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하고 해뜰날' '명동의 그리스도'
함석헌
씨알 여러분 새해가 됐습니다.
안팍으로 가난한 내 살림에 새해가 됐어도 각별히 이거라고 드릴 것은 없고 다만 받은 선물을 돌려 드리는 것뿐입니다.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어제 금요일은 지난 해 봄부터 구속자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기도회를 갖는 날이어서 오후 여섯시에 기독교회관 대강당엘 갔더니 설교하는 젊은 목사가 이것을 새해의 말씀으로 주었습니다. 첫 마디에 자기는 다른 것을 못하면서라도 텔레비의 유행가요는 꼭 듣는다고 해서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귀를 기우리고 있는데, 말을 차차해 나가더니 “지난해에 가장 인기 있었던 것은 무슨 노래인지 아십니까?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입니다 해서 나는 놀랐습니다. “쨍하고……”를 내가 알 리가 있습니까? 그러나 청중이 모두 웃음을 터뜨리는데 보통 것이 아닌 것을 나도 직감했습니다. 나는 본래 텔레비와는 원수입니다. 무남독녀, 내 핏줄기라고는 그거 하나밖에 없는 손녀지만, 텔레비에 붙어 있는 것만은 그냥 둘 수 없어 끊어버린 나입니다. 그러니 대중가요요 뭐요 알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젊은 목사하는 말이 됩니까? “얼마나 자유가 그리워 애가 탔으면 그랬겠습니까?” 하고는 설명을 계속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설교는 크게 영대를 뒤흔드는 웅변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냥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 혼자 “나는 역시 귀족주의를 깨끗이 청산하지 못했구나”, “중류 의식을 완전히 면하지 못하고 있구나”하고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일어서 나오려고 하니 누가 어느 젊은 시인이 보낸다고 하며 책을 한 권 주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봉투를 뜯으니 그 시집 제목이 “명동의 그리스도”아닙니까? 내용을 읽을 것도 없이 내게는 벼락이었습니다. 나는 주일마다 명동 복판에서 성경모임을 가지며 올적 갈적 끓는 솥의 거품처럼 섞여 돌아가는 젊은 남녀를 될수록 알아주는 마음으로 대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나는 죽어도 고린내나는 도덕 선생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걸뜸이 어디서 일어나고 그 망나니짓이 무엇을 나타내는 것임을 짐작합니다. 그러나 막상 “명동의 그리스도” 소리가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을 듣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믐날 내 방을 헐고 쓸고 닦은 것은 아직도 부족했음을 알았습니다.
씨알 여러분, 그리스도는 명동 망나니들 속에 오실 것입니다.
쨍하고 해가 뜨는 날이 올 것입니다.
씨알의 소리 1977. 1 60호
저작집; 9- 109
전집; 8- 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