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0년간 한·일 관계가 지금처럼 나빴던 적이 없다고 할만큼 두 나라 사이가 좋지 않다. 올해가 바로 ‘한일협정’ 체결 50년이 되는 해라는 사실은 기막힌 역설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본의 양식 있는 시민과 지식인들이 한·일 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여전히 애쓰고 있다는 점은 위안이다. 야노 히데키(矢野秀喜) 사무국장도 희망을 주는 일본인 중 한 사람이다. 지난 2월 13일 한국을 방문한 그를 김민규 홍보교육실장이 만나 대화를 나눴다_. 편집자 주
야노 히데키 l ‘한일연대회복캠페인 2015’ 사무국장
1990년대부터 전후 보상 운동에 참여하여 한국인 징용 노동자와 군인군속보상재판, 야스쿠니합사취소소송 등을 지원하고 있다. 2010년에는 한국의 시민운동과 공동으로 ‘식민지주의 청산과 평화실현을 위한 한일시민공동선언’ 채택에 앞장섰으며,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 청산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임종국 상’을 수상하였다.
김민규 이번 한국 방문 목적은?
야노 히데키 두 가지다. 하나는 6월에 개최 예정인 ‘한일연대 회복캠페인 2015’와 관련하여 ‘한일시민선언실천협의회’ 등 한국 파트너와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서다. 둘째는 아베 총리가 전후 70년을 맞아 8월 15일에 발표 예정인 ‘아베담화’에 관해 일본, 한국, 동아시아 차원에서 어떻게 대처할지 협의하기 위해서다. ‘아베담화’는 역사수정주의와 국제 안보에 더 많이 개입하겠다고 하는 이른바 ‘적극적 평화주의’를 표방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는 일본과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할 것이므로 방치할 수 없다.
김민규 한·일 관계가 최악이다. 이럴 때 시민사회 연대활동의 의미와 가치를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야노 히데키 한·일 정부 관계는 상호 신뢰가 무너져 정상회담을 열 수 없을 정도로 험악하다. 그러나 시민 차원에서는 전후보상 실현, 동아시아 평화 실현, 원전문제, 노동문제 등 많은 분야에서 교류와 연대를 계속해 오고 있다. 그중에서 전후보상 재판은 모두 패소했기 때문에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했지만, 한·일 시민이 연대하고 힘을 합쳐 ‘한일회담문서’를 공개하도록 했고 한국에서는 강제동원진상규명법과 피해자지원법도 만들어졌다. 한·일의 시민들이 연대하여 이룬 성과다. 무엇보다도 한·일 시민들 사이에 직접 관계를 맺는 일이 더 많아졌고, 신뢰도 더욱 깊어졌다. 이것이 바로 전쟁을 막고 평화를 만드는 기초가 될 것이다.
김민규 한·일 관계가 이렇게까지 나빠진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야노 히데키 원인은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아베정권의 ‘역사수정주의’ 때문이다. 2014년 제95주년 3·1절 기념 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시대의 아픈 역사에도 불구하고 양국이 이러한 관계를 발전시켜올 수 있었던 것은 평화헌법을 토대로 주변국과 선린우호 관계를 증진하고, 무라야마 담화(1995)와 고노 담화(1993) 등을 통해 식민 지배와 침략을 반성하면서 미래로 나아가고자 했던 역사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역사수정주의를 표방하는 아베 총리는 이 기초들을 하나하나 부인하며 바꾸려 하고 있다. 이 상태에서 한·일 관계가 좋아질 리 만무하다. 또 한 가지는 언론 때문이다. 일본 언론은 대부분 아베 정권을 비판하지 않는다. 헤이트스피치, 네오나치단체에 관여하는 각료조차 바뀌지 않는 아베 정권을 용인하며 ‘혐한’, ‘반중’을 부추기는 보도와 출판물을 계속 내놓고 있다. 이러니 일본 국민들 사이에 ‘혐한’ 감정이 널리 퍼지고 있는 것이다.
김민규 한국에서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을 입에 올리기가 무안할 지경이다. 일본 분위기는 어떤가?
야노 히데키 일본에서도 축하하고 기념하자고 할 분위기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혐한’ 정서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 국민들은 대부분 50년 전 과거에 관해 잘 모른다. 한국을 식민 지배한 역사 사실 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일회복연대’를 추진하기 전 먼저 역사적 실체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재일한국인(조선인)이 처한 실상을 알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김민규 두 나라 시민들, 민간 차원에서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이런 분위기에서는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
야노 히데키 한·일 시민 사이에는 1990년대부터 약 20여 년 동안 일본의 식민 지배 사과와 적절한 처리를 위해 전쟁 피해자의 권리, 명예회복을 함께 연대하고 운동해온 역사가 있다. 교과서 문제를 두고도 연대 운동을 해왔다. 이런 경험을 젊은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이 우리들의 과제다.
김민규 ‘한일연대회복캠페인’이 하고 있는 활동을 소개해 달라.
야노 히데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서 청구권 문제는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것이고 솔직히 말하면 ‘기만’이다. 1965년 이후에도 재한피폭자, 사할린 잔류 한인, 재일 한국인 상이군인이 ‘문제’가 되었는데 일본 정부는 그때마다 어느 정도 대응은 해왔다. ‘위안부’ 문제에서도 최종 결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아시아여성기금’을 설립해 대처하는 것도 검토한 대안 중 하나였다. 일본 정부는 식민 지배에 기인한 문제들과 관련한 청구권 문제를 1965년 이후 지금까지 질질 끌어 왔다. 이는 전후보상재판, ‘한일회담’ 문서 공개로 한층 명확해지고 있다. ‘한일연대회복캠페인’은 선행연구, 조사를 바탕으로 한일조약과 청구권협정체결 과정에 관해 두 가지 방법으로 검증하고 있다. 한 가지는 연구자, 언론인, 시민이 공동으로 협상 경과, 국회 심의, 피해자 운동, 언론 보도 등을 검증하고 식민지주의 청산을 어떻게 다뤘는지 명확하게 하는 일이다. 이 보고서는 출판도 할 예정이다. 또 한 가지는 1965년 한일조약반대투쟁에 참가한 분들의 증언을 듣고 이를 영상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한일회담 반대투쟁에서는 무엇을 문제로 삼았고, 무엇에 반대했는지, 특히 식민 지배 문제를 얼마나 인식하고 있었는지 주목하여 보려 한다.
김민규 2010년 친일청산에 앞장 선 개인과 단체에 주는 ‘임종국상’을 일본인이 받아서 화제였다. 일본에서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야노 히데키 가장 큰 계기는 역시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다. 일본이 저지른 전쟁, 식민 지배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있다는것, 40년도 더 지나서 자기가 받은 피해에 대해 일본 정부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기 위해 일어섰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고 김학순 할머니를 존경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일본 평화 운동의 패러다임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1995년 일본제철 강제 징용 노동자 유족들이 재판을 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듣고 함께 투쟁할 것을 결심했다.
김민규 매우 다양한 활동을 해왔는데,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은?
야노 히데키 일본에서 진행한 재판은 할 때마다 원고 패소로 끝났다. 피해자보상입법 운동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따라서 ‘보람 있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그래도 굳이 꼽자면 한국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법이 제정되었을때, 그리고 2012년 5월 24일에 한국 대법원 판결이 나왔을때, 한국의 피해자 단체, 변호사들에게서 ‘한·일 시민들이 벌인 연대운동의 성과’로 평가 받았을 때 보람을 느꼈다.
김민규 제2차 아베 정권이 들어선 후 이웃나라를 배려하자는 목소리가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지금이 활동해 오는 동안 가장 힘든 시기가 아닐까 싶다.
야노 히데키 지금이 가장 힘들지 않냐고 질문하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1990년대 운동을 시작한 후 지금껏 힘들지 않았던 시기는 없었다. 그래도 한·일 시민 연대 운동으로 몇 가지 성과는 얻었다. ‘더반선언’(2001) 후 식민주의 청산 움직임은 전 세계로 퍼졌다. 작은 힘이지만 이런 운동을 계속하면 역사도 우리가 희망하는 쪽으로 흐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활동할 뿐이다.
김민규 한국도 그렇고 일본에서도 이웃나라와 평화로운 공존을 지지하는 활동에 젊은이들이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야노 히데키 그것이 우리 운동에서 가장 큰 문제다. 그래도 희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한·일 ‘위안부’ 관련 단체가 지난해 이 문제를 주제로 한·일 학생 의식 조사를 했다. ‘(‘위안부’ 피해자에게) 일본이 사죄와 배상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한국 학생은 98%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그런데 일본 학생도 64%가 ‘그렇다’고 답했다. ‘혐한’, ‘아사히 비판’ 바람이 거센데도 응답 학생 중 약 3분의 2가 이렇게 답한 것이다. 여기서 희망을 보는 것이다. 또 아베 정권이 강행한 ‘특정비밀보호법’ 제정을 두고도 적잖은 학생이 지금도 계속 반대운동을 하고 있다. 따라서 ‘한일연대회복캠페인 2015’에서도 더 많은 학생, 젊은이가 참여하도록 하는 것을 중점 목표로 삼고 있다.
김민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한국인들과 연대하고 우정을 쌓아온 활동가로서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야노 히데키 오해할 소지가 있지만, 나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국민’과 연대해온 것이 아니라 피해자, 자원봉사자, 변호사, 시민운동가 한 사람 한 사람과 인간으로 만나 친구가 되었다. ‘전후보상 문제 해결’이 아니어도 문화 교류, 애니메이션 취미 교류 등 무엇이든 같이 해보고 서로 어색해하면서 차차 말이 통하는 사람을 하나둘씩 얻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야말로 한·일 관계를 발전시키는 기초가 될 것이다.
김민규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꼭 하고 싶은 일은?
야노 히데키 ‘꼭 할 수 있을지’ 확신은 없지만 해보고 싶은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다. 20년간 한국에 100번은 왔는데 아직 인사 정도밖에 못한다. 이래서는 피해자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어떻게든 배워보려고 하지만 참 어렵더라(웃음). 또 하나는 한·일 관계와 직접 관련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북·일 국교정상화를 중장기 과제로 삼고 있다. 한국과는 국교를 정상화한 지 50년인데 북한과 일본은 아직도 단절 상태다. 이런 상황을 하루 빨리 극복 해야 한다.
김민규 한·일 역사 갈등을 극복하고 평화 공존을 위해 동북아역사재단에게 당부하거나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야노 히데키 지금 하고 있는 운동도 직간접으로 재단의 도움을 받고 있다. 다시 한 번 감사한다. 동시에 앞으로도 계속 식민 지배와 전쟁 피해자들을 아낌없이 지원해주고 관심을 기울여 주기를 부탁한다. 세계화 속에서 각 나라들의 경제, 외교 영역에서 상호 의존도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점을 생각한다면 전쟁이나 무력 분쟁은 일으킬 수 없다. 하지만 평화는 생각한다고 자동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민족, 국가감정, 의식에 따라 분쟁이 일어난다. ‘유네스코 헌장’ 전문에도 ‘전쟁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속에 평화의 보루를 쌓아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속에 평화’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여기에 힘을 쏟아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