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메아리 /홍금자
이 겨울 어디쯤
숨었을까
막 시작한 눈송이
가슴으로 젖어온다
봉우리마다
네 남긴 흔적들
한점 눈발로 놓고
채색되지 않은 산허리에
작은 하루
부표처럼 남아
하늘이
보임직한 거리
그곳에
머물고 있다
겨울을 맞이하며 /조서연
억울한 상황에서
나를
내려놓는다 는 것은
참으로 절망이었지요
하나 지나고 나니
분노와 서운함이
물처럼 녹아 흐르더이다
버리는 게 아니고
비우는 것이라는 것
무엇을 얻은 것은 없지만
무엇을 잃은 것도 없더이다
다만 더 많이 느끼고
나를 직시하는 걸로 터득되더이다
추운 마음
억지로 데워지지도
않는다고
우리는 늘 애만 탔지요
이제부터라도
마음에 군불을 지펴보는
노력을 해봐야겠어요
내가 따뜻해지면
남들도 따뜻해지기를 바라면서
그대만
외롭고 슬픈 게 아니라오
다른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오
마음을
데우는 법을 몰랐을 뿐이지요
산다는 것은 견디는 것이라오
그냥 그렇게
주어진 길 가다 보면
주위에
미처 보이지 않았던
작은 행복들이 옆에서
하염없이 바라봐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소외된
기쁨들을 찾아보자고요
작은 행복도
느끼지 못하면
큰 행복도
느끼지 못하니까요
오늘은
춥고 외로운 이들의
손을 꼭 잡는 날
그래야 그대도 나도
서로가 따뜻한 위로가 될 테니까
가을 앓이 /조위제
깊어가는 가을날
이렇게 가을바람 스산한데
단풍잎 한 잎에 사연 실어
질기고 질긴
못 잊는 그리움 엮어
잔주름 곱게 피어있을
당신께 보냅니다.
어느 하늘 밑에 있는지요?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당신께 가고 싶습니다.
겨울 고해 /홍수희
겨울밤엔
하늘도 빙판길입니다
내 마음 외로울 때마다
하나 둘 쏘아 올렸던
작은 기도 점점이
차가운 하늘밭에서
자꾸만 미끄러져
떨어지더니
잠들었던
내 무딘 영혼에
날카로운 파편으로
아프게 박혀옵니다
사랑이 되지 못한
바램 같은 것
실천이 되지 못한
독백 같은 것
더러는 아아,
별이 되지 못한
희망 같은 것
다시 돌아다보면
너를 위한 기도마저도
나를 위한 안위의
기도였다는 그것
온 세상이 꽁꽁 얼어
눈빛이 맑아질 때야
비로소 보이는 그것
겨울은,
나에게도 숨어있던
나를 보게 합니다
하얀 겨울의 절규 /태안 임석순
끝없는
어두운 회색
슬픔이
가득하여
하염없이 끝도 없이
춤을 추며 떨어지는 꽃
코끝 시린
하얀 겨울 어느 날
뭣, 모르는 개구쟁이들
신나서 오르락내리락
겨울은 인숭무레기 /박희홍
겨울은 오일장 장돌뱅이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성엣장처럼 떠돌면서
형색도 가지가지라서
험상궂다가 방긋 웃고
방긋 웃다가 험상궂고
봄날을 막 밀어내면서
괜히 성질내 훼방 놓고
결국 봄날에 양보하는
갈팡질팡하는 네 심중
도통 헤아릴 수가 없다
* 인숭무레기 : 어리석어 사리를 분별할 능력이 없는 사람.
* 성엣장 : 물 위에 떠서 흘러가는 얼음덩이.
겨울에 피는 꽃 /서재남
버린다 버린다 하면서도
버리기커녕 외려 더 키우고 있었다니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이 부끄러운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철도 모르고 봄꽃은 무슨!
이 조화 속을 내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겨울달 /문태준
꽝꽝 얼어붙은 세계가
하나의 돌멩이 속으로 들어가는 저녁
아버지가 무 구덩이에 팔뚝을 집어넣어
밑동이 둥글고 크고 흰
무 하나를 들고 나오시네
찬 하늘에는
한동이의 빛이 떠 있네
시래기 같은 어머니가 집에 이고 온
저 빛
겨울 뻐꾸기 /황금찬
새벽 4시
나는 뻐꾸기 소리에
잠을 깬다.
그리곤 다시
잠이 들지 않는다
젊은 어머니와
늙은 아들의 대화
어머니는
저보다 늙지 않았습니다.
그래 너는 에미보다
늙었구나.
제가 어머니보다
많이 더 오래 살구 있는걸요
너는 이 에미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지
늙어가는 네 모습이
울고 싶도록 아름답구나
어머니의 소원은
뻐꾹새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 잠든 도시의 새벽을
깨우고 있다.
사랑하는 아들아
딸들아
어미처럼 젊은 나이로는
뻐꾸새가 되지 말아라.
어머니는
새벽 4시가 되면
늘 우시고 있다.
겨울 창가에 /강세화
겨울창가에
허무의 꽃 한 송이
아득히 잊은 세월을
멍하니 보고 있다
떠나온 흙내를 그리듯
고개 숙인 모습이 애처롭다
햇살 한 줌 탐탁치 않고
쳐다볼 하늘도 마땅찮다
마냥 아득하기만 하다
한겨울 시편 /홍해리(洪海里)
가야지 이제 가야지 하면서도
막상 떠날 생각 털끝만큼도 없는데
북한산 깊은 골짝 천년 노송들
가지 위에 눈은 내려 퍼부어
한밤이면
쩌억 쩍 뚜욱 뚝 팔 떨어지는 소리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더니
누구의 뜻으로 눈은 저리 내려 쌓이고
적멸의 천지에 눈꽃은 지천으로 피어서
우리들을 세상 밖으로 내모는가.
겨울속의 꿈 /오정방
계절의 한 자락에
겨울이 머물러 있다
하얀 겨울이다
양털보다 더 희다
고요한 겨울이다
깊은 산사보다 더 조용하다
어느새 상상의 나래는
고국의 산하를 넘나든다
백설 덮인
설악산을,
지리산을,
한라산을 헤멘다
대청봉을 올랐다가
천왕봉을 서성거리더니
이내
백록담 주위를 맴돌고 있다
빙폭을 오르다가
설원을 거닐더니
금새 설화 아래서 춤을 춘다
이렇게
흰눈 덮인
고국의 겨울산을 그릴 땐
나는
늘 꿈길을 홀로 거니는
외로운 나그네
차가운 겨울 /권동우
세찬바람에
꽁꽁 언 손 부비며
고개 숙이고 걸어가고 있다.
영혼은 점점 비어가고
허기진 가슴속으로
차가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힘든 세상
가여운 영혼들
얼어붙은 이 땅에 무엇으로 살아갈까
온몸을 감싸는
세찬바람에 눈물 한 조각 실어 보내고
새로운 봄날을 꿈꾸리라.
동토의 땅
그 밑에서 조근 조근 소리가 들린다.
봄이 오는 소리가
겨울의 속삭임 /최범영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어
씨를 거둔 대지위에
눈보라가 친다
고개 들면
웅크려 들라 부는 바람
옹알거리던 입과
이리저리 눈짓하던 눈마저
얼어붙게 하는 맹추위
내가 무엇이라 부린 짓
매머드처럼 눈뜬 화석
입도 생각도
좁고 어두운 곳에 숨어
숨을 죽이게 한다
다 비우고 나면
새 생명 움트리라
겨울의 진리를 깨우치라
침잠의 세월로 가둔다
다 버려라, 다시 태어나라
쑥과 마늘을 주며
사람 될 때까지 버텨라
동굴 속으로,
동면의 동굴 속으로 들이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