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날새와 함께하는, 2026년 3월 28일, 토요일입니다. 창세기 41장, 8, 9, 10, 11, 12,13절에서, '중매를 잘하려면'라는 제목으로 창세기 이야기를 드립니다.
8절: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9절: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
10절: 바로께서 종들에게 노하사 나와 떡 굽는 관원장을 친위대장의 집에 가두셨을 때에
11절: 나와 그가 하룻밤에 꿈을 꾼즉 각기 뜻이 있는 꿈이라
12절: 그 곳에 친위대장의 종 된 히브리 청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말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 사람에게 해석하더니
13절: 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되고 그는 매달렸나이다.” 아멘
애굽의 바로는 지난밤에 꾼 꿈 때문에 아침에 번민이 일어났습니다. 앉아도 마음이 뒤숭숭하고 일어나도 마음이 어수선하여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전부 불렀습니다. 대국인 애굽의 바로가 불러들인 것을 보면, 이들 점술사들은 모든 것을 예언하고 모든 것을 해석할 줄 안다라고 자부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현인'이라 하였으니 인품이라든지 지식이나 지혜가 나라 안에서는 이들을 따라올 지혜자들이 없었습니다. 컴퓨터로 말한다면 이들은 당대 최고의 '슈퍼컴퓨터'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로는 이들 점술가와 현인들에게 자신이 지난밤 꾼 꿈 이야기를 소상하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본래 점술가나 무당들이나 신접하였다는 자들은 정확하게 말을 잘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무당들이나 점술가들을 가리켜 '주절 거린다'하였습니다. 이들은 점궤나 주문을 욀 때 보면, '중얼중얼' 거립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점술가들은 정확하게 이야기를 잘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올해 여름에는 물을 가까이하지 말라는 점궤가 나왔으니 물을 가까이하지 마시오" 하고 말합니다. '물도 여러 가지입니다. 강물인지, 바닷물인지, 시냇물인지, 온천인지, 목욕탕인지..., 목욕탕도 집의 목욕탕인지 펜션이나 호텔의 목욕탕인지 알려줘야 하는데 그저 물을 조심하라'하고 두리뭉실하게 이야기합니다. 이건 하나의 예에 불과하지만 대체로 이런 식입니다.
그렇다면 애굽의 점술사나 현인들이, 왕이 꾼 꿈을 듣고 두리뭉실하게 해몽을 해주면 될 것 아니었겠습니까? 그런데 저들은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를 짐작해 보면, 첫째는 왕이 너무 생생하게 꾼 꿈이었음을 알았으며, 그리고 왕이 자신이 꾼 꿈이 무슨 뜻의 꿈인지 대충 해석을 듣고 말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들이 눈치채고는 두리뭉실하게 "그 꿈이 이러 이러하옵나이다" 하고 넘어갈 것이 아닌 것을 저들이 알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저들의 입을 막으신 것입니다. 저들이 왕이 듣기 좋은 말로 해석하면, 왕도 '그런가'하고 넘어가게 되면, 요셉이가 옥에서 불려 나오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구원을 베푸시는 구원 역사에 그 어떤 어둠의 세력이 틈타지 못하도록 간섭하신 것입니다. 요셉이 아니고는 바로의 꿈을 누구든지 해석하지 못하게 하셨으며..., 물론 저들은 바로의 꿈을 바르게 해석할 수도 없지만, 거짓으로라도 해석한답시고 덤벼드는 거짓 영이 틈타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바로의 꿈은 꿈쟁이인 요셉이가 해석하도록 하셨습니다. 지금 신약시대로 말하면 성경 말씀으로 풀도록 하신 것입니다. 요셉은 꿈쟁이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에 능하다'할지라도, 누가 요셉을 옥에서 불러내어 꿈으로 번뇌하는 바로 앞에 세우겠습니까? 요셉은 신분이 노예입니다. 그리고 바로의 신임을 한몸에 받고 있는 친위대장의 아내를 겁탈하려다가 옥에 갇혀 있는 죄수입니다. 참으로 하잘것없는 요셉을 누가 옥에서 꺼내어 바로 앞에 세울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지난 2년 동안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까맣게 잊어버려도 그냥 두셨습니다. 이제는 바로 앞에 요셉을 불러 세울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누구를 통해서 요셉을 바로 앞에 서도록 하였습니까? 술 맡은 관원장이었습니다. 그는 이년 전에 자신이 친위대장의 감옥에 갇쳐 있었을 때에 꿈을 꾸게 되었고, 그 꿈이 무슨 뜻인가, 근심하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불안하고 초조하여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요셉이 꿈을 해석하여 주었는데, 그 해석 그대로 자신도, 그리고 떡 굽는 관원장에게도 해석한 그대로 이루어졌던 것을 경험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그제야 요셉을 기억하고 바로에게 요셉을 천거하였으며, 요셉은 바로 앞에 설 수가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루하루 불안 속에 살아갑니다. '경제가 어렵다'라는 말은, 제가 철들고 지금까지 듣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항상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이런저런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건강한 사람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누가 병들어 어떻게 되었단다' 하는 이야기는, 누구든지 앉으면 배달부처럼 아는 사람들에게 퍼나릅니다. 그리고 텔레비전만 틀면 보고 싶어 보는 것도 아닌데 보험광고가 화면에 나타납니다. 암보험 교통사고 보험 무슨 보험하고 광고합니다. 이런 광고도 병과 사고에 대한 불안함을 갖고 살도록 만들어버립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할 때도 불안함은 있습니다.
그래서 걱정과 염려는 밥그릇 옆에 국그릇처럼 우리에게 따라다닙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기 때문에 자신도 언제 가는 죽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만 죽음은 싫기 때문에, 그렇다고 죽음을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아예 죽음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려고 하지 않고 체념하거나 생각을 기피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들은 이런저런 시원스럽게 마음에 풀지 못한 두려움과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 성도들은,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바로에게 이야기해 주게 되어, 그의 번민을 깨끗하게 풀어주고, 앞으로 바로가, 해야 할 일까지 명쾌하게, 알려 주었듯이, 우리 성도들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드릴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구주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세상 사람들이 만나야 염려와 근심과 불안 속에서 자유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죄가운데 살아가는 소망 없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중매해 주는 사람들입니다. 중매는 어렵지 않습니다. 내가 아는 예수님, 내가 믿는 예수님, 내게 이렇게 해주셨던 예수님, 죄인들을 불러주시고 억만의 죄를 대신 져 주신 예수님, 그리고 내가 받은 은혜를 그대로 전해 주면 됩니다. 똑같이 한날한시에 왕의 진노를 쌓게되어, 감옥에 들어왔으며 똑같이 한날 밤에 꿈을 꾸었으며, 똑같이 꿈 때문에 근심했던 이 두 사람 중에, '떡 맡은 관원장'은 목이 매달려 죽었지만,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의 해석대로 살아나서 다시 바로 곁에서 바로를 섬길 수 있었던 것은, 요셉을 바로에게 소개하라고 남은 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 역시 살아있음은 예수님을 소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 즉 '예수님을 중매하라'고 여기 살고 있습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소망이 없기 때문에 불안 속에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믿는 구주 예수님을 중매하는 자로 살도록 우리를 세상 사람들 가운데 세워주시고 사용해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하날새 : 하나님은 날마다 새 일을 행하신다.(사 4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