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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람(마태오) - 매주 저희 담안 형제들의 이야기를 찾아봐주시는 감사한 분들과 저희의 이야기로 삶의 용기와 묵상을 얻는 모든 형제자매님들에게 평소 제가 좋아하고 가슴에 간직하던 글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글이라 많은 형제자매님들께서도 익히 아시고 계신 글이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오늘 내 삶이 얼마나 감사한가를 되돌아보시길 바랍니다. 미국인으로써 저술가이자, 사회운동가 또한 맹인이자 농아인 여인으로 태어나 바스러지기 쉬운 세상에 평화와 사랑으로 공헌한 헬렌켈러 (Helen Adams Keller)의 ‘3일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글입니다. ‘첫째 날에는 친절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준 사람들을 보고 싶다. 손으로 만져보는 것이 아닌 친구들의 내면적인 천성까지도 깊숙이 보고 싶다. 사랑하는 친구들을 모두 보고 싶다. 오후가 되면 오랫동안 숲 속을 산책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적시고 싶다. 둘째 날에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밤이 아침으로, 낮으로 바뀌는 기적을 보고 싶다. 그리고 박물관에 가서 손끝으로만 보던 조각들을 보면서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고 싶다. 예술을 통해 사람의 영혼을 탐색해보고 싶다. 그날 저녁에는 영화나 연극 보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내 손의 감각으로는 도저히 알아차리지 못한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보고 싶다. 셋째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평범한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일상생활을 이해하고 싶다. 도시 여기저기에서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눈여겨보며 그들이 어떻게 일하며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고 싶다. 저녁이 되면 또 다시 연극회관으로 가서 인간의 정신에서 우러나오는 희극의 함축된 의미를 감상하고 싶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사흘간 눈을 뜨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다. 어떠세요?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직업의 고하를 떠나, 형제자매님들께서는 정말 일상에서 소소히 누리며 살아가는 오늘일 것입니다. 평범한 그 삶이 누군가에게는 가슴 뭉클한 바람일 수 있음을 느끼셨나요? 하루하루의 삶 지금 이 순간이 그 무엇보다 위대한 삶이 되고 그 주인공이 바로 자신임을 하느님께 감사함이 찰난한 기적입니다. 인간의 삶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따르다보면 굽이굽이 절망과 고뇌와 좌절이 가로막아서기도 하지만 그 또한 지나가는 것 믿음과 실천하는 진리의 삶을 따르면, 오늘에 주어진 삶에 기쁨과 행복이 안겨올 것입니다. 형제자매님들 잊지 마세요. 당신은 하느님께서 만드신 최고의 걸작이심을요. 그러니 오늘 주어지는 하루의 삶 늘 감사하고 진리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축복을 누리세요. 당연하다고 믿던 모든 삶에 축복이 있음을 기뻐하세요. 주님이 당신께 허락하신 그 삶을 꿈꾸는 저희 담 안형제들은 언젠가 그렇게 살리라 믿으며 실천하는 기도를 찾아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만지고, 느끼고, 함께하며, 지칠 때 까지 힘차게 걷고 걸으며, 목이 쉬도록 노래하며, 성당에 미사 드리는 그 간절한 염원을 위해 저희는 지금 이 순간 기도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힘들었던 일 모두를 감사하며 진리의 삶에 깨어있으세요. 그리고 그를 바람 하는 이들이 있음을 기억해주세요. 기도 자리 한 토막 나눔으로 주님의 사랑에 실천해주세요. 사랑하세요. 지금 오늘의 삶을 기도하세요. 이 모든 사랑에 이처럼 주님께 기도드릴 수 있음을 감사하세요. 설렘과 기대감에 수일 전부터 잠 못 이루다 정작 당일은 그간 불면의 중첩된 후유증에 비몽사몽(非夢似夢) 해져 걷는 것인지, 밀려가는지 열 지은 행렬에 섞여 움직였습니다. 일기예보와 달리 화창한 가을하늘임조차 자각하지 못했지요. 수년을 지내오면서도 처음 넘어서는 외부통용문을 지나치는데도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질 않았으니까요. 그것은 2층(중앙통제건물)에 마련된 행사장 앞에서 호명되어 회장으로 들어설 때까지도 여전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회장으로 들어서자 게슴츠레하던 눈은 순간 매의 눈으로 변해 회장 가장 안쪽의 단상에 자리하며 손을 흔드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클로즈업 (close-up) 되어 저의 정신을 단박에 일깨웠습니다. 하필이며 가장 안쪽자리라 그리로 향해 나감이 더욱 길게 느껴질 법도 하건만 저의 걸음은 이야기 속 축지법인 양 한걸음에 어머니 앞에 섰습니다. 10년을 못난 큰아들을 그리시며 겹겹이 쌓인 한은 이중 아크릴과 화상화면에서는 미처 접하지 못한 주름을 새기신 어머니. 한순간 10년을 뛰어넘은 어머니의 모습에 쇳물을 삼킨 듯 가슴이 먹먹하고, 목이 잠겼지만, 눈물을 흘리시며 큰 아들의 못난 이름만 거듭 되풀이 부르시는 어머니께서 한쪽 감정에 잠식되실까 제어해, 발바닥 힘까지 쥐어짜 무덤한 척 흘리듯 인사하며 냉큼 마련 된 자리에 앉아야했었습니다. 찰나도 머뭇거리다가는 통곡을 억제하지 못할까봐서요. 만약 그 순간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자리를 비운 동생이 있었다면 그마저도 행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덕에 동생도 유야무야(有耶無耶) 감정을 조절해 다른 가족들처럼 눈물바람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동생이 준비해온 음식들이 눈앞에 가득 펼쳐졌고, 그 대부분 10년 동안 먹고파 그리던 음식들임에도 식욕의 본능보다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시간이 꿈같이 느껴져 2시간의 만남 동안 채 반도 먹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애타게 먹고픈 음식들이었는데, 도저히 그 맛을 느낄 수가 없어 입으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10년……. 소년이던 동생이 청년으로, 청년이던 제가 청중년으로 장년(壯年)이시던 어머니께서 초로(初老)에 들어선, 길고 긴 세월을 지나 처음 안아보고, 손잡으며, 서로의 숨결을 직접 느끼는 상황이 어찌 글로 온전히 전달이 될까요. 2시간 단, 2시간 87,600시간 中,2시간. 그 순간의 2시간은 2초보다도 짧고 빠르게 쏘아져갔습니다. 가족보다 먼저 회장을 나서며 일부러 더 뒤돌아보지 않게 흐르는 눈물 감추며 다시 담 안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지금껏 그 어떤 걸음보다도 멀고 힘겨웠습니다. 거실로 돌아와 저녁 점호를 마치고 일과시간이 끝나자 평소보다 더 간절히 가족을 위한 기도를 했습니다. ‘더 이상 나의 존재로 가족이 힘들어 하지 않게 하길, 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하지만 잠시 후 가슴이 가족을 만나고 돌아서던 그 순간보다 더욱 먹먹하고 아련해졌습니다. ‘나는, 죄의 원흉(元兇)인 난 10년이라도 지나 2시간 이나마 가족을 만났으나, 억울하게 고인이 된 피해자와 그 가족 분들은 100년이 지나도 두 번 다시 서로의 체온과 숨결을 느끼실 수가 없구나.’ 눈물이 흐르다 못해 터져 흘렀고, 목구멍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긁혀지는 절규는 변기를 내리는 소리보다 더 크게 울렸습니다. ‘제발, 제가 죽는 날까지 제 죄를 잊지 않게 하시고, 그 죄를 인정하여 나태하게 주저앉지 말고, 실천과 행동으로 보속하게 하소서. 더는 저와 같은 회개로 아파하는 사람이 없게 제 삶을 생생히 전달하며, 저를 디딤돌로 헤매는 사람들의 가야할 길을 바르게 하소서. 부디, 제 숨이 멈추는 마지막 순간 아주 조금은 제 죄에서 가벼워 졌노라 변명 할 수 있는 삶을 살게 하소서.’ 저는 그날 정말 행복했지만 그와는 비할 수 없는 아픔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기쁨과 행복보다 죄책감의 아픔에 더욱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음 가족과의 대면에는 지금의 아픔보다는 조금씩 채워가고 있음을 자인하고자 다짐하며 각오합니다. 그립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함에 더는 죄스럽지 않게 살아가려합니다. 사람으로 살고자합니다. 사람으로 숨 쉬고자 합니다. 못난 글로 장르문학(무협, 판타지) 소설을 집필하고 있지만, 사람들에게 위안과 휴식이 되며, 친구와 길잡이가 되어줄 글을 그리고자 정진 할 것입니다. 지워지지 않는 죄에 허덕이는 사람이 없길 간절히 기원하며, 아무나 디딜 수 있는 보도블록과 같은 바른 길의 디딤돌이 되고자 합니다. 10년 매일이 지옥의 진창과 가시덤불을 해쳐온 이 길을 감사합니다. 10년만의 해후. 3일 뒤 그나마 감정이 진정되고서 드리는 기도. 주님, 담 안의 형제들 이상으로 주님의 보살핌이 필요하신 교도관들을 위해주소서. 왜곡된 사회의 시각으로 자신의 직업을 당당하게 내세우지 못하고 어느 관공서보다 엄격한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규율에 늘 피로와 스트레스(Stress)로 고생하면서도 재소자들에게 응원이 되어주는 교도관들이 자신들의 직업윤리(職業倫理)의 보람을 느끼며 당당하게 나아가게 하소서. 그 흔한 휴대폰에 전자기기나 사 물품 하나 몸에 지니지 못한 채 온갖 적대심에 휩싸인 재소자와 주변 어려운 근무여건에 (잦은 야근과 통상적이지 못한 휴일, 휴가에 명절에도 온전히 쉬지 못하는)도 자신의 위치에 충실하며 한가정의 가장으로 부끄럽지 않게 행하고자 하시는 교도관들에 평온함을 허락하소서. 때론 이치에 맞지 않은 행정임에도 자신의 위치에 대한 질서로 인내하며 감내하는 교도관들의 이념을 위로하소서. 주님 모든 이들이 주님 안에서 하나 되어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긴 겨울이 지나 싱그러운 봄날이 어서 오소서. 너와 나 우리 다함께 미소로 마주하며 사랑하게 하소서. 노력하는 모든 이들이 그에 합당한 결과를 누리게 하소서. 늘 깨어있는 진리로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아멘
마진수(세례자요한) - 사람의 생명을 우리의 영혼도 현실에서의 재화를 모으는 것으로 부유하지 못하나, 하느님 앞에서 부유하고 영원한 생명의 재산을 모으는 것도 바로 유일하신 하느님을 모시고 우리의 영혼을 위해서 신앙심을 키우는 길임을 깨닫게 해주는 복음의 말씀입니다.
이영환(베네딕토) - 이제 며칠이 지나면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입니다. 지난 시절, 온 가족이 한데모여 오순도순 정답게 지내며 조상님들에게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러가던 때가 생각이 납니다. 그 당시에는 차가 밀리고 오고가는 시간이 너무 걸리기에 짜증만 냈었는데, 지금 이곳 담 안에서 생활을 하고 있으니 그때가 더욱 그리워집니다. 특히, 이곳에서 지내다 보면 형제들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가족들이 그립고, 보고 싶을 거라 생각이듭니다. 이럴 때 일수록 담 안형제들끼리 좀 더 따뜻한 정을 나누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봅니다. 서로 서로가 외로움을 떨쳐 버릴 수 있게 말입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김용선(요셉) - 저를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끔 인도하시고 세례까지 주신 분 그리고 고아들의 아버지가 되어주신 소년의 집 신부님이셨던 소 알로이시오(몬시뇰)신부님. 어찌 보면 신부님으로 인해 신앙을 가지고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넘어지기도 여러 번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주님의 나라에서 지켜주시어 신앙에 끈을 놓지 않고 이렇게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언제나 늘 신앙에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그리고 고맙고 감사합니다. 신부님 사랑해요. 항상 신부님께서 보여주신 참사랑의 실천을 본받아 이웃과 더불어 사랑을 나누며 살아갈게요. 순교자 성월에 신부님을 기리며...
이우근(스테파노) - 사랑의 주님! 잠시 뜻하지 않았던 일들로 고난의 시간을 보냈던 형제들을 큰 시련 없이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게 돌보아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또 한 번 주님께 향한 곧은 일심(一心)만이 온전한 구원의 길임을 깨달았고 저희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도 마음에 깊이 새겼습니다. 저희 마태오 형제들이 이곳에서의 시작은 사회와 세상의 짐이었지만, 세상으로 돌아갈 때는 주님의 종으로 세상에 희망을 전하는 도구가 되도록 지혜와 바른 마음, 주님께로만 향하는 곧은 마음을 저희 형제들에게 허락하소서. 또한, 저희가 고난을 당하고 시험을 받을 때, 흔들리지 않는 굳은 믿음을 지켜 주시고 저희가 원망보다는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고 겸허히 자성하는 마음 주님께 죄인임을 고백하도록 살펴주소서. “주님, 제가 헤아릴 수 있는 죄보다 제 마음에 감춰진 죄가 무엇인지 더욱 잘 볼 수 있게 도와주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김논태(예비신자) -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명절입니다. 어렸을 때는 송편도 빚고 송편에 쓸 솔잎도 직접 따다가 가족들과 함께 했던 추억이 가슴 한 견을 쓰리게 합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이곳에 있는 우리는 집에 갈 수 없지만 마음만은 벌서 도착해 차례를 지내고도 남습니다. 부디 복되신 성모마리아님의 은총이 우리에게 내려 주시길 희망합니다. 그 은총으로 인해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용서하고 감싸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유성호->돌아가신 저희 할머니 이십니다. 저에게는 너무 소중한 존재이셨는데 임종하실 때 곁에 지키지도 못했습니다. 할머니의 존함 참 오랜만인 것 같네요. 신부님 덕분에 할머니의 이름도 오랜만에 써 보고 지금 계신 그곳에서 편안히 잘 계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최정배(예비신자) - 돌아가신 나의 소중한 가족 열심히 가족들 뒷바라지 하시다가 돌아가신 이문호할머니, 집안을 일으키시고 알뜰하셨던 돌아가신 할아버지 최두호님,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였던 조건 없는 사랑을 주신 돌아가신 구순희 어머님, 힘들 때 마다 도와주시고 언제나 나의 믿음직스러웠던 돌아가신 막내 형 최정식님, 네 분 모두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으시어 좋은 세상 아름다운 세상에 가시길 정배가 두 손 모아기도 드립니다. 아멘. 현재 저의 교도소 생활을 뒷바라지 해 주시는 아버님 항상 고맙고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어려운 일이 부딪치지 말며 언제나 행복과 사랑을 많이 받으시길 막내 정배가 두 손 모아 예수님께 기도드립니다. 아멘. 큰형님, 큰형수님 저랑 모든 갈등해소 되어서 서로를 걱정해주는 사이로 발전이 될 수 있도록 해주시고 둘째 정태형의 가족들 모두 건강하시고 사촌 조카들 모두 건강히 예수님의 사랑 많이 받게 해 주시고 조카 최현미가 취직되었는데 회사의 많은 사랑 받을 수 있도록 예수님 도와주소서. 아멘
박병수(프란치스코) - 풍요로운 한가위를 맞아 알차게 수확하게 해주신 하느님께 정성을 다해 기도를 하며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해서 쓸쓸하게 지내는 이곳 사람들을 기억해주시고, 그리스도를 믿으며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난 이세상의 아버지이셨던 박진성(세례자요한)을 생각하며 기도하오니 세상에서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가르침을 따랐던 아버지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또한, 형제와 친척 은인을 위하여 주님의 자비를 간구하오니 저희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이 주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마상태(안드레아) - 한가위 미사의 복음서에 탐욕스런 부유한 자의 인색함을 나무라시는 비유를 들은 우리 모두에게 결론의 메시지이다. 아무리 내 땅, 내 소유의 땅에서 소출한 것일지라도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마음이 없이 자기 혼자만 자기 가족만 오래오래 잘 먹고 잘살아 보겠다고 움켜쥔다면 언제 그 목숨이 다 할지 모르는 어리석은 영혼을 꾸짖으십니다. 가진 자는 베풀고 나누어 가난한 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진정한 하늘나라가 아닐까. 한가위 명절에 우리 주위에 아픈 가슴을 지닌 이웃들이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전호식(이시도로) - 한가위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국민들이지만 조상들에게 드리는 음식에 소홀함이 없게 하려는 우리 후손들의 성의가 있어 평소 조상님들에게서 즐겨 드시는 음식을 많이 준비하기에 추석에 풍성한 음식이 많을 줄 알고 있습니다. 죄인의 아버지 전상렬, 어머니 이태연, 모두 작고하셨지만 한 번도 자식의 도리 올리지 못한 불효자식임은 부인 할 수 없는 것이기에 고개 숙여 참회의 시간 가지렵니다. 두 분 어른들께서 주님의 종으로써 열심히 성당에 다니신걸 알고 있지만 세례명도 기억하지 못한 자식이었음에 다시 한 번 묵상하면서 주 하느님께로 기도 올리오니 죄인의 기도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죄의 기본을 따지지 마시고 돌아가신 부모님 마음에 평온함이 들게 하여 주시옵길 예수님 이름 받들어서 기도 올립니다. 사랑의 길에 제 눈에는 모두 바르게 보여도 마음을 살피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말씀 잠언에서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정의롭게 살아보지 못한 죄인이오나 공정을 실천함에 주님께선 제물보다 낮다 하신말씀을 죄인의 마음속에 새겨 두면서 충실히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아멘
정재덕(프란치스코) - 우리나라 땅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후 1백 여 년에 걸쳐 유교사상의 뿌리깊이 박혀있는 이 땅에서 천주교 박해도 1만 명 이상이 순교하셨다고 합니다. 우리 선조들의 이름도 성도 밝혀지지 않은 채. 오직 신앙하나로 목숨을 바친 성인, 성녀 선조들의 고귀하신 그 뜻을 기리는 그분들의 순명함을 새기는 9월 순교자 성월달입니다. 또 우리 민족 고유의 한가위 명절 추석이 다가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사계절의 오묘한 자연의 절기를 주시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우리 민족한테 더 절실히 알게 하신 계절의 순환을 우리들은 느끼고 살아갑니다. 지구상에 사계절의 혜택을 받은 나라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나라라고 생각도 해봅니다. 봄이 오면 만물의 생명의 씨앗이 나게 하시고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고 여름이 되면 그 생명의 씨앗들이 성장하는 시기 거쳐 가을이면 서서히 봄여름의 성장기를 거쳐 결실의 계절 가을은 곡식을 영글게 하시고 거두어들이는 가을을 지나 겨울이 오면 휴식의 계절 에너지를 충전하며 새로운 씨앗 생명은 뿌리는 봄을 향하여 휴식기를 보내게 하는 대자연의 신비한 오묘한 창조주 하느님의 위대하신 힘을 보는 것 같다. 그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 후손들은 항상 겸손함과 순연함으로 오직 믿음하나로 주님께 사랑을 이웃에 사랑하는 인생길 살아 갈 것입니다. 어릴 적 명절이면 일 년 중 가장 기다려지고 설레게 하는 설에는 새 옷은 사준 것으로 입어보며 설날아침 세배와 함께 용돈을 받는 설날은 다시없는 반가운 날 기다려지는 날인 것 같습니다. 추석은 넓은 마당에 살평상에 앉아 엄마 아버지 형제들과 둘러앉아 송편을 빚으며 작은 손으로 팥이 터져 나오는 것을 막으려고 쌀가루로 옷 씌우던 지금은 안 계신 부모님들과의 참으로 소중한 명절들을 보낸 시절들이 생각나는 추석명철이 다가옵니다. 지금은 예전보다 조금 명절의 의미가 조금은 빛이 바랜 듯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가족이 모이고 친척을 만나며 한때의 안부를 물으며 보내는 명절은 즐거운 날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명절이 되면 더욱 외로워지는 이웃들 홀로 집을 지키며 오고가는 정다운 인사도 없이 살아가는 조금은 외로운 사람들이 또 한편의 그늘진 마음들을 생각하며 이웃을 돌아보는 훈훈한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곳 담 안에 있는 형제분들도 고향에 계씬 부모들과 가족 분들 생각하며 지금의 시간들이 자신의 미래에 다져지는 주춧돌이 될 것이다 생각하며 오히려 우리는 보다도 더 안타까운 마음으로 마음 고생하는 가족들에게 힘과 용기되는 말 들려주며 가족들의 마음을 아픔을 감싸주는 나 자신이 되어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믿음을 더욱 굳건히 지키며 자신을 잘 다스리며 살아갈 것입니다. 주님을 대신하는 신부님, 수녀님, 늘 바쁘시게 이곳저곳 자신의 건강보다 소외된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여 주시며 이끌어 주시는 신부님 수녀님 주님의 눈꽃 송이처럼 많은 은총이 듬뿍 듬뿍 담긴 에너지가 되어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주님 모자라고 부족한 저 자신이지만 오로지 주님만을 믿는 믿음하나는 제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저 자신 어여삐 여겨주소서. 아멘
조성락(경환 프란치스코) - 세상을 먼저 떠난 조부모, 친척, 친구, 피해자를 위한기도 <조석봉>할아버지 저의 할아버지는 장손인 저를 누구보다 아끼셨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4살 무렵 지병으로 돌아가셨고 저는 기억에도 별로 없는 할아버지의 애틋한 사랑과 애지중지한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리며 할아버지의 영혼에 평온한 안식을 기원 드리고 싶어 이렇게 그리운 마음을 드립니다. <이복매>할머니 저에게는 어머니 대신의 존재였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의 부재로 할머니는 저를 비롯한 형제, 자매를 돌보시며 많은 고생을 하셨으며, 이루 말로 다 표현 못할 사랑의 손길을 주셨음에도 이루 말로 다 표현 못 할 사랑의 손길을 주셨음에도 저는 할머니 살아생전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몹쓸 짓으로 반항도 했으며 병든 할머니께 사춘기 소년의 방황된 모습으로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더해 주었으니, 할머니 가슴과 마음에 새겨진 응어리가 이젠 제 기억에 새겨져서 눈 감는 제 추억엔 아련함으로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리며 후회를 합니다. 아픈 다리로 저를 쫓아오시던 옛 기억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저는 할머니 무릎에 매달려 저를 두고 하늘나라로 떠나가시지 말라고 소리 높여 울고만 싶습니다. 그러나 이제, 소리 나는 눈물을 흘릴 수가 없습니다. 저 자신이 부끄러워 할머니를 입 밖에 불러 볼 수 없으니 그저 떨리는 가슴 속 울림으로 뜨거운 눈물만 닦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할머니! 너무너무 죄송합니다. 언제쯤에나 할머니 아픈 마음을 치유시켜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할머니를 생각하는 손자 녀석의 마음이 아픕니다. 부디, 기억 속에 있는 할머니의 웃는 모습을 제 머릿속에 떠올려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드리며 건강한 몸과 마음을 키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할머니! <최연식>친구를 생각하며, 철없던 시절의 친구 모습과 곁에 함께 하던 제 자신의 모습이 기억에 떠오릅니다. 오랜 시간 우정을 나누며 좋은 모습을 지켜가고 실었는데 친구의 자살 소식을 이곳 담 안에서 들었을 때 세상살이가 그렇게나 힘든 것인가 염려를 해보았습니다. 사람 사는 모습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친구는 추한 모습을 남기기 싫어 극단의 선택을 한 것인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비록 친구의 영정사진을 볼 수도 , 꽃 한 송이 떠나는 친구를 위해 술 한 잔 따라주지 못했지만 마음으로는 늘 친구에게 영혼에 안식을 주님께 빌어주고 있으니 눈감은 친구도 주님의 품에서 평안을 찾기 바랍니다. <저로 인해 억울한 피해를 입어 세상을 떠난 분께> 죄송합니다. 이렇게 주님께 용서를 구한다고 해서 저의 죄가 용서 받고 치유 받을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죽은 분의 원한과는 다르게 그 대가로 겨우 12년의 형량을 받아 어느덧 10년을 거의 살았습니다. 곧 얼마 있지 않으면 가출옥을 이곳에서 받아 조금이나마 일찍 나갈 수 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걸로 피해자분의 억울함에 응어리를 다 했다고는 생각 못 할 것 같아 저는 그분의 가족 분들께라도 용서의 말을 구하고 싶어 얼마 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법무부 장관님께 가족 분들의 소재파악을 구할 길을 요청하였으나 사정상 거절당한 후로 마음으로만 늘 담아왔듯 그 미안함을 아직도 가슴에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속사정이 무수히 많고 말로 다 못 할 죄스러움을 어느 누구에게도 표현 못하고 지냅니다. 부디, 저의 죄가 용서 받지 못하더라도 주님께서는 제가 구하는 진실한 마음을 보시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에 두려움을 물리쳐 주시길 바람하며 불쌍히도 세상을 떠한 영혼에 저의 마음이 전해지도록 주님 도와주소서. 그리고 용서하소서. <조종국>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5촌 당숙 조카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에 문병 한 번 못 가 뵙고 이러고 있어야 하는 마음이 슬프기도 하고 서글펐습니다. 외동아들 현이는 이다음에 제가 마음으로 보살피며 지내겠으니 세상을 떠나신 영혼에 영원한 안식이 있기를 주님께 기도드리겠으니 평안히 하늘나라에 잠드소서.
안남호(율리오) -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인 한가위 추섭입니다. 이웃과 친척과 가족 모두가 함께 서로의 정을 나누던 참 풍요롭게 부족함을 모르며 모두가 즐겁고 행복했던 그런 날로 기억되는 어린 시절의 추석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옛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너무나 삭막하고 싸늘한 명절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 담 안에 있다 보니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오는 반갑지 않은 그런 날이기도 합니다. 한가위라는 민족고유의 명절의 의미조차도 점점 마음에서 멀어져 가듯 마음 또한 무뎌져 가는 것을 느낍니다. 선거철만 되면 서민을 위한다고 말로만 떠들어 대는 정치인들을 보면 공정치 못한 이 사회에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거기에 요즘 담안 생활이 살얼음판을 걷듯 점점 힘들고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 뒤에는 아무도 모르는 흑막이 깔려 있어 보이지만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을 닫아버린 지금 우리들의 하소연은 결국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올 뿐입니다. 참으로 담담합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다 보고 계실 텐데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 했습니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지만 결코 오래가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 자신만을 위하고 세상 것에 집착하고 그것에 행복을 찾는 이를 예수님께서 꾸짖으시듯 탁상공론만 하고 진정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는 이 나라 지도자들의 각성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또한 우리 담 안형제들도 이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잘 헤쳐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노형식(안드레아) - 하느님의 부르심은 어느 한순간 아주 우연히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주님을 알게 되면서 믿음으로써 제 자신을 반듯하게 세우고자 하는 지금 이 순간 기도와 묵상으로 저의 마음의 밭은 차츰 비옥하게 변해갈 것입니다.
아버지 어리석은 생각과 행동으로 말미암아 찾아뵙지 못한지도 벌써 10년을 훌쩍 넘어버렸습니다. 내년 설날에는 어머님과 함께 꼭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어머님을 성심을 다해서 모시면서 참 인생을 엮어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옛날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니 많이많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많이 만이 죄스러울 뿐입니다. 앞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아버지!
이국진(욥) -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가족이 모일 수 없는 이들도 많습니다. 특히 홀로 집을 지키며 외롭게 추석을 보내는 이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시설에서 외롭게 사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또한 추석이 되면 오히려 더 서글픈 이들도 있습니다.
김윤오(베드로) - 오늘은 내일처럼……. 내일은 모레처럼……. 모레는 또 글피처럼……. 글피엔 또 다음날처럼. 그 다음 날에는 또 다음날처럼……. 오늘이 아닌 내일처럼 살게 해 주십시오. 오늘만을 생각 말고 내일엔 그 다음날을 생각하고 다음날에는 또 다른 내일을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내일엔 오늘보다 조금 더 가까이 주님 곁으로 다가선 베드로가 되고 싶습니다. 가까이 불러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모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 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마르코 6,1-6) 저는 이 부분의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을 하던 중에 편견과 선입견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제가 머물고 있는 방에 처음 왔을 때 방에는 전부터 머물고 있던 사람이 두 명 있었습니다. 한명은 초등학생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먹는 불가사의 같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 사람은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코를 거는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을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라며 조언을 들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이 두 사람에게 선입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중에 불가사의라고 칭하던 사람은 징벌을 받아 이 방을 떠나게 되었고 코를 건다는 사람은 방에 남아 있으며 저와는 사사건건 부딪히며 계속된 다툼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성경을 읽으며 생각해보았습니다. 처음 이 방에 왔을 때 이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가지는 저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없었을 텐데 그리 되었어도 내가 저 사람과 사사건건 부딪치며 싸움을 했을까, 그리 안됐을 것 같습니다. 나자렛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기에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듯이 저에게도 이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서 이 사람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님, 저의 이런 선입견과 편견을 업신여겨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수없이 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시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나병환자를 치유하시기도 하셨고 중풍환자를 치유하셨으며 이렇게 치유를 받은 이들을 보면 그네들의 믿음이 얼마나 곧고 깊은지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고, 묵상을 하며 저에게도 치유의 은총을 내려 주시길 간절히 바라는 기도를 드리곤 했습니다. 저의 기도에 아무런 답이 없어 저는 주님께 왜 어찌하여 나에게는 치유의 은총을 보여 주시지 않으시는가 하는 원망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야 왜 주님께서 저에게 치유의 기적을 보여 주시지 않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아닙니다.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한결같이 치유의 기적을 행하시고 계신데 제가 알지 못했고, 볼 수 있는 눈이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저를 치유하고 계신데 저는 눈에 보이는 육식의 고통만을 치유의 기적으로 알고 주님을 원망하고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이곳 담 안 생활을 하다 보니 그전에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던 것들을 보고 느끼게 되어가는 제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살아가는 방법을 방식을 깨우쳐 주시고자 저에게 힘듦과 고통을 주시고 계시는데 아직은 제가 조금 부족한 눈을 가지고 있고 조금 미흡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 주님의 뜻을 모두 따르고 깨우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치유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의 그 굳센 믿음을 본받아 부족한 눈을 뜨고 깨우치지 못한 모든 것을 깨우칠 수 있는 마음의 눈을 뜰 수 있도록 저에게 힘과 지혜를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주님 이 못난 죄인 불쌍히 여겨주소서 아멘. 주님, 저의 아버지 안토니오를 위해 기도드립니다. 생전에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하시기도 하셨지만 아무도 없는 곳에선 무릎을 꿇고 주님을 찾던 모습 그런 모습을 제가 목격하게 되면 멋쩍어 하시던 저의 아버지 주님께서도 아시는 것이죠. 주님께서는 이러한 저의 아버지 안토니오의 마음을 아시고 마지막 종부성사와 더불어 회개와 용서를 구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고 데려간 것이죠. 저희 가족이 드리는 기도도 들으신 것이죠. 그렇게 기회를 주신 후 데리고 가셔서 감사드린다고 그렇게 괴로워하시던 저의 어머니 세실리아에게 용서를 구하며 모두 울음바다에 빠뜨리신 저의 아버지 이런 저의 아버지 안토니오를 불쌍히 여겨 평안한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주님! 저의 아버지 안토니오와 저의 어머니 세실리아를 언제나 주님 곁에 머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주님 저의 어머니 세실리아를 위해 기도드립니다. 오랜 시간 아버지 병수발을 하시며 저의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신 분이십니다. 자신의 힘듦에 몸부림치며 의지할 곳 하나도 없이 오로지 주님께만 매달려야 했던 분이셨습니다. 동트기 전에 일하러 나갔다. 어두워진 후에야 돌아 오시면서도 오로지 주님만 찾던 저의 어머니 세실리아. 교리를 배워 첫영성체를 모시기로 되어 있던 저의 형제 당시 옷을 못해 입어 첫영성체를 모실 수 없다는 것에 서러움이 북받쳐 통곡을 하며 우시던 저의 어머니. 나이가 들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언제나 십자고상을 모셔두고 기도하시는 모습만을 보여 주시던 저의 어머니 세실리아. 배우지 못해 한글도 알지 못하시던 저의 어머니 .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성경책을 막힘없이 줄줄 읽어 내시며 당신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이라며 모든 공로주님께 드리며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기도를 드리시던 저의 어머니 세실리아. 주님 안에서 평안하신 것이죠. 아멘. 주님 온몸이 아파와도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 외로움 무서움 곁에는 아무도 없고, 그래도 의연히 견딜 수 있도록 저에게 용기와 힘을 주소서. 하루하루 견디며 살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기도드리며 견딜 수 있도록. 저에게 인내와 지혜를 주소서. 버거운 삶을 내려놓을 수도 헤져 나갈 여력이 없어져도, 알 수 없는 마음의 고통이 찾아와도 기도드리는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저에게 은총을 내려 주소서. 저의 잘못된 선택은 반성 할 수 있도록 앞으로는 좋은 생각만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송기성(스테파노) -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유혹과 탐욕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부유하게 산다는 것은 좋은 방법 일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하여 또 다른 사람도 있겠지만 그로 인하여 또 다른 사람은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비록 담 안의 생활이라 할지라도 서로 이해해 주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면서 살며 어떻게 습니까?
이두재(예비신자) - 하느님!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배우고 깨우치겠습니다.
박기원(토마스 모어) - 먼저 세상을 떠난 부모님과 형제분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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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기 쓰여진 한자 한자가
기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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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고 말고요.
고맙습니다. 저의 엉터리 말뿐인 기도 반성합니다.
전능하신 주님!
영원한 빛을 돌아가신 분들에게 비추어 주시어, 그들이 영원한 안식에 들게 하시옵소서.
조상님들 위해 기도하는 형제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어,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