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번역 : Title: "Unconventional Journeys: Rethinking Spiritual Practices for True Enlighte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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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 유튜브 채널에서 우연히 마주친 어느 방송사에서 방영된 불교의 무문관 수행과 카톨릭 수도원의 묵언 수행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각자 그것을 보는 이들의 생각은 다양하겠지만, 수행의 바른 길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수행에 대한 나름의 올바른 판단과 다양한 생각을 가져보도록 한다.
방송사에서 거금과 많은 시간과 노력을 통해 만들어 내면서, 극단적이고 편협된 수행의 방법만을 보여줄 게 아니라, 상반되는 수행의 과정에 대한 설명도 곁들이거나,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로 하여금 옳고 그름을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다양한 사고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본인은 어려서는 절로, 성인이 되어서는 성당에 줄곧 다녔다. 종교에 대한 편견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수행의 바른길 다섯 편의 시리즈 (저자 김정성, 맑은샘 출판, 1권 세종도서 선정), 영문판 (저자 김정성, 맑은샘 출판) "Think Out of the Box(2015)" 와 "Searching for the Forgotten Half in Martial Arts(2021)" 통해, 자연의 이치와 각자의 종교를 올바른 생활 실천 속에서 더 좋게 만들어가는 방법을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 인간 삶 즉 수행이며, 그게 도(道)다
"수행"이란 인간 삶 자체가 수행이며, 도다.
사는동안 인간다운 삶을 더 여유롭고 풍요롭게 만들어 가는 것이며, 그것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앞서간 성인군자들이 이미 수없이 반복 강조한 것이다.
■ 수행의 기본
"수행의 기본"으로 가보자. 그것은 심오하거나 신비하거나 추상적이거나 비현실적인 것들은 인간 삶의 혁신이나 발전과는 무관하다.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들 수 있듯이, 수행에서는 건강한 육체가 우선이다. 거기에 들어있는 정신은 육체가 아프면 혼미해지고, 오리무중이 된다.
인간 몸 기계는 움직이지 않고, 먹지 않으면, 반드시 급속도로 망가지며, 사라진다. 인간의 건강과 행복, 발전과 성숙을 위한 기본은 소통이며, 말과 생각과 행동이 기본이 된다. 그게 없어지면, 몸 기계는 작동이 안되어 서서히 죽어가며, 정신이 오락가락 하다가, 끝장이 난다. 그래서 가장 우선적으로 몸을 살려야 하는 것이 관건이다.
석가모니 부처님, 예수님 공히, 사람들을 가르치시면서 아프면 낫게 해주셨던 것은 올바른 공부를 위해서는 올바른 몸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학자는 예수님을 힐러라고도 하였던 것은 그런 맥락에서 나올 수도 있는 말이며, 각 종교의 수행과 치유는 상호 떨어질 수없는 인간 삶 공부, 즉 수행의 기본이 된다.
■ 수행의 열매
수행의 과정을 통해 얻게 되는 기본은
아래의 오직 두 가지 뿐이며, 알고 나면 그 조차도 하나로 귀결됨을 알아차리게 된다.
첫째, 생각을 바꾸는 것 (의식변화 - 깨달음)
둘째, 자연의 실체를 알아차리는 것 (공, 무)
상기 외 다른 말들이나 표현들은 다 여기서 파생된 것으로 설명과 표현이 가능하다. 수 백, 수 천 년 전부터 전해져오는 수많은 경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공부 속에 착각할 수도 있는 특화된 자기화의 세계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짜집기 하거나, 나홀로 공부 속 오만가지 상상력이 동원되어 함께 얽혀진 책들이 대다수다.
1. 생각을 바꾸는 것
종교적으로는 깨달음을 얻는 것, 진아를 찾는 것, 본래마음자리 찾는 것 등, 수많은 표현이
가능하다. 결국 의식 변화를 통한 새로운 가치관의 추구와 이의 발전과 성숙을 말한다.
"생각을 바꿔라, 내가 산다"라고 하는 것은,
사는 동안 나와 부딪치는 사람, 동물, 음식 등 수많은 것들 속에서 엎어지고 넘어지고 깨어지면서 깨달아 나의 생각이 바뀌고 의식이 전환되어 스스로 창조, 발전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인간 의식의 변혁과 올바른 가치관의 추구가 인간 삶의 질적 개선과 궁극적 목표인 영적 성장을 가져오게 된다. 그게 올바른 수행을 위해 우선적으로 나의 생각을 바꾸어야하는 이유다.
2. 자연의 실체를 아는 것 - 공(空), 무(無)
종교적으로는 부처님, 하느님을 알아차리는 것, 혹은 각자가 믿는 신의 실체에 다가서는 것 등으로, 이 역시 수많은 표현이 가능하다.
자연의 실체를 안다는 것은,
만물을 움직이는 근원의 실체를 몸과 마음으로알아차리고, 그 기운을 따라가는것, 즉
"추세 부응"을 말한다.
그것은 주변에 자신이 동화되어 녹아 들어가는 것이며, 상대와 내가 하나가 되도록 (조화와 균형, 즉 깨달음)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왜,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 이쁘게 낮추고 가야 되며, 왜, 겸손하고 친절해야 되며, 왜, 서로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어야 하며, 왜, 화나 시기나 질투를 하지 않아야 되는지를 알게 된다. 이러한 이치의 근본을 알아차리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한다.
사는 동안 끊임없이 깨달음(+E)의 실체에 다가서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간 삶 즉 수행이며, 그 기운의 실체를 따라가는 것, 혹은 다가서는 것, 혹은 그것과 하나 되는 것, 혹은 내가 없어지는 것 등 여러 가지 표현을 해 볼수 있다.
그것은 보이지 않고, 모르고, 알 수가 없으니, 그 시대에 적절한 용어로 공(空)이나 무(無)로 표현했던 것이다.
따라서 "깨달아가는 삶"이란
각자의 종교 속,
각자 믿는 신에게 다가서는 것이며,
일상생활 속,
말과 생각과 행동을 통해
이해하고 용서하고 배려한다는 것이며
믿는다는 것이며, 깨달아가는것이며,
"사랑"을 쌓아간다는 것이다.
각자가 믿는 신을 찾는 수행에
밥 먹지 않고, 가부좌 틀고, 말하지 않고, 상호간 소통이 없으면 인간 몸 기계는 서서히 마르며 죽게 된다. 올바른 인간 삶과는 정반대의 행동거지들이다. 누군가는 지구라는 녹색별 자체가 감방이라 했거늘, 여기서 나가려면, 상기 두 가지 외 다른 방법은 없다. 사람을 서서히 스스로 인위적으로 죽이는 행위는 알 수없는 어느 시대에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으로 어떤 기득권이나 정권의 유지, 혹은 어떤 사회적 현상으로 빚어진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소수 권력자나 통치자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이란 억지추측을 할 수밖에 없다.
교도소에서 비록 죄수일지라도 아프거나 죽으면 법적 책임 소재를 따진다. 그런 것들이 오랜세월을 거쳐 내려오고 있다해서 그것도 대물림 되며, 하물며 방송사의 명작다큐로 엮어지고 있다. 그게 사회를 발전 시키고,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정도로 훌륭한 수행 방법인지 다수의 대중에게 묻고 싶다.
3. 온전한 몸이 올바른 깨달음을 가져온다.
이 세상 어떤 성인군자도 인간 몸을 해치거나 목숨을 담보로 기도나 절을 하면서 믿으라고 하지 않는다.
유사이래 수많은 선각자들이 강조한 공통적인 내용은 일상생활 속 잘 먹고, 잘 지내면서, 건강하고 행복하고, 여유롭고 복된 삶을 찾는 것이 기본이 된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예수님께서도 항상 사람들의 무리와 동행 하시면서, 함께 식사도 하시며, 아프면 낫게 해주시고, 일상생활 속 삶의 실천을 몸소 보여주신 것이다.
그게 "사랑"이다.
애시당초 절이나 교회를 짓고, 불상이나 십자가를 만들라고 하신 성인분은 계시지 않았다. 왜냐면 거기에 내가 쌓아야 할 "사랑"은 없으며, 사는 동안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면서 "영적 영장"을 꾀할 나의 공부와는 거리가 멀기때문이다.
"아프면 찍소리도 하지마라"는 말이 있다. 자기 몸도 못 챙기면서 허튼 소리, 허튼 생각, 허튼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온전한 몸이 올바른 깨달음을 가져오는 것이며, 건강한 육체가 사랑을 쌓아갈 수있는 도구가 된다.
2023. 7. 24 월요일
오륙도에서 김정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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