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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학(3) 릴케,「사랑의 노래」外
그것은 한 마리 뻐꾹새가 서둘러 날아간 자두나무
R.M.릴케 -릴케,「이별」
0. 꽃은 피어도 소리가 없고/ 새는 울어도 눈물이 없고/ 사랑은 불타도 연기가 없더라.// 장미가 좋아 꺾었더니 가시가 있고/ 친구가 좋아 사귀었더니 이별이 있고/ 세상이 좋아 태어났더니 죽음이 있더라.// 시인이라면 그대에게 한 편의 시를 드렸으리…/ 나 목동이라면 그대에게 한 잔의 우유를 드렸으리…/ 나!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자이기에 드릴 것은 오직 사랑 뿐이리… (마야 안젤루,「오직 드릴 것은 사랑 뿐」)
1. 릴케의 시(「가을날」)와 시론
라이너 마리아 릴케 (1875~1926. 본명: 르네 카를 빌헬름 요한 요제프 마리아 릴케)는 독일시문학사에서 처음으로〈나〉를 탐구 대상으로 한 시인이다. 그는 시인의 사명과 본질을 가장 잘 인식하고 자각한, 궁핍한 시대의 시인이다. 릴케에게 시를 쓰고 시인이 된다는 것은 생명이 말하는 음성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고, 고요(「단 한 번 만이라도 완전히 고요해진다면」)와 고독의 세계내면공간(모든 존재를 관통하여 뻗어있는 하나의 공간. 심혼의 공간. 체념. 깨달음에 이르는 마음)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시와 철학이 공속하는 고독은 존재의 근원으로 가는 실존적 언어로서, 존재의 언어는 침묵의 언어(=들음Hören, 말 걸어옴Zuspruch)다. 그가 생각하는 시인의 사명은 시의 본질을 시작詩作하는 것, 또는 존재의 깊이에 대한 신비 체험을 깨닫고 드러내는 것이다. 한편, 릴케 중기를 특징짓고 사물의 관조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시들은 내면성과 주관성을 근거로 하는 전통적인 서정시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새로운 양식이며, 이는 릴케가 자신의 문학과 삶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신시집(Neue Gedichte)의 새로움은 릴케 개인의 차원만이 아니라, 독일 서정시 발전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에 놓인다. 다음 시를 보자.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진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을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로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가을날」(『형상시집』) 전문
도입부에 시상이 집약된 이 시는 존재의 소리에 대한 시인의‘말함’이다. 나직하게 부르는 소리의 공명共鳴은 가을의 시간에 온전히 모아져 그 깊이와 울림을 더한다. 시간의 흐름으로 말하자면 계절의 변화만한 게 없다. 이는 자연과 우주의 비밀이며 운행運行으로서 시가 아름다운 이유이기도 하다.아름다움은 존재 사건이 일으킨 빛의 파문이다. … 변화 무쌍한 존재를 드러내는 최고의 방식이 시 곧 포이에시스라면 시는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인간이 만들어 낸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김동규,「시가 아름다운 이유-하이데거 시론을 중심으로」). 시는 지상의 인간이 고안해 낸 최상의 언어이자 마음의 무늬이며 결이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다는 것은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그대의 해시계 위에는 하루의 온시간이 동시에,/ 동시에 현실적으로, 깊은 균형 속에 서 있다./ 마치 모든 시간이 무르익어 풍요로운 듯.,「자오선의 천사」)고들녘엔 바람을 놓아 주며, 신성한 포도주에 맛이 스며드는 순간이다. 시인은 때時를 아는 자다. 가을을 맞이하기까지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다. 미완의 인간이 보다 완전한 그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진리가 도래하는 가을날의 (유)금빛은 완미完美한 주에 대한 부름Rufen이 요청되는 시간이다. 사물이 언어가 되는 이 가을은 무엇보다과일을 맛볼 때 죽은 이들의 비밀, 삶과 죽음의 전체성의 비밀이 밝혀(엄선애,「릴케의『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에 나타난 동물, 꽃과 과일 모티프」)지는 데에 무엇보다 그 진의가 있다. 허공을 향해 점점이 퍼져 가는 과향果香은 가을의 시간을 더욱 아름답고 위대하며 신비로운 것으로 화化하게 한다. 시인은 존재의 언어를 찾아 나서기 위해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맨다. 그 시인의 집에 거居하는 한 모험은 피할 수 없다. 시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잠자지 않으며 읽고, 긴 편지를 쓰는 이에게만 발견될 것이다. 릴케의「가을날」은 고독과 불안, 그리고현존재의 불가사의한 깊이에 대한 경외감(게오르그 짐멜,『렘브란트-예술철학적 시론』)으로 가득차 있다.
2.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a. 예술작품은 무한히 고독한 것으로서, 비평으로 도달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오직 사랑만이 그것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서 공평할 수가 있습니다. (1903.4.23. 이탈리아 피사 근교)
b. 모든 일에서 초보자인 젊은 사람들은 아직 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온 존재를 걸고, 그들의 고독하고 불안하며 위를 향하여 맥박치는 심장의 주위에 집중된 모든 힘을 다하여 그들은 사랑하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인생의 깊숙한 내부에 이르는 고독입니다. (1904.5.4. 이탈리아 로마)
c.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십시오. 당신에게 글을 쓰라고 명령하는 근거를 찾아내십시오. 그것이 당신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펴고 있는지를 살펴 보십시오. 글쓰기를 거부당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는지를 스스로에게 고백해 보십시오.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이 맞는 밤의 가장 고요한 시간에나는 쓰지 않으면 안되는가라고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 당신이 보고, 체험하고, 사랑하고, 그리고 잃는 것을 마치 인류 최초의 사람처럼 표현하도록 노력하십시오. (1903.2.17. 프랑스 파리)
d. 지금은 물음을 살아가십시오. 그렇게 하면 아마도 당신은 차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먼 미래의 어느 날, 해답 속으로 들어가서 해답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 고독에서야말로 당신은 당신의 모든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1903.7.16. 독일 브레멘 근교)
e. 내 생명 속을 뚫고 탄식도 한숨도 없이/ 새까만 아픔이 떨면서 지나간다./ 내 꿈의 정결한 꽃보라는/ 내 고요한 나날의 축성식이어라.// 그러나 커다란 물음이 자주/ 내 오솔길을 가로지른다. 나는 몸이 움츠러들고/ 추위에 떨며 지나간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숫가를 지나듯이.// 그때 슬픔 하나가 내 머리 위로 갈앉아 온다./ 때때로 별 하나가 깜빡거린다./ 빛이 아쉬운 여름밤의 잿빛처럼 우울하여라.// 하여, 나의 손은 사랑을 더듬는다./ 뜨거운 내 입이 찾아낼 수 없는 음향이 되어/ 나는 기도하고 싶어라….(프란츠 카푸스,「소네트」)
3. [말테의 수기]
a. 나는 늘 돌아다녔다. 내가 얼마나 많은 도시들을, 도시의 구역들과 공동묘지, 다리, 골목들을 돌아다녔는지 하늘은 알려나.
b. 시는 기다려야 한다. 한평생을.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오래 살아서 의미와 단맛을 모아야 한다. 그러고 나면, 맨 마지막에 좋은 시가 겨우 열 줄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시는,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경험(체험)이다. 시 한 줄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도시와 사람과 사물을 봐야 한다. 동물들을 알아야 한다. 새들이 어떻게 나는지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작은 꽃들이 아침에 피어날 때의 몸짓도 알아야 한다.
c. 그것들(추억들)이 우리들 안에서 피가 될 때, 시선과 몸짓이 되고, 이름이 없어져 우리 자신과 구별할 수 없게 될 때, 그때 비로소 매우 드문 시간에 시의 첫 낱말이 그 한가운데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d. 내게는 내가 몰랐던 어떤 내면이 있다. 어제 모든 것이 그 안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나는 모른다.
e. 시인의 사명은변용에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옮기는 변용은 지상의 삶이 일회적이기에 의미가 있다. 변용의 중요성은 보이지 않으면서 다시 한번 살아나는 것이다. 무상한 사물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정신화하는 것이 시적 변용의 사명이다. 천사의 눈길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초월적인 것이다. 지상의 무상한 사물들은 천사의 눈길 아래에서 구원을 받는다. 천사는 인간으로서 시인을 돌아보게 만드는 존재다.
f. 릴케의 천사는 보이지 않는 것에서 더 높은 차원의 현실 인식을 바라는 존재, 완전한 존재의 다른 이름이다. 인간 세계의 끝이자,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경계에 있는 존재다.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옮아가는 변용이 자기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피조물이다. 천사와 변용은 연관이자 열린 장이며, 이별과 같은 토대를 말한다.
g. 고독은 가장 순화된 정신세계가 임하는 곳으로서 사랑이다. 순수한 시와 사랑은 인생의 내부까지 깊이 파고드는 고독이다. 고독은 삶의 에토스이며 진정한 자유다. 고독과 같은 인간 속에 있는 자연과 신비 체험만이 인간의 유일한 의지처이자 고향이다. 고향으로서 고독은 존재의 모든 연관을 모아들이는 것이다. 시인=여성=생명=창조.
h. 이 세상을 찬미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언어다. 이 세상은 시인에 의해 말해지고 읽혀져야 비로소 그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바로 사물의 구원이 이루어진다.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변용시키는 것. 여기서 보이는 것은 우리의 눈에 비치거나 이데올로기의 망에 갇혀 있는 사물들의 세계이고, 이것들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변용시키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식과 예술적 형상화 과정을 통해 사물이 타자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변용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의 의식에서 다른 의식으로 전달되는 운동성이다.
4. 사랑의 시학: 릴케, [사랑의 노래]
사랑의 노래 Liebes-lied (『신시집』제1권)
그대 영혼을 건드리지 않은 채
어떻게 내 영혼을 간직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나의 영혼이 그대를 넘어 다른 사물로 갈 수 있을까요?
아, 어두운 곳, 어느 잃어버린 사물 곁에
당신의 깊은 마음이 흔들릴 때에도 움직이지 않는
외진 한적한 곳에
나의 영혼을 기꺼이 간직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대와 나, 우리를 건드리는 모든 것들이
두 개의 줄로부터 한 줄기 음을 이끌어내는
바이올린 활처럼 우리를 함께 붙잡고 있습니다.
어떤 악기에 우리는 매어져 있나요?
그리고 어느 바이올린 연주자의 손에 쥐어져 있나요?
오, 감미로운 노래여. (김현충譯)
Q. 마음이 사물이라면, 나는 어떤 사물과 가장 많이 닮아 있는가?
마음의 세 겹: 느낌/생각/뜻
①느낌: 몸에서 마음으로 들어가는 첫 마당. 마음의 가장자리.
②생각: 느낌에 비해 서늘하고 고요한 마음의 움직임. 모든 것을 분별하는 마음의 힘-속살.
③뜻: 생각과 느낌을 끌고 가는 마음의 힘. (몸과) 마음의 뼈대-알맹이-노른자.
■ 한 편의 시는 하나의 점이다. 그러나 시를 구성하고 있는 행과 행간 사이엔 무수한 (마음의) 선과 면, 입자와 파동이 있다. 이 시는 네 개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사랑은 곧 영혼이며 아름다운 음악이자 화음-노래, 연주라는 사실. 노래는 (현)존재 Gesang ist Dasein. 어떻게 죽을 자들the mortal이 노래할 수 있는가?어느 바이올린 연주자의 손에 쥐어져 있나요?는 인간의 근원적인 존재에 대한 질문이다. 차이를 생성하는 힘으로서 사랑은 둘을 하나로 이어주는 현으로, 떨림과 울림의 공명 현상이다. 바이올린과 피아노와 첼로가 각기 하늘-인간-땅을 표상하는 악기라면 이 시에서 바이올린은 천상-천사의 악기다. 말이 없는 곳에는 사물도 없다. 마음의 매개체로서 사물은, 말은 어디에 있는가? 시는 그 말과 사물의 사이존재에 해당한다.
[더 읽을거리]
그림자 속에서도/ 칠현금을 손에 들어본 자만이/ 예감하며/ 무한한 찬미를 바칠 수가 있다.// 죽은 자들과 함께 양귀비를,/ 그 죽은 자들의 양귀비를 먹어본 자만이/ 가장 나직한 울림도/ 다시는 잃지 않는다.// 못 속에 비치는 반영은/ 눈에서 홀연히 사라지지만/ 그 참모습을 알아라.// 두 세계 안에서/ 목소리는 비로소/ 영원해지고 부드러워진다.
-릴케,「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제1권 9번
모든 눈으로 생물들은/ 열린 세계를 보고 있다. 우리들 인간의 눈만이/ 반대 방향을 보는 듯,/ 그들의 자유로운 출구를, 덫이 되어 둘러막고 있다./ 출구 밖에〈있는〉것, 그것을 우리는/ 동물의 표정에서 읽을 뿐이다. 어린아이 때부터 우린 이미 아이의 등을 돌려놓고 형상의 세계를 뒤쪽으로 보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동물의 얼굴에 깊이 깃들어 있는 열린 세계를 보지 못하게 한다./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그 세계를.// 죽음을 보는 것은 우리들뿐이다. 자유로운 존재인 동물은 언제나 몰락을 뒤에 두고/ 앞에는 신을 보고 있다./ 걸을 때에는 영원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마치 샘물이 흘러가듯이…
-릴케,「두이노의 비가」(제8비가) 부분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謙虛한 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肥沃한/ 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김현승,「가을의 기도」전문
라이너어·마리아·릴케,/ 당신의 눈은 보고 있다./ 天使들이 겨울에도 얼지 않는 손으로/ 나무에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을,/ 죽어간 少年의 등 뒤에서/ 또 하나의 작은 心臟이 살아나는 것을,/ 라이너어·마리아·릴케,/ 당신의 눈은 보고 있다.
-김춘수,「릴케의 章」부분
德萬 아버지는 말씀하셨지요
만 벼랑에 핀 홍매가 말없이 지고 나면 무릎을 펼 수 없어 나이테처럼 방안을 맴돌고 물음은 물가 능수버들 아래 외로 선 왜가리가 왜왜 보이지 않는지 먼 산 능선이 꿈처럼 다가설 때 두엄과 꽃이 왜 발 아래 함께 놓여 있는지
達蓮 어머니에 대한 궁금은 앵두 하나 없는 밤의 우물가에 몰래 흘린 눈물 이후 단 한 번의 말도 없는 손 다시는 펼 수 없는 축생의 손가락 산수유나무 그늘 아래 먹이를 찾는 길고양이처럼 길 잃은 나는 왜 먼동이 튼 아침마다 십이지신상을 돌고 돌며 천부경을 음송하는지 좀어리연이 왜 낮은 땅 오래된 못에서 피어나는지 어느 여름 말산의 그 길이 왜 황토빛이고 음지마인지
해맞이공원을 빠져나오다 문득, 사리함이 아름답다는 생각
-김상환,「왜왜」전문
참고문헌
라이너 마리아 릴케, 두이노의 비가-릴케시선집, 손재준 옮김, 열린책들, 2016.
―,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송영택 옮김, 문예출판사, 2021.
―, 말테의 수기, 안문영 옮김, 열린책들, 2021.
마르틴 하이데거(신상희 옮김), 숲길Holzwege, 나남, 2010.
김현충, 릴케의 신시집(Neue Gedichte)에 나타난 사물과 의미, 한양대 행당논집 제2집, 1986.
박유정, 존재의 소리와 고독: 하이데거와 릴케, 철학논집 제28집, 2012.
안상원, 종교적 상징과 예술사물-릴케의『신시집』을 중심으로, 헤세연구 제15집, 2007. 기타
♣ 차시 예고
10회(6.07.) 이태호 (통청원장/철학박사) 道家의 사랑(2) 11회(6.14.) 금교영 (전 한의대교수/철학박사) 사랑의 감정들 |
사랑의 시학(3) 릴케,「사랑의 노래」外
그것은 한 마리 뻐꾹새가 서둘러 날아간 자두나무
R.M.릴케 -릴케,「이별」
0. 꽃은 피어도 소리가 없고/ 새는 울어도 눈물이 없고/ 사랑은 불타도 연기가 없더라.// 장미가 좋아 꺾었더니 가시가 있고/ 친구가 좋아 사귀었더니 이별이 있고/ 세상이 좋아 태어났더니 죽음이 있더라.// 시인이라면 그대에게 한 편의 시를 드렸으리…/ 나 목동이라면 그대에게 한 잔의 우유를 드렸으리…/ 나!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자이기에 드릴 것은 오직 사랑 뿐이리… (마야 안젤루,「오직 드릴 것은 사랑 뿐」)
1. 릴케의 시(「가을날」)와 시론
라이너 마리아 릴케 (1875~1926. 본명: 르네 카를 빌헬름 요한 요제프 마리아 릴케)는 독일시문학사에서 처음으로〈나〉를 탐구 대상으로 한 시인이다. 그는 시인의 사명과 본질을 가장 잘 인식하고 자각한, 궁핍한 시대의 시인이다. 릴케에게 시를 쓰고 시인이 된다는 것은 생명이 말하는 음성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고, 고요(「단 한 번 만이라도 완전히 고요해진다면」)와 고독의 세계내면공간(모든 존재를 관통하여 뻗어있는 하나의 공간. 심혼의 공간. 체념. 깨달음에 이르는 마음)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시와 철학이 공속하는 고독은 존재의 근원으로 가는 실존적 언어로서, 존재의 언어는 침묵의 언어(=들음Hören, 말 걸어옴Zuspruch)다. 그가 생각하는 시인의 사명은 시의 본질을 시작詩作하는 것, 또는 존재의 깊이에 대한 신비 체험을 깨닫고 드러내는 것이다. 한편, 릴케 중기를 특징짓고 사물의 관조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시들은 내면성과 주관성을 근거로 하는 전통적인 서정시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새로운 양식이며, 이는 릴케가 자신의 문학과 삶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신시집(Neue Gedichte)의 새로움은 릴케 개인의 차원만이 아니라, 독일 서정시 발전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에 놓인다. 다음 시를 보자.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진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을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로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가을날」(『형상시집』) 전문
도입부에 시상이 집약된 이 시는 존재의 소리에 대한 시인의‘말함’이다. 나직하게 부르는 소리의 공명共鳴은 가을의 시간에 온전히 모아져 그 깊이와 울림을 더한다. 시간의 흐름으로 말하자면 계절의 변화만한 게 없다. 이는 자연과 우주의 비밀이며 운행運行으로서 시가 아름다운 이유이기도 하다.아름다움은 존재 사건이 일으킨 빛의 파문이다. … 변화 무쌍한 존재를 드러내는 최고의 방식이 시 곧 포이에시스라면 시는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인간이 만들어 낸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김동규,「시가 아름다운 이유-하이데거 시론을 중심으로」). 시는 지상의 인간이 고안해 낸 최상의 언어이자 마음의 무늬이며 결이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다는 것은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그대의 해시계 위에는 하루의 온시간이 동시에,/ 동시에 현실적으로, 깊은 균형 속에 서 있다./ 마치 모든 시간이 무르익어 풍요로운 듯.,「자오선의 천사」)고들녘엔 바람을 놓아 주며, 신성한 포도주에 맛이 스며드는 순간이다. 시인은 때時를 아는 자다. 가을을 맞이하기까지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다. 미완의 인간이 보다 완전한 그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진리가 도래하는 가을날의 (유)금빛은 완미完美한 주에 대한 부름Rufen이 요청되는 시간이다. 사물이 언어가 되는 이 가을은 무엇보다과일을 맛볼 때 죽은 이들의 비밀, 삶과 죽음의 전체성의 비밀이 밝혀(엄선애,「릴케의『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에 나타난 동물, 꽃과 과일 모티프」)지는 데에 무엇보다 그 진의가 있다. 허공을 향해 점점이 퍼져 가는 과향果香은 가을의 시간을 더욱 아름답고 위대하며 신비로운 것으로 화化하게 한다. 시인은 존재의 언어를 찾아 나서기 위해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맨다. 그 시인의 집에 거居하는 한 모험은 피할 수 없다. 시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잠자지 않으며 읽고, 긴 편지를 쓰는 이에게만 발견될 것이다. 릴케의「가을날」은 고독과 불안, 그리고현존재의 불가사의한 깊이에 대한 경외감(게오르그 짐멜,『렘브란트-예술철학적 시론』)으로 가득차 있다.
2.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a. 예술작품은 무한히 고독한 것으로서, 비평으로 도달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오직 사랑만이 그것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서 공평할 수가 있습니다. (1903.4.23. 이탈리아 피사 근교)
b. 모든 일에서 초보자인 젊은 사람들은 아직 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온 존재를 걸고, 그들의 고독하고 불안하며 위를 향하여 맥박치는 심장의 주위에 집중된 모든 힘을 다하여 그들은 사랑하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인생의 깊숙한 내부에 이르는 고독입니다. (1904.5.4. 이탈리아 로마)
c.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십시오. 당신에게 글을 쓰라고 명령하는 근거를 찾아내십시오. 그것이 당신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펴고 있는지를 살펴 보십시오. 글쓰기를 거부당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는지를 스스로에게 고백해 보십시오.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이 맞는 밤의 가장 고요한 시간에나는 쓰지 않으면 안되는가라고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 당신이 보고, 체험하고, 사랑하고, 그리고 잃는 것을 마치 인류 최초의 사람처럼 표현하도록 노력하십시오. (1903.2.17. 프랑스 파리)
d. 지금은 물음을 살아가십시오. 그렇게 하면 아마도 당신은 차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먼 미래의 어느 날, 해답 속으로 들어가서 해답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 고독에서야말로 당신은 당신의 모든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1903.7.16. 독일 브레멘 근교)
e. 내 생명 속을 뚫고 탄식도 한숨도 없이/ 새까만 아픔이 떨면서 지나간다./ 내 꿈의 정결한 꽃보라는/ 내 고요한 나날의 축성식이어라.// 그러나 커다란 물음이 자주/ 내 오솔길을 가로지른다. 나는 몸이 움츠러들고/ 추위에 떨며 지나간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숫가를 지나듯이.// 그때 슬픔 하나가 내 머리 위로 갈앉아 온다./ 때때로 별 하나가 깜빡거린다./ 빛이 아쉬운 여름밤의 잿빛처럼 우울하여라.// 하여, 나의 손은 사랑을 더듬는다./ 뜨거운 내 입이 찾아낼 수 없는 음향이 되어/ 나는 기도하고 싶어라….(프란츠 카푸스,「소네트」)
3. [말테의 수기]
a. 나는 늘 돌아다녔다. 내가 얼마나 많은 도시들을, 도시의 구역들과 공동묘지, 다리, 골목들을 돌아다녔는지 하늘은 알려나.
b. 시는 기다려야 한다. 한평생을.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오래 살아서 의미와 단맛을 모아야 한다. 그러고 나면, 맨 마지막에 좋은 시가 겨우 열 줄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시는,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경험(체험)이다. 시 한 줄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도시와 사람과 사물을 봐야 한다. 동물들을 알아야 한다. 새들이 어떻게 나는지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작은 꽃들이 아침에 피어날 때의 몸짓도 알아야 한다.
c. 그것들(추억들)이 우리들 안에서 피가 될 때, 시선과 몸짓이 되고, 이름이 없어져 우리 자신과 구별할 수 없게 될 때, 그때 비로소 매우 드문 시간에 시의 첫 낱말이 그 한가운데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d. 내게는 내가 몰랐던 어떤 내면이 있다. 어제 모든 것이 그 안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나는 모른다.
e. 시인의 사명은변용에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옮기는 변용은 지상의 삶이 일회적이기에 의미가 있다. 변용의 중요성은 보이지 않으면서 다시 한번 살아나는 것이다. 무상한 사물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정신화하는 것이 시적 변용의 사명이다. 천사의 눈길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초월적인 것이다. 지상의 무상한 사물들은 천사의 눈길 아래에서 구원을 받는다. 천사는 인간으로서 시인을 돌아보게 만드는 존재다.
f. 릴케의 천사는 보이지 않는 것에서 더 높은 차원의 현실 인식을 바라는 존재, 완전한 존재의 다른 이름이다. 인간 세계의 끝이자,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경계에 있는 존재다.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옮아가는 변용이 자기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피조물이다. 천사와 변용은 연관이자 열린 장이며, 이별과 같은 토대를 말한다.
g. 고독은 가장 순화된 정신세계가 임하는 곳으로서 사랑이다. 순수한 시와 사랑은 인생의 내부까지 깊이 파고드는 고독이다. 고독은 삶의 에토스이며 진정한 자유다. 고독과 같은 인간 속에 있는 자연과 신비 체험만이 인간의 유일한 의지처이자 고향이다. 고향으로서 고독은 존재의 모든 연관을 모아들이는 것이다. 시인=여성=생명=창조.
h. 이 세상을 찬미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언어다. 이 세상은 시인에 의해 말해지고 읽혀져야 비로소 그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바로 사물의 구원이 이루어진다.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변용시키는 것. 여기서 보이는 것은 우리의 눈에 비치거나 이데올로기의 망에 갇혀 있는 사물들의 세계이고, 이것들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변용시키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식과 예술적 형상화 과정을 통해 사물이 타자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변용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의 의식에서 다른 의식으로 전달되는 운동성이다.
4. 사랑의 시학: 릴케, [사랑의 노래]
사랑의 노래 Liebes-lied (『신시집』제1권)
그대 영혼을 건드리지 않은 채
어떻게 내 영혼을 간직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나의 영혼이 그대를 넘어 다른 사물로 갈 수 있을까요?
아, 어두운 곳, 어느 잃어버린 사물 곁에
당신의 깊은 마음이 흔들릴 때에도 움직이지 않는
외진 한적한 곳에
나의 영혼을 기꺼이 간직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대와 나, 우리를 건드리는 모든 것들이
두 개의 줄로부터 한 줄기 음을 이끌어내는
바이올린 활처럼 우리를 함께 붙잡고 있습니다.
어떤 악기에 우리는 매어져 있나요?
그리고 어느 바이올린 연주자의 손에 쥐어져 있나요?
오, 감미로운 노래여. (김현충譯)
Q. 마음이 사물이라면, 나는 어떤 사물과 가장 많이 닮아 있는가?
마음의 세 겹: 느낌/생각/뜻
①느낌: 몸에서 마음으로 들어가는 첫 마당. 마음의 가장자리.
②생각: 느낌에 비해 서늘하고 고요한 마음의 움직임. 모든 것을 분별하는 마음의 힘-속살.
③뜻: 생각과 느낌을 끌고 가는 마음의 힘. (몸과) 마음의 뼈대-알맹이-노른자.
■ 한 편의 시는 하나의 점이다. 그러나 시를 구성하고 있는 행과 행간 사이엔 무수한 (마음의) 선과 면, 입자와 파동이 있다. 이 시는 네 개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사랑은 곧 영혼이며 아름다운 음악이자 화음-노래, 연주라는 사실. 노래는 (현)존재 Gesang ist Dasein. 어떻게 죽을 자들the mortal이 노래할 수 있는가?어느 바이올린 연주자의 손에 쥐어져 있나요?는 인간의 근원적인 존재에 대한 질문이다. 차이를 생성하는 힘으로서 사랑은 둘을 하나로 이어주는 현으로, 떨림과 울림의 공명 현상이다. 바이올린과 피아노와 첼로가 각기 하늘-인간-땅을 표상하는 악기라면 이 시에서 바이올린은 천상-천사의 악기다. 말이 없는 곳에는 사물도 없다. 마음의 매개체로서 사물은, 말은 어디에 있는가? 시는 그 말과 사물의 사이존재에 해당한다.
[더 읽을거리]
그림자 속에서도/ 칠현금을 손에 들어본 자만이/ 예감하며/ 무한한 찬미를 바칠 수가 있다.// 죽은 자들과 함께 양귀비를,/ 그 죽은 자들의 양귀비를 먹어본 자만이/ 가장 나직한 울림도/ 다시는 잃지 않는다.// 못 속에 비치는 반영은/ 눈에서 홀연히 사라지지만/ 그 참모습을 알아라.// 두 세계 안에서/ 목소리는 비로소/ 영원해지고 부드러워진다.
-릴케,「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제1권 9번
모든 눈으로 생물들은/ 열린 세계를 보고 있다. 우리들 인간의 눈만이/ 반대 방향을 보는 듯,/ 그들의 자유로운 출구를, 덫이 되어 둘러막고 있다./ 출구 밖에〈있는〉것, 그것을 우리는/ 동물의 표정에서 읽을 뿐이다. 어린아이 때부터 우린 이미 아이의 등을 돌려놓고 형상의 세계를 뒤쪽으로 보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동물의 얼굴에 깊이 깃들어 있는 열린 세계를 보지 못하게 한다./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그 세계를.// 죽음을 보는 것은 우리들뿐이다. 자유로운 존재인 동물은 언제나 몰락을 뒤에 두고/ 앞에는 신을 보고 있다./ 걸을 때에는 영원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마치 샘물이 흘러가듯이…
-릴케,「두이노의 비가」(제8비가) 부분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謙虛한 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肥沃한/ 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김현승,「가을의 기도」전문
라이너어·마리아·릴케,/ 당신의 눈은 보고 있다./ 天使들이 겨울에도 얼지 않는 손으로/ 나무에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을,/ 죽어간 少年의 등 뒤에서/ 또 하나의 작은 心臟이 살아나는 것을,/ 라이너어·마리아·릴케,/ 당신의 눈은 보고 있다.
-김춘수,「릴케의 章」부분
德萬 아버지는 말씀하셨지요
만 벼랑에 핀 홍매가 말없이 지고 나면 무릎을 펼 수 없어 나이테처럼 방안을 맴돌고 물음은 물가 능수버들 아래 외로 선 왜가리가 왜왜 보이지 않는지 먼 산 능선이 꿈처럼 다가설 때 두엄과 꽃이 왜 발 아래 함께 놓여 있는지
達蓮 어머니에 대한 궁금은 앵두 하나 없는 밤의 우물가에 몰래 흘린 눈물 이후 단 한 번의 말도 없는 손 다시는 펼 수 없는 축생의 손가락 산수유나무 그늘 아래 먹이를 찾는 길고양이처럼 길 잃은 나는 왜 먼동이 튼 아침마다 십이지신상을 돌고 돌며 천부경을 음송하는지 좀어리연이 왜 낮은 땅 오래된 못에서 피어나는지 어느 여름 말산의 그 길이 왜 황토빛이고 음지마인지
해맞이공원을 빠져나오다 문득, 사리함이 아름답다는 생각
-김상환,「왜왜」전문
참고문헌
라이너 마리아 릴케, 두이노의 비가-릴케시선집, 손재준 옮김, 열린책들, 2016.
―,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송영택 옮김, 문예출판사, 2021.
―, 말테의 수기, 안문영 옮김, 열린책들, 2021.
마르틴 하이데거(신상희 옮김), 숲길Holzwege, 나남, 2010.
김현충, 릴케의 신시집(Neue Gedichte)에 나타난 사물과 의미, 한양대 행당논집 제2집, 1986.
박유정, 존재의 소리와 고독: 하이데거와 릴케, 철학논집 제28집, 2012.
안상원, 종교적 상징과 예술사물-릴케의『신시집』을 중심으로, 헤세연구 제15집, 2007. 기타
♣ 차시 예고
10회(6.07.) 이태호 (통청원장/철학박사) 道家의 사랑(2) 11회(6.14.) 금교영 (전 한의대교수/철학박사) 사랑의 감정들 |
사랑의 시학(3) 릴케,「사랑의 노래」外
그것은 한 마리 뻐꾹새가 서둘러 날아간 자두나무
R.M.릴케 -릴케,「이별」
0. 꽃은 피어도 소리가 없고/ 새는 울어도 눈물이 없고/ 사랑은 불타도 연기가 없더라.// 장미가 좋아 꺾었더니 가시가 있고/ 친구가 좋아 사귀었더니 이별이 있고/ 세상이 좋아 태어났더니 죽음이 있더라.// 시인이라면 그대에게 한 편의 시를 드렸으리…/ 나 목동이라면 그대에게 한 잔의 우유를 드렸으리…/ 나!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자이기에 드릴 것은 오직 사랑 뿐이리… (마야 안젤루,「오직 드릴 것은 사랑 뿐」)
1. 릴케의 시(「가을날」)와 시론
라이너 마리아 릴케 (1875~1926. 본명: 르네 카를 빌헬름 요한 요제프 마리아 릴케)는 독일시문학사에서 처음으로〈나〉를 탐구 대상으로 한 시인이다. 그는 시인의 사명과 본질을 가장 잘 인식하고 자각한, 궁핍한 시대의 시인이다. 릴케에게 시를 쓰고 시인이 된다는 것은 생명이 말하는 음성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고, 고요(「단 한 번 만이라도 완전히 고요해진다면」)와 고독의 세계내면공간(모든 존재를 관통하여 뻗어있는 하나의 공간. 심혼의 공간. 체념. 깨달음에 이르는 마음)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시와 철학이 공속하는 고독은 존재의 근원으로 가는 실존적 언어로서, 존재의 언어는 침묵의 언어(=들음Hören, 말 걸어옴Zuspruch)다. 그가 생각하는 시인의 사명은 시의 본질을 시작詩作하는 것, 또는 존재의 깊이에 대한 신비 체험을 깨닫고 드러내는 것이다. 한편, 릴케 중기를 특징짓고 사물의 관조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시들은 내면성과 주관성을 근거로 하는 전통적인 서정시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새로운 양식이며, 이는 릴케가 자신의 문학과 삶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신시집(Neue Gedichte)의 새로움은 릴케 개인의 차원만이 아니라, 독일 서정시 발전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에 놓인다. 다음 시를 보자.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진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을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로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가을날」(『형상시집』) 전문
도입부에 시상이 집약된 이 시는 존재의 소리에 대한 시인의‘말함’이다. 나직하게 부르는 소리의 공명共鳴은 가을의 시간에 온전히 모아져 그 깊이와 울림을 더한다. 시간의 흐름으로 말하자면 계절의 변화만한 게 없다. 이는 자연과 우주의 비밀이며 운행運行으로서 시가 아름다운 이유이기도 하다.아름다움은 존재 사건이 일으킨 빛의 파문이다. … 변화 무쌍한 존재를 드러내는 최고의 방식이 시 곧 포이에시스라면 시는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인간이 만들어 낸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김동규,「시가 아름다운 이유-하이데거 시론을 중심으로」). 시는 지상의 인간이 고안해 낸 최상의 언어이자 마음의 무늬이며 결이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다는 것은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그대의 해시계 위에는 하루의 온시간이 동시에,/ 동시에 현실적으로, 깊은 균형 속에 서 있다./ 마치 모든 시간이 무르익어 풍요로운 듯.,「자오선의 천사」)고들녘엔 바람을 놓아 주며, 신성한 포도주에 맛이 스며드는 순간이다. 시인은 때時를 아는 자다. 가을을 맞이하기까지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다. 미완의 인간이 보다 완전한 그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진리가 도래하는 가을날의 (유)금빛은 완미完美한 주에 대한 부름Rufen이 요청되는 시간이다. 사물이 언어가 되는 이 가을은 무엇보다과일을 맛볼 때 죽은 이들의 비밀, 삶과 죽음의 전체성의 비밀이 밝혀(엄선애,「릴케의『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에 나타난 동물, 꽃과 과일 모티프」)지는 데에 무엇보다 그 진의가 있다. 허공을 향해 점점이 퍼져 가는 과향果香은 가을의 시간을 더욱 아름답고 위대하며 신비로운 것으로 화化하게 한다. 시인은 존재의 언어를 찾아 나서기 위해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맨다. 그 시인의 집에 거居하는 한 모험은 피할 수 없다. 시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잠자지 않으며 읽고, 긴 편지를 쓰는 이에게만 발견될 것이다. 릴케의「가을날」은 고독과 불안, 그리고현존재의 불가사의한 깊이에 대한 경외감(게오르그 짐멜,『렘브란트-예술철학적 시론』)으로 가득차 있다.
2.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a. 예술작품은 무한히 고독한 것으로서, 비평으로 도달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오직 사랑만이 그것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서 공평할 수가 있습니다. (1903.4.23. 이탈리아 피사 근교)
b. 모든 일에서 초보자인 젊은 사람들은 아직 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온 존재를 걸고, 그들의 고독하고 불안하며 위를 향하여 맥박치는 심장의 주위에 집중된 모든 힘을 다하여 그들은 사랑하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인생의 깊숙한 내부에 이르는 고독입니다. (1904.5.4. 이탈리아 로마)
c.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십시오. 당신에게 글을 쓰라고 명령하는 근거를 찾아내십시오. 그것이 당신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펴고 있는지를 살펴 보십시오. 글쓰기를 거부당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는지를 스스로에게 고백해 보십시오.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이 맞는 밤의 가장 고요한 시간에나는 쓰지 않으면 안되는가라고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 당신이 보고, 체험하고, 사랑하고, 그리고 잃는 것을 마치 인류 최초의 사람처럼 표현하도록 노력하십시오. (1903.2.17. 프랑스 파리)
d. 지금은 물음을 살아가십시오. 그렇게 하면 아마도 당신은 차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먼 미래의 어느 날, 해답 속으로 들어가서 해답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 고독에서야말로 당신은 당신의 모든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1903.7.16. 독일 브레멘 근교)
e. 내 생명 속을 뚫고 탄식도 한숨도 없이/ 새까만 아픔이 떨면서 지나간다./ 내 꿈의 정결한 꽃보라는/ 내 고요한 나날의 축성식이어라.// 그러나 커다란 물음이 자주/ 내 오솔길을 가로지른다. 나는 몸이 움츠러들고/ 추위에 떨며 지나간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숫가를 지나듯이.// 그때 슬픔 하나가 내 머리 위로 갈앉아 온다./ 때때로 별 하나가 깜빡거린다./ 빛이 아쉬운 여름밤의 잿빛처럼 우울하여라.// 하여, 나의 손은 사랑을 더듬는다./ 뜨거운 내 입이 찾아낼 수 없는 음향이 되어/ 나는 기도하고 싶어라….(프란츠 카푸스,「소네트」)
3. [말테의 수기]
a. 나는 늘 돌아다녔다. 내가 얼마나 많은 도시들을, 도시의 구역들과 공동묘지, 다리, 골목들을 돌아다녔는지 하늘은 알려나.
b. 시는 기다려야 한다. 한평생을.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오래 살아서 의미와 단맛을 모아야 한다. 그러고 나면, 맨 마지막에 좋은 시가 겨우 열 줄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시는,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경험(체험)이다. 시 한 줄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도시와 사람과 사물을 봐야 한다. 동물들을 알아야 한다. 새들이 어떻게 나는지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작은 꽃들이 아침에 피어날 때의 몸짓도 알아야 한다.
c. 그것들(추억들)이 우리들 안에서 피가 될 때, 시선과 몸짓이 되고, 이름이 없어져 우리 자신과 구별할 수 없게 될 때, 그때 비로소 매우 드문 시간에 시의 첫 낱말이 그 한가운데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d. 내게는 내가 몰랐던 어떤 내면이 있다. 어제 모든 것이 그 안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나는 모른다.
e. 시인의 사명은변용에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옮기는 변용은 지상의 삶이 일회적이기에 의미가 있다. 변용의 중요성은 보이지 않으면서 다시 한번 살아나는 것이다. 무상한 사물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정신화하는 것이 시적 변용의 사명이다. 천사의 눈길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초월적인 것이다. 지상의 무상한 사물들은 천사의 눈길 아래에서 구원을 받는다. 천사는 인간으로서 시인을 돌아보게 만드는 존재다.
f. 릴케의 천사는 보이지 않는 것에서 더 높은 차원의 현실 인식을 바라는 존재, 완전한 존재의 다른 이름이다. 인간 세계의 끝이자,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경계에 있는 존재다.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옮아가는 변용이 자기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피조물이다. 천사와 변용은 연관이자 열린 장이며, 이별과 같은 토대를 말한다.
g. 고독은 가장 순화된 정신세계가 임하는 곳으로서 사랑이다. 순수한 시와 사랑은 인생의 내부까지 깊이 파고드는 고독이다. 고독은 삶의 에토스이며 진정한 자유다. 고독과 같은 인간 속에 있는 자연과 신비 체험만이 인간의 유일한 의지처이자 고향이다. 고향으로서 고독은 존재의 모든 연관을 모아들이는 것이다. 시인=여성=생명=창조.
h. 이 세상을 찬미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언어다. 이 세상은 시인에 의해 말해지고 읽혀져야 비로소 그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바로 사물의 구원이 이루어진다.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변용시키는 것. 여기서 보이는 것은 우리의 눈에 비치거나 이데올로기의 망에 갇혀 있는 사물들의 세계이고, 이것들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변용시키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식과 예술적 형상화 과정을 통해 사물이 타자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변용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의 의식에서 다른 의식으로 전달되는 운동성이다.
4. 사랑의 시학: 릴케, [사랑의 노래]
사랑의 노래 Liebes-lied (『신시집』제1권)
그대 영혼을 건드리지 않은 채
어떻게 내 영혼을 간직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나의 영혼이 그대를 넘어 다른 사물로 갈 수 있을까요?
아, 어두운 곳, 어느 잃어버린 사물 곁에
당신의 깊은 마음이 흔들릴 때에도 움직이지 않는
외진 한적한 곳에
나의 영혼을 기꺼이 간직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대와 나, 우리를 건드리는 모든 것들이
두 개의 줄로부터 한 줄기 음을 이끌어내는
바이올린 활처럼 우리를 함께 붙잡고 있습니다.
어떤 악기에 우리는 매어져 있나요?
그리고 어느 바이올린 연주자의 손에 쥐어져 있나요?
오, 감미로운 노래여. (김현충譯)
Q. 마음이 사물이라면, 나는 어떤 사물과 가장 많이 닮아 있는가?
마음의 세 겹: 느낌/생각/뜻
①느낌: 몸에서 마음으로 들어가는 첫 마당. 마음의 가장자리.
②생각: 느낌에 비해 서늘하고 고요한 마음의 움직임. 모든 것을 분별하는 마음의 힘-속살.
③뜻: 생각과 느낌을 끌고 가는 마음의 힘. (몸과) 마음의 뼈대-알맹이-노른자.
■ 한 편의 시는 하나의 점이다. 그러나 시를 구성하고 있는 행과 행간 사이엔 무수한 (마음의) 선과 면, 입자와 파동이 있다. 이 시는 네 개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사랑은 곧 영혼이며 아름다운 음악이자 화음-노래, 연주라는 사실. 노래는 (현)존재 Gesang ist Dasein. 어떻게 죽을 자들the mortal이 노래할 수 있는가?어느 바이올린 연주자의 손에 쥐어져 있나요?는 인간의 근원적인 존재에 대한 질문이다. 차이를 생성하는 힘으로서 사랑은 둘을 하나로 이어주는 현으로, 떨림과 울림의 공명 현상이다. 바이올린과 피아노와 첼로가 각기 하늘-인간-땅을 표상하는 악기라면 이 시에서 바이올린은 천상-천사의 악기다. 말이 없는 곳에는 사물도 없다. 마음의 매개체로서 사물은, 말은 어디에 있는가? 시는 그 말과 사물의 사이존재에 해당한다.
[더 읽을거리]
그림자 속에서도/ 칠현금을 손에 들어본 자만이/ 예감하며/ 무한한 찬미를 바칠 수가 있다.// 죽은 자들과 함께 양귀비를,/ 그 죽은 자들의 양귀비를 먹어본 자만이/ 가장 나직한 울림도/ 다시는 잃지 않는다.// 못 속에 비치는 반영은/ 눈에서 홀연히 사라지지만/ 그 참모습을 알아라.// 두 세계 안에서/ 목소리는 비로소/ 영원해지고 부드러워진다.
-릴케,「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제1권 9번
모든 눈으로 생물들은/ 열린 세계를 보고 있다. 우리들 인간의 눈만이/ 반대 방향을 보는 듯,/ 그들의 자유로운 출구를, 덫이 되어 둘러막고 있다./ 출구 밖에〈있는〉것, 그것을 우리는/ 동물의 표정에서 읽을 뿐이다. 어린아이 때부터 우린 이미 아이의 등을 돌려놓고 형상의 세계를 뒤쪽으로 보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동물의 얼굴에 깊이 깃들어 있는 열린 세계를 보지 못하게 한다./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그 세계를.// 죽음을 보는 것은 우리들뿐이다. 자유로운 존재인 동물은 언제나 몰락을 뒤에 두고/ 앞에는 신을 보고 있다./ 걸을 때에는 영원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마치 샘물이 흘러가듯이…
-릴케,「두이노의 비가」(제8비가) 부분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謙虛한 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肥沃한/ 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김현승,「가을의 기도」전문
라이너어·마리아·릴케,/ 당신의 눈은 보고 있다./ 天使들이 겨울에도 얼지 않는 손으로/ 나무에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을,/ 죽어간 少年의 등 뒤에서/ 또 하나의 작은 心臟이 살아나는 것을,/ 라이너어·마리아·릴케,/ 당신의 눈은 보고 있다.
-김춘수,「릴케의 章」부분
德萬 아버지는 말씀하셨지요
만 벼랑에 핀 홍매가 말없이 지고 나면 무릎을 펼 수 없어 나이테처럼 방안을 맴돌고 물음은 물가 능수버들 아래 외로 선 왜가리가 왜왜 보이지 않는지 먼 산 능선이 꿈처럼 다가설 때 두엄과 꽃이 왜 발 아래 함께 놓여 있는지
達蓮 어머니에 대한 궁금은 앵두 하나 없는 밤의 우물가에 몰래 흘린 눈물 이후 단 한 번의 말도 없는 손 다시는 펼 수 없는 축생의 손가락 산수유나무 그늘 아래 먹이를 찾는 길고양이처럼 길 잃은 나는 왜 먼동이 튼 아침마다 십이지신상을 돌고 돌며 천부경을 음송하는지 좀어리연이 왜 낮은 땅 오래된 못에서 피어나는지 어느 여름 말산의 그 길이 왜 황토빛이고 음지마인지
해맞이공원을 빠져나오다 문득, 사리함이 아름답다는 생각
-김상환,「왜왜」전문
참고문헌
라이너 마리아 릴케, 두이노의 비가-릴케시선집, 손재준 옮김, 열린책들, 2016.
―,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송영택 옮김, 문예출판사, 2021.
―, 말테의 수기, 안문영 옮김, 열린책들, 2021.
마르틴 하이데거(신상희 옮김), 숲길Holzwege, 나남, 2010.
김현충, 릴케의 신시집(Neue Gedichte)에 나타난 사물과 의미, 한양대 행당논집 제2집, 1986.
박유정, 존재의 소리와 고독: 하이데거와 릴케, 철학논집 제28집, 2012.
안상원, 종교적 상징과 예술사물-릴케의『신시집』을 중심으로, 헤세연구 제15집, 2007. 기타
♣ 차시 예고
10회(6.07.) 이태호 (통청원장/철학박사) 道家의 사랑(2) 11회(6.14.) 금교영 (전 한의대교수/철학박사) 사랑의 감정들 |
그것은 한 마리 뻐꾹새가 서둘러 날아간 자두나무
R.M.릴케 -릴케,「이별」
0. 꽃은 피어도 소리가 없고/ 새는 울어도 눈물이 없고/ 사랑은 불타도 연기가 없더라.// 장미가 좋아 꺾었더니 가시가 있고/ 친구가 좋아 사귀었더니 이별이 있고/ 세상이 좋아 태어났더니 죽음이 있더라.// 시인이라면 그대에게 한 편의 시를 드렸으리…/ 나 목동이라면 그대에게 한 잔의 우유를 드렸으리…/ 나!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자이기에 드릴 것은 오직 사랑 뿐이리… (마야 안젤루,「오직 드릴 것은 사랑 뿐」)
1. 릴케의 시(「가을날」)와 시론
라이너 마리아 릴케 (1875~1926. 본명: 르네 카를 빌헬름 요한 요제프 마리아 릴케)는 독일시문학사에서 처음으로〈나〉를 탐구 대상으로 한 시인이다. 그는 시인의 사명과 본질을 가장 잘 인식하고 자각한, 궁핍한 시대의 시인이다. 릴케에게 시를 쓰고 시인이 된다는 것은 생명이 말하는 음성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고, 고요(「단 한 번 만이라도 완전히 고요해진다면」)와 고독의 세계내면공간(모든 존재를 관통하여 뻗어있는 하나의 공간. 심혼의 공간. 체념. 깨달음에 이르는 마음)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시와 철학이 공속하는 고독은 존재의 근원으로 가는 실존적 언어로서, 존재의 언어는 침묵의 언어(=들음Hören, 말 걸어옴Zuspruch)다. 그가 생각하는 시인의 사명은 시의 본질을 시작詩作하는 것, 또는 존재의 깊이에 대한 신비 체험을 깨닫고 드러내는 것이다. 한편, 릴케 중기를 특징짓고 사물의 관조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시들은 내면성과 주관성을 근거로 하는 전통적인 서정시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새로운 양식이며, 이는 릴케가 자신의 문학과 삶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신시집(Neue Gedichte)의 새로움은 릴케 개인의 차원만이 아니라, 독일 서정시 발전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에 놓인다. 다음 시를 보자.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진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을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로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가을날」(『형상시집』) 전문
도입부에 시상이 집약된 이 시는 존재의 소리에 대한 시인의‘말함’이다. 나직하게 부르는 소리의 공명共鳴은 가을의 시간에 온전히 모아져 그 깊이와 울림을 더한다. 시간의 흐름으로 말하자면 계절의 변화만한 게 없다. 이는 자연과 우주의 비밀이며 운행運行으로서 시가 아름다운 이유이기도 하다.아름다움은 존재 사건이 일으킨 빛의 파문이다. … 변화 무쌍한 존재를 드러내는 최고의 방식이 시 곧 포이에시스라면 시는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인간이 만들어 낸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김동규,「시가 아름다운 이유-하이데거 시론을 중심으로」). 시는 지상의 인간이 고안해 낸 최상의 언어이자 마음의 무늬이며 결이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다는 것은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그대의 해시계 위에는 하루의 온시간이 동시에,/ 동시에 현실적으로, 깊은 균형 속에 서 있다./ 마치 모든 시간이 무르익어 풍요로운 듯.,「자오선의 천사」)고들녘엔 바람을 놓아 주며, 신성한 포도주에 맛이 스며드는 순간이다. 시인은 때時를 아는 자다. 가을을 맞이하기까지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다. 미완의 인간이 보다 완전한 그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진리가 도래하는 가을날의 (유)금빛은 완미完美한 주에 대한 부름Rufen이 요청되는 시간이다. 사물이 언어가 되는 이 가을은 무엇보다과일을 맛볼 때 죽은 이들의 비밀, 삶과 죽음의 전체성의 비밀이 밝혀(엄선애,「릴케의『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에 나타난 동물, 꽃과 과일 모티프」)지는 데에 무엇보다 그 진의가 있다. 허공을 향해 점점이 퍼져 가는 과향果香은 가을의 시간을 더욱 아름답고 위대하며 신비로운 것으로 화化하게 한다. 시인은 존재의 언어를 찾아 나서기 위해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맨다. 그 시인의 집에 거居하는 한 모험은 피할 수 없다. 시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잠자지 않으며 읽고, 긴 편지를 쓰는 이에게만 발견될 것이다. 릴케의「가을날」은 고독과 불안, 그리고현존재의 불가사의한 깊이에 대한 경외감(게오르그 짐멜,『렘브란트-예술철학적 시론』)으로 가득차 있다.
2.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a. 예술작품은 무한히 고독한 것으로서, 비평으로 도달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오직 사랑만이 그것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서 공평할 수가 있습니다. (1903.4.23. 이탈리아 피사 근교)
b. 모든 일에서 초보자인 젊은 사람들은 아직 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온 존재를 걸고, 그들의 고독하고 불안하며 위를 향하여 맥박치는 심장의 주위에 집중된 모든 힘을 다하여 그들은 사랑하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인생의 깊숙한 내부에 이르는 고독입니다. (1904.5.4. 이탈리아 로마)
c.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십시오. 당신에게 글을 쓰라고 명령하는 근거를 찾아내십시오. 그것이 당신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펴고 있는지를 살펴 보십시오. 글쓰기를 거부당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는지를 스스로에게 고백해 보십시오.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이 맞는 밤의 가장 고요한 시간에나는 쓰지 않으면 안되는가라고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 당신이 보고, 체험하고, 사랑하고, 그리고 잃는 것을 마치 인류 최초의 사람처럼 표현하도록 노력하십시오. (1903.2.17. 프랑스 파리)
d. 지금은 물음을 살아가십시오. 그렇게 하면 아마도 당신은 차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먼 미래의 어느 날, 해답 속으로 들어가서 해답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 고독에서야말로 당신은 당신의 모든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1903.7.16. 독일 브레멘 근교)
e. 내 생명 속을 뚫고 탄식도 한숨도 없이/ 새까만 아픔이 떨면서 지나간다./ 내 꿈의 정결한 꽃보라는/ 내 고요한 나날의 축성식이어라.// 그러나 커다란 물음이 자주/ 내 오솔길을 가로지른다. 나는 몸이 움츠러들고/ 추위에 떨며 지나간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숫가를 지나듯이.// 그때 슬픔 하나가 내 머리 위로 갈앉아 온다./ 때때로 별 하나가 깜빡거린다./ 빛이 아쉬운 여름밤의 잿빛처럼 우울하여라.// 하여, 나의 손은 사랑을 더듬는다./ 뜨거운 내 입이 찾아낼 수 없는 음향이 되어/ 나는 기도하고 싶어라….(프란츠 카푸스,「소네트」)
3. [말테의 수기]
a. 나는 늘 돌아다녔다. 내가 얼마나 많은 도시들을, 도시의 구역들과 공동묘지, 다리, 골목들을 돌아다녔는지 하늘은 알려나.
b. 시는 기다려야 한다. 한평생을.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오래 살아서 의미와 단맛을 모아야 한다. 그러고 나면, 맨 마지막에 좋은 시가 겨우 열 줄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시는,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경험(체험)이다. 시 한 줄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도시와 사람과 사물을 봐야 한다. 동물들을 알아야 한다. 새들이 어떻게 나는지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작은 꽃들이 아침에 피어날 때의 몸짓도 알아야 한다.
c. 그것들(추억들)이 우리들 안에서 피가 될 때, 시선과 몸짓이 되고, 이름이 없어져 우리 자신과 구별할 수 없게 될 때, 그때 비로소 매우 드문 시간에 시의 첫 낱말이 그 한가운데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d. 내게는 내가 몰랐던 어떤 내면이 있다. 어제 모든 것이 그 안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나는 모른다.
e. 시인의 사명은변용에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옮기는 변용은 지상의 삶이 일회적이기에 의미가 있다. 변용의 중요성은 보이지 않으면서 다시 한번 살아나는 것이다. 무상한 사물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정신화하는 것이 시적 변용의 사명이다. 천사의 눈길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초월적인 것이다. 지상의 무상한 사물들은 천사의 눈길 아래에서 구원을 받는다. 천사는 인간으로서 시인을 돌아보게 만드는 존재다.
f. 릴케의 천사는 보이지 않는 것에서 더 높은 차원의 현실 인식을 바라는 존재, 완전한 존재의 다른 이름이다. 인간 세계의 끝이자,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경계에 있는 존재다.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옮아가는 변용이 자기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피조물이다. 천사와 변용은 연관이자 열린 장이며, 이별과 같은 토대를 말한다.
g. 고독은 가장 순화된 정신세계가 임하는 곳으로서 사랑이다. 순수한 시와 사랑은 인생의 내부까지 깊이 파고드는 고독이다. 고독은 삶의 에토스이며 진정한 자유다. 고독과 같은 인간 속에 있는 자연과 신비 체험만이 인간의 유일한 의지처이자 고향이다. 고향으로서 고독은 존재의 모든 연관을 모아들이는 것이다. 시인=여성=생명=창조.
h. 이 세상을 찬미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언어다. 이 세상은 시인에 의해 말해지고 읽혀져야 비로소 그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바로 사물의 구원이 이루어진다.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변용시키는 것. 여기서 보이는 것은 우리의 눈에 비치거나 이데올로기의 망에 갇혀 있는 사물들의 세계이고, 이것들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변용시키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식과 예술적 형상화 과정을 통해 사물이 타자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변용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의 의식에서 다른 의식으로 전달되는 운동성이다.
4. 사랑의 시학: 릴케, [사랑의 노래]
사랑의 노래 Liebes-lied (『신시집』제1권)
그대 영혼을 건드리지 않은 채
어떻게 내 영혼을 간직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나의 영혼이 그대를 넘어 다른 사물로 갈 수 있을까요?
아, 어두운 곳, 어느 잃어버린 사물 곁에
당신의 깊은 마음이 흔들릴 때에도 움직이지 않는
외진 한적한 곳에
나의 영혼을 기꺼이 간직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대와 나, 우리를 건드리는 모든 것들이
두 개의 줄로부터 한 줄기 음을 이끌어내는
바이올린 활처럼 우리를 함께 붙잡고 있습니다.
어떤 악기에 우리는 매어져 있나요?
그리고 어느 바이올린 연주자의 손에 쥐어져 있나요?
오, 감미로운 노래여. (김현충譯)
Q. 마음이 사물이라면, 나는 어떤 사물과 가장 많이 닮아 있는가?
마음의 세 겹: 느낌/생각/뜻
①느낌: 몸에서 마음으로 들어가는 첫 마당. 마음의 가장자리.
②생각: 느낌에 비해 서늘하고 고요한 마음의 움직임. 모든 것을 분별하는 마음의 힘-속살.
③뜻: 생각과 느낌을 끌고 가는 마음의 힘. (몸과) 마음의 뼈대-알맹이-노른자.
■ 한 편의 시는 하나의 점이다. 그러나 시를 구성하고 있는 행과 행간 사이엔 무수한 (마음의) 선과 면, 입자와 파동이 있다. 이 시는 네 개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사랑은 곧 영혼이며 아름다운 음악이자 화음-노래, 연주라는 사실. 노래는 (현)존재 Gesang ist Dasein. 어떻게 죽을 자들the mortal이 노래할 수 있는가?어느 바이올린 연주자의 손에 쥐어져 있나요?는 인간의 근원적인 존재에 대한 질문이다. 차이를 생성하는 힘으로서 사랑은 둘을 하나로 이어주는 현으로, 떨림과 울림의 공명 현상이다. 바이올린과 피아노와 첼로가 각기 하늘-인간-땅을 표상하는 악기라면 이 시에서 바이올린은 천상-천사의 악기다. 말이 없는 곳에는 사물도 없다. 마음의 매개체로서 사물은, 말은 어디에 있는가? 시는 그 말과 사물의 사이존재에 해당한다.
[더 읽을거리]
그림자 속에서도/ 칠현금을 손에 들어본 자만이/ 예감하며/ 무한한 찬미를 바칠 수가 있다.// 죽은 자들과 함께 양귀비를,/ 그 죽은 자들의 양귀비를 먹어본 자만이/ 가장 나직한 울림도/ 다시는 잃지 않는다.// 못 속에 비치는 반영은/ 눈에서 홀연히 사라지지만/ 그 참모습을 알아라.// 두 세계 안에서/ 목소리는 비로소/ 영원해지고 부드러워진다.
-릴케,「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제1권 9번
모든 눈으로 생물들은/ 열린 세계를 보고 있다. 우리들 인간의 눈만이/ 반대 방향을 보는 듯,/ 그들의 자유로운 출구를, 덫이 되어 둘러막고 있다./ 출구 밖에〈있는〉것, 그것을 우리는/ 동물의 표정에서 읽을 뿐이다. 어린아이 때부터 우린 이미 아이의 등을 돌려놓고 형상의 세계를 뒤쪽으로 보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동물의 얼굴에 깊이 깃들어 있는 열린 세계를 보지 못하게 한다./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그 세계를.// 죽음을 보는 것은 우리들뿐이다. 자유로운 존재인 동물은 언제나 몰락을 뒤에 두고/ 앞에는 신을 보고 있다./ 걸을 때에는 영원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마치 샘물이 흘러가듯이…
-릴케,「두이노의 비가」(제8비가) 부분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謙虛한 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肥沃한/ 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김현승,「가을의 기도」전문
라이너어·마리아·릴케,/ 당신의 눈은 보고 있다./ 天使들이 겨울에도 얼지 않는 손으로/ 나무에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을,/ 죽어간 少年의 등 뒤에서/ 또 하나의 작은 心臟이 살아나는 것을,/ 라이너어·마리아·릴케,/ 당신의 눈은 보고 있다.
-김춘수,「릴케의 章」부분
德萬 아버지는 말씀하셨지요
만 벼랑에 핀 홍매가 말없이 지고 나면 무릎을 펼 수 없어 나이테처럼 방안을 맴돌고 물음은 물가 능수버들 아래 외로 선 왜가리가 왜왜 보이지 않는지 먼 산 능선이 꿈처럼 다가설 때 두엄과 꽃이 왜 발 아래 함께 놓여 있는지
達蓮 어머니에 대한 궁금은 앵두 하나 없는 밤의 우물가에 몰래 흘린 눈물 이후 단 한 번의 말도 없는 손 다시는 펼 수 없는 축생의 손가락 산수유나무 그늘 아래 먹이를 찾는 길고양이처럼 길 잃은 나는 왜 먼동이 튼 아침마다 십이지신상을 돌고 돌며 천부경을 음송하는지 좀어리연이 왜 낮은 땅 오래된 못에서 피어나는지 어느 여름 말산의 그 길이 왜 황토빛이고 음지마인지
해맞이공원을 빠져나오다 문득, 사리함이 아름답다는 생각
-김상환,「왜왜」전문
참고문헌
라이너 마리아 릴케, 두이노의 비가-릴케시선집, 손재준 옮김, 열린책들, 2016.
―,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송영택 옮김, 문예출판사, 2021.
―, 말테의 수기, 안문영 옮김, 열린책들, 2021.
마르틴 하이데거(신상희 옮김), 숲길Holzwege, 나남, 2010.
김현충, 릴케의 신시집(Neue Gedichte)에 나타난 사물과 의미, 한양대 행당논집 제2집, 1986.
박유정, 존재의 소리와 고독: 하이데거와 릴케, 철학논집 제28집, 2012.
안상원, 종교적 상징과 예술사물-릴케의『신시집』을 중심으로, 헤세연구 제15집, 2007. 기타
♣ 차시 예고
10회(6.07.) 이태호 (통청원장/철학박사) 道家의 사랑(2) 11회(6.14.) 금교영 (전 한의대교수/철학박사) 사랑의 감정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