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석: 교회신문 > 제 900호 믿음이 있어야 행동할 수 있다 (약2:21~26)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약2:2~4). 이 말씀처럼 행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그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합니다.
사람들은 믿음이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분명히, 확실히 보입니다. 어떻게요? 그 사람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행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매주일 새벽부터 오후 늦게까지 교회에서 안내를 담당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들이 왜 그럴까요? 잠이 없어서요? 시간이 남아돌아서요? 아닙니다. 그들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가대를 10년 이상씩 하는 분들이 우리 교회에 참 많습니다. 한 자리에서 그렇게 오래 봉사하는 것은 믿음이 확고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 날에 받을 상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저는 예배 후에 꼭 안수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수를 받으러 오지요. 그런데 성도들 중에는 “아휴, 목사님 힘드신데 왜 저렇게들 안수를 받지?”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실 거 없습니다. 그들은 믿음이 있는 자들입니다. 믿는 자가 안수하면 병이 낫고, 귀신이 쫓겨나가고, 문제가 해결된다는 누가복음 16장 18절 말씀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그런 걱정일랑 말고, 여러분도 믿음을 가지고 안수받으세요. 엄마가 젖유종 난다고 애들에게 젖 안 물리겠습니까?
매일 기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도 믿음이 있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는 말씀을 믿는 믿음이 없으면 매일 기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행동으로 증명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7)고 말한 것입니다. 물론 행함만으로 구원은 받을 수 없습니다(롬3:20). 그러나 행함이 동반된 믿음이 있을 때 그것이 신실한 믿음이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노아가 120년 동안 방주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리는 행동을 보고나서야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하시고,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창22:16~18) 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왜 축복하셨다고요?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22:18), 즉 행동으로 옮겼기 때문에 축복하신 것입니다. 야고보서에도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약2:21)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만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그 믿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의롭다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약2:24).
말로 하는 것은 쉽습니다. 말로는 온 세상 사람들도 다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십니까? 사랑도 동사(動詞)라는 것을요. 성경도 말씀합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약2:15~16). 배고픈 자에게는 위로보다 라면 한 그릇이 낫습니다.
헐벗은 자에게는 설교보다 옷 한 벌이 낫고요. 그래서 마태복음 25장에는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마25:42~43)고 행함이 없는 자들을 나무라시며 그들을 영멸에 처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호수아 2장에는 라합이라는 기생이 나옵니다. 라합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미 그녀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수2:11)고 고백한 사실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러나 그녀의 믿음은 입술로만 한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입증되었습니다. 여호수아가 파견한 두 정탐꾼을 영접하고 안전하게 피신시켜준 것입니다(약2:25). 그런 행함이 있었기에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점령했을 때 그녀와 가족들이 죽임을 면한 것입니다(히11:31). 어디 그 뿐입니까? 마태복음 1장에 예수님의 족보에도 당당히 올랐습니다.
여러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행함이 없으면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행함=기적과 축복’이며,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함으로 그 믿음이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약2:22).
헌금 드리는 거요? 십일조를 드리고, 첫 열매를 드리는 거요? 믿음이 없으면 절대 못합니다. 우리 교회 한 성도가 복권 1등에 당첨되었습니다. 당첨되었을 때는 십일조도 드리고 감사헌금도 드린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수중에 돈이 들어오니 못 드립디다. 조용히 사라집디다. 왜 그랬을까요? 믿음이 없기 때문에 행동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면 어느 자매가 첫 열매를 들고 저에게 왔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월급을 타서 하나님께 먼저 드린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확증입니다. 그 자매는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잠3:9~10)는 말씀을 믿은 것이고, 따라서 반드시 그의 삶 속에 이 말씀이 이뤄질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십일조에 관한 축복,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10)는 말씀을 믿는다고 합니다. 말로는 믿는데 행동으로는 못 옮깁니다. 죽은 믿음입니다. 토끼가 새끼를 낳으면 드리는데, 소가 송아지를 낳으면 못 드립니다. 이것 역시 죽은 믿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십일조를 드리고 바로 열매가 안 맺힌다고 투덜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씨를 뿌리면 싹부터 나지 열매부터 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추수할 것을 기다리듯 인내하고 기다리면 거짓말을 못하는 하나님이 분명히 심은 대로, 말라기서 3장의 말씀대로 이루십니다.
여러분,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13:5)는 말씀을 잘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은 믿음을 어떻게 확증하실 겁니까? 행함으로 믿음을 보이는 겁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야 천국에 간다는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만 한다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아내를 믿으니까 남편이 월급봉투를 맡기는 겁니다. 다윗이나 요셉은 아버지를 믿었기에 아버지 말에 순종하여 멀리 심부름을 간 것입니다. 그럼요, 순종도 믿음의 외적 표현이지요. 전도하는 것, 봉사하는 것, 기도하는 것, 물질을 드리는 것, 이 모두 믿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이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봅시다. 실천하는 신앙인지, 말만 하는 신앙인지 따져봅시다. 부디 우리는 믿음을 행동으로 입증하는 삶을 살아 산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천국까지 넉넉히 들어갑시다.
할렐루야!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짜고 서 말 구슬도 꿰어야 보배다
위인은 결단하고 행동하나 바보는 매일 결심만 한다
♣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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