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자인 박정경씨에 의하면, 정가는 전통악기, 특히 거문고에 맞춰 시조를 창으로 읊던 옛 선비들과 기녀들의 풍류라고 합니다. 가장 유명한 가객으로는 조선시대 황진이를 들 수 있고, 김천택, 김수장, 박후웅, 이세춘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재미난 이야기는 황진이에 얽힌 것으로, 백호 임제가 서북도 병마평사로 임명되어 임지로 부임하는 길에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가 시조 한 수를 짓고 제사지냈던 일과 기생 한우(寒雨)와 시조를 주고받은 일화가 유명합니다. 그가 병마평사로 즉시 부임하지 않고, 황진이 무덤에서 삼일간 유유자적하는 바람에 선조의 노염을 타서, 파직당하고, 그후 벼슬에 환멸을 느껴 유람을 시작했으며 가는 곳마다 많은 일화를 남겼다고 합니다. 사대부가 한낱 기생에게 시조를 바치고 제사를 지냈다는 일로 비난 받고, 파직당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난다. 홍안(紅顔)을 어듸 두고 백골(白骨)만 무쳣난이. 잔(盞) 자바 권(勸)할리 업스니 그를 슬허하노라.“ 백호 임제가 황진이(黃眞伊) 무덤 앞에서 읊은 시조입니다. 현대어로 바꾸면 다음과 같습니다.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느냐 누었느냐
홍안(紅顔)을 어디 두고 백골(白骨)만 묻혔는고
잔(盞) 잡아 권할 이 없으니 이를 슬퍼하노라.
임제는 세상을 누비며 거침없이 풍류를 즐기는 로맨티스트였습니다. 기생 한우(寒雨)와 주고 받은 시조 또한 유명합니다.
북천(北天)이 맑다커늘 우장(雨裝) 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
조선의 풍류남아 백호(白湖) 임제(1549~87)가 기생 한우(寒雨)에게 지어 준 시입니다. ‘찬비’는 기생의 이름 ‘한우(寒雨)’를 동시에 의미하는 중의적(重意的) 표현입니다.
이에 재색을 겸비한 데다 시문에도 능하고 거문고와 가야금에도 뛰어났던 한우는 이렇게 화답했습니다.
어이 얼어 자리 무슨 일로 얼어자리
원앙침 비취금을 어디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
백호 임제는 원대한 꿈을 펼치지 못하고 만 39세라는 젊은 나이에 아깝게 요절했지만, 여인들과 많은 염문과 정화(情話)를 뿌리고 간 주인공입니다.
그는 시문에 능하여 주옥 같은 작품 700여수를 남겼습니다. 한시뿐만 아니라, 시조도 6수를 남겼는데 모두가 여인들과의 사랑 노래입니다. 백호 임제의 묘는 나주시 다시면 신걸산 기슭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