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다의 아사왕과 북이스라엘의 바아사왕
(열왕기상 15장 23-34절)
23-24.아사의 남은 사적과 모든 권세와 그가 행한 모든 일과 성읍을 건축한 일이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그는 늘그막에 발에 병이 들었더라 아사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조상들과 함께 그의 조상 다윗의 성읍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호사밧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그는 늘그막에 발에 병이 들었더라”
아사가 강력한 왕권을 지녔었음에도 늙어서 발에 병이 들었다는 것이다. 역대하 16장 12절에서는 발에 병이 생겼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는 곧 아사가 처음과 달리 세월이 흐를수록 점차 여호와에게서 멀어져 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사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조상들과 함께 그의 조상 다윗의 성읍에 장사되고”
여러 차례 정변으로 왕조 교체가 빈번했던 북이스라엘에 비해 다윗 왕조가 일관되게 통치했던 남유다의 연속성이 강조된다. 다윗의 후손이 계속해서 왕위를 잇도록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실제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조상 다윗이란 표현은 특히 정통성의 문제에서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즉 다윗은 신정 국가의 이상적 군왕으로 제시된 인물이다. 그러므로 다윗과 연결되는 것은 단순한 혈연적 계속이 아니라 가치 판단에서의 계승성 문제이다. 그러므로 아사가 조상 다윗의 성읍에 장사되었다는 표현은 신앙적 정통성이 그에게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의 아들 여호사밧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아사왕의 아들 여호사밧은 25세에 즉위하여 25년간 통치했다. 통치 첫 3년은 아버지 아사왕과 공동으로 통치했다. 아사왕이 발에 중한 병이 들었으므로 부왕을 보좌한 것이다. 그리고 여호사밧의 단독 통치는 22년간 이어졌다.
25-27.유다의 아사 왕 둘째 해에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한지라 이에 잇사갈 족속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그를 모반하여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에서 그를 죽였으니 이는 나답과 온 이스라엘이 깁브돈을 에워싸고 있었음이더라
“유다의 아사 왕 둘째 해에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여로보암 왕조의 북왕국 통치는 여로보암 통치 22년 그리고 그 아들 나답 통치 2년 합하여 2대로 약 23년간에 그쳤다. 그런데 남유다가 다윗 왕조 통치하에 내적 안정을 이루었던 데 비해, 여로보암 왕조의 이 같은 단명은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결과였다.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한지라”
악을 행한 것은 여로보암이 자신 뿐 아니라 백성들 조차 타락하게 만든 우상 숭배 죄악를 가리킨다.
“이에 잇사갈 족속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그를 모반하여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에서 그를 죽였으니”
바아사가 여로보암 가문을 멸하고 정권을 잡지만 그의 이름이 암시하듯 바아사 또한 우상 숭배에 몰두한 자였다. 역시 훗날 여로보암과 똑같은 징벌을 받아 아들대 제 2년에 가서 멸족을 당하게 된다.
잇사갈 출신 바아사가 이처럼 에브라임 출신 여로보암 왕조를 친 것은 선지자 아히야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점과 당시 북이스라엘 내의 지파간 결속이 확고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나답과 온 이스라엘이 깁브돈을 에워싸고 있었음이더라”
깁브돈은 애굽과 수리아를 연결하는 군사적 요충지이므로 이스라엘은 이를 줄 곧 차지하려 들었다. 그런데 바아사가 나답을 모반했던 시기도 깁브돈 공략시이다. 이때 바아사의 강력한 군대의 힘이 모반을 이루게 한 것이다. 깁브온은 모반의 전략적인 장소가 된 것이다.
28-30.유다의 아사 왕 셋째 해에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고 왕이 될 때에 여로보암의 온 집을 쳐서 생명 있는 자를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다 멸하였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실로 사람 아히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으니 이는 여로보암이 범죄하고 또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죄로 말미암음이며 또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엽게 한 일 때문이었더라
“유다의 아사 왕 셋째 해에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고 왕이 될 때에”
나답은 만 이년을 채 통치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깁브돈 포위 공략 중 바아사가 모반을 일으킬 수 있었다는 것은 그가 실질적으로 군사력을 장악하고 있던 인물이었음을 말해 준다. 이처럼 무력에 의한 모반은 북이스라엘 왕권의 정통성을 실추시키는 사건이 었다. 이후 이와 같은 반란은 북이스라엘 역사에 모반의 악순환을 이룬다.
“여로보암의 온 집을 쳐서 생명 있는 자를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다 멸하였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실로 사람 아히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으니”
여로보암 일족을 멸절시키는 바아사의 행위는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것임이 명시되어 있다. 즉 이는 아히야 선지자를 통해 하신 말씀이 성취된 사건인 것이다.
“이는 여로보암이 범죄하고 또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죄로 말미암음이며 또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엽게 한 일 때문이었더라”
하나님께서 언약의 백성이 불성실한 경우 그와 같이 상처입고 분노하신다. 이러한 모든 것은 우상숭배 죄때문이었다. 그만큼 하나님은 우상숭배 죄를 용서하지 않으신다. 반드시 죄에 대한 대가를 받게 하는 것이다.
31-34.나답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아사와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 사이에 일생 동안 전쟁이 있으니라 유다의 아사 왕 셋째 해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디르사에서 모든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십사 년 동안 다스리니라 바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나답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나답의 행적으로서 알려진 것은 그가 깁브돈을 포위, 공격하려 했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역대기는 아예 나답에 대해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여로보암 말년의 패배와 실정은 북이스라엘 내의 여로보암 왕조의 왕권을 인정치 않는 반발의 기운이 조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사와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 사이에 일생 동안 전쟁이 있으니라”
왕들이 바뀌어도 남북의 적대 정책에는 변함이 없었다. 아사와 바아사 사이의 전투에서, 바아사는 남유다를 공략해 예루살렘 턱밑 라마까지 진출하였다. 그런데 아사의 책략으로 인해 북이스라엘과의 동맹을 파기하고 북이스라엘의 후방을 급습한 벤하닷 때문에 바아사는 라마에서 결국 철군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일 후에도 남북왕국은 항상 전시 상태에 놓여 있었으므로 상호 적대감은 증가하였다
“유다의 아사 왕 셋째 해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디르사에서 모든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십사 년 동안 다스리니라”
바아사의 재위 기간은 B.C. 909-886년이다. 그런데 이 기간은 북이스라엘 북쪽의 아람 동맹국들이 다메섹의 주도하에 북이스라엘에게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던 시기이다. 즉 이들은 지중해 교역로를 확보하기 위해 부단히 이스라엘과 분쟁을 일으켰다. 이때는 유브라데 강 동편에 있는 앗수르가 서서히 강대국으로 힘을 키우고 있던 시대이다. 이러한 북방의 심상치 않은 정세에 여로보암, 나답, 바아사 등의 디르사 왕도화였다. 다르사가 국제적인 정세에 강력한 국력을 나타내려는 모습이다.
“바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바아사는 여로보암의 종교 정책대로 북방의 성소(벧엘과 단)를 유지해 나갔음은 예배의 순수성을 해친 행위이기 때문이다.
(요약)
열왕기상 15장23-34절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대조적인 운명을 보여준다. 남유다는 불완전함 속에서도 지켜지는 언약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선하게 바라보시는 여호사밧왕으로 이어지나, 북이스라엘의 나답은 다윗의 길을 따르지 않고 죄를 저지렀으며, 결국 부하의 모반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대조시켜 준다.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은 왕위에 올라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 죄를 짓었다. 그는 통치 2년 만에 반역을 일으킨 바아사에게 살해당했다. 바아사는 왕이 되자마자 여로보암의 온 집안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두 멸절시킨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그의 종 실로 사람 아히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으니"라고 말하며, 바아사의 잔인한 모반이 여로보암 가문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성취되는 과정이었음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정작 심판의 도구가 된 바아사 자신도 여로보암의 길에서 떠나지 않고 똑같은 죄를 반복했다.
이러한 대조적인 흐름을 통해 드러나는 핵심 메시지는 하나님의 평가는 인간적인 업적이나 정치적 성공이 아닌, 언약에 대한 신실함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에 달려 있으며,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은 반드시 역사 속에서 성취된다는 것이다.
신앙의 핵심은 언약에 있다. 신도들의 열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열심이 필요없다는 말이 아니라, 그 중심에는 언약이 있음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는 언약보다도 열심을 가르치며, 말씀보다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