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면 / 최종호
평소에 조금만 무리해도 뻐근하던 목과 왼쪽 어깨가 점점 더 아팠다. 2월까지는 그런대로 지낼 만했는데 3월부터 확연해졌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다. 업무상 결재할 일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는 거뜬히 견딜 수 있었다. 문제는 8월말 퇴직을 앞두고 책을 내기로 해서 마음이 다급해진 데 있었다. 거기에 강의 준비까지 겹쳤다.
그동안 ‘일상의 글쓰기’ 카페에 써 놓았던 글을 한데 모으고, 예전의 글 중에서 괜찮은 것을 찾아 새롭게 고쳤다. 다시 읽으며 내용에 따라 주제별(교육, 가족, 나, 사회)로 분류하고 순서를 잡았다. 작가의 말도 완성했다. 그러는 동안 점점 더 목과 어깨 쪽 근육이 아프고 딱딱해지는 것이 느껴졌으나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목에 교정기까지 쓰면서 하던 일을 계속했다. 아내는 “꼭 병원에 있는 환자 같다.”라고 하며 보기 싫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학교에 가지고 다니기까지 했다. 교직원이 들어오는 낌새가 있으면 벗었다가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통증이 심해지자 원고 교정보는 일이 고통스러웠다. 지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꼼꼼하게 봐 준 덕에 쉽게 할 수 있었으나 마지막으로 검토해서 보내는 일은 내가 할 수밖에 없었다. 어렵사리 두 번째 교정까지는 끝냈다. 인쇄소에서 세 번째 교정 원고를 보내왔으나 힘들기도 하고 손볼 곳이 거의 없는 것 같아 그냥 출판하라고 해 버렸다.
6월 초에 노화중앙초에서 문해력 향상, 중순에 연수원에서 교장 승진 연수대상자에게 학력 격차 해소 방안을 찾는 강의도 준비를 소홀히 할 수 없는 큰일이었다. 특히 노화중앙초는 전임지에서 나와 같은 학교에서 교감으로 근무하다 승진 발령받은 교장이 있는 곳이다. 나를 믿고 강사로 초청했는데 실망하게 할 줄 수는 없었다. 열심히 준비해서인지 교사들이 매우 만족스러워한다는 평을 받아 기분은 좋았다.
걱정스러운 두 과제를 끝내고 며칠이 지나자 간헐적으로 왼쪽 팔이 저려 왔다. 6월 18일 ‘일상의 글쓰기’ 반에서 『섬진강 일기』를 쓴 작가의 말을 들으러 곡성의 ‘미실란’으로 갈 때까지만 해도 그 강도가 약했다. “나는 날마다 장편소설을 써 나가지만 일정한 분량 이상을 쓰지 않는다.”며 그것이 작업 일지를 쓰는 이유라고 했다. 능력이나 분수 이상으로 무리하게 글을 쓰다가 죽는 작가들도 있다는 말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맞아, 내가 분수를 모르고 너무 무리한 탓이야!' 김탁환님이 꼭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점점 팔이 심하게 저렸다. 교정기도 별 효과가 없었다. 그동안 목이 많이 아프면 근육 주변을 풀고 틀어진 뼈를 맞춰 주는 분에게 찾아가면 효험이 있었는데 그마저 소용없었다. ‘이제 치료해도 더 이상 효과가 없는 것 아니야?’ 불길한 생각이 들자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사실 목 디스크 증세를 처음 느낀 것은 18년 전이다. 교육부지정 연구학교 운영이 지지부진하자 적임자를 찾았는데 선배의 추천으로 내가 초빙되어 간 것이다. 어려운 과제를 맡아 2년 동안 연구에 몰두하느라 자정을 넘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도 그럴 것이 기존의 근무 교사를 빼낸 자리에 내가 갔으니 그 책임감이 오죽하겠는가? 더구나 그 당시는 컴퓨터가 책상 안쪽에 들어 있어서 내려다보고 일을 했다. 몇 시간씩 고개를 수그리고 하면서도 별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젊기도 했을뿐더러 정보도 부족한 탓이다.
학교를 옮기고도 연구학교 과제 해결을 또 맡았다. 증세가 있기 전에 이미 그러기로 약속한지라 못 한다고 할 수도 없었다. 처음에는 집 가까운 재활의학과 병원에 다녔다. 별 차도가 없자 의사의 권유로 엠알아이(MRI)를 찍었더니 이미 디스크 손상이 심각하다며 수술밖에 방법이 없단다.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여러 사람의 권유로 사혈도 하고, 뼈 주사와 심층 근육 주사를 맞았으며 온 몸의 피부를 뜯고 주무르는 치료도 해 보았으나 큰 효과는 없었다. 처음에는 팔뚝이 저리더니 점점 손가락 끝까지 내려왔다. 손바닥의 감각도 무디어졌다. 목을 한 바퀴 돌리는 일조차 고통스러웠다. ‘손바닥 감각을 느끼고 목을 자연스럽게 움직인다는 것이 커다란 행복이구나!’
천신만고 끝에 좋아져서 수년 동안 큰 문제 없이 지내다가 다시 증세가 나타나자 여간 불안한 것이 아니었다. 다행히도 이름 있는 척추 전문 한방병원에서 약 한달 반 동안 집중 치료했더니 많이 나아졌다. 그런데 또 최근에 무리를 해서 목이 뻣뻣하고 아프다. 강의 준비 때문이다. 처음에는 조금 힘들더라도 시작하려고 했지만 목이 아파오자 일단 2학기로 미루어 두었다.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취소하라고 할 참이었다. 하지만 퇴직해서도 불러 주는 성의가 고마웠다. 또, 알고 있는 것을 하나로 죽 엮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알면서도 실수를 반복하니 어리석다고 할 수밖에.
건강한 사람은 평소에 내 몸의 특정 부위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며 지낸다. 하지만 불편하면 늘 그곳이 신경 쓰인다. 내 몸이 자꾸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직 저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심조심 살얼음을 걷는 기분이다. 이제 일을 끝마치면 다시 병원을 찾을 생각이다. 또, 근육을 풀고 뼈를 맞추어 주는, 이른바 도수 치료도 받을 생각이다. 그동안 몸을 함부로 썼으니 미안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돌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