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낸 작은 평화 / 조영안
남편은 이곳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다. 30대에 잠깐 타 도시에서 직장을 다녔다. 나와 만나 전주에서 3년 살았던 때를 제외하면 줄곧 고향을 지켜온 터줏대감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디에 뭐가 있는지, 심지어 어느 골목이 깊고 그곳에 누가 살고 있는지까지 꿰뚫고 있다. 옆에서 지켜보면 그 누구보다 고향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지금 사는 집도 증조부 대부터 자리 잡아 골목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다. 이웃들은 대부분 외지에서 들어와 정착했다. 지금은 도시 정비 사업으로 길이 넓어져 옛날의 답답했던 긴 골목에서 벗어났고 집 앞도 시원하게 트였다.
그 과정에서 생겨난 잡음도 많았다. 집 앞 빈집을 헐어내고서야 꽉 막혀 있던 시야가 트여 학교 담장도 보이고 반듯한 2차선 도로도 형성되어 한결 환해졌다. 돌아서 가야 했던 초등학교 정문이 집 앞으로 옮겨오면서 우리 집은 전망 좋은 이층집으로 다시 태어났다. 덕분에 아침마다 재잘대며 등교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맞이한다. 하지만 이 모든 평화를 누리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도로가 뚫리다 보니 대문 앞에 조그만 공터가 남았다. 처음에는 소공원이나 차 몇 대를 댈 수 있는 주차장이 들어서려나 했는데, 사전 설명이나 양해도 없이 뜻밖에 팔각정을 세운다며 공사가 시작됐다. 전문가들이 달려들어 일사천리로 진행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닥 공사가 마무리되어 비상이 걸렸다. 학교 정문과 우리 대문까지는 불과 80미터밖에 되지 않는 거리인데 무슨 날벼락인지. 주변 사람들은 쉼터가 세워지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우리 집이 고스란히 안게 될 판이었다. 즉각 공사 중지를 요청하고 만류했지만 현장에서는 시청 담당 부서로 연락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시청에 전화를 걸어도 확실한 답을 주지 않는 사이, 어느새 기둥이 올라가고 있었다. 매일같이 전화 민원을 넣고 정식으로 서면 접수까지 마쳤다. 그러나 들려오는 답변은 항상 똑같았다. 이미 예산이 반영되어 진행 중이니 주민이 이해해 달라는 일방적인 입장뿐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거세게 반대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건물 구조가 우리 집 대문 및 거실 창문과 일직선으로 마주 보고 있어, 창문을 열면 안살림이 훤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명백한 사생활 침해이자 거주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었다. 기둥이 세워질 무렵 마침내 시청 담당자가 현장에 나왔다. 나는 긴 막대를 들고 나가 거실과 쉼터 사이의 거리를 직접 재보라며 강력히 항의했다. 참다못한 어머님은 "대문 바로 앞에 저런 게 들어서면 가운데 목을 매겠다"는 아찔한 선포까지 하셨다. 상황이 험악해지자 급기야 간부급 공무원이 현장으로 달려왔다. 공사를 중단하거나 철거할 수는 없으니 사정을 봐달라며 우리가 요구하는 조건을 최대한 들어주겠노라 약조했다. 긴 협상과 조율 끝에, 건물 앞 화단에 큰 나무를 심어 거실 시선을 차단하고, 잔여 공터 일부는 어머님의 텃밭으로 가꿀 수 있도록 약속을 받아냈다. 막상 완공되고 보니 품위가 있어 우리 집과도 제법 잘 어울렸다. 2층에서 내려다보는 정자는 한 폭의 그림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후 추가 민원을 넣어 운동기구 세 개까지 들여놓으면서 아담한 소공원이 조성되었고, 그간의 억울했던 마음도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하지만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사생활 침해보다 더 큰 관리상의 부작용이 터진 것이다. 주민 쉼터라던 우산각은 밤낮없이 고성방가가 이어지는 청소년들의 놀이터가 되었고, 장마철에는 어르신들의 판돈 걸린 화투판으로 변했다. 급기야 강력 사건까지 터졌다. 새벽녘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나가보니 한 젊은이가 가슴을 움켜잡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119를 부르려 했으나 손사래를 치며 거부했다. 결국 그날 아침 출근하던 남편이 숨져 있는 그를 발견했다. 우범지대로 전락한 공간과 방치된 시설 때문에 주민이 겪어야 하는 공포와 정신적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결국 들어서지 말았어야 할 우산각의 폐해가 증명되어 가던 중, 몇 해 전 또 한 번 일방적인 행정과 부딪혔다. 담당 부서 직원이 나와 어머님이 가꿔오던 작물들을 모두 엎어버리라는 통보를 해온 것이다. 그동안 잡초를 뽑고 쓰레기를 치우며 소공원을 관리한 건 시청이 아니라 순전히 우리 가족이었다. 청소 한 번 안 하고 방치하던 지자체가, 초기 약속마저 깨뜨리고 일방 통보를 해오니 어이가 없었다. 이번에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관리가 불가능하고 우범지대로 변해가는 팔각정을 차라리 철거하고 운동기구를 더 확충해 달라고 강력하게 재민원을 제기했다. 또한 대문 시선을 가려주던 소나무 중 한 그루가 폐사해 텅 빈 공간이 생겼으니 이에 대한 대책도 요구했다. 다시 현장에 나온 상급 담당자에게 그동안 발생했던 사건 사고, 관리 소홀의 실태, 그리고 주민 피해를 차근차근 짚으며 설명했다. 거센 항의에 담당자도 문제'를 인정하고 고개를 숙이며 불편 해소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오랜 민원 끝에 행정의 태도도 변했다.
녹지과에서 텅 빈 공간에 새 묘목을 심어 시선을 다시 차단해 주었고, 대문 앞 자투리 땅은 어머님의 전용 텃밭으로 공식 승인해 주었다. 거실에서 바라보이는 정자의 한쪽 면에도 가림막을 설치하기로 했다. 공원 관리 주체가 문화재관리과로 이전된 후에는 담당자들이 주기적으로 현장을 순찰하며 불편 사항을 점검하고 있다. 그들이 심은 나무와 꽃들도 제자리를 잡아 제법 우거진 숲의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다.
언제 또 어떤 민원거리가 터질지 몰라 불안 요소는 남아 있지만, 그래도 싸워 얻어낸 이 작은 공간에서 어머니는 철마다 씨앗을 뿌리며 소소한 권리를 누리신다. 얼마 전 녹두를 거두고 어느새 심어놓으신 마늘 순이 뾰족뾰족 돋아나는 모습을 본다. 오늘 아침 밭에 웃거름을 내시는 시어머니께 슬쩍 한마디를 던졌다. "몸도 안 좋아 끙끙 앓던 분이 무슨 일을 이렇게 하세요? 시청에 다시 말해서 저기 밭 없애고 나무나 다 심어달라 해야겠어요. 아프다는 말 다 거짓말이죠?" 아무런 대꾸 없이 묵묵히 흙을 다지시는 모습을 본다. 구순이 넘은 나이에 행정과의 숱한 줄다리기 끝에 지켜낸 저 작은 텃밭이야말로 어머니 삶의 보람이자 생명의 끈인 지도 모르겠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집 앞 소공원과의 오랜 일상이, 이제는 어머니의 텃밭처럼 평온하게 정착하기를 바랄 뿐이다.
첫댓글 "삶의 보람이자 생명의 끈"
글이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