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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 해설-김문주 (시인, 문학평론가)
단도직입적으로, 김륭의 모든 시는 욕망의 시, 사랑의 시, 아니 사랑의 폐허, 그 텅 빈 어둠에 관한 시이다. 이 오래되고 낡은 문학의 테마, 아니 우리 삶의 종결될 수 없는 그 유구한 구멍을 들여다 보는 그의 시들 앞에서 우리는 다시 망연자실茫然自失해진다. 시인이 상대하는 이 식상한 통속의 주제들은 그 깊이의 도저함으로 인해 또다시 간절해지는 것인데, 생각해보면 수일秀逸한 문학 중에 삼류와 다투지 않는 작품이 있었던가. 김륭 시의 말은 그 도저到底한 어둠이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으로서의 언어이다. 그의 시에 따라다니는 난해함의 혐의는 시의 말들이란 때때로 존재를 현현顯現하는 증상임을 기억함으로써 해소되어야 한다.
김륭의 시는 말의 길, 길에 이르는 경로가 아닌 다양한 해찰의 방식으로서 자신을 드러낸다. 그것은 매우 자주 말을 넘나드는 유희의 방식으로, 때때로 말의 길과 무관해 보이는 엉뚱한 문장들로, 그리고 결합할 수 없는 언어의 배합과 무심無心해 보이는 표현들로서 나타나지만, 여전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닿을 수 없음, 그 미달未達과 결락缺落을 형상한다. 하여 김륭의 시는 정서적 자질로는 넘치도록 서정적이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에서는 실험적인 것처럼 보인다.
시를 사는 자를 시인이라고 한다면, 김륭은 그야말로 시인이다. 그는 시에서, 비로소 생각하고 말하는 자이다. 때로 '운다고 말하기도 한다. "중심을 잃은 내가 나를 걸어보는 이야기" 라고 자신의 시에 관해 그는 말하지만, 중심을 잃고 쓴 시는 없을 터이다. 어찌 중심을 잃고 시를
쓰랴.
"말 위에" 더해진 말. "글 위에" 얹혀진 글들 사이에 출몰하는 그, 그리고 그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그의 고독과 사랑과 욕망의 그림자를 본다. 지독하게 자신을 앓고 있는 그의 지극한
'서정'은 여간한 인내 없이는 잘 감수되지 않는다. 흰 눈사람의 검은 머릿속 이야기. '울음이 울음을 밀고 있"는 저 생의 풍경이 어찌 내부에 쉽게 사람을 들이겠는가 -(부분)
개는 모름 / 김륭
어떤 날은 베개가
침대를 내려와 개처럼
짖는다.
내가 모르는 아주 먼 곳에서 자꾸
아는 이야기가 찾아온다는 듯
개 옆에는 개, 달 옆에는 달
그러나 개는 달처럼 반으로 접을 수 없고
낮보다 밤이 먼저여서
개의 발을 가만히 묶어놓는 빗소리
베개 대신 침대 위로 기어올라
자라기 시작한다.
괭이밥처럼, 좋다. 누워, 라고
노란 목소리 같은 걸 꺼내 내가 나에게
괜히 겁주지 않아도 되는
침대
풀밭에서 시들어가는
여자의 품속에서 발꿈치를 든
아기 꿈을 꿨다.
아직 오지도 않은 죽음이
속으로 하는 말을 들었다는 듯
뼈다귀를 핥아주는
침대
어떤 가난은 개를 참 많이 키운다.
개에게 물리지 않기 위해
목이 긴 장화를 신고, 가만히
여긴 어디쯤일까?
밤을 홀딱 벗겨놓은
침대가 타자기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챗 GPT 분석
-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중심으로 분석
1. 제목의 의미: 「개는 모름」과 존재의 무지(無知)
**「개는 모름」**이라는 제목은 단순한 개의 인식 능력 부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하이데거적 관점에서 보면, 이 제목은 존재론적 무지(존재가 자신의 본질을 알지 못함)를 은유한다.
‘개’는 단순한 본능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의미한다. 개는 짖고 움직이며 살아가지만, 자기 자신의 존재 의미를 인식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완벽히 알지 못한다. 인간은 세계에 던져진 존재이며(Geworfenheit), 자기 자신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다.
즉, **개가 모르는 것 = 인간이 알지 못하는 것(존재의 근원, 죽음, 시간의 흐름, 자기 자신의 본질)**을 의미한다.
제목은 이러한 인간의 근원적 한계를 압축적으로 드러내며, 시 전체의 존재론적 불안과 죽음에 대한 인식을 탐구하는 방향성을 제시한다.
2. 주제: 존재의 불안과 죽음을 향한 존재
이 시는 하이데거적 존재론을 기반으로, 존재의 불안과 죽음을 향한 존재의식을 탐색하는 작품이다.
1. 세계 속에서 불안한 존재
인간은 스스로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에 내던져졌다.
이 시에서 ‘베개가 개처럼 짖고’, ‘밤이 먼저 오고’, ‘빗소리가 개의 발을 묶어놓는다’는 등의 표현은 존재가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불안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상징한다.
2. 죽음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선취(先取)
“아직 오지도 않은 죽음이 속으로 하는 말을 들었다”는 구절에서, 죽음은 이미 존재 속에 내재해 있으며, 우리는 이를 피할 수 없다.
존재는 결국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우리는 불안을 느낀다.
3. 언어를 통한 존재 인식
마지막 구절 **“침대가 타자기를 두드린다”**는, 인간이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언어(시 쓰기, 글쓰기)를 통해 자기 존재를 증언하려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언어는 존재의 집이며, 인간은 언어를 통해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고, 불안을 표현한다.
3. 상징 분석
1. 개 → 본능적 존재이지만,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하는 존재. 인간 내면의 불안을 상징
개는 짖지만, 자신의 짖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다.
인간 또한 삶을 살아가지만, 자신의 삶이 어떤 의미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개는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며, 죽음의 불안을 경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2. 베개 → 안식의 공간이지만, 불안과 공포를 내포한 존재
베개는 보통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지만, 이 시에서는 ‘개처럼 짖는다’.
이는 안식을 취하려는 공간에서도 불안이 엄습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인간은 결국 어디에서도 완벽한 안식을 찾을 수 없다.
3. 침대 → 죽음과 꿈의 공간, 동시에 언어(타자기)로 변모하는 장소
침대는 잠을 자는 곳이며, 죽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시의 마지막에서 침대가 ‘타자기를 두드리기 시작’하며, 이는 존재의 불안을 기록하는 공간으로 전환된다.
인간은 존재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글을 쓰며 자기 존재를 증언한다.
4. 빗소리 → 억압과 구속, 존재의 불안을 더욱 강조하는 요소
"개의 발을 가만히 묶어놓는 빗소리"라는 구절에서, 비는 자연적 요소이지만 자유를 속박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인간 역시 사회적 구조나 운명에 의해 자유롭지 못하다.
5. 죽음(뼈다귀, 밤) → 언제나 존재 속에 내재해 있는 필연적 요소
"아직 오지도 않은 죽음이 속으로 하는 말을 들었다"
죽음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이미 우리 내면에서 작용하고 있다.
"뼈다귀를 핥아주는 침대"는, 죽음이 이미 인간의 삶 속에 스며들어 있으며,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6. 타자기 → 언어와 존재 인식
인간이 언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기록하려는 행위.
존재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말했으며, 이 시에서 침대(불안과 죽음의 공간)가 타자기(언어적 기록의 공간)로 변하는 것은, 인간이 불안을 언어화함으로써 존재를 이해하려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4. 문장(연)별 분석
1연
> “어떤 날은 베개가
침대를 내려와 개처럼
짖는다.”
베개가 개처럼 짖는다 → 안식과 평온의 공간이 갑자기 불안을 유발하는 요소로 변함.
인간이 기대하는 안정된 세계가 무너지는 순간.
어느날 다스만(속인, 잡담•호기심•모호성•평균성)에게 불안이 찾아왔다.자기의 존재의미를 찾는 다자인(현존재)으로 가기 위한 순간
2연
> “내가 모르는 아주 먼 곳에서 자꾸
아는 이야기가 찾아온다는 듯”
알 수 없는 곳에서 오는 기억과 이야기 → 존재는 자기 자신의 근원을 알 수 없다.
무의식 혹은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
3연
> “개 옆에는 개, 달 옆에는 달
그러나 개는 달처럼 반으로 접을 수 없고
낮보다 밤이 먼저여서”
개와 달의 비교 → 개는 변할 수 없는 존재(고정된 운명), 달은 변화하는 존재. 달은 유연한 존재, 진리를 상징
밤이 먼저 오는 세계 → 불안과 죽음이 인간의 존재 속에서 우선됨.
4연
> “개의 발을 가만히 묶어놓는 빗소리”
개(본능, 자유)를 속박하는 요소 → 인간은 항상 외부적 힘에 의해 구속됨.
"베개 대신 침대 위로 기어올라
자라기 시작한다."
1. ‘베개 대신’ → 안식이 사라지고 불안이 침투하는 순간
2. ‘침대 위로 기어올라’ → 불안의 증식과 존재의 전환 과정
3. ‘자라기 시작한다.’ → 불안이 성장하고 변형되는 순간
5연
"괭이밥처럼, 좋다. 누워, 라고
노란 목소리 같은 걸 꺼내 내가 나에게
괜히 겁주지 않아도 되는
침대"
1. ‘괭이밥처럼, 좋다.’ → 허약한 평온과 일시적 안식
괭이밥(옥살리스, Oxalis)은 작은 풀꽃으로, 연약하지만 빠르게 퍼지는 식물이다.
생명력이 강하지만, 동시에 쉽게 시들거나 밟힐 수도 있다.
2. ‘누워, 라고’ → 존재의 자기 위안과 타자화된 자아
누운다는 것은 안식을 취하는 행위이지만, 동시에 죽음과도 연결될 수 있다.
즉, 존재의 불안을 피하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누워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3. ‘노란 목소리 같은 걸 꺼내’ → 언어를 통한 존재의 안심 작용
노란 색과 목소리의 결합 → 감각적 안정감의 형성
노란색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색채로,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4. ‘괜히 겁주지 않아도 되는 침대’ → 언어를 통한 자기 위안과 안식의 공간
존재는 본질적으로 불안하지만, 여기서는 그 불안을 스스로 가라앉히려는 시도를 보인다.
즉, 화자는 자기 자신을 안심시키며, 존재의 불안을 인위적으로 완화하려고 한다.
침대 = 안식의 공간이자 자기 위안의 공간
즉, 인간 존재가 근본적으로 불안을 느끼지만, 그 불안을 침대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해소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6연
> “풀밭에서 시들어가는
여자의 품속에서 발꿈치를 든
아기 꿈을 꿨다.”
시들어가는 여성(삶과 죽음의 경계), 발꿈치를 든 아기(불안정한 탄생)
삶과 죽음이 연결되는 순간을 암시.
7연
> “아직 오지도 않은 죽음이
속으로 하는 말을 들었다는 듯
뼈다귀를 핥아주는
침대”
죽음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이미 존재 속에서 말을 걸고 있음.
침대(안식의 공간)가 죽음과 연결됨.
8연
"어떤 가난은 개를 참 많이 키운다."
이 문장은 단순한 경제적 빈곤을 넘어, 존재론적 결핍을 상징한다. 존재론적 결핍이 불안이 지속적으로 증식하는 구조를 함축
9연
‘개에게 물리지 않기 위해’
인간은 존재의 불안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본능적 행동을 취한다.
‘목이 긴 장화를 신고’
인간은 존재의 불안을 줄이기 위해 방어적 태도를 취하며, 심리적·물리적 보호 수단을 갖춘다.
그러나 존재가 아무리 보호막을 두르더라도, 결국 삶과 죽음, 불안과 고독의 문제를 마주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가만히’
존재의 망설임과 실존적 혼란
장화를 신고도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상태
‘가만히’라는 표현은 존재가 불안을 피하려 하지만,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긴 어디쯤일까?’
존재의 방향성 상실과 세계 속 정체성 문제
장화를 신고 방어했음에도 불구하고, 존재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
10연
> “밤을 홀딱 벗겨놓은
침대가 타자기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밤(죽음과 불안)이 사라지면서, 침대(존재)가 언어(타자기)로 변환됨.
인간은 존재의 불안을 기록함으로써, 자기 존재를 증언하려 한다.
결론: 존재의 불안을 기록하는 시적 행위
이 시는 존재의 불안과 죽음을 향한 인간의 인식을 탐구하며, 마지막에는 언어를 통해 자기 존재를 증언하려는 인간의 행위로 마무리된다.
즉, 존재는 불안하지만, 언어를 통해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는 과정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점이 하이데거적 해석의 핵심이다.
부리가 샛노란 말똥가리 두어 마리 데리고 /김륭
내일의 날씨가 우산을 들고 뛰어올 때까지
빗소리를 심었다 화분 가득
끓는다. 아직 태어나지 못한 말이 있어서, 누구십니까? 나는, 내가 만들지 않은 사람 나는, 끝이 난 다음에 시작되는 이야기 나는, 시작되지도 않고 끝이 나는 이야기 나는, 빗방울처럼 움켜쥔 배꼽으로 세상을 내려쳐보는 이야기여서, 그렇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마음은 찢어지는 게 찢어지지 않는 것보다 낫다*
천변 어딘가에 그림자를 숨긴 새들은 인간의 노래에서 도망 나온 글자들을 쪼아댔다
벌레보다 못한 말, 서서 잘 수 없는 말로 꿴 책이라니
엄마, 엄마는 왜 벌써부터
누워있는 거야
부리가 샛노란 말똥가리 두어 마리 데리고
죽은 듯 가만히 누워서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떠내려오거나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떠내려가다 보면
내가 가진 내 얼굴을 울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니
그래서 갑니다 이젠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당신에게
이번엔 엄마라고 불렀으니까 다음번엔 자기라고 불러도 될까, 하고
벚꽃고양이처럼 한쪽 귀 접어서
마지막 햇볕을 쬐는 듯 오늘의 기분이 우산을 들고
내일로 뛰어가 두 번 다시 오지 말라고, 나는
나 없어도 울지 마, 라는 책에 몸을
비끄러매는 것이다
* 메리 올리버.
뱀이나 좀 고쳐줄래? / 김륭
정말 모르겠어 나는, 너를
그러는 편이 좋지
나의 마지막은 너, 너의 마지막은
나이니까
하나도 안 중요해
헤어지든 말든 나는 계속 슬퍼할 거야
오랜만이지? 슬퍼하는 내 앞에서
슬퍼하는 척
나는 널 보고 있는 게 아니야
만지고 있어 네 몸속 깊숙이 나를
쑤셔 박는 중이야
나는 뱀, 이게 전부
너는 자루
아직 한참 멀었어 그러니까
부탁해줄래 눈을 감고
뱀이 안 되는 게 너무 많아서
뱀, 뱀이 되었군
재미있겠군
이건 네가 한 말이 아니고
내가 한 말
나는 내 안에서
할 말이 너무 없어
고작 똥 싸고 오줌 누는
그 정도?
그래서 네 안에 깊숙이
풀어놓으려는 거야
말도 안 돼
이건 내가 한 말도
네가 한 말도 아니고
우리는 다정하게 그 말을 접어서
껍질을 벗기지 자유롭게
그리고 떠난다, 말도 안 돼
떠나는 소리가 들린다
연애는 참 독해
돌아온다, 떠났다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여긴, 코브라농장이군
그러게 말이야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집을 나갔다 막 돌아온
목소리가 내 모가지를 움켜쥐며
말했다
뱀이나 좀 고쳐줄래?
⸺제5회 동주문학상 수상 시집 『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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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륭 / 1961년 진주 출생. 2007년 〈문화일보〉신춘문예 시, 〈강원일보〉신춘문예 동시 당선. 시집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원숭이의 원숭이』『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 외 청소년 시집과 동시집 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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