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가족 양육
오늘 오전예배 때 우리는 초청축제를 했습니다. 그 중에 믿음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분도 있을 것이고, 또 한 번 방문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원하기는 그들도 다 예수를 제대로 믿고 믿음생활을 통해서 주의 제자로 양육되면 좋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에 나오는 새가족들을 우리가 맞이하고 인도하고 양육할 때 오늘 이 바나바의 신앙을 본받기를 바랍니다. 바나바는 원래 이름이 요셉입니다. 구브로 출신입니다. 구브로는 튀르키예 서쪽 지중해 바다의 섬입니다. 지금의 키프러스를 말합니다. 그곳 출신 유대인인데 그의 별명이 바나바가 되었습니다. 사도들이 그를 바나바로 불렀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권면을 잘했기 때문입니다. 권면이라는 말은 신앙을 권하여 잘 성장하도록 돕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복음이 초대교회에 때 흥왕하여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져 갈 때 안디옥에 교인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안디옥은 시리아와 튀르키예 경계지점에 있습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수리아 안디옥이라 불렀습니다. 오늘날 현재는 튀르키예 국경 지대의 도시입니다. 지난 지진 때 피해를 많이 입어 우리나라 119대원들이 그곳에 가서 지원을 했습니다. 안디옥에는 우리 선교사님들이 세원 안디옥교회가 현재 있습니다.
초대교회 때 안디옥에 복음이 전파되어 성도들이 모일 때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도들이 바나바를 지도자로 안디옥에 파송을 했습니다. 믿음이 훌륭하고 착한 바나바가 성도들을 잘 인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도 바울과 함께 사역하여 비로소 예수 믿은 성도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 바나바의 친절한 사역을 통해 우리가 새가족들을 어떻게 잘 양육할지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첫째] 착한 바나바의 사역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사도행전 11:24]
여기서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원어는 ‘또브’입니다. 그 뜻은 ‘좋은’이라는 의미입니다. 영어로 말하면 ‘good'입니다. ’좋은 사람 즉 good man Banaba‘입니다.
이 사도행전에서 좋은 사람이라고 했을 때 원래 구제를 잘하는 사람을 의미했습니다. 바나바는 원래 구브로 출신인데 그 고향에 땅이 있었습니다. 그 토지를 매매해서 많은 헌금을 초대 예루살렘교회에 했습니다. 그 때 사도들의 복음을 듣고 많은 성도들이 생겼는데 그 중에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잘 섬기고 대접했습니다. 고대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당장 먹을 것이 걱정이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먹이고 섬겼습니다. 바나바는 그런 사람이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바나바는 권면을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권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권하고 돕는 사람을 말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에게 말씀으로 잘 권하여 믿음으로 굳건하게 주께 붙어 있도록 했습니다. 바나바는 새가족 사역에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라 할 때 우리는 또한 바나바가 친철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상대방의 생활을 잘 이해라고 그들을 잘 영접하고 양육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일반 교회에서 새가족 사역을 바나바 사역이라 잘 표현합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사도행전 11:25]
안디옥교회에서 바나바가 목회자로서 사역을 감당하다가 사람들이 많아서 교역자가 더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다소에 가서 사울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울은 사도 바울을 의미합니다. 그 때만 해도 사울이라 불리고 아직 주의 사역을 하지 않은 때였습니다.
바울은 원래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그들을 체포하고 구금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유대교에 특별히 열심인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스데반이 순교할 때 그 핍박에 가세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다메섹으로 간 적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아서 다메섹에 있는 회당에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다메섹에 있는 회당의 지도자들은 예수 믿는 잔당을 그냥 보고 있지 말고 금지시키라는 등의 공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메섹에 거의 다 갔을 때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강렬한 빛 가운데 임재하셔서 사도 바울의 눈이 멀어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니라!’ 그렇게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변화가 되었습니다.
다메섹에서 3일 금식기도를 하고 아나니아에게 안수받고 눈도 뜨이고 세례도 받았습니다. 그 때 다메섹 회당에서부터 시작하여 예수는 그리스도라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예루살렘에 갔을 때 심지어 사도들도 그를 만나 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사람이라 변장하여 들어온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바나바는 그를 사도들에게 이해시키고 설명하고 정말 예수를 만난 사람이라 변호해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이 그의 고향 다소에서 기도와 경건에 전념하고 있을 때 바울을 초청하여 함께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아무도 바울을 불러주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달랐습니다. 비록 사울이 이전에는 주를 믿는 사람을 핍박하던 사람이나 이제는 주 안에서 변화가 되었으니 그를 인정해주고 이해해주고 그의 은사와 달란트를 활용하도록 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성도들 가운데 이전에는 전혀 복음에 관계 없는 삶을 살았더라도 이제 예수를 믿게 되었으니 이해하고 받아주어야 합니다. 심지어 예수의 신앙과 좀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 할지라도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다면 교회에서는 그를 믿음이 일꾼으로 쓰임받도록 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새가족 사역자들은 이런 점이 있어야 합니다. 새가족들 중에 그들의 입장과 환경을 잘 이해하고 그들의 은사를 잘 파악하여 사용되도록 해야 합니다.
*성경예화) 마가를 권면하는 바나바
바나바와 바울이 후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선교사로 파송을 받습니다. 그리하여 1차 선교여행은 같이 갑니다. 안디옥을 떠나 제일 먼저 바나바의 고향 구브로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버가와 비시디아 안디옥 그리고 이고니온과 루스더라와 더베에 이르기까지 선교를 감당합니다. 심지어 루스더라에서는 나면서 앉은뱅이가 된 사람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켰습니다. 그 때에 1차 선교여행 때 바나바의 조카 마가가 함께 동행했습니다.
그런데 2차 선교여행 때 팀이 나누어지게 됩니다. 그 이유가 1차 선교여행 때 마가가 자리를 이탈하여버렸습니다. 선교를 함께 하던 사람이 온데간데없이 가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2차 때 같이 가려고 하니 바울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선교해서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마가를 이해하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자고 했습니다. 심히 다투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선교를 떠나고 바울은 실라와 함께 선교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가 자기 생질이기 때문에 그렇게 했는지 모르지만 원래 바나바가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말하면 새가족이 좀 실수를 해도 이해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마가를 동역자로 하여 2차 선교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바나바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사도행전 11:24]
바나바는 마음만 착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삶과 친절이 복음적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생기게 된 것은 스데반의 핍박 사건이후 박해의 영향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대대적인 박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온 유다고 피신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복음을 온 유다에 전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유다의 예수의 성도들을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어서 사마리아까지 피신을 갔습니다. 북쪽 사마리아에서 거주하면서 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교회가 생겨났습니다. 유대인들이 여기까지 박해를 했습니다. 더 사마리아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 북쪽으로 피신을 갔습니다. 19절 말씀입니다.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사도행전 11:19]
베니게는 성경에도 자주 나오는 두로와 시돈 지역을 말합니다. 페니키아인이라도고 하고 오늘날 레바논을 말합니다. 그리고 구브로는 키프러스 섬을 말합니다. 그리고 수리아와 튀르키예의 경계 지점의 안디옥까지 흩어져 도망가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처음에는 유대인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러다가 헬라인에게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사도행전 11:20]
피신을 가던 사람이 심지어 남쪽 아프리카 구레네까지 갔습니다. 구레네는 오늘날 북아프리카 리비아로 봅니다. 이 구레네 유대인들과 키프러서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안디옥에서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헬라인은 이방인을 의미하기도 하고 당시 헬라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을 말하였는데 안디옥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주 예수를 전하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게 된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지도자를 파송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결정한 사람은 바나바였습니다. 바나바는 구브로 출신이니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구브로 사람들과 잘 통할 것이라 여겼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바나바가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나바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오죽했으면 그의 별명이 바나바가 되었겠습니까! 말씀으로 믿음을 권하는 권위자였습니다. 권위자라는 말은 권위를 세우는 사람을 의미한 것이 아니고 권면하고 위로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사도행전 11:23]
바나바가 가서 보니 예수 믿는 사람들을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주 예수께 굳건하게 붙어 있으라고 믿음을 권하였습니다.
새가족 사역자는 믿음에 출중해야 합니다. 그들을 사랑으로 친절로 잘 인도도 해야 되지만 궁극적으로는 믿음을 심어주기 위함입니다. 주 예수를 믿는 믿음이 출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아멘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사도행전 11:26]
바나바와 바울이 사역을 잘 감당하여 성도들이 믿음으로 잘 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빛이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는데 그 사람들이 성도들을 두고 하는 말이 ‘그리스도인’라 했습니다. ‘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인데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인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예루살렘 흉년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글라디우스 황제 때 큰 흉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 역시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안디옥교회에서 구제금을 모아서 후원을 보냈습니다. 개척한 교회가 모체의 어려움을 보도 지원을 한 것입니다.
[결론] 바나바와 같은 새가족 양육자가 되자!
바나바와 바울의 사역이 참 훌륭했다고 봅니다. 우리의 교회 사역도 그렇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특히 바나바의 사역은 새가족을 잘 영접하고 안내하는 사역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새가족의 은사를 잘 알고 발휘할 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었으며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새가족을 사랑으로 잘 인도하였습니다. 주중에 돌보고 케어하고 주일 교회 잘 오도록 안내하고 교회에서 잘 적응하도록 힘씁니다. 새가족 사역입니다.
그리고 그 새가족이 믿음이 성장하여 주님의 나라를 위해 쓰임 받도록 잘 배치하였습니다. 또 함께 동역하였습니다. 바나바는 참으로 신앙으로 권면을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런 바나바처럼 새가족을 인도하고 또 양육을 잘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잘 적응하여 앞으로 훌륭한 주의 일꾼이 되도록 잘 섬겨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