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칭어 오남용, 그 ‘웃픈’ 현실에 대한 고언
곽 흥 렬
사람이란 존재는 무엇이든 많으면 좋아하는 심리를 지녔다. 극히 예외가 없을 순 없겠지만, 절대다수의 경우 집도, 땅도, 돈도, 옷도, 먹거리도, 친구도, 재주도, 일거리도 많으면 많을수록 높은 만족도를 보인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사자성어가 괜스레 생겨났을 것인가.
존칭어 가운데 하나인 ‘-시’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다. 전문 문법 용어로 ‘존칭 선어말 어미’라고 부르는 이 ‘-시’ 역시 덮어놓고 많이만 쓰면 좋은 줄로 안다. 착각도 여간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정도가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 ‘-시’를 분별없이 마구 사용하면 글이 돋보이기는커녕 오히려 품격을 떨어뜨린다. 그런 까닭에 각 문장의 맨 뒤 서술어에다 한 번씩만 쓰도록 하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다.
요즈음, 세상에 쏟아져 나오는 글들에서 문장 쓰기의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를 너무나 자주 접한다. 심지어는 문장의 용언이란 용언에 죄다 존칭어를 붙여 쓴 사례까지 있고 보면 더 말해 무엇하랴.
“그렇게 칼을 갈 준비가 다 되시면 옷을 여미시고 나지막한 나무 의자에 앉으셨고, 여러 개의 칼날들을 점검하시며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기시곤 하셨다.”
몇 해 전, 경상북도와 포항시가 공동 주최한 H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박00의 ‘숫돌’ 가운데 나오는 한 구절이다. 문장 안의 모든 용언에다 모조리 ‘-시’를 쓰고 있다. 그 숫자를 세어 보면 자그마치 여섯 번이나 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이처럼 도대체 문장 쓰기의 지극히 기본적인 요건조차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에게 문학상이 주어지다니……. 너무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고 만다.
비단 글에서만이 아니다. 일상생활 현장에서도 존칭어 오남용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젊은이들 가운데서 이런 경향성이 두드러진다. 다다익선이 아무 때나 미덕이 될 수는 없음에도, 무분별하게 존칭어를 쓰는 상황을 부지기수로 만난다.
사람이 주체가 아닌 물건에조차 존칭 표현을 남발하는 현상도 적지 않다. “손님, 커피 나오셨습니다.” 어쩌다 지인들과 카페라도 들를라치면 종업원한테서 일상다반으로 듣게 되는 소리다. 커피라는 이름의 음료가 어디 손이 있는가, 발이 달렸는가. 어떻게 커피 제가 스스로 ‘나오실’ 수 있단 말인가.
오십여 년 전, 중학생 시절에 배웠던 우스꽝스러운 글귀 하나가 뇌리를 스친다.
“아버님 대갈님에 검불님이 붙으셨습니다.”
지금껏 생생히 기억의 곳간에 갈무리되어 있는, 너무도 괴이쩍은 문장이었다. 존칭어의 잘못된 사용을 따끔하게 꼬집은 촌철살인의 풍자가 아닐 수 없다. 반세기 전에도 이 같은 현상이 성행하고 있었음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그때 이미 문제가 많았던 것으로 미루어 살피면,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존칭어 오남용의 심각성이야 묻지 않아도 충분히 헤아리고 남을 만하다.
위에서 든 사례들은 각각 “그렇게 칼을 갈 준비가 다 되면 옷을 여미고 나지막한 나무 의자에 앉았고, 여러 개의 칼날을 점검하며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기곤 하셨다.” “손님, 커피 나왔습니다.” “아버님 머리에 검불이 붙었습니다.” 등으로 고쳐야 옳은 표현이 된다.
그에 반해 정작 존칭을 사용해야 할 곳에는 오히려 소홀히 해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열 살 안팎의 청소년들이 팔구십 노인에게 뻣뻣이 선 채로 고개만 까딱거리며 인사랍시고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할머니 안녕하세요” 해댄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디 제 친구인가. 연세 지긋한 어르신한테는 당연히 “안녕하십니까”라는 정중한 표현을 써야 제대로 된 인사말 아니겠는가.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지 않는 무람없는 행동이야 차치하고라도, 그처럼 예의에 어긋난 말투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있으니 훗입맛이 씁쓸하다. 한편, 거꾸로 유치원 같은 데서는 교사가 어린아이들에게 “자 우리 친구들, 내일은 더 일찍 오시는 것 잊지 마세요.”라며 ‘깍듯한’ 표현을 쓰는 것을 예사롭게 본다. 세상이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싶다.
그런가 하면, 이런 사례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심심찮게 접하곤 한다. 이따금 금융기관이나 서비스센터 같은 곳에 들렀을 때, 번호표를 뽑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젊은 직원이 순서가 되었음을 알려온다.
“000 고객님, 0번 창구로 오실게요.”
이건 또 대체 무슨 국적 불명의 어투인지 모르겠다. 예의 경우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000 고객님, 0번 창구로 오세요.” 하든지, 아니면 좀 더 정중히는 “000 고객님, 0번 창구로 오십시오.”라고 해야 올바른 표현이지 않겠는가. 어떻게 되어 이처럼 별 희한한 말버릇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 불가다. 이러한 일련의 세태가 참으로 아이로니컬하게 여겨진다. 시쳇말로 ‘웃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한 나라의 말은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존칭어 오남용이 성행하는 오늘의 상황은 우리 정신문화의 품격이 그만큼 저급하고 천박스러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방증해 주는 하나의 지표가 아닐까.
지금이야말로 올바른 언어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점이다.
<'문장' 2024년 여름호 권두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