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컨베이어벨트
이향지
가로세로 포개진 칸칸마다 암탉들이 고고거린다
철망 속의 미혼모들
태어났다는 말에는 태어나게 하겠다는 무언이 얽혀 있다
교미한 적 없는 암탉들이 낳은 달걀은 생명인가 식자재인가 오토 품품인가
집란 회로에 무정란 한 알씩 꼬박꼬박 떨어뜨려 주는 양계장 암탉은 천치인가 천사인가 AI 노예인가
입으로는 쉴 새 없이 물과 사료를 취하고 산도로는 알을 밀어내는 오토 컨베이어벨트
실수로도 병아리 한 마리 걸어 나오지 않는 무정한 무정란 컨베이어벨트
날개 달린 원금은 철망에 감금시켜 놓고 갓 낳은 이자만 집어 가는 오토 컨베이어벨트
달걀은 암탉의 자식뻘인데 허기 채우기에만 급급한 닭대가리들
금욕주의자들의 지구에 메마른 산란이 계속되고 있다
논물에 풀어놓은 숫개구리들의 합창만 귀 따갑게 흰 구름 휘젓는다
-『야생』, 파란, 2022
이향지_1942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1989년 《월간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괄호 속의 귀뚜라미』 『구절리 바람 소리』 『물이 가는 길과 바람이 가는 길』 『내 눈 앞의 전선』
『햇살 통조림』 『야생』, 에세이집 『산아, 산아』 『북한 쪽 백두대간, 지도 위에서 걷는다』를 썼다.
현대시작품상을 수상했다.
-------------------------------------
이 놀라운 시를 어찌하나.
양계장 닭의 모든 것이 여기 있다.
벗어날 수 없는 운명과 고뇌 없는 영혼과 절망 없는 맹목과
태어난 죄로 평생 지게된 일수(日收) 빚까지.
달걀만이 존재이유라는 비애를 암탉이 모르듯
문득 소스라쳐 우리 자신을 둘러보게 만드는
이향지 시인은 1942년생이다.
절벽 끝이듯 두렵고 현기증나는 젊은 시를 읽고 또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