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14길 35-29 (한강로3가 65-154)
02-2199-4621
관람시간 : 10:00-18:00
관람종료시간 30분 전까지 입장 가능
옥상 정원도 동일
휴관일 : 매주 월요일, 매년 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
관람료 무료
주차 불가
주차가 불가하다고 해서 국립중앙박물관에 차를 놔두고 걸어왔더니... 거리가 생각보다 멀다. 약1.1km 정도...
이제 코로나19 거리두기가 풀려서 예약 안해도 방문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사전 예약을 했다.
오후4시 방문 예약을 해서 시간 맞춰서 도착을 했다.
철도병원이었는데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으로 바뀌었다가 한동안 방치되었었는데... 이렇게 훌륭한 박물관이 되어 돌아왔다.
카운터에서 예약자 명단 확인을 하고 앞으로는 예약없이도 방문할 수 있다는 공지를 들었다.
근현대 격변의 세월을 거쳐 지금의 용산이 되기까지 용산 사람들의 기록과 생활사를 중심으로 한 사람과 도시 이야기를
용산역사뱍물관에서 어떻게 들려줄 지...
예약자 명단을 확인하고 받은 마스크... 별거 아니지만 받으니까 좋으네...
<천의 얼굴, 용산>
용산이 역사에 등장하면서부터 현재까지 길고도 다양했던 용산의 이미지들을
건축도면 같은 드로잉과 대형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상징적이고 함축적으로 용산을 보여주는 전시공간이다.
조선시대 용산은 도성 서쪽의 무악산(오늘날의 안산)에서 남쪽으로 뻗어나간 산줄기와 한강으로 둘러싸인 지역을 아울렀다.
그 구불구불한 능선이 한강에 이르러 봉우리를 형성했는데
그 형세가 마치 용을 연상시킨다 하여 용산이라 이름이 불러졌다.
조선 건국 초기 용산은 한양의 땅은 아니었고, 한양의 경계는 도성이었다.
다만 수도 한양을 관할한 한성부는 도성으로부터 10리(4km)에 이르는 성저십리까지 관할했는데,
용산은 이 성저십리에 해당했다.
<용산에 모이다>
한양의 길목, 용산
도성 바깥 한적한 강변 마을이었던 용산은 물길을 따라 포구가 발달하면서 삼남을 오가는 대로가 용산으로부터 갈라졌고,
지방의 세곡이 용산에 집결되어 도성 안으로 운반되었다.
자연스럽게 많은 물자와 사람이 용산으로 모여들었다.
한양의 길목이라는 입지는 용산을 교통과 물류의 거점으로 거듭나게 한 바탕이었다.
조선을 움직인 거상, 경강상인
18세기 용산의 포구는 서강, 마포와 더불어 크게 발전했다.
자연스럽게 시장과 취락이 발달했고, 포구와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생겨났다.
대표적인 얼음창고였던 서빙고와 대외 교역이 이루어진 개시장(開市場)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서빙고에 얼음을 들어보는 체험공간이 있었는데... 엄청 무거워서 들 수가 없었다.
18세기 수상교통이 발달하면서 뱃길의 중심이었던 경강을 기점으로 전국단위의 유통체계가 잡혔다.
경강에서도 서강, 마표, 용산 일대의 상권이 크게 성장했는데 그 중에 용산은 세곡을 수송하는 일에 종사해 큰 이윤을 남겼고,
이를 바탕으로 각종 상업활동을 전개했다. 이들은 경강상인이라 불리며, 조선의 시장경제를 쥐락펴락하기도 했다.
경강상인은 금난전권이라는 특권을 부여받은 시전상인과 경쟁할 만큼 강력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18세기 후반 전국에 이르러
상품 유통을 장악했다. 그러나 1884년 용산이 개시장으로 지정되고 외국의 증기선과 자본이 유입되면서 세를 잃게 되었다.
<인터섹션(intersection)>
용산으로 떠난 시간여행자
조운선에서 관아의 창고까지 세곡을 나르던 "비변사등록"의 스토리를 재구성한 체험존이다.
용산으로 모여들었던 세곡과 물자들의 종류를 이해하고 운반하는 체험을 해볼 수 있다.
철도의료의 본거지, 용산철도병원
일제강점기부터 철도시가지에 세워진 용산철도병원은 철도의료의 중심이자 신용산의 중심의료시설이었다.
전시공간에서 용산철도병원의 역사, 문화적 가치,
그리고 병원에 근무했던 의사와 직원들의 인터뷰와 박물관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영상이 소개되어 있다.
<용산에서 흩어지다>
군사기지로 새로운 지형을 그리게 된 용산
도성에서 가까웠던 용산은 외국군대가 주둔했던 장소이기도 했다.
일제가 침략하자 용산은 군사시설이 밀집한 군사기지로 변했고, 강제로 터전을 빼앗긴 주민들은 이주해야만 했다.
침략전쟁에 동원된 조선 청년들의 희생과 항일독립투사 7인이 잠든 효창공원의 역사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효창공원 항일독립투사 8인
김구, 윤봉길, 안중근, 백정기, 차리석, 이봉창, 이동녕, 조성환
냉전 속에서도 뜨겁기만 했던 용산
일본의 패망 후 용산은 미국의 주둔으로 여전한 군사기지였고, 냉전의 전초기지였다.
미군기지 주변으로 형성된 기지촌은 미국문화가 한국으로 전파되는 곳이기도 했다.
한편 해방 이후 월남한 이주민과 고국으로 귀국한 해외동포들이 터를 잡았던 해방촌의 모습도
소설과 영화, 인터뷰로 소개되어 있다.
19세기 후반까지 수상교통의 중심역할을 했던 용산은 러일전쟁과 한일병합조약으로 일본의 통치를 받게 되면서
철도 교통의 중심지로 전환되었다.
1900년 한강철교가 준공되어 철도가 한강 이북으로 연장되었고,
1904년 일본은 용산의 군용부지 가운데 51만평을 철도용지로 전환하여
철도국, 철도공장, 철도관사, 철도병원 등 각종 철도시설을 세웠다.
그리고 경인선, 경부선, 경의선, 경원선 등 전국의 주요간선철도가 용산역을 통과하도록 설계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용산역은 여객과 화물수송의 중심지로 기능하여 용산역 주변으로 다양한 유통산업이 발달하는 바탕이 되었다.
1976년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양재동과 가락동에 공영도매시장이 건설되기 전까지
전국 최대규모의 양곡 공판장과 청과물 도매시장이 용산에 있었다.
일본이 세운 철도 종사원 양성기관도 해방 이후 운수학교, 교통학교, 교통고등학교로 바뀌었다가
1965년부터 용산 공업고등학교 전환되었으며
2021년 용산철도고등학교로 개명하였다.
바닥의 철길이 보이고... 마치 열차 안을 연상케 하는 전시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용산에서 런던까지 유라시아 열차의 출발점이라는 컨셉으로 만들어 놓았다.
창밖으로 용산역의 모습과 더불어 기차가 출발한다.
<용산으로 이어지다>
철도 교통의 중심이 된 용산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난 뒤 용산은 전국의 철길들이 연결되고 철도시설이 밀집한 한반도 철도교통의 중심이었다.
철도교통의 이점 덕분에 용산에는 제과공장이 발달했고,
양곡, 청과물 등의 시장들도 들어서서 활발한 유통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미래에 연결될 남북한철도가 유라시아까지 뻗어가는 가상의 철도 여행 풍경을 체험해 볼 수 있다.
비록 가상의 여행이었지만 정말로 유라시아 철도가 우리나라까지 연결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실현까지는 많은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겠지만... 한번 가 봅시다!
중간에 쉴 수있는 공간도 안팎으로 마련되어 있어서... 힘들지 않게 관람을 할 수 있다.
해방 후에 1953년 한미군사동맹이 체결되면서 미국이 한반도에 주둔하게 됐는데,
그 지역 또한 군사기지가 위치한 용산이었다.
미군이 주둔하면서 용산에 거주하게 된 외국인 수는 급속도로 늘어났다.
교통의 요충지 용산은 서울에 유입되기 시작한 외국인들이 정착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1976년에는 이태원에 서울중앙성원이 개원하여 이슬람교도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주도 증가했다.
그러나 용산에 외국인만 밀집된 것은 아니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거나 지방에서 상경한 내국인들이
생업을 찾아 이태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기지촌에 모여들었다.
잦은 외래문화의 영향으로 용산은 다양한 음악, 미술, 종교가 발달했다.
미군기지에서의 클럽문화가 대중음악에 끼친 영향과 삼각지의 미술 문화,
토착신앙부터 외래종교까지 함께 공존한 용산의 모습을 전시하고 있다.
다양한 배경으로 용산에 거주하게 된 원주민, 이주민, 외국인들의 삶을 에피소드와 소장품을 통해 보여준다.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에 들어서고 용산시대의 개막이라며 용산에 대한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다.
1928년에 지어진 용산 철도병원 본관은 철도도시 용산의 역사와 높은 건축적 가치를 현재까지 잘 보존하여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이라고 한다.
격변의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용산이 어떤 역할을 해왔고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 용산역사박물관이 묻고 답하고 있다.
세련된 스토리텔링으로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용산을 잘 설명해주는 모범적인 박물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불구불 산비탈에 뿌리내린 해방촌 사람들
이주민에서 원주민으로
애국선열 묘역으로 거듭난 효창공원
옥상정원의 모습이 살짝 아쉬웠지만...
그냥 보여주기 식의 박물관이 아닌 오랫동안 준비해서 내실있는 박물관의 모습을 갖추고 있어서 만족스러운 관람이었다.
<용산에서 하나되다>
경계를 풀고 공존의 시대로 나아가는 용산
한국전쟁 이후 철도도시, 국제도시, 기술도시, 문화도시로 성장한 용산의 모습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또한 군사기지로 오랫동안 고립되었던 용산기지가 국가공원으로 개방되어 조성되는 용산공원화 사업 진행과정도 소개한다.
비록 주차는 불가하지만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어서 누구든지 쉽게 방문할 수 있는 곳이다.
메이져급 박물관인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전쟁기념관과 멀지 않아서 함께 방문해도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