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전 읽기]
♡ 아누룻다 경
여덟 가지 대인의 사유에 대한 부연 설명 1
16. "비구들이여, '이 법은 바라는 바가 적은[少慾] 자를 위한 것이지 바라는 바가 많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했는가?"
17.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바라는 바가 적지만 '사람들이 나를 바라는 바가 적은 자라고 알아주기를.' 하고 바라지 않는다.
만족할 줄 알지만 '사람들이 나를 만족할 줄 아는 자라고 알아주기를.' 하고 바라지 않는다.
한거(閑居)하지만 '사람들이 나를 한거하는 자라고 알아주기를.' 하고 바라지 않는다.
열심히 정진하지만 '사람들이 나를 열심히 정진하는 자라고 알아주기를.' 하고 바라지 않는다.
마음챙김을 확립했지만 '사람들이 나를 마음챙김을 확립한 자라고 알아주기를.' 하고 바라지 않는다.
삼매에 들었지만 '사람들이 나를 삼매에 든 자라고 알아주기를.' 하고 바라지 않는다.
통찰지를 갖추었지만 '사람들이 나를 통찰지를 갖춘 자라고 알아주기를.' 하고 바라지 않는다.
사량분별이 없지만 '사람들이 나를 사량분별이 없는 자라고 알아주기를.' 하고 바라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바라는 바가 적은[少慾] 자를 위한 것이지 바라는 바가 많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이런 이유로 그렇게 말했다."
<계속>
<앙굿따라 니까야> 제5권 [아누룻다 경(A8:30)]
어떤 착한 일, 잘한 일을 했을 때 알리고 싶은 마음은 인지사정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공익차원이 아니고 자기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떠벌리고 공표한다면 중생심의 발로이기에 환영받지 못합니다.
열심히 좋은 일을 하고도 생색을 내고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이런 경우는 스스로 복덕을 감하는 일일 것입니다.
공자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여기서 '성낼 온(慍)'이란 글자는 노여워하고 원망하고 불평불만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군자와 같이 수양이 된 수행자나 불자라면 남이 알아주던 안 알아주던 묵묵히 자기가 할 바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경문을 통하여 우리는 자랑보다는 겸손하고 하심하는 자세로 청허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어제 하도 많은 눈이 온다고 해서 마음의 대비를 했는데 뜻밖에 많이 내리지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심신의 안정과 건강과 안전 속에 대인의 사유를 하며 넉넉하고 여여한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