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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회.2017.1.18.수)
1.일시: 1.18일(수) 오전 10:00
2.모임장소:청계산역 2번출구
3.참석자(7명):권호성.김창덕.노태섭.엄영섭.오춘식.유근국.이도경.
4.나들이코스:윈터골-매봉-돌문바위-힐링의숲-선녀폭포-미군부대-정토사-옛골-청계산역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새해 첫날을 다함께 겸허히 맞이하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의미를 담아 시다.
그곳에 광화문 글판이 있어서 읽어 보았던 싯귀였는데
오늘 산행에서 태섭이가 건네준 ‘새해를 맞이하는 시 모음’프린트물에서 다시 읽게 된다.
때로 시 한구절에서 마음이 정화됨을 느끼고
때로 여행지를 소개하는 글을 대하다 보면 그곳의 호기심으로 마음은 두둥실 그리움으로 풍선이 된다.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샘솟기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용두열의 수첩 제작에 세 번이나 참여한 죄(^^)로 태섭이는 우리 동문들의 산 증인이다.
“창덕이 네가 어울릴 것 같구나”하면서
건네준 시나부랑이들과 여행지들이 정리된 자료를 건네 받고 마음이 뭉클해진다.
이 시대를 함께 공유하며 고민하고 즐길 수 있는 동문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서다.
태섭이가 건네준 주옥같은 자료들 수산노리마당에서 사용해 보라는 메시지로 생각.
수산노리에서 함께 누리리다.
아~ 오늘 기분 좋다.
미세먼지로 하루 종일 뿌연 서울이였다는데
우리들은 오늘 비로소 청정지역 청계산 산속에서 하루가 신선한 겨울을 느낀다.
청계산은 적당히 높은데 산길 또한 적당히 가파르니 오르기 좋다.
북한산 도봉산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청계산에도 마당바위도 있고 매바위도 있네.
오늘은 청계산 숨어있는 길을 택하다보니 미지의 세상을 발견한양
비로소 청계산의 묘미를 깨 달은 것 같다.
오늘도 잠시 옆구리 등산길에서
청계산에 맑은 물 흐르는 골짜기도 있다는 사실도 작은 발견이고
청계산에도 원시림 비슷한 처녀길있다는 것도 작은 호기심이다.
처음 가보는 길의 작은 설레임도 맛보게 된다.
“청계산 깊숙한 곳까지 들어 왔잖아.”
“청계산에 미군들 요새가 있네.”
“사진 찍으면 잡혀 간다.”
청계산에 헬기장도 있는데 이착륙하는 헬기 프로펠라 소리는 산속이라서 더 요란하다.
옆구리 길 호젓한 숲길인데 한참걷다보니 결국은 옛골가는 길로 접하게 된다.
꾀나 걸은 것 같은데 여하튼 오늘 3~4시정도 산행이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청계산의 묘미를 깨 달은 것 같으니.
아~ 오늘 기분 좋다.
☗〔여행길 계획〕
1월 눈꽃산행
2월 특별히 가고 싶은 곳(봄맞이 산행)
3월 매화,개나리, 산수유 꽃 산행
4월 진달래, 벗꽃 산행
5월 철쭉 꽃 산행
6월 섬 산행
7월 계곡 산행
8월 야영
9월 특별히 가고 싶은 곳(가을 맞이 산행)
10월,11월 단풍, 억새 산행
12월 기차여행, 또는 온천
청계산 [淸溪山]
높이 : 615m
위치 : 서울특별시 서초구 신원동
특징 :
서울 주변에서 숲과 계곡, 절,공원 등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청계산, 청룡이 승천했던 곳이라 과거에는 청룡산으로도 불렸던 곳. 청계산(618m)은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과 경기도 과천, 의왕, 성남시에 걸치고 있다. 남북으로 흐르는 능선을 중심으로 펼쳐진 산세가 수려하며 숲 또한 울창하고 계곡이 깊고 아늑하다.
과천의 서울대공원에서 바라보면 대공원 뒤에 병풍처럼 둘러있으며 바위로 되어 있는 정상인 망경대가 우뚝 솟아 보인다. 정상에 서면 북서쪽으로 펼쳐진 계곡 아래 과천시와 동물원, 식물원이 있는 서울대공원, 각종 놀이기구가 있는 서울랜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경마장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면 가볍게 산을 오르려는 등산객들로 붐빈다. 정상인 망경대는 이전에는 출입이 통제되었으나 지금은 해재되어 등산이 가능하다. 어느 코스로 오르던 정상까지는 2시간-2시간30분이면 오를 수 있다.
북한산이나 관악산처럼 등산로에 바위가 많이 솟아 있지 않고 황토흙이 덮여 있어 쉽고 편안하게 오를 수 있다. 산행시간이 짧고, 코스가 길지 않으며 산행로가 완만하여 가족 단위의 산행이 쉬운 산중의 하나이다.
산 중턱에는 경기도 지정문화재 자료 제6호인 청계사가 자리잡고 있다. 서울대공원이 푸른 숲과 맑은 공기를 자랑하는 청계산 기슭의 산림욕장이 98년6월에 개되었다. 7.38㎞ 길이의 산림욕장에는 얼음골 숲 등 8만1500㎡ 면적에 11곳의 휴식공간이 갖춰져 있다. 서울대공원 동·식물원 안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동물원 입장한 뒤 산책로를 즐길 수 있다. 11월 15일부터 5월 15일 까지는 산불방지를 위하여 산책로가 폐쇄된다.
볼거리 :
청계사 | 서울대공원 | 서울랜드 | 백운호수
인기명산 [15위]
서울, 과천, 의왕, 성남에 걸쳐 있는 청계산은 도시민의 휴식처로 사계절 두루 인기가 있다. 산행시즌인 가을, 봄 순으로 많이 찾는다. 서초구 원지동 방면은 시민휴식처로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교통도 좋아 이곳을 많이 이용한다.
버락 후세인 오바마
역대 미국 대통령
43대 ← 44대 → 45대
조지 W. 부시 ← 버락 후세인 오바마 → 2016년 선거
전체 이름 Barack Hussein Obama II
출생 1961년 8월 4일
출신 정당 민주당
재임기간 2009년 1월 20일 ~ 2017년 1월 20일 (예정)
키 187cm
Contents
1. 개요
2. 개인사
2.1. 정계입문 이전
2.2. 2008년 대통령 선거 (44대 대통령 선거)
2.3.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We have overcome
3. 집권 1기: 변화를 말하다
3.1. 무역정책
3.2. 의료보험개혁
3.3. 극좌 대통령?
3.4. 집권 1기의 현실적 어려움
3.5.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
3.6. 빈 라덴 사살
3.7. 소버린 쇼크
4. 2012년 대통령 선거
4.1. 과연 재선은 가능할까?
4.2. 슈퍼팩 논란
4.3. 재선 성공
5. 집권 2기: 위기의 오바마, 그러나 돌파구는 있다.
5.1. 공화당과의 충돌
5.1.1. 재정절벽 문제
5.1.2. 시퀘스터 문제
5.2. 연달아 일어난 테러 사건
5.3. 그리고 반전. 지지율 50% 회복
6. 비판
7. 그 외
7.1. 동성결혼 지지선언
7.2. 절반만 흑인?
7.3. 스포츠광 오바마 - "오바마 징크스"
7.4. 트리비아
7.5. 2009년 노벨평화상 수상과 잡음
8. 기타
8.1. 유머 센스
8.2. 오바마 갤러리
1. 개요
아메리카합중국 천조국의 제44대 대통령 황상이자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또한 최초로 역대 대통령 중 유일하게 본토에서 태어나지 않은 대통령(하와이 출생)이다. 여하간 스스로도 이런 기믹을 잘 알아서 '미국 최초의 태평양 대통령'이라며 대아시아 외교에 적극적이다.
경륜이 오래된 편인 44대 대통령 선거의 라이벌 존 매케인과 비교했을 때 젊어 경험이 부족하단 말이 많았는데 굳이 따지자면 미국 대통령 중 4번째로 젊은 나이로[4] 당선되었다고 한다. 2015년 1월 19일 시점으로 만 53세.
미국의 대표적인 트위터 사용자 중 한 명이다. http://twitter.com/BarackObama
2012년 11월 6일(한국시간으로 7일)부로 밋 롬니를 제치고 재선에 성공했다.
2. 개인사
풀네임은 버락 후세인 오바마 주니어로 이 이름 자체가 다양한 배경을 암시하고 있다. 버락은 스와힐리어로 "신의 축복을 받은 자" 라는 의미이며 후세인은 무슬림인 그의 조부 이름을 딴 것이다. 그리고 오바마라는 이름은 케냐 루오족의 남자 이름이다. # 사족으로 조부는 케냐에서 독립운동혐의로 영국에서 체포되어 고문받아 불구가 되었고 아버지도 미국으로 유학왔을 때 외국에 유학간 케냐 인재라고 따로 명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미들네임인 후세인 때문에 사담 후세인과 겹쳐서 무슬림으로 오해받고 이를 노린 악성 동영상이 돌아다녔다. 심지어 대통령 선거시 공화당 측에서도 이를 이용한 유세를 펼쳤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의 "그는 물론 기독교인입니다. 하지만 무슬림이면 어떻습니까?" 발언으로 전화위복 무슬림이면 어떠냐 정치만 잘하면 그만이지[5]. 이후로 공화당은 저 유세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도 미국민의 12% 정도는 오바마가 무슬림이라고 믿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6]
참고로 미국은 헌법상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청교도들의 이주에서 시작한 것도 있고 대체로 청교도가 많아 가끔 착각하는 듯 하지만 헌법상으로는 국교가 없다. 그럼에도 사회적으로 기독교를 매우 숭상하고 있다. 그는 미국의 헌법 자체가 개신교에 바탕하여 쓰여졌다고 국민들이 생각하고[7] 그로 인해 전통적으로 선서나 맹세 등 중요한 건 웬만하면 다 성경[8]에 대고 하기 때문이다.[9] 또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도 가톨릭 교도인 존 F. 케네디를 제외하고는 전부 개신교 신자[10]였다. 그리고 경호팀이 경호작전 시 사용하는 코드네임(Code Name)은 이단자(Renegade), 즉 이슬람교로 개종한 크리스천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참고로 오바마가 직접 골랐다. 하지만 'Renegade' 에는 'Go against the system'[11]이라는 의미도 담겨있다.[12]
1961년 하와이로 유학 온 케냐 출신 유학생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13] 하지만 그의 부모는 2살 때 이혼했고 오바마는 하와이에서 외조부모 밑에서 자라났다. 한때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도네시아에서 거주했던 경험도 있다. 흑인이지만 성장 배경은 백인 및 아시아계와 함께 한 독특한 점은 후의 그에게 상당한 이득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미국 흑인 중 다수를 차지하는 서아프리카 출신이거나 그 후손도 아니다. 어머니가 백인이라고 흑인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미국에선 혼혈인은 자기 정체성에 따라 민족이 정해진다. 그 개인만의 가족 관계는 아내 미셸 오바마와 딸 둘.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4번이나 결혼해서 이복 형제들이 여럿이며 어머니 쪽으로도 이부 여동생이 있으며[14] 조부모 쪽으로도 재혼 관계가 있는 모양이라 윗대로 가면 약간 가족 관계가 복잡하다.
2.1. 정계입문 이전
부모의 이혼과 자신의 인종 정체성에 대한 혼란 등으로 고등학생 시절 마약을 하기도 했었고[15] 이것이 후의 정계 진출 이후에 발목을 잡았지만 오히려 이를 숨기지 않아 정직한 정치인으로 인정을 받는 요소가 되었다.
1980년대엔 리사 잭이라는 사진작가의 포트폴리오에 참여하기도 했다. 관련 글 친구나 가족들에겐 주로 배리(Barry)라는 애칭으로 불렸다고.
일찌감치 어머니의 영향으로 약자와 소수계층에 대한 관심을 가졌던 오바마는 로스앤젤레스의 옥시덴탈대학교에 입학하고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대학 1학년 때도 마리화나를 피며 히피 문화에 심취한 나태한 학생이었다한다. 그러다 우연히 '투자철회운동'을 접하고 정치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빡세게 1년 공부하고 콜럼비아 대학교 정치학과에 편입해 졸업한 후 하버드 로스쿨에 진학해 법무박사(JD) 학위를 취득한다. 하버드 로스쿨 역사상 최초로 하버드 로리뷰 (법률 학술지)의 편집국장을 흑인이 맡은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하버드 로스쿨은 우선 미국 최고의 로스쿨 중 한곳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선거기간만 되면 정치인들이 성지처럼 다녀가는 미국 법조계/정계에서는 핵심 중의 핵심. 미국 로스쿨 법률 학술지 중 가장 파워가 있는 게 하버드 로리뷰. 따라서 오바마가 편집국장이 된 것 자체로도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첫번째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을 쓰게 된 이유도 이후의 시민단체 활동 등의 이유도 있었지만 학보 편집국장이 되어 엄청난 이슈가 되었기 때문. 이후 시카고의 흑인 빈민가들을 위한 사회운동가로서, 그리고 1997년부터는 일리노이 주 의회 상원의원으로서 활동하였고 시카고 대학교 로스쿨의 인기 교수로서 재직하기도 했다.
2008년 대선 전후를 통해 반토막이나마 학부를 보낸 콜럼비아 대학측에서는 오바마를 초빙하려고 애를 썼지만 출신 로스쿨인 하버드는 신나게 갔으면서 콜럼비아 쪽에는 별로 보이지도 않아 재학생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본인 말에 의하면 콜럼비아 재학시 인종차별에 대해 심도 있게 배웠다고 했는데 그게 본인이 안 좋은 꼴을 당해서 콜럼비아에 대해서는 나쁜 기억만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루머도 돌았기도 하다. 콜럼비아 학장인 리 볼링거가 정식 초대를 날렸는데도 대략 씹혔다. 그래도 학생들에겐 마냥 인기가 좋았는지 선거기간 내내 자발적인 오바마 지지 전단지가 콜럼비아 캠퍼스 내에 휘날렸으며 대선 당일 자정 즈음 오바마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당시 캠퍼스 내에 있던 학생들이 모두 학교 정문 앞 116번가 앞으로 뛰쳐나와 그 길로 할렘까지 행진했다.[16]
2.2. 2008년 대통령 선거 (44대 대통령 선거)
1996년 정계에 입문해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2000년에는 일리노이주 하원의원후보에 도전했지만 경선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전화위복으로 2004년 흑인으로선 세번째로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오바마를 전 미국에 알리게 된 계기는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로 이때 오바마는 찬조연설로 일약 전국적인 스타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이후 2007년 2월, 4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을 선언하고 본격적으로 민주당 경선레이스에 돌입한다.
사실 민주당 경선에서 오바마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힐러리의 당내 기반이 워낙 견고한 데다가 오바마는 힐러리 클린턴에 비하면 거의 신인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민주당 경선은 사상 유례 없는 치열한 혈전을 치뤘지만 오히려 이것이 흥행요소가 되어서 오바마를 유력 후보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초기엔 힐러리가 경선이 뜨거워져야 본선 경쟁력도 더 높아지기에 오바마의 출마와 선전을 부추겼지만 오바마가 이겨버렸다. 안습.
일찌감치 공화당 후보로 결정된 존 매케인과 사상최초 흑백대결로 관심을 끈 이번 대선에서 8월 전당대회 이후 세라 페일린을 지명하여 단숨에 관심을 자기 쪽으로 돌려버린 매케인에게 뒤지기도 했으나 9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된 미국 금융위기에서 차분하고 안정적인 대응과 대안제시로 결국 승부의 흐름을 자기 쪽으로 돌리는데 성공했고 11월 4일 대선 투표일까지 별다른 이변 없이 대선은 오바마의 승리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미국은 새로운 역사를 썼다.
2.3.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We have overcome
오바마의 2008년 선거운동은 오바마에 대한 지지여부를 막론하고 미국의 많은 정치 분석가들로부터 "지금까지 내가 본 것 중 최고" 라는 평을 들었는데 초기부터 선거운동시 기본적인 메시지와 기본전략을 처음부터 확실히 정하고 인터넷[19]과 지역적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해 수많은 유권자들과 연락을 취해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을 모아 방대한 조직망에 짜넣어 미국 정치 역사상 전례 없는 엄청난 선거자금을 대부분 일반 유권자들로부터 벌어들였다(기부자당 기부량 평균이 약 50불). 오바마 진영은 길고 험난한 선거기간에도 큰 실수를 범하지 않았고 기본 전략에 큰 변화 없이 충실했으며 거대하고 효율적인 선거조직을 통해 엄청난 양의 선거자금을 벌어들였고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메시지를 유지해 전체적으로 매우 절제되고 안정적인 선거운동을 벌였다. 이는 경선 기간 중 선거자금을 서투르게 관리해 금전적으로 홍역을 치룬 클린턴 진영이나 중심적인 메시지를 정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의 공격용 메시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페일린을 영입하는 도박을 했으면서도 결국 중심을 잡지 못한 매케인 진영과 크게 비교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두 진영은 이후 내부 분열로 심한 홍역을 앓았다.
오바마의 승리를 이야기할 때 보통 미국민의 변화를 위한 갈망이나 부시에 대한 반감을 들며 이것이 정해진 승리였다는 의견이 있지만 어떤 감정이나 사상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을 효율적으로 동원하지 못하면 정치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바마는 그것을 매우 효율적으로 수행해내는 조직을 창설하고 유지해냈고 드물게 닥쳐온 위기에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응해냈다. 이것은 그의 정치가와 조직의 장으로서의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다.[20]
오바마가 백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것이 대통령이 되는 데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 초기에는 많았지만 개표 결과분석에 따르면 오히려 흑인인 것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는 데에 큰 힘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백인 중에서 48%가 오바마를 지지했지만 라티노의 66%, 흑인들의 98%가 오바마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3. 집권 1기: 변화를 말하다
경제 위기 때문인지 흑백 갈등 관련해서 유명하기도 했던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이 태어날 수도 있다는 거 때문인지 그의 당선은 전세계적으로 떠들썩하게 보도되었다. 몇몇 지역은 다른 나라가 아니라 자국 대통령 혹은 총리 선거를 하는 거 같을 정도였다. 한국의 경우 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서 한 5일 정도 내내 뉴스 첫번째 소식이 미국 선거에서 그가 이기고 있다 혹은 당선이 확정되었다, 당선되었다였고 그 외엔 오바마 당선 혹은 오바마 개인에 관한 걸로 3~4가지는 오바마와 연관된 뉴스를 내보냈다. 전혀 다른 뉴스(예를 들어서 부산에 교통사고가 났다거나)로 넘어가는 데 10분~20분 정도 걸렸을 정도다.
오바마는 변화를 강조하고 있는데 미국 국내 정치에서는 중산층과 약자, 소수계층의 보호에 주력하는 한편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제위기 해결, 이라크 내의 병력을 철수하는 대신 미국에게 실제로 위협이 되는 알 카에다를 제거하기 위해 병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ISAF 병력증파 등이 주로 추진할 정책들로 예상되고 있다. 북한과는 협상을 통한 핵문제 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고 보호무역주의 성향으로 한미 FTA에는 상당히 부정적인 탓에 한국과는 마찰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편이다.
어쨌든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는 오바마에게 세계가 더 우호적인 건 사실인 듯하다. 얼마나 능력을 펼칠지는 의문이긴 하지만 오바마마저 실패하면 미국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점에서 참 이래저래 무거운 짐을 안고서 출발하는 대통령인 듯하다. 선거운동 초반에는 정책 공약이나 정치적 성향 때문에 항간에는 "흑인판 케네디", "겉은 검고 속은 하얀 오레오 오즈" 라는 평을 듣기도 하였다.
3.1. 무역정책
오바마는 선거운동기간동안 지속적으로 "한미 FTA의 개편을 통한 미국의 우위선점" 을 주장해왔고 동시에 "남한을 통한 북한 정부와의 대화" 보다는 "북한과의 직접적인 대화채널개설" 과 "대북정치의 포용성강화" 를 언급해왔다.
만일 오바마가 이러한 발언들을 실제로 임기동안 수행한다면 수출주도형 경제를 영위해온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으며 또한 대북관계에 있어 한국의 고립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에게 있어 한미 FTA는 단 한 번도 중심적인 주제로서 다뤄진 적이 없었다.[23] 그리고 오바마 개인의 보호무역 성향 자체도 많이 과장보도된 편인데 그의 경제적 성향은 그를 오랫동안 지켜봐온 미국의 대표적 보수신문 시카고 트리뷴의 지지기사의 일부에서 알아볼 수 있다.
"His economic policy team is peppered with advisers who support free trade. He has been called a 'University of Chicago Democrat'--a reference to the famed free-market Chicago school of economics, which puts faith in markets."
"그의 경제정책팀은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보좌관들로 가득 차있다. 그는 '시카고 대학 민주당원' 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자유시장 경제를 중시하고 시장의 자율능력을 신봉하는 시카고 대학 경제학부를 가리킨다."
애초에 시카고 학파는 유독 신자유주의에 친화적인걸로 유명하다. 참고로 시카고 트리뷴은 단 한 번도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적이 없는 대표적인 보수신문이다. 그리고 정치인들 선거의 중심적 테마와 공약, 정책구상에서 좀 벗어난 주제에 대한 선거용 발언은 믿기 힘든 것으로 악명이 높다. 가장 큰 예로 조지 W. 부시는 선거 토론회 중 미국의 역할에 대해 유화적인 발언을 한 적이 있었다(#).
3.2. 의료보험개혁
미국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인 의료 보험 및 Medicare에 관련된 개혁안이 수많은 진통 끝에 찬성 60, 반대 39표로 2009년 12월 24일 상원에서 통과되었다. 이 법안 때문에 46년만에 크리스마스 이브에 미 상원이 투표를 하고 1차대전 이후 25일간 계속 회의를 벌인 기록이 나왔다. 의료보험법 개정 때문에 미국의 몇몇 인간들에게 빨갱이 취급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는 미국인들의 기본적인 성향인 리버테리안이 맞물려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오래전부터 미국에서 총기 난동으로 인한 사망자가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총기를 일반 시민들이 가지고 다닐 수 있게 한 것도 전미 총기 협회(NRA)의 간섭도 있었겠지만[24] 이런 리버테리안적인 경향 탓도 크다. 호머 심슨의 발언이 바로 그 예이다. 호머가 전미 총기 협회에 가입을 하고 총기 소지하는 이유를 영국 왕이 미국을 공격하면 어떻게 하냐 는 이유였다. NRA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식민지 시대의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미국 국민들이 스스로 총을 들고서 영국과 싸우고 이로 인하여 국가보다는 개인 스스로가 나서서 처리해야 한다는 미국인들의 기본적인 마인드가 깔린 대사로 추정이 된다.
하지만 이 대사는 <심슨가족>에서 나온 대사이고 약간의 조롱의 의미가 깔려있다. 해당 에피소드 자체가 총기소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고 에피소드 마지막에 호머는 총기를 버린다. 시대가 해당 대사 또한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영국왕이 침략 운운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언을 하는 것으로 그런 주장을 놀리는 투였다.
2010년 3월 22일, 드디어 하원에서도 통과되면서 미국의 오랜 숙원인 의료보험계획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중도보수 민주당 의원들 때문에 원안과는 달리 공공보험 옵션이 삭제되고 이루어진 것이었다. 저소득층에 대한 정부 공공보험인 메디케이드가 확대되었고 저소득층 이상의 미국민들에게는 소득에 따라 정부가 보험가입자들을 의료비지원을 하여 새로 도입되는 의료보험시장을 통해 경쟁하는 민영보험을 들게 하였다. 대신 선택적으로 보험을 들지 않는 미국인들에게는 벌금이 부과되도록 하였다. 그밖에도 의료보험 회사가 의료보험 가입자를 그 어떤 사유에서라든지 거절한거나 치유기간 중 의료보험 서비스를 중단하는[25] 행태를 금지하였으며 기존에 존재하던 보험의 평생혜택,연간혜택 금액의 제한을 없애고 되리어 보험자의 연간 의료비 지출에 상한도를 두었다. 이러한 시스템 도입은 세계적으로 네덜란드나 스위스형의 의료보험 체계에 미국이 다가서는 모양새이다.
어쨌건 이 법안이 양당합의가 아니라 행정부와 민주당 단독 통과라는 형태로 법안이 성립되어 당파주의적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이 법안에 대한 여론이 그다지 마땅치 않은 데다가 법안이 효력을 보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번 법안을 논의하면서 미국 사회에 반오바마 세력이 조직화되었고 민주당 내부의 낙태 반대론자들도 이번 법안에 반대하면서 민주당 내부에서도 분열이 생긴 상황이라 오바마 정부의 레임덕이 이 법안으로 인해 촉발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거기다가 미국의 기형 의료 시스템상 이 의료보험법이 적용이 된다 하더라도 막대한 돈이 환자에게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의료보험이 없다면 병원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요구하고 의료보험이 있어도 병원과 의료보험회사가 뒷거래로 삭감 금액을 결정한 뒤 환자에게 납부 요청서를 보내는 방식이라 의료보험이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큰 수술의 경우에는 몇백만원에서 심지어 수천만까지 다다르는 돈이 드는 것이 현실이다.[26] 이런 문제가 시정되려면 공공보험이 전국민상대로 도입이 되거나 정부가 의료비용을 규제를 해야한다.
결국 의료보험안은 실상은 공화당과 극우주의자, 그리고 리버테리안을 자칭하는 프로파간다에 넘어가버린 꼴통들의 공세로 오바마 정부에게는 크나큰 폭탄이 되어버렸으며 2010 중간 선거에서 민주당이 불리한 입장에 서있는 것이 현실이다. 좌익 세력 쪽에서도 상당수가 이로인해 '오바마는 무능하다' 라는 설득론에 넘어가버렸으며 결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을 과반 이상 차지하면서 민주당은 참패했다. 이래저래 시작은 좋았으나 80-85%의 국민 대부분이 이미 의료보험을 가지고 있고 사회주의/공산주의 이념공격에 취약한 국민정서와 같은 한계를 맞아 역효과를 불러오게 되어 버렸다. 그나마 상원은 과반을 지켜낸 것은 다행한 일이라지만 공화당은 중간선거 승리 후 의료보험 개정안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공화당이 과반을 차지한 하원은 의료보험 개정안 폐기시키려는 시도를 서른 네 번이나 했다. 이 정도면....
오바마 대통령은 일단 의료보험 개정안에서 벗어나서 월가의 만행을 막는데 치중하고 있으며 이는 재선을 상당히 신경쓰고 있는 듯 보인다. 한편 그의 측근들의 의견으로 볼 때 현재의 목표는 재선 후 의료보험 개정안을 다시 미는 것인 듯하다. 그리고 2012년 6월 28일에 오바마케어가 합헌이라는 미국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2014년까지 3천 2백만 여명의 미국 국민들이 건강보험에 새로 가입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 큰 기대를 하고 있는 중. 오바마의 지지율도 중간층의 이동으로 상당히 올랐다. 2012년 선거에선 공화당이 하원 다수를 지켰으나 의석 수가 줄었고, 상원은 민주당이 2석을 더 얻었다 (민주당과 코커스하는 무소속 의원 둘 포함).
3.3. 극좌 대통령?
2011년, 오바마 집권 이후 북미관계에서 큰 변화를 기대했던 몇몇 진보인사들은 상당히 실망한 상태이다. 물론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이 컸지만 오바마 정부가 대북정책을 한국에 사실상 위임하다시피하면서 이로 인해 한-미공조가 더욱 공고해져버렸기 때문이다(참고).
게다가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의 동의 없이 급진적으로 북미관계를 진전시키기 어려워졌다. 물론 4월부터 미국은 한국과 식량 지원 문제를 협의하고 있고 이로 인해 갈등이 생길 여지가 남아 있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재선 이후라면 몰라도 당분간 북한 문제로 인해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정부가 충돌이 일어나진 않을 듯.
•오바마가 인기가 높아서인지 현 정부는 "오바마와 코드를 맞추겠다" 라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코드가 안 맞다며 까였다. 다만 거시경제에 한해서는 의외로 그다지 의견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참고).
•한편 이명박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장에서 기자의 질문에 이란의 폭력적인 시위진압을 비판하는 요지의 발언을 해서 참고 "교수들에 이어 오바마가 시국선언문을 낭독했다" 는 농담을 듣기도 했다.
근데 진짜 몇몇 극우적인 이라고 쓰고 수꼴이라고 읽는다 미국인들은 오바마는 좌빨 공산주의자에 무슬림 테러리스트라고 믿고 있다극단적 무신론자인 공산주의자와 극단적 유신론자인 무슬림 테러리스트가 이념적으로 공존할 수 없다는 건 둘째치고서 라도. 진지하게 오바마는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책이 출간됐을 정도.
3.4. 집권 1기의 현실적 어려움
현재 가장 큰 문제라면 자국 내에서의 평가가 악화되고 있다는 점. 특히 청교도 정신에 영향받아 돈을 버는 부자들에게 관대하면서 국가가 행하는 공공사업에 믿음을 가지지 않는 미국의 풍토 때문에 공공 사업 추진이 주요 정책인 오바마 행정부의 지지도가 낮아지는 게 사실. 특히 월가에서 터진 세계금융위기를 뒷수습하는데 있어서 계속 마찰이 터지고 있으며[27] 미국인들 대부분이 국가 주도로 부의 재분배를 한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넘어야 할 산이 좀 많은 듯.
뿐만 아니라 오바마를 뽑은 국민들 중 많은 사람들이 위에서 언급한 부시 정권을 통한 공화당의 불신과 단순히 부시가 삽질한 걸 오바마가 당선된 것 하나만으로 모든 문제가 단숨에 고쳐질 거라고 믿었던 묘한 기대감이 반작용이 되고 있는 이유도 있다. 한마디로 대선 기간에만 정치에 관심을 잠시 가졌다가 오바마가 당선되자 "오바마가 뽑혔네? 이제 알아서 잘 살게 해주겠지? 이제 모든게 다 잘 풀릴 거야 yay!" 모드로 다시 정치 무관심 모드로 돌아간 경우가 많다. 지금의 추세는 이제까지 별 생각도 관심도 없던 오바마 정권의 행태가 미심쩍어지자 법 공부를 하러 간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게다가 그가 다른 종교에 보여주는 유화적인 태도가 몇몇 미국인 사이에선 반감을 사고 있다. 그라운드 제로 주변에 이슬람 사원을 건립하는 문제에 대해 오바마가 지지를 천명하고 나서자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심지어는 타임지 조사에서 미국민의 27%가 오바마 대통령은 무슬림이다 라고 믿고 있는 걸로 드러났다. 애초에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에서 대통령의 종교가 마이너 하다고 문제 삼는 거에서 이미 에러. 특히나 신정국가삘이 충만한 텍사스를 비롯한 남부와 중부주들에서 이런 경향이 심각하다.
3.5.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
공화당의 중간선거 승리로 오바마 정권의 임기 후반기가 위기를 맞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던 가운데 공화당은 의료보험 개정안 폐기를 선언하면서 폐기법안을 하원에 상정해 통과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2011년 1월 8일에 터진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은 미국에 후폭풍을 몰고 왔다. 이 사건의 원인으로 그동안 보수 논객들과 정치인들의 오바마 정권 까기가 도마에 오르면서 보수측이 위기를 맞은 반면 오히려 오바마 정권에게는 반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1월 12일, 오바마 대통령은 총기난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식을 참석해서 추모 연설을 했는데 이 연설은 감동적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그간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이 이성적 면모를 보였던 것과는 달리 이 추모 연설은 철저하게 비정치적이고 감성적이어서 오히려 더 호평을 받는다는 분석.
3.6. 빈 라덴 사살
2011년 5월 2일, 오바마가 보낸 DEVGRU 팀이 파키스탄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다.
이후 2012년에 오바마는 이 공로로 미 육군 특전대로부터 명예 그린베레로 임명되었으며, 네이비 씰 트라이던트 배지도 수여받았다.
3.7. 소버린 쇼크
빈 라덴을 사살해서 지지율이 한껏 올라가고 재선가도에도 청신호가 켜진 것도 잠시, 이후에 연방정부의 국가부채한도가 발목을 잡았다. 미국의 독특한 특성상 연방정부의 국가부채 한도를 올리지 않으면 연방정부가 부도가 나는 사상 초유의 위기가 도래할 지경이 된 것.
이 때문에 민주당과 공화당 지도부,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까지 직접 공화당 지도부와 국가부채한도를 올리는 문제를 협상했다. 그러나 재정 적자를 줄이는 문제를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은 의견이 엇갈렸는데 민주당은 "증세를 통한 재정적자 감축" 을 주장한 반면 공화당은 전통적인 보수의 주장대로 "감세와 복지예산 축소를 통한 재정적자 감축" 을 주장해 협상은 평행선을 달렸다.
결국 국가부채한도에 도달하는 위험수위에 도달하기 직전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그러나 협상의 결과는 공화당의 승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당면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공화당의 주장을 대부분 수용했는데 이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하는 층에선 반발이 일어났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국가부채한도 문제에 대해서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스탠다드 앤 푸어스사는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미국의 재정 적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을 경고했고 결국 미국의 신용등급을 실제로 강등시켜버렸다. 결과는 전세계 주식시장의 떡실신. 당시 오바마는 이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였지만 스탠다드 앤 푸어스사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안습.
4. 2012년 대통령 선거
4.1. 과연 재선은 가능할까?
오바마 대통령이 과연 재선에 성공할지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 일단 부정적인 견해로는 미국 경제의 장기 불황 가능성이 오바마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그렇게 중도표는 공화당에, 반대로 실망한 서민과 소수인종, 진보표는 투표를 안하는(...) 상황이 예측되었다.
대략 다음과 같은 징크스들이 오바마의 재선가도를 막을 것으로 보였다. 경향신문 기사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들의 대선 직전 소비자 신뢰지수의 평균은 95였다. 소비자 신뢰지수가 77 이하일 경우에는 재선에 실패했다. 지난 10월 미 소비자 신뢰지수는 72.2였다."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 재임 이후 전국 실업률이 7.2%를 넘을 경우 현직 대통령의 연임은 모두 실패했다. 지난 10월 발표된 미 전국 실업률은 7.9%였다."
특히 실업률이 문제였다. 공화당은 이 징크스를 내세우며 오바마의 실업률이 8%를 넘는다고 계속 공세를 펼쳤고 반면 오바마는 그 이하라며 반격했다.# 또 공화당은 오바마에게 카터의 이미지를 덮어씌우려고 노력했다.
심지어
•"역대 민주당 대통령 중 재선을 노리는 투표에서 상대 후보의 키가 더 클 경우 재선에 실패했다. 가장 최근의 예는 1980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에 패한 것. 오바마의 키는 6피트 1인치(1m85), 롬니의 키는 6피트 2인치(1m88)다."
그러나 미국 대선 결과를 7번이나 맞춘 아메리칸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 앨런 리치트먼은 오바마의 재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리치트먼 교수는 오바마가 2008년의 카리스마를 잃은 건 맞지만 상대편인 공화당에 오바마를 능가할만한 카리스마를 지닌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외교 안보상으로는 큰 실수가 없고 오히려 빈 라덴을 사살함으로써 성과를 거둔점은 재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라는 것. 다만 경제 문제가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높다고 분석했다고 한다. 주요 도박사들도 오바마 편이었다.
게다가 공화당이 미트 롬니와 뉴트 깅리치가 대선 후보 경쟁을 하면서 공화당에선 오바마만 유리하게 만든다는 우려가 터져나왔다. 바로 공화당 지지가 분열되고 있는 것. 미국 보수파들에겐 롬니가 공화당에서 인기를 얻는 걸 두고 착잡하게 봐야 하는게 롬니 후보는 바로 개신교에서 이단이라고 하는 모르몬교도이니 오바마를이슬람으로 몰면서 반대하는 것들이 이런다고 오바마 지지자들에게 비아냥을 듣는 판인 것. 또 "롬니케어" 라고 알려진 주지사 시절 건강보험 정책도 역시 롬니가 "공화당의 탈을 쓴 리버럴" 이라는 오해를 받기 충분하다(이는 매사추세츠가 근본적으로 민주당 텃밭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낙태와 동성애에 대해서도 보수적이지만 종교적 이유는 아닌 애매한 스탠스. 반대로 중도 혹은 온건 성향의 공화당 주류는 깅리치가 네오콘, 티 파티와 손을 잡고 무개념 발언들을 일삼는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여기에 리버테리안 성향의 론 폴이 10대, 20대의 컬트한 인기를 얻고 있다. 이렇게 공화당 자체가 크게 두파, 작게는 세네파로 지지층이 분열되고 있는 안습한 상황. 롬니가 좀 낫지만 롬니가 나오면 보수파가 이탈하고 깅리치가 나오면 중산층이 이탈하는 상황이 도래한 것.
이를 반영한 듯 일반적인 미국의 여론 또한 '오바마가 잘 해서라기보다 공화당의 혼란 때문에'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 시작 이전까지는 오바마의 우세를 점쳐왔다. 물론 롬니가 공화당에서 큰 표를 잃은 것은 아니었으며 도리어 모르몬의 텃밭인 유타에서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지지(73%:25%, 심지어 일부 카운티에서는 89%:8.8%도 나옴)를 받았다.
결국 문제는 경기의 절대적 상황이 아닌 추세였다. 2011년 9%에서 2012년 8%로 점차 하락하는 실업률의 추세는 잭 웰치 등의 디스 발언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를 지지하는데 큰 공신이 되었다. 게다가 (1956년을 제외하고) "주식시장이 선거 직전 3개월 동안 상승하면 현직 대통령만 재선에 성공" 했는데 "미국 주식시장은 최근 3개월간 약 2.5% 상승했다"(경향의 같은 기사).
4.2. 슈퍼팩 논란
이런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는 슈퍼팩인 "미국을 위한 최우선 행동" 에 지지의사를 밝히면서 슈퍼팩 논란에 휘말렸다. 슈퍼팩은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 표명이 가능한 정치인 후원회를 일컫는 말인데 무제한의 정치자금을 투입해서 특정 후보 지지나 반대 광고를 내보내는 게 가능하다.
먼저 미트 롬니의 슈퍼팩이 3천만 달러를 퍼부어서 뉴트 깅리치 등은 물론 오바마 대통령까지 디스하는 광고로 TV를 도배했다. 이에 뉴트 깅리치도 지지 않고 라스베가스 카지노 거물의 자금을 중심으로 한 슈퍼팩을 동원해 사우스 캐롤라이나 경선을 승리하면서 선거전을 돈싸움으로 만들어버린 상황.
오바마 대통령은 슈퍼팩에 대해서 민주주의의 적이자 기업들의 무제한 정치자금 통로 라면서 강력하게 비난했었으나 공화당 후보들이 무제한의 엄청난 자금으로 오바마 반대 광고 융단폭격을 일삼자 결국 현실에 순응해서 자신을 지지하는 슈퍼팩의 행동을 용인한 것.
이런 지지의사 표명에 공화당에서는 오바마가 앞뒤가 안 맞는 사람이라고 맹비난했고 심지어 민주당 내에서도 공화당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하면 미국민들은 오바마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슈퍼팩의 문제는 당연한 것이지만 받아먹은 만큼 토해내야 하는 인류 고래의 진리로 보면 오바마가 재선되더라도 사실상 무제한 자금을 제공한 슈퍼팩의 뒤에 서있는 기업들을 봐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비난이 쏟아지는 것이라고 볼수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오바마가 슈퍼팩과 절연한다면 미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로 재선될 거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 어쨌든 슈퍼팩 논란으로 오바마도 롬니, 강리치와 더불어 사이좋게 돈 전쟁의 시궁창으로 자진 입수해버렸다. 현실은 시궁창
사실 오바마는 이미 기존 지지기반이던 민주당 좌파들의 기대를 상당히 저버렸고 특히 중간선거 이후 공화당과 상당부분 타협을 하면서 중도 쪽으로 우향우를 한 입장이다. 이는 빌 클린턴과도 겹치는데 현재까지는, 그리고 결과론적으론 이런 정책이 재선으로 효과를 보고 재선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의외로 슈퍼팩을 통한 선거전의 효력이 의외로 떨어진다는 반응도 있어서 어떻게 될진 모른다.[28]
4.3. 재선 성공
민주당은 일찌감치 오바마의 재선 준비에 돌입하였고 2012년 중순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공화당은 밋 롬니를 대선 후보로 확정하였다.
이후 공화당 전당대회를 통해 반짝 지지율이 상승한 롬니는 9월 17일 그의 비공개 선거자금 모집 행사에서 "오바마는 세금을 내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47%의 미국인들의 지지에 의존한다", "이들은 정부가 자신들을 보살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의료보험과 먹을 것, 주택 등 모든 것을 지원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으면서 세금은 전혀 내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걱정하는 게 내 일이 아니다", "나는 그들에게 스스로 책임을 지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돌봐야 한다고 설득하지도 않을 것" 이라고 자폭 발언(47% 발언)한 것이 드러나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대선 판세가 급격하게 오바마 쪽으로 기울었다. 이 행사에서 일하던 스콧 프라우티라는 바텐더가 찍어서 올린 녹화본을 이어 받아서 본격적으로 퍼트린게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손자인 제임스 카터다.
그러나 경제 문제를 다룬 1차 TV 토론회에서 절치부심한 롬니에게 회심의 일격을 허용한 오바마는 큰 폭으로 따라잡히며 재선을 위협받는다. 오바마는 뒤늦게 2차, 3차 토론회에서 우위를 점하였으나 기존 공화당 지지자들의 결집 등 후속 효과가 잇따르면서 롬니와 엎치락 뒤치락 하는 초접전 양상을 계속 보여주었다. 선거 직전까지 거의 모든 여론조사가 오차범위 내 접전이었으며 따라서 오하이오, 플로리다, 버지니아, 노스 캐롤라이나, 콜로라도 등 경합주의 승패에 따라 선거가 결판날 것이 분명하였다.
롬니는 토론회에서의 일격 이후 기존의 47% 비하발언 등의 실책을 딛고 당선을 눈앞에 둔 듯 하였으나 태풍 샌디가 미국을 덮치면서 상황이 다시 뒤집히기 시작했다. 뉴욕주와 뉴저지주 등 동부가 허리케인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상황에서 오바마는 공화당 소속인 크리스티 뉴저지주지사를 동반해 헬기를 타고 상황을 직접 살피면서 대책을 마련했다. 당시 미국 동부에선 정전에 휘발유까지 부족하여 주유소마다 경찰이 서있는 모습이 연출되는 상황에 교통마비까지 겹쳐(가로수 및 가로등이 도로 위로 많이 쓰러졌다.) 최악의 상황 중에 오바마는 대통령전용기를 이용하여 대책을 갈구할 수 있었고 이전에 재난 예방 및 대책에 관련된 부서를 축소하겠다고 말한 롬니에게 치명타가 되었다. 결국 동부에서 지지율이 올라갔고 기존에 오바마를 비난했던 크리스티 역시 (자신의 야심[30]과 주 민심 등의 상황을 감안하며) 오바마를 극찬하였다. 더불어 공화당 출신 무소속 뉴욕 시장인 블룸버그도 기후변화에 대처하기에 적합하다면서 오바마를 지지하였다. 선거날의 날씨도 맑아서 민주당에 유리한 높은 투표율이 기대되었으니 결국 50% 후반의 상대적으로 높은 투표율에 투표가 마쳐졌다.[31]
결국 2012년 11월 6일(한국 시각으로 7일) 재선에 성공하였다. 전체 538명의 선거인 중 303인을 거의 확정적으로 획득하여 201인을 획득한 밋 롬니를 꺾고 재선에 성공하였고 오바마와 달리 패배연설 원고도 쓰지 않았다는 롬니는 패배를 인정하였다.
선거 개표는 시작과 함께 초반에 일제히 공화당 우세주의 투표함이 열리며 롬니의 우세로 시작되었다. 오바마는 동북부의 작은 주들에서 천천히 선거인단을 확보해 나갔지만 중북부의 중규모 주에서 앞서나가는 롬니에게 뒤졌다. 그러나 오하이오와 플로리다의 개표가 시작되자 서서히 오바마는 롬니를 따라잡기 시작하였고 선거인단 수에서도 본격적으로 역전과 재역전이 반복되기 시작하였다. 다시 텍사스로 롬니가 앞서나갔지만 오바마는 뉴욕주에서 앞서 나가며 다시 따라붙었다. '블루 스테이트(민주당 텃밭)' 과 '레드 스테이트(공화당 텃밭)' 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양 후보에게 모두 흡수되었으며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스윙 스테이트의 표심이 중요해졌다.
이와중에 이번 미국 대선 3대 경합주로 분류되었던 오하이오 주와 플로리다 주, 버지니아 주는 50:50에서 오차범위 내의 격전이 개표 내내 계속되고 있었다. 오하이오 주의 경우 오바마에게 우호적인 카운티의 투표함이 먼저 개봉되면서 초반 오바마가 10% 이상 앞서기도 했지만 곧장 롬니에게 오차범위 내로 따라잡히며 한두번 뒤집히기까지 했다. 플로리다 주의 경우 그 정도가 더욱 심해 순위가 몇 번이나 뒤바뀔 정도였고 며칠 뒤까지 결과가 정해지지 못했다. 버지니아 주에서는 오하이오의 반대의 경우로 롬니가 여유 있게 앞서다가 막판에 오바마에게 따라잡혀 역전을 허용했다.
결국 롬니는 경합주 중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신승하였지만 이는 사실 예상되던 바였다. 도리어 콜로라도와 위스콘신 등 중요한 주가 하나둘씩 오바마의 낙승이 점쳐지고 인구가 가장 많아 55명의 선거인단을 보유한 캘리포니아의 투표함이 열리면서 결국 뒤처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오하이오와 버지니아에서 오바마의 승리가 확실해짐에 따라 롬니는 패배를 인정하게 되었다.
당초 전국 지지율에서는 롬니가 앞서고 선거인단 확보 수에서는 오바마가 앞서 조지 부시가 전국 득표수에서 뒤졌지만 선거에서 승리했던 2000년 선거의 재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입)분석이 있었지만 NYT의 선거 분석단 "538(five-thirty-eight)" 은 부정적이었다[32]. 공화당 우세주의 개표가 거의 끝나고 민주당의 아성인 태평양 3주(워싱턴, 캘리포니아, 오리건)의 개표가 시작되자 20만표 격차를 두고 몇 차례 기우뚱 거린 끝에 동부시간 밤 10시 반(한국 시간 2시 33분) 무렵 전국 득표 역시 오바마가 앞서기 시작하면서 선거 후에 불거질 문제 역시 차단되었다.
선거 전에 뉴욕 타임즈의 경우 롬니가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31가지, 오바마가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221가지라는 분석을 했었는데 과연 오하이오 등의 큰 주를 얻으면서 승리하게 되었다. 초반에는 비등하면서도 뒤처지는 듯 했지만 큰 주 여럿을 먹으면서 대역전하였다. 밋 롬니가 도전자로서 언론의 주목을 받는 동안 조용히 전략적으로 중요한 주에 집중적으로 선거 운동을 한 오바마의 전략적 압승이라는 평가다.
이로써 오바마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에서 최초로 재선된 흑인 대통령 으로 렙업 불리우게 되었다. 다 최초네 선거인단은 332 대 206, 득표는 51.1%(6590만표)로 지난 선거보다 360만표 가량 덜 받았지만 격차는 497만표(3.9%)를 냈다. 100명 이상의 차이를 벌리는 압승이었다.
선거인단은 2008년에 비해 노스 캐롤라이나(15석)과 인디애나(11석), 분할 선거인단제도를 시행하는 네브래스카의 1석을 잃었으며[33] 이는 선전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인디애나는 원래 중부에서 보수성향이 가장 강한 주로 08년에 승리한 게 특이한 경우였고 노스 캐롤라이나는 높은 실업률로 지역 여론이 좋지 않았다.[34] 오바마는 경합주로 거론되던 플로리다, 오하이오[35], 버지니아(big 3), 콜로라도, 위스콘신, 뉴햄프셔, 아이오와, 네바다에서 모두 승리하는 위업을 거뒀다.
참고로 출구조사에서 백인 인구는 40%만이 오바마를 뽑은데 비해 동양계와 히스패닉은 70% 가까이가 오바마를 찍었고 흑인의 93%가 오바마를 뽑았다고 대답. 이는 공화당이 자초한 바가 큰데 민주당에 우호적인 소수인종의 투표율을 낮추기 위해서 photo ID로 신분을 의무 확인하라고 주장했다가 (테네시 주는 2011년부터 실제로 그러고 있다!) 소수인종들의 미움을 사 반공성향이 강한 아시아계는 물론 실향민격인 쿠바계 히스패닉까지 48%가 등을 돌려버렸다!
반면 백인 남성들은 오바마에게 등을 돌려 미시시피 대학에선 오바마의 이름을 적은 피켓을 불태우던 대학생들이 경찰에 잡혔고[36] 트위터에서도 온갖 인종차별적 욕설이 나오는 데다가 도널드 트럼프는 트위터에 혁명을 일으켜야 된다 며 나라를 뒤집자는 식의 트윗을 했다가 지웠다. 이와중에 무식한 인간들이 많이 보여서 깨알같은 즐거움(...)을 주었는데 영국 여왕에게 잘못했다면서 제발 다시 영국에서 살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편지가 오는가 하면[37] 어떤 여자는 호주로 가서 독실한 기독교인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트윗을 올렸는데 호주는 대통령이 없으며 2012년 기준으로 여성 수상이 독신에 무신론자인 사람이다. 낙태 허용하고 창조론 따위 안 가르친다는 거 알면 아주 뒤집어질걸? 그리고 오바마가 당선되면 직원 해고한다는 회사들이 있었는데 진짜로 해고했으며 백인보수층의 멘붕이 심하다보니 단순히 이런 멍청한 발언에서 오바마를 암살하고 싶다는 인간도 나와서 국가 기관에서 긴장 중이다.
5. 집권 2기: 위기의 오바마, 그러나 돌파구는 있다.
2015년. 순간 지지율 90%를 기록했던 명 연설.
5.1. 공화당과의 충돌
5.1.1. 재정절벽 문제
집권 2기가 시작되자마자 오바마 대통령이 다시 겪어야 했던 문제는 재정절벽(Fiscal cliff) 문제였다. 재정절벽 문제는 연방의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민주당과 공화당 간의 협상이 2013년 1월 1일까지 완료되지 못할 경우, 전 대통령 조지 부시의 감세 혜택이 자동으로 종료되고 오바마 집권 1기 때 시행되었던 2%의 페이롤 세금 감면이 끝나게 되며, 정부가 한꺼번에 엄청난 액수의 재정 지출을 삭감해야 하는 재앙과도 같은 문제였다. 재정 절벽 협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미국 경제는 무려 8천억 달러의 규모 축소가 예상되는 상태였고, 전 세계가 숨죽이고 미국 정계를 주목하였다.
사실 2009년부터 세 차례에 걸친 양적 완화를 통해 겨우겨우 경기를 부양해 놓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2012년 하반기 들어 겨우겨우 실업률과 주택경기가 긍정적으로 돌아서고 있는 마당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더블딥으로 직행하는 급행열차를 타는 것과 마찬가지였고, 결국 재정절벽 시한 하루 전이던 2012년 12월 31일, 부자 증세와 실업 수당의 연장 지급, 여타 세액 공제 등 핵심적인 부분에 합의점을 찾는 데 성공하여 결국 극적인 타결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의 경우 재정절벽 협상안을 얼른 통과시키지 않고 밍기적거리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일정 부분 충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런데 재정절벽 협상이 타결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 사가 갑자기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할 것을 경고하고 나섰다. 그 이유는 재정절벽에 못지 않은 악몽, '시퀘스터(Sequester)' 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5.1.2. 시퀘스터 문제
시퀘스터는 2013년 1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1조 2천억 달러에 달하는 양의 재정지출을 자동으로 삭감하게 되는 조치이다. 시퀘스터 문제는 2011년 하반기부터 태동하기 시작하였는데, 늘어만 가는 재정적자에 대해 고심하던 미국 의회에서 2011년 8월 예산관리법을 의결한 뒤 2012년 말까지 재정건전화 대책을 마련하였다. 시퀘스터는 이 재정건전화 대안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할 경우 자동으로 발동되는 장치였던 것이다. 일종의 시한폭탄과 같은 것.
민주당과 공화당은 재정절벽 협상이 끝나기가 무섭게 부채한도의 재증액과 시퀘스터 문제를 가지고 부딪혔다. 공화당은 재정절벽 문제에서와는 달리 의료와 교육 등 사회보장부문의 지출을 낮출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고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 역시 "부채한도 증액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라는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였고, 의회에서는 미봉책으로 시퀘스터의 발동을 2개월 미뤄 두었지만 이는 정말 말 그대로 미봉책에 불과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2013년 2월 22일 오바마 대통령은 해외 기업과 정유업체에 대한 세제 혜택 축소, 국방비 2천억 달러 축소, 메디케어 예산 4천억 달러 축소, 농업보조금 2천억 달러 축소 등의 수정안을 제시하였으나, 공화당은 재정절벽 협상 때 이미 부자 증세를 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의 증세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서면서 또 협상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고 민주당과 공화당 양측은 시퀘스터 발동 하루 전인 2013년 2월 28일 각자 대체법안을 상원에 제출하였지만 자당 의원의 자당 대체법안에 대한 반대표가 속출하는 등 전 미국인과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온갖 막장스런 행태만 보였고 결국 두 법안은 모두 부결되었다.
그리고 2013년 3월 1일, 결국 시퀘스터가 작동하기 시작하였다.
5.2. 연달아 일어난 테러 사건
2013년 4월 2차 집권초기 이지만 불안정한 상황인데 앞서 총기규제와 관련해서 강한 반발도 있지만, 보스턴 폭탄테러 사건, 상원위원 집무실과 백악관으로 독극물 배송, 웨이코 비료공장 폭발 사고등 우연이라 보기엔 너무 굵직한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자세한 건 해당 항목들 참조.
5.3. 그리고 반전. 지지율 50% 회복
여러가지 악재와 난조에도 불구하고 일단 미국이 경제지표 상으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기 시작하자[38] 2015년 상하원 합동회의장에서 가진 연두교서[39]에서 중산층을 살리기 위한 정책을 펼치겠다면서 감세정책을 고수하는 공화당을 압박하며 강공을 펼칠 것을 예고했다.[40]##
"소수만 특출나게 잘사는 경제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의 소득과 기회를 확대하는 경제에 충실할 것인가…답은 자명하다. 중산층 경제다."
"상위 1%가 축적된 부에 걸맞은 세금을 내지 않아 초래되는 불평등의 간격을 메우자."
특히 이날 연설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1년 내내 일해서 1만5000달러도 못 받고 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면(If you truly believe you could work full-time and support a family on less than $15,000) 니가 해봐라!(Go try it!)"라고 한 연설은 미국 내에서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켜 순간 지지율이 90%[41]를 찍는 기염을 토했다.##
언론에서도 옛날의 오바마가 돌아왔다!며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공화당은 "어차피 국회에서 통과 되지 않으면 소용없는 걸 알면서도 의미없는 발언으로 국민들을 기만하는 행위를 벌이고 있다."고 반발했지만 중산층의 표가 걸려 있는 사안을 건드렸기 때문에 공화당에서도 오바마의 공세를 방어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6. 비판
7. 그 외
7.1. 동성결혼 지지선언
오바마의 2008년 선거 엠블렘을 무지개색으로 치환한 엠블렘. 무지개는 당연히 동성애를 포함한 성소수자를 상징한다.
동성결혼 문제가 논란의 도마에 오른 가운데 조 바이든 부통령이 동성결혼을 지지한다는 표명을 밝히자 오바마 대통령도 이것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결국 오바마는 대놓고 동성결혼을 지지한다 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발언으로 미국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전문가들은 오바마의 동성결혼 지지선언이 의도적인 정치적 계산에 의한 도박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동성애자들을 비롯한 성 소수자들은 적극적인 활동가들이 많고 진보적 입장이기 때문에 적극 지지층이 필요한 오바마의 재선 가도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는 것. 상대적으로 미트 롬니가 고딩 시절에 게이 친구들을 괴롭혔다는 폭로가 맞물린 시점에 나온 것이라서 더욱...
오바마의 지지율은 이후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게 문제가 된 건 정략적(이념적)이다라는 미국 국민들의 판단 때문이지 동성결혼 지지 자체에 대해선 별로 문제삼지 않아보인다는 지적이 많다. 경제 문제가 최대 현안이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오바마가 정작 중요한 문제인 경제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말하지 않고(성소수자가 아닌 미국 국민들 입장에선) 부차적인 문제인 동성 결혼 같은 걸로 술수나 부린다는 인식이 퍼졌다는 것. 더욱이 이 하락은 일시적일 가능성이 높고 가장 결정적인 스윙 스테이트에서의 지지율 하락이 별로 없었으며 오히려 "오바마 케어" 합헌 결정 이후 대반등을 했다.
2012년 재선가도에서도 이 전략은 적중했다. NYT(뉴욕타임즈)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출구조사 전체의 5%를 차지한(5%는 3%를 차지하는 아시아계보다도 많은 수이다) 성소수자들은 76%:22%로 압도적으로 오바마를 지지한 반면 이성애자들은 49%:49%로 뚜렷한 호오를 표시하지 않았다.#
7.2. 절반만 흑인?
사실 절반만 백인인지라 첫 흑인 대통령이라기보다는 첫 혼혈 대통령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사실 미국에 '순수한' 흑인은 얼마 없다. 대부분 20~30% 정도는 백인 피가 섞여있다. 흑인이라고 해도 피부가 짙은 황색이나 갈색에 가까운 것도 그때문이다.
이런 식의 흑인 분류(?)는 원래 악명 높은 'one drop rule' 에서 시작되었다. 직역하자면 '한 방울 규칙'.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여있다면 흑인이라는 것으로 '순수한 백인의 피' 에 유색인종의 피가 섞일 경우 피가 '더럽혀지는' 것으로 보는 인종차별적인 법칙. 현대에 이르러서는 one drop rule을 대놓고 이야기하는 미친놈들은 거의 없어졌고[42] (적어도 법적으로는) 유색인종의 권리도 신장되었다. 이제는 '대충 흑인처럼 생기고 자기가 스스로 흑인이라고 하면 흑인' 인 듯. 다만 오바마의 경우에는 백인 어머니에 의해 길러진 것도 '반쪽 흑인' 의 이미지에 한 몫 하는 듯하다.
7.3. 스포츠광 오바마 - "오바마 징크스"
스포츠광이기도 해서 그 중에서도 자신의 연고지인 시카고 관련 팀들의 팬이다. 이제까지의 대통령들이 주로 야구 팬이었던 것처럼 야구도 좋아하는데 시카고 화이트삭스 팬이기도 하여 워싱턴 내셔널스의 시즌 개막 경기에 화이트삭스 모자를 쓰고 시구를 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2009년 카디널스의 부시 스타디움에서 열린 올스타게임에 화이트삭스 저지와 모자를 쓰고 시구를 하고 마크 벌리가 퍼펙트 게임을 했을때 격려 전화를 하는 등 화이트삭스 광팬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이후 US셀룰러 필드에서 시구를 한 적은 없다(2005년 상원의원일 때 시구를 했다). 또 2012년에 케빈 유킬리스가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 되자 표 텃밭인 보스턴에서 유킬리스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농담을 했다가 야유받은 적도 있다. 축구도 좋아해서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당시 미국이 치르는 경기들을 모두 직관했다. 또한 콜로라도 라피즈 구단으로부터 유니폼을 선물받는데 등번호가 10번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아싸! 리오넬 메시랑 등번호가 같다!며 환호하기도 했다.
농구광이기도 하다. 농구로는 시카고 불스, 풋볼로는 시카고 베어스 팬이다. 2010년 추수감사절 연휴에는 농구 경기를 하다가 입술 부위를 12군데나 꿰메는 부상을 입었을 정도. 물론 보는 것도 좋아해서 NCAA 경기를 관람하거나 항공모함에서 연 적도 있다! 심지어 1969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 재임중에 건설한 백악관 지하의 1개 레인짜리 볼링장을, 2009년 취임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밀어버리고 # 거기에 농구장을 건설했다가 볼링협회로부터 항의를 받았다고도....
선거 에 출마했을 경우 개표 직전에 농구 시합을 벌이면 당선된다는 징크스를 갖고 있다. 존 맥케인과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오바마는 지인들을 불러모아 농구 시합을 실시했는데 당선되었고, 밋 롬니와의 최후반 선거 경합을 벌일 때 역시 그랬다.
특히 마지막 며칠을 남겨두고 롬니는 죽을 힘을 다해 오하이오 주에서 유세전을 펼친 반면, 오바마는 그 마지막 며칠동안 일체의 정치활동을 하지 않고 역시 친구들을 불러모아 놓고는 농구 시합을 했다. 그 이후 오바마가 당선되었다. 한마디로 농구시합을 하면 무조건 당선된다는 것이 오바마 징크스이다.
7.4. 트리비아
•대통령이 된 후 여러 공식 석상에 지각을 자주 해서 빈축을 사고 있다. 3, 40분 지각은 기본이라는 듯.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에 비하면 이건 약과...
과연 그럴까?
•대한민국의 교육을 본받자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본받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바마는 한국의 "수업일수" 를 본받자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의 수업일수를 본받자는 이야기는 미국 교육계에서 매우 오랫동안 논의되어온 제안이고 그리고 미국 공교육이 좀 많이 개판스러운 것도 사실이다.[43] 그러므로 "미국에도 드디어 야자가!" 하는 식으로 설레발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일부 한국과 미국의 교육전문가들은 "오바마가 제대로 잘못 알고 있다" 며 충공깽에 떨고 있다. 심지어 "한국 교육은 미국의 100년 전과 같다" 라고 평한 칼럼니스트도 있었다.
•2009년 아시아 순방 도중 일본 아키히토 덴노에게, G20 정상회의 도중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에게 90도 인사를 해 반대파들에게 미국의 자존심을 구겼다고 빈축을 샀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정치적 제스처라는 반응이 있다. 오바마가 겉으로는 친아시아적 외교를 진행함으로서 각국의 친미파들의 호감을 사고 배타적 정책을 피려는 정부들을 자제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44] 실제로 중국의 경우가 어느정도 그러하고 일본의 경우는 결국 후텐마 기지가 후폭풍이 심해지면서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이 실각했다.
•미국의 코미디 프로그램인 SNL에서는 오바마가 열받으면 "더 락 오바마" 가 된다고 한다(...)
•외계인이 시간여행하는 모 영국 드라마에 특별출연했다.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에 그의 이름을 딴 항공모함이 등장한다. 함명은 USS Barack Obama.
•내 이름은 칸에서도 잠깐 등장했다. 다만 싱크로율은 그렇게 높지 않다는 것이 좀 아쉬운 편. 이 부분이 이 영화에서 꽤 중요한 장면이기에 더욱 아쉽다.
•이름은 초상권 침해의 우려가 있어(?) 살짝 다르게 나왔지만 중딩들이 롤러 블레이드를 타고 날아다니는 만화에도 나온 적이 있다(...)
•한미동맹친선협회라는 단체가 G20차 한국에 오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국 이름을 지어주려고 하는데 이름이... # 오한마오함마인가
•도호쿠 대지진때 "I'm confident the Jap, uh, Japan will recover and rebuild" 라고 인터뷰한 게 플짤로 돌아다니고 있다.# 실제로 일본인을 비하하려 했다기 보다는 the Japanese people(일본인들)이라고 하려다 Japan(일본)으로 말을 바꾸며 일어난 일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정황을 놓고 보면 재밌는 이야기가 가능하다.
•2010년 2월부터 오바마는 원자력 발전소 2기를 건설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려 하고 있었다. 1973년에 마지막으로 착공한 원자력발전소(완성은 1990년)를 근 40년 만에 다시 착공하려는 오바마 행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 중의 하나였다. 이는 8000억 달러를 투입하는 대계획으로 8000억원이 아니라 8000억 달러다 주목적인 탄소배출권 문제 해결을 통한 친환경 이미지 구축과 당시의 불황 극복을 위한 경제적 효과를 동시에 노린 야심찬 계획이었다. 재선을 위해 기획한 좀 규모 작은 뉴딜 정책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 모두를 날려버리는 병크를 일본이 저질렀으니 그게 바로 후쿠시마 원자 발전소 사고. 아 망했어요
한국에서는 오바마가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했다는 것을 별 비중없이 다루었으나 실질적으로 원자력발전소 사업은 오바마의 재선의 발판이 되는 가장 중요한 정책이었다. 후쿠시마가 터지는 날 오바마는 백악관 기둥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렸을 지도 모른다(...) 고로 참모들과 jap, jap 거리며 일본 욕을 하다가 입에 붙어 기자회견장에서 무심결에 그대로 말한 것일 수도 있다 일본은 플루토늄 폴폴 날리며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뿐 아니라 조지아에 세워질 원자력 발전소 두기도 동시에 날려버린 셈. 오바마는 사고 이후 한동안 발전소 건설에 대해 함구하다가 한 해가 지난 후에야 다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오바마가 실은 케냐 출생인데 미국에서 태어난 것처럼 조작해서 대통령 되었다고 턱없는 음모론을 펼치자 백악관 기자단 연례만찬(White House Correspondents' Dinner)[45] 에서 "저번엔 제 출생 증명서를 공개했죠? 이번엔 제 출생 비디오를 공개하도록 하죠" 라고 말하고는 라이온 킹의 심바 탄생 장면을 틀었다. 그리고 한 말이
"...사실 이 발표를 제일 기뻐하고 있는 건 그일 거라 생각합니다. 이제 그는 좀 더 중요한 문제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달 착륙은 조작됐는가? 로스웰에서 실제로는 무슨 일이 있었나? 비기와 2pac은 어디에 있나? 같은 것들 말입니다."[46]
•2011년 5월 이루어진 넵튠 스피어 작전 모니터링 사진에서는 작전을 지휘한 마샬 웹 공군준장에게 자리를 내주고 옆에 앉아있었는데 그 모습이 그냥 동네 흑형(...)
•2011년 5월 대통령 전용차가 아일랜드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나서다가 문턱을 넘지 못하고 멈춰섰다. 백악관 경호실은 황급히 '그 차에는 대통령님이 탑승하지 않으셨다. 그건 예비차다' 라고 발표. 사족이지만 이건 딱히 차에 고장이 있는 것보다는 VVIP용 차량은 겉만 자동차고 속은 탱크라고 해도 좋을 만큼 방탄이 잘 되어있다. 물론 무게도 탱크만큼 무겁다. 문턱을 못 넘은 것은 아마도 그때문...
•2011년 5월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영토를 할양하고 공존해야 한다는 연설을 하여 이스라엘로부터 강력한 비난을 받고 있다. 물론 이는 미국의 국익에 대한 현실적 손익계산이 개입된 것으로 연속적인 중동의 체제이행 이후 들어설 정부들의 반미감정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중동의 평화무드를 조성하려는 시도라는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오바마 때부터 백악관 웹사이트에 서명운동 페이지 WeThePeople이 생겼는데, 진지한 청원도 올라오지만 때로는 TV 쇼에서 죽은 캐릭터를 되살려내라거나 게임 후속작 발매를 보이콧해달라는 등의 쓸데없는 청원이나 대놓고 트롤링하는 청원들이 올라온다. 문제(?)는 어떤 청원이건 일정한 서명 수가 넘어가면 정부 내 고위급 담당자가 답을 해줘야된다는 거다. 예를 들어 데스 스타를 만들어 달라는 청원이 있었는데 과학 담당자는 "미국 정부는 행성 파괴에 찬동하지 않는다" 는 이유로 거절하며 데스 스타의 힘은 포스의 힘에 비하면 장난감에 불과하다 라고 얘기했다.
•2007년 상원의원 시절에 미국 SNL에 직접 출연한 적이 있다. 스케치 중 하나인 할로윈 파티로 빌 클린턴, 조 바이든 등 [미국의 주요 정치인들을 풍자하는 스케치에 자기 자신의 가면을 쓰고 출연한 것.]
•2013년 이민 개혁법 통과를 촉구하는 연설을 하는 도중 한국계 미국 이민 1.5세 출신인 어떤 사람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하지만 오바마는 이에 대해 지혜롭게 대처해서 청중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아니오, 하지 마세요. 그냥 저 청년은 이 자리에 있게 해 줍시다. 가족을 걱정하는 저 청년의 열정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는 절차라는 게 있고 그 절차라는 건 여기서 소리지르는 것과는 달리 그리 쉬운게 아닙니다.
경비요원들이 이 청년을 연설장에서 쫓아내려고 할때 오바마는 그걸 막고 오히려 이 청년에게 경의를 표하는 발언을 했다.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자 오바마는 기쁠때나 슬플때나 상관없이 미국과 대한민국은 우방국가이며 미국은 대한민국이 어려울 때 도와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하며 사고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구조 작업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도록 조치했다.
•4월 25~26일 방한시 박근혜 대통령이 질문에 대한 오바마의 답변이 끝난 후에 당황하며 머뭇거리자 "Poor president Park doesn't even remember what the other question was"(불쌍한 박 대통령이 질문이 뭔지조차 기억을 못한다) 라는 농담인지 조롱인지 애매한 발언을 했다. 영상을 보면 알듯이 말 자체의 어투는 단순한 장난이라고 봐줄 수 있으나, 그뒤 박 대통령이 머뭇거리는 게 부각되어 조롱의 의미로 부각되는 듯 하다. 오바마 정도나 되는 사람이 미치지 않은 다음에야 일부러 대놓고 깠을 리는 없겠으나, 이는 외교적 결례로 비춰질 수 있는 부분이라 백악관에서는 이 부분을 삭제하거나 자막처리하는 둥 수습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 그리고 언론에서는 특별한 언급이나 조치가 없다. 일부에서는 "조롱당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47]
해당 영상을 본 영어권 화자들에게는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은 조롱이 아니라 농담이며, 그것도 박 대통령을 보호하고 자신을 낮춘 말로 해석해야 한다고 한다. 영어에선 말투가 정말 중요한데 오바마의 말투는 조롱조가 아니라 자책성 농담에 불과하였다고. 즉, poor나 even 같은 말들은 박 대통령을 깔보기 위해 쓴 말이 아니라 자신이 바로 이전에 10분 가량이나 사용하여 박 대통령의 답변이 지체된 것에 대해 짧은 자책과 안타까움을 표시한 것이라고. 그러나 말투라는건 기자회견 전문을 통해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논란이 생길 것을 두려워해 후에 편집한 것으로 보인다.[48] 사실 여기서 더욱 논란이 되어야 하는 것은 그 후 박근혜 대통령의 부실한 답변이다. 굉장히 중요한 대북 정책 관련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비전이나 구체적인 방향에 대해 제대로된 답변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10분 가량이나 쓰면서 여러가지로 할 말을 많이 토해냈던 오바마 대통령과 너무 비교되는 모습이다.
•2015년 1월 25일에는 북한은 결국 무너진다고 발언했다. 오바마는 북한 따위 가만 내버려 둬도 알아서 무너진다는 발언을 하면서 북한같이 폐쇄적이고 고압적이며 인권을 유린하는 나라는 오래 못간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에 북한 당국은 머리끝까지 열폭했다. 이 말을 깊게 생각해본다면 굉장히 뼈있는 발언으로 "우리 미국은 나라를 똑바로 다스리기 때문에 멸망할 일이 전혀 없지만 너네 북한은 나라를 똑바로 못다스리고 너무 국민들을 가혹하게 굴려서 가만히 냅둬도 시민혁명으로 정권이 붕괴될 것이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7.5. 2009년 노벨평화상 수상과 잡음
2009년 노벨상(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그것도 재임 10개월만에 받았다. 이 때문에 수많은 논란이 되었다. 아직 취임 10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시점인 만큼 정책상으로도 평가받기가 모호하고 유화정책의 취지는 좋지만 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폴란드의 초대 대통령인 레흐 바웬사 대통령도 '축하할 일이고 기쁘지만 너무 이른데' 라는 발언을 하였고 뉴스워크지와 CNN을 비롯한 미국 언론사도 반응이 엇갈리며 미국의 극우파들은 과거 한국에서 한나라당이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 평화상 수상 반대 로비를 한 것과 필적할 수준으로 입에 거품 물며 노벨 심사위원들을 비난했다. 오바마 대통령 지지자들마저도 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은 만큼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49]
당해 수상할 만한 인물이 없었다는 시각도 있으나 같이 후보로 선출된 후보들을 보게 된다면 세계평화를 위해서 오바마보다 나은 성과를 올린 사람이 과연 없는가 하는 의문점이 들 수밖에 없다.
2009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총 205건의 인물 혹은 단체가 추천되어 역대 최다 후보수였던 2005년의 199건을 약간 상회했다. 게다가 후보들 중에는 오랜 기간 에이즈퇴치운동과 인권운동에 종사해왔던 중국의 반체제 인사 후자아나 히말라야 오지에 여자들을 위한 학교 78개를 세운 그레그 모텐슨 등 쟁쟁한 인사들이 대거 포진했다. 게다가 노벨 평화상은 노벨상 중 유일하게 단체에게도 수여가 가능한 상이다. 정 인물이 없었다면 차라리 단체를 선정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50]
심사위원들이 오바마를 좋아해서 줬다기보다는 '부시에 대한 반감' 으로 준 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도 있다. 아니 뭐, 부시와 네오콘을 쫓아낸 걸로도 세계 평화에 공헌하긴 한 거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은 대통령이 된 후의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대통령이 되기 전 유색인종의 인권을 위해 노력한 일, 아니 흑인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 내 화합에 기여한 점을 고려한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있다. 노벨평화상이 원래 주는 이유가 좀 모호한 상이기도 하고.
그나마 좀 가능성 있는 것으로, 그 해 러시아와 미국 간의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이 갱신되었다는 이슈가 있었다는 점을 보면 못 줄 것도 아니다. 그로 인해서 핵무기의 양이 줄어들게 된 것은 사실이니까. 오바마는 학생 시절은 물론이고 상원의원 시절 대표적인 핵전력 감축론자로 이름이 나 있었다. 핵안보정상회의 역시 오바마의 아이디어.
그러나 2011년 말 오바마는 NDAA에 서명을 하고야 말았다. 자세한 건 항목 참조. 조지 부시의 애국법과 비교되면서 이곳저곳에서 까이는 중이다... 그리고 프리즘으로 한번 더;;
8. 기타
•오바마는 블랙베리 마니아이다. 자신이 블랙베리를 워낙 좋아하고 중독되어있다고 밝힌 상태. 백악관에 입성해서도 블랙베리를 사용하겠다고 고집을 부려 결국 쓰게 됐지만...
•2007년에 스티브 잡스와의 만남에서 본 아이폰을 두고 "만약 이게 합법이라면, 애플 주식을 많이 살 것이다. 이 물건은 정말 크게 될 거다."라고 했다는 후문이 있다.
•오바마의 목소리를 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목소리가 엄청 굵다. 거의 시영준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목소리가 굵다.
•오바마의 가족들은 전부 장신이다. 오바마 자신의 키부터 187cm인데 그의 아내인 미셸 오바마의 키가 5피트 11인치(180cm). 오바마에게는 두 딸이 있는데 2011년 오바마의 하와이 휴양사진에 찍힌 장녀 말리아 오바마(1998년 생)은 이미 180cm에 거의 달했으며[51] 차녀 샤샤 오바마(2001년 생) 역시 165cm에 육박했다.
오바마는 루오족 계통인데 사실 루오족이 포함된 나일로트계 민족들이 키가 큰 편이라고 한다. 여담으로 늦둥이들이다. 버락 오바마가 37세와 40세, 미셸이 34세와 37세에 본 딸.
미셸은 시카고에서 태어나 프린스턴 대를 졸업하고 역시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했는데 시민단체와 지역사회개발활동에서 5년간 시간을 보낸 오바마보다 3년 선배다. 로펌에서 만나 1992년 결혼.
•2012년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클레이 사격을 하는 오바마. 한참 위에 언급한 총기사건때문에 NRA의 로비,언플이 발생하는 중 찍힌 장면이다. 그런데 백악관에서는 규정때문인지 이 사진에 절대 포샵하지 말 것이라는 경고문을 넣었다. 그리고 이 문구를 본 미국의 약쟁이들은... 절대 하지 말라는건 그냥 해본 소리 였나 보다
그러자 백악관에서는 질 수 없었는지 백악관 만찬회에서 더 화려하게 약을 빤 합성짤을 공개해버렸다...제가 캠프 데이비드에서 사격하고 있는 사진을 가지고 포샵 한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여기서 고백하는데, 그들의 말이 맞았습니다. 사실 실제 사진은 이거였죠.
8.1. 유머 센스
존 케네디, 빌 클린턴 대통령 등과 함께 언변이 뛰어난 대통령으로 평가받으며 연설등에서 적절한 조크를 섞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오바마 : "우선 유킬리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군요."
오바마 지지자들 : Boo~(야유)
오바마 : "제가 말하고 싶은것은 그가 양말(socks)[53] 색깔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오바마 지지자들 : (웃음)
오바마 : "여기서 야유를 받을지 몰랐네요. 야구 얘기를 꺼내지 말았어야 했어요. 이해합니다. (이곳에 있는) 청중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았어야 했는데..제 실수입니다(웃음)"
케빈 유킬리스가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된 후 가진 보스턴 연설에서 유킬리스 보내줘서 고마워요ㅋ라는 말을 했다가 야유를 들었다(...) 민주당 텃밭 보스턴에서 이정도로 야유듣기도 쉽지 않을듯 이 뒤에 백악관에서는 Boo가 아니라 Youuuuuuuuk였다는 개드립으로 천조국 황제폐하를 변호했다고.
오바마 : 제가 더 이상 출마할 선거는 없습니다.(I have no more campaigns to run.) 저의 유일한 의제는...(my only agenda..)
공화당 : (박수갈채)
오바마 : 왜나하면 이미 둘 다 이겼거든 ㅋㅋ(bcuz I won both of them.)[54][55]
민주당 : (박수갈채), (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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