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한 봄날 가슴에 담고 싶은 시 한수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
1위에 선정(2006년 한국 현대시 탄생 100주년 기념회주관)된 진달래 꽃은 잘 알려진 시 이지만 옛 추억이 생각나서 사진과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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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꽃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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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버전
내 꼬라지가 비기 실타고
갈라카모
내사마 더러버서 암 말 안코
보내 주꾸마
영변에 약산
참꽃
항거석 따다 니 가는 길빠다
뿌리 주꾸마
니 갈라카는 데 마다
나뚠 그
사부 자기 삐대발꼬 가뿌래이
니 꼬라지가 비기 시러
갈라 카몬
내사마 때리 직이 삔다 케도
안 울 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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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버전
이제는 지가 역겨운 감유
가신다면유 어서 가셔유
임자한테 드릴건 없구유
앞산의 벌건 진달래 꽃
뭉테기로 따다가 가시는 길에
깔아 드리지유
가시는 걸음 옮길 때마다
저는 잊으셔유 미워하지는 마시구유
가슴 아프다가 말것쥬 어쩌것시유
그렇게도 지가 보기가 사납던가유
섭섭혀도 어쩌것시유
지는 괜찮어유 울지 않겄시유
참말로 잘가
지 가슴 무너지겼지만
어떡허것시유 잘 먹고
잘 살아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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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버전
나 바레기가 권닥사니 벗어정
가고정 헐 때랑
속 숭허영 오고셍이 보내주구다
영변의 약산 진달레꽃
가득 토당 가고정헌 질에
뿌려주쿠다
가고정헌 절음절
놓인 그 꼿을
솔때기 볼드명 가시옵서게
나 바레기가 권닥사니 벗어정
가고정 헐 때민
죽었자 아니 눈물 흘리쿠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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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金素月 1902∼1934]
본관은 공주. 본명은 정식(廷湜). 전통적인 한(恨)의 정서를 여성 화자를 통해 보여주었고, 향토적 소재와 설화적 내용을 민요적 기법으로 노래하였다.
아버지 성도(性燾)와 어머니 장경숙(張景淑)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외가에서 태어나 백일이 지난 뒤,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 남서동 본댁으로 돌아왔다. 2세 때 아버지가 철도를 설치하던 일본인에게 폭행당해 정신이상이 되자 할아버지가 그를 돌보았다. 할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우고, 숙모 계희영에게〈심청전〉·〈장화홍련전〉등의 옛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1915년 오산학교 중학부에 입학, 1916년에는 홍단실(洪丹實)과 결혼했다. 3·1운동 직후 오산학교가 잠시 문을 닫게 되자 배재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해 졸업했다. 그가 오산학교에 다닐 때에는 조만식이 교장, 서춘·이돈화·김억이 교사로 있었는데, 김억에게 시적 재능을 인정받아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23년 도쿄상과대학[東京商科大學]에 입학했으나, 9월 관동대지진이 일어나 학교를 그만두고 귀국했다. 고향으로 돌아가 할아버지가 경영하는 광산일을 돕다가 1924년〈진달래 꽃〉의 무대인 영변을 잠깐 다녀왔다. 김동인·김찬영·임장화 등과 〈영대 靈臺〉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나도향과 친하게 지냈다. 광산일이 실패하자 처가가 있는 구성군으로 이사했다. 땅을 팔아 동아일보사 지국을 경영했으나 실패했다. 그뒤 생활이 어려워져 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술만 마시다가, 1934년 32세 때 곽산에서 음독자살했다. 1968년 3월 한국일보사에서 남산에 그의 시비를 세웠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1920년에 「낭인의 봄」, 「그리워」 등을 발표하여 시인으로 등단. 1922년에 「금잔디」, 「엄마야누나야」, 「닭은 꼬꾸요」 등을 ‘개벽'지에 발표하였으며, 이어 같은 잡지 7월호에 떠나는 님을 진달래로 축복하는 정시의 기념비적 작품인 「진달래꽃」 을 발표하여 크게 각광받았다. 7·5조의 정형률을 바탕으로 한시를 많이 써서 한국의 전통적인 한을 노래한 시인이라고 평가받으며 향토성을 전통적인 서정으로 노래한 그의 시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저서로는 1925년에 그의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이 매문사에서 발간.
진달래꽃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 1위 선정(2006 한국 현대시 탄생 100주년)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려 ´소월시문학상´ 제정(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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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김소월 시인을 생각하면, 노랫가락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무엇보다 그의 시가 많은 노래를 불럿기 때문일 것이다. 동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엄마야 누나야’)에서 시작해 가수 정미조의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개여울’), 홍민의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부모’), 장은숙의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못 잊어’), 건아들의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최근 마야의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는”(‘진달래꽃’)에 이르기까지. 가히 국민 시인이라 칭할 만하다.
그런 시인 김소월을 생각하면 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시가 ‘진달래꽃’이다. 소월은 외가의 평안북도 구성의 한 조그마한 마을에서 태어나 인근 정주에서 자랐으며, 곽산에서 서른한 살의 나이에 과음과 아편과다 복용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정주에서 가까운 영변에는 약산이 있고, 약산은 진달래꽃으로 유명하다. 그가 보았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약산의 진달래꽃이었을 것이다. 그는 ‘영변에 약산 달래꽃’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꽃’으로 보통명사화시키고 있다.
“가실 때에는” 이라는 미래 가정형에 주목해 볼 때, 이 시는 절정에서 이별을 염려하는 시로 읽힌다. 사랑이 깊을 때 사랑의 끝인 이별을 생각해 보는 건 인지상정. 백이면 백, 헤어질 때 “말없이 고이” 보내주겠다고 한다. “죽어도 눈물만은” 보이지 않겠다고 한다. 아무튼 그땐 그렇다. 그 사랑을 아름답게 기억해 달라는 소망이야말로 이별의 로망인 바, 떠나는 길에 아름다운 진달래꽃을 “아름 따다” 뿌리려는 이유일 것이다. 특히 ‘아름’은 두 팔로 안았던 사랑의 충만함을 환기시켜 주는 감각적 시어다.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떠나는 건 아무래도 여자에게 더 어울린다. “말없이 보내 드리우리다”“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라는 결기야말로 남자다운 이별의 태도일 것이다.
나 보기가 힘들어 떠나실 그때, 눈물을 참기란 죽는 일만큼이나 힘겨운 일이지만, 그래도 당신을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겠고, 당신이 ‘사뿐히 즈려밝고’ 떠날 수 있도록 눈물만은 보이지 않겠다는 것이 이 시의 전모다. 얼마나 애틋한 사랑시인가. 이 사랑시는 영혼을 다해 죽음 너머로 향해 부르는 절절한 이별의 시. 민지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초혼’)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리라. 이렇게 노래하는 시인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정끝별·시인(명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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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의 시집 문화재로 등록
지난 1925년 발간된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2종,4점)이 우리나라 근대 문학작품 중에서는 처음으로 24일 문화재로 등록됐다.
해당 시집은 김소월(본명 廷湜·1902~34)이 지난 1925년 12월 26일 매문사(賣文社)에서 발간한 '초간본'이다. 여기에는 진달래꽃을 비롯해 '먼후일' '산유화 '엄마야 누나야' '초혼' 등 토속적·전통적 정서를 절제된 가락 속에 담은 주옥같은 작품 127편이 실려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진달래꽃'은 문화재 등록 예고 기간(2010.9.13~10.12) 중 "책 표지의 꽃 그림 도안과 '꽃'이란 글자 표기가 1920년대에 찾기 어렵다"는 일부 소장가의 의견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관계 전문가 1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1차 검토 회의를 연 뒤 그 결과를 토대로 문화재위원회에서 심의했다.
그 결과 20년대 우리나라 문학작품의 출판물에서도 화려한 표지 도안과 '꽃'표기가 사용된 점이 확인되면서 판권지 간행 시기 및 발행자 기록 등이 객관적 자료로 인정받았다.
문화재청은 "결국 동일원판을 사용해 출판한 '진달래꽃'이 희소성이 있으면서 근대 우리나라 문학작품 출판 연구를 위해서도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돼 문화재로 등록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앞으로도 근대기의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을 적극 발굴, 문화재로 등록해 보존·관리할 예정이다. |
첫댓글 예전에 원시인도 있었는데. . .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