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과 교회의 시대/ 임의진
여러분과 약속한 11가지 강좌 중에 다음편 ‘10. 묵시록, 11. 성탄 예수 이야기’까지 하면 끝입니다. 오늘은 9번째 강좌입니다.
소설가 오 헨리의 작품 중에 <소매치기>라는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한 도시에 소매치기가 있었는데, 훔친 돈으로 부자가 되었답니다. 어느날 길을 걷다가 순간 옛 버릇을 참지 못해 한 여성의 지갑을 슬쩍합니다. 얼굴이 어디 익숙하여 들여다보니 어린 시절 이웃집에 살던 친구였던 거지요. 그는 순간 옛 생각에 젖어듭니다. 순수했던, 때 묻지 않은 시절이 마치 빛이 비치는 것처럼 심상에 펼쳐집니다. 물신과 세속의 이익에 더럽혀진 제 자신을 보며 하느님 앞에 죄인임을 깨닫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걸그룹 ‘소녀시대’의 노래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면서 아이돌 걸그룹 응원봉을 흔들며 국회의사당 앞을 밝힌 청년들을 떠올립니다. 외신에서도 그랬다지요. ‘한국인들은 세상이 어두워지면 집에서 가장 밝은 것을 들고 나와 세상을 밝힌다’라고 말입니다. 어쩌면 가장 밝은 것은 선한 마음, 정의와 평화를 아는 마음, 주님을 아는 지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마음이 찾아오지 않으면 인생은 어두움 속에서 자신의 죄성을 깨닫지 못합니다.
바울의 옛사람 ‘사울’의 모습을 추적해봅니다. 안티오크에서 10시간 정도 거리 다소는 로마시대 길리기아 지역의 중심부였고, 소아시아 로마제국군 주둔지 병영촌이었습니다. 아테네, 알렉산드리아 등 대학이 있던 도시에서 장교들이 탄생했고, 이들의 자녀세대를 위한 국제학교가 다소에 세워집니다. 일반 평민 중에 고위직이나 상층부는 이 학교에 입학이 가능했는데, 바울도 그렇게 이 학교를 거친 것이죠. 항구도시이다 보니 무역이 성행했습니다. 산지 특산물은 아마포 원자재, 양털 직물, 당시 베드윈 사막의 상인들과 해외 원정 군대에게 ‘의식주의 주’를 차지한 천막제조업이 주식으로 치자면 상한가 특징주였습니다. 식민지를 넓히던 군부대에 가장 필요한 장비가 천막(막사용)이기도 했어요.
바울은 다소가 고향으로, 이방인은 갖기 어려운 로마시민권을 가진 유대인 상위층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명예와 부, 가문의 권세’를 좇던 일반의 시민이었습니다. 학벌도 좋고 존경도 받던 선생이었죠. 그러나 순수하고 선한 바보요 시골뜨기의 삶 자체로, 희생양의 길을 걸어간 빛이신 주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 어두운 마음에 큰 회심의 등불을 밝히게 됩니다.
자신이 되찾아야 할 원래 모습을 예수에게서 환히 보게 됩니다. 그가 훔치고 빼앗은 것은 돈과 권력뿐만이 아니라 타인의 목숨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내용성의 연속성에서 구약의 모세를 견주어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모세도 사람을 죽이게 되고 이에 대한 심대한 심리적 번민에 사로잡히게 되어 회심합니다. 모세나 바울이나 제 민족을 박해하던 민족반역자요 가해자였던 거지요. 누군가를 지독하게 미워하는 일을 멈추는 일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느님께서 도우시지 않으면 그 시야와 시선, 적개심을 거두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 고리를 끊고, 바울이란 이름의 사도로 거듭납니다. (제자들은 의심하여 믿지 않음/ 행 9:27-28) 그토록 박해하던 원수 예수의 편에 서게 된 것이지요.
사울이 박해했던 공동체는 예수 공동체였습니다. 그 공동체를 지금 우리는 교회라고 부릅니다.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안디옥)에서 ‘크리스티아노스’, 최초의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창제한 사람이 바울이었습니다. 주후 47년의 일입니다. 바울은 15년간 약 1만 5천km 거리를 누비며 선교여행을 했다는데, 하루 30km 정도를 걸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앞서 말했듯 그는 전에 로마제국군과도 거래를 텄을 천막건설업자이기도 했지요. 그러던 중소자본가였던 그가 이 죽을 길, 고생길, 예수의 길을 따라서 걷게 됩니다. 다마스쿠스에서 빛으로 만난 예수는, 박해했던 예수는 그의 생애를 흔들기 시작하고, 절망적 고통과 나락으로 그를 데려갑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제 더 이상 옛사람 사울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 일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이요, 돌로 맞은 것이 한번이요, 파선을 당한 것이 3번이요... 여러번 밤을 지세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고후 11: 24-27) 그러면서 세운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에 대하여 생각을 모아보는 시간을 이제부터 가지고자 합니다. 루터는 ‘주님을 믿는 신자들의 공동체’를 교회라 했고, 칼빈은 ‘주님께서 택하신 구원받은 이들의 공동체’가 교회라고 주장했습니다. 고백교회의 본 회퍼는 ‘거룩함을 입은 성도들의 모임’을 교회라 했습니다. 독일 신학자 칼 바르트는 ‘교회란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 백성 공동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성령님의 감동과 감화로 뭉치게 되고, 소통하며 하나 되는 공동체입니다.
백성을 결속시키고 감동 주시는 성령님은 ‘하느님의 성삼위 위격’으로 ‘성령, 보혜사, 성신’ 등으로 다른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루아흐(숨, 바람, 성령이란 뜻) 하코데쉬(Ruach Hakodesh), 루아흐 야웨(Ruach YHWH), 엘로힘(Elohim)’이 바로 성령의 옛 유대 이름입니다. “주님은 마리아의 몸을 빌어 성령에 의해서 잉태되었다”고 고백한 니케아 신조에서도 기술된 이름이 성령입니다. 성령님은 이미 계셨던 하느님의 동격으로, 그 성령님이 느닷없이 나타난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누가 성령을 받아라 하면 그게 무슨 물건도 아니고, 그런 말 믿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이미 우리 안에 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느님입니다. 성령님은 늘 이렇게 우리를 격려하고 힘주십니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All Will Be Well)”,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은 이런 믿음과 이런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전라도에선 ‘매우’를 '무자게'라고 하는데요, 성령도 ‘무자게 많이’ 가득 찬 성령님을 ‘성령 충만’이라 합니다. 교회와 성령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지요. 예수님의 부활하심 이후 성령님의 시대가 이어집니다. 이는 곧 교회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의 장소로 교회를 이루며 성령님과 동행합니다. 교회의 실천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고 깨달아 알게 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교회의 지체가 될 수 있습니다.
“술에 취하여 방탕하지 말고, 오직 성령으로 성령 충만을 받으십시오” (에베소서 5: 18) 그리스어로 ‘플레루스테(plerusthe)’, 여기서 충만에 대한 낱말은 플레로오(끝까지 채우다, 가득하게 하다, 완벽하게 하다, 완수하다)라는 낱말이 원형입니다. 그 자신 충만하신 모체로 누군가에 충만케 하여(부어주어) 완성케 하는 것입니다. 오순절 다락방(행2: 4)은 물론이고 기도할 때에 ‘플레로오(수동태/ 가득하게 되다, 돛배에 바람을 가득 담다, 일을 마치다)’가 이루어집니다. (사도행전 2: 18, 10, 45)
앞서 플리루스테는 ‘충만해져라’는 뜻의 수동태로 발생처 주어는 바로 ‘하느님’입니다. 성령을 주시는 이는 다름 아닌 하느님입니다. 한편 플레루스테는 과거형이 아니고 그렇다고 막연한 미래형도 아닌 바로 ‘현재형’ 수동태입니다. 성령 충만과 성령 동행은 지속적이며 연속성 있는 사건임을 그리스어 단어로 성서기자는 못을 박아둡니다. 오늘 우리도 현재형으로 성령 충만함 가운데 머물고 있음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입은 기독인들은 교회로 함께 모여 살고, 성찬 애찬을 나누며(사도행전 2: 42) 자신의 재산을 공동소유물로 내놓게 됩니다. (사도행전 2: 44-45)
서울 국회의사당에 윤석열 탄핵 시위 군중들을 위한 푸드트럭 행렬을 보셨는지요. 멀리 해외에서까지 선결제 무료 시식권을 주고, 집회 장소 가까운 커피집에 커피 쿠폰을 선결제로 남기면 누구나 마실 수 있습니다. 서울 말고도 부산, 대구, 광주에도 선결제 식당과 커피숍이 늘었습니다. 누군 12월 14일 집회를 대비해 커피 100잔을 선결제했다고 합니다, 김밥집에선 야채 김밥 30줄, 치즈 김밥 20줄, 참치 김밥 20줄이 미리 결제된 상태입니다. 우리는 이런 나눔을 보며 오병이어의 기적과 초대교회의 나눔의 기적을 생각하게 됩니다. 교회는 나눔의 ‘한솥밥 한울삶’을 살 때 바로소 형상화, 실재화하게 됩니다. 타자의 기쁨을 내 기쁨으로 알고, 타자의 슬픔을 내 슬픔으로 아는 것. 타자의 추위와 불편과 배고픔을 내 마음에 새길 수 있고 연민의 반응을 하는 것이 성령 충만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거리에서, 광장에서 교회가 되어 함께했으며, 이 유무형의 교회는 성령 충만의 경험을 가져다 줍니다.
대림절 기간입니다. 본회퍼 목사가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의 교환학생으로 가 있을 때 할렘가 흑인들의 교회 가운데 ‘에디오피아 교회’를 가끔 방문 예배했다고 합니다. 그는 ‘개혁이 사라진 개신교’라는 미국보고서에서, 이 에디오피아 디아스포라 교회에서 겪은 흑인 영가의 인기와 흑인 가수들이 받는 찬사에 관해 기록하고 그 경험을 갖고자 직접 남미로 날아간 이야기를 전합니다. 1930년 성탄절을 본 회퍼는 쿠바 아바나에서 지내게 됩니다. 1930년 12월 21일 주일 설교에서 그는 성탄절 목전에 맞는 전쟁과 같은 것, 약속의 땅을 눈앞에 보고 아바림 산에서 죽어야 했던 모세의 이야기, 곧 신명기 32장 말씀을 상고합니다. 그리고서 “당신들은 아기 예수를 맞을 준비가 되었는가, 그러려면 대림절에 영적으로 죽고 회심하라” 하면서 빌립보서 2: 12절의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를 꺼내 듭니다. 수감생활 중에 그는 순교를 각오하였고, 히틀러 나치에 의해 결국 처형되고 맙니다.
무엇보다 교회는 ‘한번 죽은 사람들의 모임’이어야 합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진 신앙인들의 순교적 공동체여야 합니다. 내세우고 주장하고 이기려고 하는 교회, 이곳에서 예전 사람 자기의 고집과 사고를 관철하여 승리하려고 해서는 곤란합니다. 죽음을 연습하는 교회이어야 그 교회는 살 수 있습니다. 바울이 그러했고, 박해받던 초대 교회가 그랬습니다. 죽음을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죽음, 사라짐, 주님의 부르심이 가까이 있고, 또 그 죽음을 연습해야 함에도 이를 멀리한다면, 우리는 더이상 교회임을 선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면 내 모든 것을 퍼서 나누고 사랑하고 화해할 것입니다. 죽음으로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복합니다.
(Ps. 주후 313 콘스탄틴 대제의 밀라노칙령으로 박해가 멈춤. 교회는 태세를 정비하여 가르침을 담당하는 사도와 음식과 재물을 담당하는 집사(장로)로 나누어 공동체를 세워감. 예수 부활을 공론화한 것은 바울이라고 신학자 크로산은 보았다. “육은 죽고 영은 산다”는 이런 이야기가 급속히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