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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1주일 [각 사람을 위한 능력을 선물로 나누어 주심]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에베소서 4: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하나님은 우리를 구속하셨을 뿐 아니라, 또한 구속받은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도 은혜이고, 마찬가지로 우리 삶을 인도하시는 것도 은혜다.
[그리스도 교회의 삶을 위해 주시는 은혜]
교회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삶을 자기가 만든다고 생각한다.
겉으로는 다른 설명을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고 겉으로 말하지만, 속으로는 자기가 자기 삶을 인도한다고 보고 있다.
이것은 무언가 잘 이해하고 있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이다.
성도의 삶은 하나님이 친히 인도하신다.
교회의 삶 뿐 아니라, 신자들의 삶도 인도하신다.
그리스도 교회의 가장 큰 진리는 이것이다.
하나님이 믿는 자의 삶을 인도하신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은 믿는 자를 천국까지 인도하시려는 것이다.
사람이 처음에 구원을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구원한다는 뜻은 죄와 결별시킨다는 말이다.
죄가 사람을 지배한 것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다.
죄와 결별한 사람을 이제 의로 살게 하신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죄로 들어간다.
그래서, 교회를 섬기게 하신다.
남은 여생을 의를 위해 사는 동안 하나님의 구속의 효력이 발휘된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의를 행하게 하므로, 하나님의 의가 성도에게 전가된다.
방법이 그렇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런 구원의 계획을 창세전부터 가지신 것이다.
이 단계에 오기까지 하나님은 자신을 희생해야 할 결단을 해야했다.
결국 이 방법을 통해, 우리에게 남은 작은 과제는 의 가운데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선한 일을 하는 것이다.
에베소서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인생을 해쳐 나간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리스도인임에도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대부분 결국 삶은 자기가 하는 것이라고 무의식속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알아야서 하라고 자율적으로 풀어주시지 않았다.
그가 구원하신 자는 그가 삶을 친히 인도하신다.
[나와의 친밀한 교제 속에서 인도해 가신다]
성경에 보면, 배우자를 향해 그의 마음을 다지는 것으로 나타낸다.
사람들은 자기 배우자를 택할 때, 요구하는 것이 있다.
나를 위해 필요한 사람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이와는 상당히 다르다.
대단히 이상적이고, 아름답다.
호세아서를 보면, 과거를 묻지 않고, 불쌍히 여기고, 너를 위해 나를 바친다는 개념으로 되어있다.
너를 그냥 사랑할 것이다.
자기 배우자를 선택한 기준이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닌 것이다.
내가 나를 헌신할 사람을 찾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배우자 조건과는 많이 다르다.
이것이 바로 신랑이된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의 관계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이런 헌신적 결혼을 하는 자는 모든 것을 다 줄 것이다.
돈도 주고, 기쁨도 주고, 자기를 줄 것이다.
쓰러질 것 같아도, 따뜻한 마음과 격려함으로 용기를 준다.
이렇게 하므로, 나와 영원히 가려는 결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우리에게 오늘 이 순간에도 자기 것을 주신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닐 수 있지만, 약속을 주시는 것이다. 보장이다.
여기서 그가 제시하신 사랑, 영광, 하늘의 영적 축복은 실제적인 것으로 반드시 오게 되어 있다.
그가 이미 자신을 온전히 희생해주셨다.
이미 헌신하시고, 매일 돌보는 사랑을 주신다.
사람의 경우, 오늘 주는 것을 보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지, 아닐지 가늠한다.
우리에게 오늘 그리스도가 베푸신 것은 우리를 영원히 신부 삼고자, 이미 목숨을 버리시고, 마지막까지 우리를 불러 올리실 것이라는 확실한 미래를 반향하고 있다.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과 평안, 능력도 그가 좋은 말로 나누어 주신 것이 아니고, 근거 없이 약속한 것이 아니라, 그가 아픈 값을 치르고 나서 주신 것이다.
우리의 생명도 그가 근거 없이 주신 것이 아니라, 그가 죽으시고, 우리에게 주셨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도록 살리심을 받은 근거로, 우리도 올릴 것을 약속하셨다.
베드로후서 1: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베드로후서 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우리에게 풍성함이 있는 것은 그가 가난하셨기 때문이고, 우리가 병에서 나음도 그가 그만큼 아프셨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의 매일의 삶의 따뜻한 사랑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값을 치르신 것이다.
오늘 우리의 일생을 견디는 은혜는 그가 값을 치르고 주신 것이다.
[나 같은 달란트는 너희 교회에 쓰기에 아깝다?]
그가 우리와 영원한 관계를 작정하신 것은 그가 내게 임재한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가까이 오신 것이다.
우리가 모일 때, 같은 종교성을 가지고, 신의 마음을 끌어다가 어떻하든 축복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 것이다.
이 사실을 명확히 알지 않으면, 성경을, 하나님이 하신 일을 이해할 수 없다.
군데 군데 끼어맞지 않은 부분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진리가 한순간에 꿰어질 뿐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심을 아는 순간, 백프로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림을 받을 것이다.
반면, 우리가 우려하고 있던 심각한 반대쪽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다.
나 같은 재능은 너희 교회에 쓰기에 아깝다고 생각하는 마음들.
상당히 많다.
교회를 업신여기는 대상으로 보는 것 같다.
이 세상에서 사회적 위치가 있고, 재능이 있다는 사람들은 교회에서 자기 달란트를 쓰는 것을 아까워한다.
세상에서 자기가 벌어먹는 것에는 잘 쓰는데, 교회에는 쓰지 않는다.
교회에는 주어도 아깝지 않은 것만
주려고만 한다.
너무 자기에 관여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예배 때,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신앙의 희열을 엄청나게 보여준다.
그것은 무슨 모습인지 모르겠다. 교회를 돕지도 않은 사람이 마음은 없으면서, 그런 거창한 기도를 하는지 모르겠다.
내용을 보면, 엄청난 종교적 위치를 보인다.
내 마음은 아프다.
전에 우리 교회에 사회적으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 교회 행사의 기획을 부탁했는데, 아주 힘들게 승락받았다.
나중에 진행상태를 몰라서 한번 물어봤다. 시원한 대답을 못들으니까, 두어번 물어봤더니, 참견한다고 때려치웠다.
행사는 눈앞에 다가온 시점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니, 너무 아팠다.
누가 아프겠는가. 나만 아팠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 교회는 대단히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무엇보다, 교회를 그렇게 싸구려로 본 것은 너무 마음이 상했다.
내 위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나와 교회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였다. 다른 교회에 가면 되겠지 생각하는 것 같다.
하나의 보험회사같다. 천국가는 보험.
진실한 마음의 변화가 없는데, 천국 가기 위해서, 교회가 필요하긴 했나보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종교성을 입혀주는 정도의 역할이었던 것 같다.
우리 교회에서 어떤 사회적 위치가 되면, 교회를 떠나곤 했다.
그 뿐 아니라, 남아있는 사람도 다른 방법으로 교회를 어렵게 하고,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도 많이 보았다.
교회가 약할 때, 자기 기회를 엿보는 종류의 사람들이다.
교회가 어려울 때는 하나님이 어려운 것이다.
이것은 어떤 관념 차이가 아니다.
자기에게 유리할 때는 웃는 모습.
예수께서 아프시면, 나를 포기하고 보살펴야 할 것이다.
그가 굶주리시고, 외로우시고, 옥에 갇혔을 때라면, 다 버려두고, 그를 보살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아플 때, 옥에 갇힐 때, 버린다.
나에게 불편하다.
하나님은 영생을 작정하셔서, 우리 가운데 계시다.
우리와 영원한 동행을 하시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가 좋을 때는 맹세를 하지만, 환경이 바뀌면, 맹세했던 사실도 없어진다.
이런 것은 항상 우리가 보고 있다.
교회된 우리로서 너무 마음 아픈 일이 많다.
교회를 마치 종교성을 옷입히는 것으로 업신여기는 것은 대단히 슬프다.
내가 보는 신앙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현장에 계시다는 엄연한 진리를 왜 무시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를 친히 인도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주장하시는 가장 큰 것은 그가 우리를 구원하신 것과 인도하시는 것이다.
교회도 힘들다. 교회도 살아남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이것을 남의 일로 여기면, 성도로서 자격이 없다.
밖에서는 자기 인생이 잘 풀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이 세상에서 먹고 살아야 하니까.
자기 삶을 도모하는 것은 괜찮지만, 하나님의 것을 업신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믿지 않고 있는 것이다.
보험처럼 신앙을 갖고 있는 것 뿐이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모두 깊게 생각해야 한다.
오늘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대해서, 주님과 사귀었던 사도들이 명확히 전달하고 있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신다. 평안이 있을지어다.
함께 하신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명확히 표기되어 있는지 모른다.
기분 좋게 하는 표현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한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무한한 오해가 나올 수 있게 쓰지 않는다.
시대가 지나면서, 오해를 부를 수 있기 때문에, 명확히 전달하는 것이 성경의 임무다.
사도들은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다고 한다.
그들은 엊그제까지 주님과 함께 살았다. 주님을 알고 있다.
우리가 일주일의 삶을 살지만, 오늘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육일간도 함께 만난다.
유일한 하나님을 뜻하는 '주'라고도 하지만, 마스터라고도 했다.
나는 그의 노예라는 표현이다.
그는 우리의 주인이시다.
주님이 머리되시고, 거하시는 처소인 이곳은 그가 사시는 곳이다.
또한 우리 심령에도 그가 살고 계시다.
우리 삶 전체가 그분께 초점을 맟추었어야 했다.
다만 밖에서 삶은 먹고 살기위해 하는 역할이지, 땅에 다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안에서 섬긴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속에 있는 것이다.
그가 행한대고 갚는다고 하셨다.
고린도후서 5: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그는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 죄 다 사하셨는데요?
우리가 예수를 안 뒤의 죄는 하나도 잊지 않으신다.
그는 확실하게 갚으시는 분이시다.
성도들은 천사를 심판할 자들이다. 얼마나 수준이 올라야 하는지 모른다.
적어도 천년은 천사들을 심판할 것이라고 했다.
지나간 일이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주의 임재를 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예배시간에만 쓰러질 것처럼 땀을 흘리며 기도하는데, 위선같다. 여기서 한번에 종교성을 얻어가려고 한다.
나는 여러분의 마음을 뜨끈하게 하는 자가 아니다.
인도자가 없으면, 구덩이에 빠질 양들을 주님을 대신하여 보호하고 먹이는 자다.
여러분이 죄로 빠지는 것을 막는 자다.
나는 여러분을 뜨끈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인도하고 있다.
오늘 하나님이 현장에 임하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절대 있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임재를 인정하기 바란다.
영원한 삶을 헌신한 분에게 진실로 자기를 드리자.
이제부터는 우리를 위해 죽었다 부활하신 분을 위해 사는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가 값을 치르신 것은 우리와 영원히 살려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4: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힘들지만, 우리는 정욕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 수 있는 능력은 그가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냥 아무것도 없이 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그가 이미 그런 싸움을 지나셨고, 육체의 고난을 받으신 후에 비로소 명하신 것이다.
주의 교회를 업신여기지 말자.
[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개인적 사역]
에베소서 4: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원어에 보면, 이 문장 맨 앞에 '그러나'로 되어있다.
이전의 내용과 상반된 내용이 나올 것이다. 그 헬라어 접속사는 그리고, 그러나 두가지 의미를 다 포함한다.
오늘 본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한편으로 해석하면 좋겠다.
지금까지 연합에 대해 강조했지만, 이제부터는 다양성을 말한다.
모두라고 했다가, 각 사람을 말한다.
개인의 유일성을 말한다.
각 신자가 독특한 각 위치가 있다. 연합은 획일적인 것이 아니다.
연합은 사실상 조화의 의미가 있다.
전에는 모두에 대해서만 다루셨는데, 여럿중에 나같은 하나는 별것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각 사람의 관계를 통해 사역을 이루신다.
진정한 연합은 다양성에 있다.
[전체적 메시지는 주신다에 있다]
앞으로는 주신다는 말이 계속 나온다.
하나님이 무엇을 주셨는지 자세히 보기 바란다.
기독교 복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원래 갖고 있던 것이라고 하면, 세상 생각이다.
주시는 분이 계시다.
그리스도께서 주신다.
[선물을 주심]
여기 나오는 선물은 다른 부분과 달리 독특한 단어를 쓴다.
은혜도 선물이기도 하는데, 느닷없이 다른 단어를 쓴다.
그냥 단순하게 선물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선물을 주실 때, 어떤 이유 때문에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선물이다.
모든 신자에게 주시는 것이다.
받을 자격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선물이다.
은사와 구분해야 한다.
[은사와는 다르다]
우리는 은사를 좋아한다. 초자연적인 능력.
오늘은 그런 것과 결이 다르다.
이것을 은사라고 보면 안된다. 우리 삶을 견인하는 중요 원칙이다.
은사와는 방향이 다르다.
왜 선물이라고 굳이 말씀하셨을까.
뒤에 나오는 카리스마, 은사가 아닌 것이다.
로마서 12: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로마서 12: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고린도전서 12: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고린도전서 12:5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은사는 우리 속의 특별한 달란트를 말한다.
오늘은 다른 것을 말한다.
받을 자의 자격문제 자체를 회피해서 주시는 은혜다.
왜 그런 은혜를 주실까.
각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사역을 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개인을 통해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기 위해.
그와 우리 각인 사이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능력을 주신다.
[능(력)을 주시는 그 은혜]
우리를 구원할 뿐 아니라, 능하게 하신다.
개인에게 초자연적인 특별한 능력을 주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위해 필요한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에베소서 6:10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그가 나에게 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주시는 것이다.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디모데전서 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디모데후서 4: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원문에는 '그 은혜'라고 되어 있다.
신자의 삶 안에서, 삶을 통해 보여지는 주관적으로 존재하는 은혜.
본인만 안다.
남은 모를 수 있다.
하나님께서 내게 능을 주셨는지는 자기만 알고, 남은 모를 수 있다.
나는 할 수 없었는데, 하고 있다.
원래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특정 신자와 하나님만이 아는 부분이다.
이 특별한 선물은 각 성도로 하여금 그리스도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기능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성질은 남을 깜짝 놀라게 하는 초능력을 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능하게 하는 것이다.
할 수 없는 것, 어떻게 할지 모르는 것을 하고 있다면, 하나님이 능을 주시는 것이다.
능력이라고 하니까, 오해를 할 수 있어서, 능이라고 한다.
[각 사람에게 능력을 배분하여 주심]
그가 주시는 능력은 그리스도께서 각 사람의 분량에 맞추어 주신다.
각 사람에게 주시는 선물은 그 모든 조합과 맞추어 유일한 것이다.
내게 있는 선물은 유일한 것이다.
어떤 분량, 분야를 특별히 배분하여, 그에게 맞는 것을 나누어 주셨다.
주님이 측정해서 주신 것이다.
로마서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완전히 임의로 주실 수도 있다.
도저히 생각해 낼 수 없는 이유로 주실 수도 있다.
우리에게 주시는 능은 받을래 하고 주시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그 사람을 위해 주셨다.
왜,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런 이유로 이 선물은 달라고 구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주권으로 주시는 것이다.
일부러 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주시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2: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고린도전서 12:22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고린도전서 12: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우리 대부분은 절대적으로 교회에 필요한 자들일 것이다.
이렇게 주님께서 우리의 움직임을 설계하셨다.
자기에게 있는 능력도 하나의 은사로 본다면, 누구에게 자랑할 것은 아니다.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겸손하게 생각하라.
각 사람은 자기에게 맞게 능력의 분량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 능력을 자기 정욕의 목적을 위해 사용한다면, 하나님이 주신 것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므로, 신자들은 그렇게 하면 안된다.
이것은 어떤 개인의 장점, 성품, 타고난 능력과는 무관하게 하나님이 임의로 하신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뚜렷한 목적으로, 우리를 사용하시고자 능력을 주신다.
[수많은 종류의 능력들의 조합]
그런데, 한 사람에게 있는 능력은, 예언, 가르침 같이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요구에 따라 무한대로 배치되어 있다.
백명의 성도들이 있다면, 명시적으로 구분되기 보다,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가르침의 능력이 있는데, 성격에 따라 다르다.
어떤 사람은 가르치는데, 대중에게 잘 가르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어린 아이를 잘 가르칠 수 있고, 1:1로 잘 가르칠 수도 있다.
하나님의 게획에 따라 구분하여 주시는 것이다.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개인의 특징들이 있기 때문에, 각 사람이 똑같을 수 없다.
다 다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장에서 찍어낸 사람과 같지 않은 것이다.
[나는 대체 불가능]
나는 유일한 사람이다. 대체불가능한 자다.
서로 연합되었다고 해서, 다 똑같은 것이 아니라, 다 다르다.
그렇다고 부품처럼 망가졌다고, 대체품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남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서로를 의지할 수 밖에 없다.
로마서 12: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고린도전서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베드로전서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그런 면에서 자기에게 주신 것으로 섬기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은 지체된다.
그리스도 교회는 관망하는 자가 있어서는 안된다.
여기는 종교성을 입혀주는 곳이 아니다.
관망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
우리를 원수에게서 끌어내시고, 구원하신 자들이 모인 곳이다.
서로 지체로 생각하고, 겸손히 봉사해야 한다.
누구도 관망하는 자가 있어서는 안된다.
누군가 하겠지? 할 수 없다.
그분앞에 내가 사용되지 않으면 그 일은 해결되지 않는다.
그리스도 교회에서는 관망하는 자가 절대 없다.
많은 사회적 관념들이 침입해 들어와서, 우리 생각을 대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는 관망하는 자가 아니다.
하나님은 불필요한 것을 주시지 않는다.
시간 차이로 늦게 발견할 수도 있다.
이것은 축복을 위한 근거가 된다.
축복받으려면, 이 때, 하나님이 주신 것을 아름답게 사용해야 한다.
은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고, 그의 뜻을 자기가 알아서 거절하는 것이다.
교회에 손해를 입히는 것이다.
누가 알아서 하겠지, 나는 건들지 말라고 하는 것은 교회의 지체가 아니다.
자기 은사를 사용하지 않으면 교회가 위험에 빠진다.
그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성취할 수 없다.
[전체의 연합을 위한 개인적 특성]
하나님은 개인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일일히 천국으로 견인하고 계시다.
크고 작고의 문제가 아니라, 각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나누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나와 함께 계시다.
엡4:11 이후의 선물은 오늘 말하는 선물과 같은 것이 아니다.
세상사람들은 자기 능력으로 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교회를 섬길 수 없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이 있어서, 할 수 있지만, 그들은 자기 능력으로 할 수 없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진심으로 사랑하자.
우리는 천국시민이고, 하나님의 자녀다.
우리에게 능력을 주신 것은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나타낸다.
주님의 몸체를 위해,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나를 부르셔서, 그 능을 통해 섬기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우리 마음을 받아주시고, 부족함이 많은 것을 용서하시고, 이제는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내게 능을 주시고, 당신의 계획 안에 부르시고, 축복하시려고 현장에 임하신 주님을 잘 믿겠습니다.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