 자랑거리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면적인 자랑거리가 있어서 많은 성도들의 모범이 되고 모든 교회에 좋은 소식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3절에서 4절 말씀을 보면 “너희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말씀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3가지 특징이 있는 교회입니다.
이것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장점인 동시에 그 이후 모든 교회 성도들이 마땅히 갖추어야 될 자세입니다.
첫째, 믿음의 역사가 있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믿음의 바탕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성도들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권능을 드려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데살로니가 교회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믿음의 역사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믿음의 역사라는 본문의 뜻은 믿음을 드러내는 일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을 드러내는 일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복음을 전파하는 일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는데 열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유대인의 박해와 나라의 핍박, 어려운 환경 속에 있었지만 믿음을 지키고 그 믿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생명을 걸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성도들을 내 쫓으니까 베뢰아로 내려갔고 베뢰아에서 다시 아덴으로 아덴에서 고린도에까지 이르면서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나중에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마케도냐에 있던 데살로니가교회 그리고 빌립보교회는 특별헌금을 해서 옥중에서도 전도 활동을 하고 있는 바울의 선교사역을 지원하였습니다. 이 정도로 선교의 열정이 큰 교회였습니다.
우리 교회는 횡성지역에 심겨진 고신의 첫 열매입니다. 우리 교회를 통해 복음을 듣고 있는 저와 여러분도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열심을 갖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지금부터 약 100년 전입니다. 미국 아이오와 주에 ‘웨스턴 브랜치’라는 조그마한 마을이 있었습니다. 중학교 교사로 있던 40세 가까운 한 중년 선생님이 주일에 교회를 가다가 자기 집 골목에서 뛰어 놀고 있는 아이들 넷을 발견했습니다.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기를 “내가 지금까지 나 혼자 교회를 다녔는데 한 사람도 제대로 전도를 못했다. 동네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라도 전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교회에 가자.”하니까 들은 척 만척합니다. “그래서 애들아 나랑 같이 가면 한 사람 앞에 10센트씩 주겠다.”고 말하니까 돈에 귀가 번쩍해서 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라왔습니다. 교회의 예배를 마치고 난 뒤에 이 선생님 머릿속에 또 새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세상 지식을 열심히 가르쳤는데 이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지식을 내가 한번 가르쳐 봐야 되겠다.”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선생님은 주일 오후에는 이 아이들을 자기 집으로 오게 했습니다. 올 때마다 10센트씩 주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성경을 배우기보다는 10센트씩 용돈을 얻는 것이 좋아서 선생님 댁에 오후에 늘 찾아갔습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습니다. 1932년 이 선생님은 60세가 넘어서 정년퇴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은퇴하는 날이 선생님의 생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은퇴축하 겸, 생일축하연이 열렸습니다. 축하연에 4통의 편지가 왔습니다. 첫 번째 편지는 중국으로 파송된 선교사로부터 왔고, 두 번째 편지는 미국 연방은행 총재로부터 왔고 또 세 번째 편지는 미국 대통령 비서실장 겸 국무장관으로부터 왔고 네 번째 편지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허버트 후버로부터 왔습니다.
4통의 축하 편지가 소개되었습니다. 이 4통의 편지를 보낸 사람은 30년 전에 10년 동안 자기 집에서 성경을 배웠던 네 아이들이었습니다. 편지를 받은 선생님의 마음이 얼마나 흐뭇하고 기쁘고 보람을 느꼈습니까?
믿음의 자식을 낳아서 그 믿음의 자식이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터득하고 성장해 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기자식을 낳아서 키우는 그 이상의 기쁨과 보람을 느꼈을 것입니다.
자식을 낳아서 키우는 것도 참 보람있고 기쁜 일이지만 그 못지않게 한 인격 한 사람을 전도해서 예수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으로 자라게 만들어서 이분이 앞으로 세계와 인류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해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더욱 큰 기쁨입니다.
이 기쁨과 가치를 안고 한 영혼 한 영혼 살려냅니다.
복음을 전할 때에 데살로니가교회와 같이 믿음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둘째,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9절에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데살로니가후서 1장 3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은 서로 사랑이 풍성했습니다. 지금 박해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힘들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 가운데는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사랑하는 바로 이 사랑이 어려움을 이기게 해 주었습니다.
또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사랑의 수고라는 본문 말씀의 뜻은 사랑의 충동에 의해서 즐겁게 행하는 수고, 고통을 말합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키울 때 사랑의 자극에 의해서 고생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이 많으신 할머니가 자신의 허리도 굽고 몸도 편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손자를 종일 업고 다닐 때가 있습니다. 사랑의 자극, 사랑의 충동에서 하는 고생입니다.
이런 고생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선한 사마리아인을 칭찬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강도 만난 사람 곁을 지나간 제사장 레위인들은 사랑의 충동이 일어나는 수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선한 사마리아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그대로 내 버려두지 아니하고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랑의 자극을 통해 수고를 한 사람이었기에 주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런 칭찬과 삶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교회가 가진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면 “성미운동”입니다. 최근에 와서 많이 식어있는 도시 교회가 있지만 아직도 교회마다 성미운동이 있습니다.
여성도들이 양식을 절약하여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어려운 자를 도와주고 교역자들을 지원해 주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전통은 지금부터 2000년 전에 로마에 있던 초대교회에서도 있었던 일입니다. 초대교회 박해 중에 있었고 자유롭게 활동을 못하던 때 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활동의 제약을 받았기 때문에 제대로 수입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가 가난했습니다. 거기다 지금처럼 시설이 잘된 교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동굴 속에서 숨어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좀 여유가 있는 사람이 빵을 한두개 더 만들어서 주일예배시간에 가져와서 굶주린 교우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수고입니다.
이런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가 많은 이웃들의 본이 되고 아름다운 소문이 나는 교회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서로 사랑하면 건강에도 좋습니다.
사람이 건강하려면 몸을 잘 다스려야 하는데 우선 음식을 소식하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술이나 담배 같은 것도 하지 않으면 건강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잘한다고 100%건강 유지가 되는 것은 아니라 50%밖에 유지를 못한답니다. 나머지 50%는 사랑으로 충족해야 된답니다.
이상구 박사가 엔 돌핀을 잘 발산시켜야 몸이 건강해진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또 7,000쌍의 부부를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부부가 한날 한시에 세상을 떠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남자가 먼저 죽든 여자가 먼저 죽든 누군가 먼저 죽는 사람이 나옵니다.
어느 쪽이 먼저 죽는가에 대한 통계를 냈는데 성격이 급하고 화 잘내고 잘 싸우는 사람이 먼저 죽는다고 합니다. 집에서 감정을 잘 발산하고 화를 잘내고 싸움을 잘 거는 쪽이 먼저 세상을 떠날 확률이 약 70%가 된다고 합니다.
장수하려면 마음을 좀 느긋하게 먹고 사랑하려고 늘 노력해야 그 만큼 사랑을 우리의 정신과 육체의 건강에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의 심령 속에는 하나님의 권능이 항상 역사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이런 사랑이 있었습니다.
셋째, 소망의 인내가 있는 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박해를 받고 어려움과 환난을 겪지만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을 확실히 가지고 그 소망 중에 오래 참고, 견디고 이겨내는 인내의 힘이 있었습니다.
인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서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딘다는 소극적인 의미를 말하지만 성경 속에서 적극적인 인내는 단순히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이겨나가는 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참고 견디고 이겨 가는 힘 이런 인내를 가진 사람이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로마 교황청에 있는 바티칸에 가면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가 열리는 시스티나 성당이 있습니다. 성전 중앙에는 돔으로 된 큰 원형지붕이 있는데 그 원형 지붕 천장에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의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그림에는 탁월하지만 몸이 무척 약했습니다. 거기다 허리 병을 앓고 있었고, 천식이 있는 사람입니다. 허리 병이 있어 똑바로 서 있질 못합니다. 무척 불편합니다. 천식을 앓는 사람은 누워 있으면 불편한 사람입니다. 누우면 재채기 기침이 더 많아집니다. 그래서 옆으로 누워있거나 엎드려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미켈란젤로는 돔 위에 받침대를 만들어서 누워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온몸에 물감 세례를 받아가면서 그 그림을 그려나갔습니다.
1508년 시작해서 1512년까지 4년 동안 각고 끝에 그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그 그림을 완성한 뒤에 한 제자가 미켈란젤로를 찾아가서 ‘어떻게 불편한 몸으로 천장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까?’라고 위로 겸, 격려의 말을 했습니다. 그때 미켈란젤로가 남긴 말 가운데 “그건 내 작품이 아닐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께서 내게 불편한 몸을 참고 견디고 이기어 가는 인내의 힘을 주셨기 때문에 그릴 수 있었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작품이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라는 그림은 인내의 결정체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5장 4절에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야고보 선생은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어려운 일에 부딪쳤다고 “난 이것 못해”하고 주저앉지 마십시다. 어려운 일일수록 참고 견디고 이겨나가는 힘이 있을 때 그 힘이 나를 하나님 안에서 온전하게 만들어 줍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아름다운 소문의 대상이 된 이유인 믿음을 드러내는 역사, 사랑이 우려져 나오는 수고, 소망 중에 참고 견디고 이겨내는 인내를 날마다 마음에 담고 생활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