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이민 2기 126. 또 다른 일.
평생을 가르치는 일에 종사해 온 내게 또 다시 누군가를 가르쳐 보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온다.
이걸 수락해야 하나? 잠시 고민이 된다.
2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수도원의 젊은 수사님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는 일이다. 물론 보수는 없는 봉사이다.
5년 전, 로스바뇨스에 살 때 스웨덴 사람 제리 박사와 일 대 일로 반 년 정도 한국어 수업을 해 본 적은 있지만 그가 떠난 후에는 전혀 외국인과 특별히 공부같은 관계로 만난 적은 없다.
더구나 이 번에는 9명이나 되는 그룹미팅이므로 살짝 두렵고 걱정이 된다.
그리스도 수도회 (나눔의 집) 수사들이 농사도 짓고 장애인과 행려자 노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수도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비교적 어린 수사들이 많다.
그들을 영적으로 지도하는 한국 신부님도 한 분 계시고 장애인들과 노인들을 돌보는데 힘을 보태려 수녀님도 두 분이 파견되어 있다.
한 분은 한국 수녀님인데 70세가 넘으신 것 같다. 그리고 또 한 분은 필리핀 수녀님이다.
한국의 그리스도 수도회에서 이곳의 수도원을 짓고 운영한다.
젠트리아스에 위치한 엄청 큰 규모의 수도원에서 소년원 학교까지 함께 운영하다가 공부를 주로 해야 하는 500 여명의 소년들을 남기고 아마데오에 작은 수도원을 지어 일부가 옮겨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한국에 대한 관심도 많고 그 중에는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수사들도 있다.
더 가까이 살고 있는 데레사 자매님이 봉사를 자청하여 일 주일에 몇 번씩 저녁에 자유로운 한국어 수업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꽤 여러 달 한국에 가게 되어 수업이 중단되니, 내가 그 수업을 맡아 주면 좋겠다는 신부님의 생각이다. 결국은 그런 부탁이다.
문제는 학습 자료이다. 아무 것도 없다.
맨손 수업은 안 된다고 교사들에게 그토록 수업 자료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던 내가 달랑 분필 하나 들고 수업을 해야 할 지경이다.
더구나 영어도 서투른데 자료 하나 없이 어떻게 수업을 이끌어야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마디로 차갑게 "저는 못 해요." 라는 거절의 의사를 할 용기가 없다.
엄청 잘 하라는 것도 아니고, 돈을 받고 의무를 수햏하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봉사를 바라는 것 같아서 내 마음이 오히려 주제 넘게 겸손해지려고 한다.
"제가 많이 부족해서요...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대답을 드리는 순간, 나는 벌써 수업을 어떻게 이끌어 갈 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데레사가 올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해 보겠다는 생각이다. 그보다 더 원대한 계획은 애초에도 갖지 않을 것이다.
내겐 그럴 만한 실력도 없고 자질도 없다. 그건 내가 더 잘 안다. 다만 나를 필요로 하는 요만큼의 요구에 순응하는 것 뿐이다.
아마데오의 나눔의 집 (수사님들이 장애인과 행려자들을 돌보며 함께 생활하는 집)
일하는 수녀님
풀밭을 일구어 작물을 심은 모습
젠트리아스에 있는 큰 수도원 입구
소년들이 공부하고 생활하는 나눔의 집 큰 수도원.
첫댓글 좋은 기회죠?
한국어 가르치고
영어 배우고...................................
어데서든지 쓸모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세상에서 거침돌이 되지 않고 디딤돌이 되는 것은 축복이 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