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
곽해룡
충전기가 내장된 강아지 다섯 마리
에너지가 만랩이 되어
저희끼리 뛰고 물고 구르다가
방전된 배터리를 채우러
벽에 기댄 채 드러누운 어미 개의 젖에
플러그를 들이댄다
어미 개의 배엔 아직도
빈 콘센트가 다섯 개
-《동시마중》 (2024 9·10월)
애벌레를 위하여
권영상
요즘
그 애 방문은 꼭 닫혀 있다.
아무도 가로막지 않지만
대체로 출입 금지다.
그 애는 은실로 만든 문을 꼭 닫고 앉아
무언가에 몰두해 있다.
그 애를 못 본 지 벌써 오래다.
어쩌면 꿈 한 가지를 공들여 키우고
있을지 모른다.
요즘은 그 애가 하는 일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나는 꽃 피우는 일을 잠시 멈추고 있다.
나는 그 애를 좋아한다.
볼일을 다 마치면
그 애는 닫힌 문을 열고 나를 향해
훨훨 날아올 테다.
-《시와 동화》 (2024 여름)
겨울을 먹다
김영서
곧
봄이 올 거야
점점
겨울이 작아질 거야
날마다
귤
오뎅
붕어빵
군고구마
겨울을 먹고 있거든
-《동시발전소》 (2024 겨울)
도깨비 가시의 비밀
김주안
가시인 줄 알았지?
사실은 발이야
발가락이 2개인
그 발로 나는 어디든 갈 수 있어
발자국 하나도 안 찍고
가까운 곳
먼 곳
가리지 않고
어디든 떠날 수 있지
가시가 아니라 발이라서
-《열린아동문학》 (2024 가을)
눈뭉치
문근영
솜뭉치는 이불이 되고
털실뭉치는 스웨터가 되는데
병호와 준서가
서로 던지며
싸우는 바람에
난
사고뭉치가 되었어
눈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개구리까지 톡톡』 (2024 상상)
바람의 길
선용
무턱대고 다니는 것 같아도
바람은 언제나
다니던 길로 다닌다
작은 발 살풋살풋
소리 없이 움직이며
바빠서 때로는 질러갈 때도
밟히는 것 없는지
쓰러진 것 없는지
뒤돌아보곤 한다
푸른 들판
한 송이 꺾인 풀꽃이
어디 있는가?
파란 발 가볍게 움직일 때마다
허리를 굽혔다 펴는
풀꽃들
-《동시 먹는 달팽이》 (2024 겨울)
천하장사
손동연
하늘로
돼지를 던져 올린다
개를 던져 올린다
양을 던져 올린다
소를 던져 올린다
말을 던져 올린다
내려와선
뒤집히거나
넙죽 엎드린
다섯* 동물들.
일곱 살 영우도
천하장사다,
윷놀이 판에서는.
* 다섯 : 윷놀이의 ‘도, 개, 걸, 윷, 모’ 명칭은 동물에서 따온 것으로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은 양, 윷은 소, 모는 말을 가리킨다.
-《열린아동문학》 (2024 봄)
다들 잘 왔는데
정혜진
겨울이
헤어지기 아쉬워
봄을 데려다 놓고 갔다.
지금 막
문지방 넘어온 식구들
복수초
매화
냉이
달래
수선화
개나리
산수유
조금 더 느긋하게 기다려야겠다.
-『흔들어야 깃발이지』 (2024 광주·전남아동문학인회 제35호)
어린이가 기준이다
조영수
홍도에 갔을 때
민박집 아저씨가
홍도는 초등학교가 기준이라고 했다
기준만 잘 기억하면 길 잃을 일이 없다고 했다
원추리꽃 노란 둘레길도
먼 바다를 볼 수 있는 깃대봉도
노을이 오래 머무는 몽돌해수욕장도
초등학교에서 길이 시작된다고 했다
그 말이
산을 날개 삼아 날아오를
새의 몸통처럼 아늑한
흑산초등학교 홍도분교장
전교생 세 명의 어린이가
홍도의 기준이라는 말로 들렸다.
-『동시마중』 (2024 11·12월 올해의 동시)
굴뚝새
홍현숙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리려나 보다
꼬리를 바짝 세우고
가장 시끄럽게 기합을 넣는다
삐이이이이~
찌이이이이~
-『쥐똥나무에게 하는 고백』 (2024 초록달팽이)
출처: 한국동시문학회공식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이묘신
첫댓글 2월 <이달의 좋은 동시>에 선정되신 선용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까페가 조용하더니 2월 <이달의 좋은 동시>가긴 호흡을 시작했네요.청바지 소년 선용 선생님의 글이 선정됐군요.기쁨을 함께 합니다.
첫댓글 2월 <이달의 좋은 동시>에 선정되신 선용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까페가 조용하더니
2월 <이달의 좋은 동시>가
긴 호흡을 시작했네요.
청바지 소년 선용 선생님의 글이 선정됐군요.
기쁨을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