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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음악이 없는 걸까 (爲什沒有音樂)]]
-위화(余華)-
내 친구 마얼(馬兒)은 점심이나 저녁 때면 언제나 똑 같은 모습을 한다. 입을 헤 벌린 채 식탁 앞으로 걸어온다. 그가 입을 벌리고 있다고 해서 웃는 건 아니다. 허리를 굽혀 의자에 앉은 다음 머리를 숙인다. 머리를 식탁과 평행이 되는 지점까지 숙이고 음식을 입에 넣기 시작한다. 음식을 씹는 소리는 아주 조용하지만, 음식물을 입 속으로 들여보내는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다. 밥을 다 먹어치우고서야 그는 머리를 들어올린다. 밥을 다 먹지 않았다면 이마와 식탁의 평행을 절대로 파괴하지 않는다. 밥 먹을 때는 말을 걸어도 머리를 숙인 채 대꾸한다.
그래서 마얼이 밥 먹는 걸, 우리는 식사로 들어간다고 한다. 식사로 들어간다는 것은 사실 매우 예의를 차린 말이다. 적절한 옷을 입고 식탁에 앉아 적절한 방식으로 먹어야 할 것을 먹는다면, 매우 고상한 말이 된다.
이에 비교하면 밥을 먹는다는 표현은 대충 그저 그런 말이다. 식탁에 앉아서 먹을 수도 있고, 문 앞에 앉아서 먹을 수도 있고, 밥그릇을 들고 이웃집에 가서 먹을 수도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늘상 하던 게 이런 것이다. 어떤 때는 밥그릇을 들고 변소에 들어가 똥을 누면서 밥을 먹기도 했다.
마얼은 이때껏 밥을 먹은 적이 없다. 그는 언제나 식사로 들어갔다. 우리 모두 기껏해야 열 살 될까 말까 했을, 그를 처음 만나던 그 무렵부터, 그는 식사로 들어갔다. 그는 글짓기를 하듯이 진지하게 먹었다. 머리를 숙인 채. 그의 이마는 그때에도 식탁과 평행을 이루었다. 먹고 나면 손에 든 밥그릇은 씻은 듯이 깨끗했고, 식탁도 닦아낸 것 같았으며, 먹다 남은 생선 가시는 접시에 생선과 똑 같은 모양으로 그대로 누워있었다.
이런 게 바로 마얼이었다.
우리는 길을 걸을 때면 언제나 마치 기차 시간에라도 대는 것처럼 빨랑빨랑 서두른다. 그러나 마얼은 늘 서두르지 않고 느릿느릿 길을 걷는다. 이런 게 바로 그였다. 무슨 일을 하든지 급한 게 없었지만, 동시에 조금의 빈틈이 없었다. 말할 때도 발음이 또렷또렷하고 속도도 언제나 일정했다. 게다가 단어 고르는 데도 대단히 신중했다.
마얼은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생각했다.
스물여섯 살 때, 그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뤼이안(呂媛)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함께 밥을 먹었다. 우리가 뤼이안을 부른 것이다.
뤼이안은 또 다른 아가씨 두 명을 더 데리고 나왔다. 우리 쪽에는 남자가 다섯이었다. 우리는 모두 마음속으로 그녀들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있었다. 세 명의 아가씨도 마음속으로 우리를 고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밥을 먹고 하잘것없는 잡담을 늘어놓기도 하고 히히덕거리기도 했다. 사람들마다 힘껏 자신을 뽐내려 했다. 남자들의 말솜씨는 유창했고 여자들의 교태는 사랑스러웠다.
다만 마얼 혼자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그가 진지하게 식사로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머리는 곧바로 식탁과 평행이 되었다. 식사가 끝난 뒤에도 그는 잔잔한 미소를 흘리며 우리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날 저녁 그는 겨우 몇 마디 했을 뿐이다. 들어간 요리가 너무 적다고. 겨우 새우 여섯 마리 먹고 맥주 한 잔밖에 못 마셨다고.
우리는 금방 그의 존재를 잊어버렸다. 처음에는 이따금씩 그에게 언뜻 눈길을 주기도 했다.
그가 맥주를 꾸물꾸물 마시고 젓가락으로 새우를 집어 입으로 넣는 게 보였다. 곧 양쪽 볼이 탱탱 부풀어올랐고 입이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더 이상 그를 아는 척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그를 깨끗이 잊고 있을 때, 뤼이안이 느닷없이 비명을 내질렀다. 뤼이안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챗 손가락으로 마얼의 식탁 앞을 가리켰다. 마얼 앞에는 어슷비슷한 새우 다섯 마리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투명한 새우 껍질이 등불 아래서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새우의 속살은 이미 마얼이 말끔하게 먹어치운 다음이었다. 순간 나머지 두 아가씨도 엉겁결에 소리를 질렀다.
그때 마얼은 그날 저녁 마지막으로 남은 새우 한 마리를 집어올리고 있었다. 숙이고 있는 머리와 비슷한 높이로 그는 팔을 뻗었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새우를 집자마자 새우 집게처럼 빠른 동작으로 팔꿈치를 굽혀서 자신의 입 속으로 떨어뜨렸다.
그제야 그는 머리를 들어 놀란 우리들을 침착하게 바라보았다. 입술을 다문 그의 양쪽 볼이 부풀어올랐다. 그의 입이 십이지장처럼 꿈틀꿈틀 연동운동을 시작했고, 목덜미의 목울대도 빠르게 상하로 움직였다.
5분쯤 지나자 빵빵한 두 뺨이 별안간 푹 꺼졌다. 이와 동시에 목울대도 한 번 올라갔다가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바로 지금, 새우를 삼키고 있었는 것이다. 대단히 품위 있고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이윽고, 그의 목울대가 미끄러져 내려가고 입이 벌어졌다. 우리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벌려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가 입에서 조금도 부서지지 않은 완전무결한 새우 한 마리를 끄집어내는 것이 너무도 또렷하게 보였다. 더욱 놀라운 건 살을 모두 삼킨 다음이란 사실이었다. 그는 어디 한 군데 다친 데 없이 살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새우를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이미 먹어치운 다섯 마리의 새우와 가지런하게. 그 모습을 보며 세 명의 여자가 연신 소리를 질렀다.
후에, 정확하게 말해 반년 후에, 뤼이안은 마얼의 아내가 되었다.
그때 있었던 다른 두 명의 여자도 결혼했다. 그들은 우리가 모르는 두 명의 남자한테 시집갔다.
뤼이안은 마얼과 결혼한 뒤로 마얼을 우리와 떨어뜨려놓았다. 우리와 함께 밥을 먹으며 식사로 들어가던 마얼은 없어져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마얼이 없는 식탁에 익숙해지지 못했고, 식탁 한쪽에 있었던 평행선이 얼마나 흥미로운 건지 그제야 의식하기 시작했다. 마얼의 머리와 식탁의 표면, 그 양자 사이의 변하지 않는 거리는 부두와 해안 같은 것이었다.
마얼이 창가에 자리잡고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올 때면 마얼의 머리는 식탁 위에서 그의 분신을 맞이하곤 했었다. 어스름한 그림자가 햇살의 움직임에 따라 납작한 원형에서 서서히 가느다란 선으로 변했다.
그렇게 길고 가느스름한 머리는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 만화에서조차도 찾아 보기 힘든 그런 괴상한 모양이었다.
언젠가 우리는 어두컴컴한 방 안에 앉아 있었다. 어슬어슬한 전구가 매우 낮게 걸려 있었다. 나는 일어나다 머리를 전구에 부딪히는 바람에 정수리가 따끔따끔하고 뜨끈뜨끈했다. 전구가 심하게 요동쳤고 마얼 머리의 그림자도 식탁 위에서 굉장히 빨리 그리고 심하게 흔들거렸다. 이때 식탁의 그림자는 마얼이 평생동안 할 수 있는 양의 고갯짓을 다 했다.
마얼이 결혼한 뒤로, 궈빈(郭賓) 혼자 마얼과 이따금씩이나마 연락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해질 무렵이면 회색 바바리를 입고 두 손을 주머니에 찌른 채 이 도시에서 가장 긴 거리를 걸어갔다. 이쪽 끝에서 출발하여 저쪽 끝에 있는 마얼의 집 앞에 도착하면 길쭉한 손가락을 오므려 마얼 집 대문을 두드렸다.
궈빈은 그의 친구들에게 말했다. 마얼의 신접살림에서 풍기는 건 모두 뤼이안의 분위기뿐이라고. 침실이며 거실의 벽에는 뤼이안의 인생사로 가득 채워져 있다고. 벽에 걸린 23장의 사진은 생후 한 달부터 현재까지 뤼이안의 역사를 보여준다고. 그 가운데 세 장에만 마얼의 미소가 들어 있는데, 매혹적으로 미소짓는 뤼이안의 얼굴이 그 곁에 머문다고.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마얼은 보이지도 않을 거야.”
궈빈은 그의 친구들에게 속속들이 알려주었다. 가구는 흰색을 기조로 한 분홍빛이며, 카펫도 미색이고, 벽도 미색이고, 마얼의 옷도 결혼 후에 산 건 모조리 미색 계통이라고 했다. 궈빈은 이런 게 모두 뤼이안의 취미이자 생각에서 나온 거라고 여겼다.
궈빈은 그의 친구들에게 물었다.
“니들, 전에 마얼이 미색 옷 입은 거 봤어?”
“아니.”
그가 우리들의 대답과 동시에 말을 이었다.
“마얼이 미색 옷을 입으니까 좀 뚱뚱해 보이고 더 허옇게 보이더라.”
궈빈은 마얼 집이 독신 여자의 거처 같다고 했다. 장식품들이 집 안에 가득했는데 책꽂이에서 찬장까지 모두 동물 인형이었다고 했다. 플란넬로 만든 거, 유리로 만든 거, 대나무로 만든 거 등등 없는 게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침대 위에도 크고 뚱뚱하고 보송보송한 곰 인형이 놓여 있다고 했다.
마얼 거라곤 볼펜조차도 식탁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고. 베란다에 걸려 있는 아직 덜 마른 그의 옷을 보고서야 그 집에서 그의 실낱 같은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마얼 침대에 놓인 곰 인형 이야기를 할 때, 궈빈은 하릴없이 웃으면서 친구들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
"뤼이안이 결혼한 뒤에도 곰 인형을 껴안고 잔단 말이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마얼의 집안 일에 대한 궈빈의 이해는 점차 깊이를 더해갔다.
그는 마얼 집에서 눈을 감고 반 시간을 돌아다녀도 의자에 부딪히지 않을 수 있다고 허풍을 떨었다. 무슨 물건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에 대해서 친구들이 호기심을 비치기만 하면 뭐든지 알려줄 수 있었다.
“침대 머리에 놓여 있는 작은 탁자에 서랍이 있는데, 그 안에는 두 사람과 관련된 모든 증명서와 그들 부부의 예금통장이 모두 들어 있지. 물론 서랍은 자물쇠로 채워져 있고. 서랍 아래에는 뤼이안의 팬티와 브래지어, 그리고 양말과 목도리 같은 게 층층이 개켜 있고…….”
마얼의 팬티와 양말, 목도리 같은 건 어디 한곳에 정리되어 있는 게 아니라 겨울 거든, 여름 거든, 봄가을 할 것 없이 옷 궤짝 속에 엉망으로 쌓여 있다고 했다.
언젠가 궈빈은 마얼이 런닝셔츠를 찾느라 무척 애먹는 모습을 보았다. 폐품더미에서 폐품 하나를 골라내는 것처럼 머리를 궤짝 안에 처박고 어깨까지 그 속으로 집어넣었던 마얼은 반 시간이 지나서야 몸을 다시 밖으로 드러냈다. 손에 팬티 하나를 달랑 들고서.
그는 팬티를 카펫 위에 던져버리고 나서 자신의 모든 옷가지들을 쏟아놓았다. 카펫에는 작은 산이 만들어졌고, 그는 작은 산 앞에 쪼그리고 앉아 다시 반시간을 허비하고서야 런닝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궈빈은 자신이 마얼과 뤼이안의 이상한 관계를 잘 알고 있노라고 했다. 그들의 관계는 우리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고 했다. 그는 그의 친구들에게 자신의 말이 믿을 만하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 예를 들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저께라고 말했다.
그가 마얼 집 대문 앞에 도착하여 손을 들고 문을 두드리려 하는데 안에서 우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울음소리는 아주 낮고 가늘었으며 한동안 계속되어 안쪽에서 무슨 눈물을 빼는 슬픈 일이 벌어졌나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들어올린 손을 다시 내리고 마얼 집 대문 앞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다. 울음소리가 잦아들어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까지.
그러는 동안 그는 뤼이안이 왜 우는 걸까,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저렇게 슬퍼하는 걸까, 마얼이 그녀에게 상처를 준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그는 마얼이 그녀에게 호통치는 소리를 듣질 못했다. 말하는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윽고 울음소리가 그치고, 한동안 시간이 흘렀다.
궈빈은 뤼이안이 벌써 눈물을 닦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다시 손을 들어 그들의 대문을 두드렸다. 마얼이 문을 열어주었고, 궈빈은 깜짝 놀랐다. 마얼의 눈에 눈물이 어른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뤼이안은 리모컨을 들고 천하태평으로 소파에 기댄 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는 그제야 방금 운 사람이 뤼이안이 아니라 마얼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니네들 이제야 알겠니?”
궈빈은 희미하게 웃으며 친구들에게 묻고는 자기 의자로 가서 편안한 자세로 앉았다.
그날, 그러니까 1996년 6월 30일 오후, 마얼이 궈빈의 집으로 찾아왔다.
그의 아내 뤼이안은 그 전날 상하이(上海)로 출장을 갔다. 그래서 마얼은 비디오 테이프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궈빈에게서 테이프 몇 개를 빌려가 독신 생활을 좀 멋있게 지내볼까 했던 것이다.
마얼이 왔을 때 궈빈은 마침 낮잠을 자던 중이었다. 그는 팬티를 입고 문 앞으로 가서 문을 열어주었다. 그는 마얼을 보자마자 천천히 하품을 했다. 그러고 나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물었다.
“뤼이안 갔어?”
마얼은 조금 이상했다. 그가 어떻게 뤼이안이 출장갔는지 아는 걸까. 마얼은 궈빈에게 물었다.
“뤼이안이 간 거 어떻게 알아?”
궈빈은 눈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대꾸했다.
“니가 말해줬잖아.”
“내가 언제 너한테 말했어?”
마얼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럼 뤼이안이 말해줬나.”
궈빈은 말하면서 화장실로 갔다. 그는 문을 닫지 않은 채 소변을 보았다.
마얼은 소파에 앉아 화장실에 있는 궈빈을 바라보았다. 궈빈은 또다시 하품을 하고서 한 손으로 눈물을 닦고 다른 손으로 물통의 줄을 잡아당겼다. 와르르 물 내려오는 소리가 나면서 궈빈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는 마얼이 앉아 있는 소파 앞으로 와서 주저하다 몸을 돌려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비스듬히 누워서 마얼을 바라보았다.
베란다 한쪽 모퉁이에 비디오 카메라가 걸려 있는 게 보였다. 그는 궈빈에게 물었다.
“저거 누구 카메라야?”
궈빈이 말했다.
“내 거. 한 달 전에 샀어.”
마얼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다시 말했다.
“비디오 테이프 몇 개 빌리고 싶은데.”
궈빈이 그에게 물었다.
“폭력적인 거? 아니면 애정 영화?”
마얼은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둘 다.”
“니가 가서 골라.”
궈빈은 마얼에게 비디오 테이프가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폭력 영화는 책꽂이 셋째, 넷째 칸에 있고, 애정 영화는 다섯째 칸에 있어. 그리고 여섯째 칸 오른편에도 있고.”
궈빈은 마얼과 말하면서 연신 눈곱을 떼어내고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마얼은 책꽂이 앞으로 가서 눈을 바짝 갖다대고 자세히 보았다. 셋째, 다섯째 칸에 있는 비디오 테이프를 하나씩 끄집어냈다. 그는 비디오 테이프 두 개를 들고 몸을 돌렸다. 궈빈의 눈이 감겨있었다.
마얼은 머뭇거리다 나지막하게 말했다.
“두 개 가져간다.”
궈빈은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고개를 삐딱하게 한 채로 침대에 앉았다.
마얼은 그에게 말했다.
“잠자. 나 갈게.”
궈빈의 얼굴에 웃음이 돋아났다. 그의 웃는 모습이 점점 괴상해졌다.
“황색 비디오는 보고 싶지 않아?”
마얼의 얼굴에도 웃음이 묻어났다.
순식간에 침대에서 뛰어내린 궈빈은 무릎을 꿇고 앉아 침대 밑에서 상자 하나를 끄집어냈다. 마얼은 상자에 반 정도 찬 비디오 테이프를 보았다.
궈빈은 으스대며 그에게 말했다.
“전부 황색 비디오야.”
잠시 후 궈빈이 마얼에게 물었다.
“홍콩이나 대만 거 볼래? 아니면 외국 거 보든지.”
“잘 모르겠는데.”
마얼이 대답했다.
궈빈은 마얼이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고 일어나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네가 하나 골라봐. 아무거나 하나 집으면 돼.”
마얼은 손 가는 대로 하나를 집었다.
그날 저녁 마얼은 혼자서 침대에 누워 눈물이 줄줄 나는 애정 영화를 보고, 이어 모골이 송연한 폭력 영화를 보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황색 비디오를 보기로 작심했다.
그는 열이 나 뜨거워진 비디오 테크에 테이프를 집어넣었다. 거꾸로 돌아가는 틈을 타서 그는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비디오는 이미 다 돌아가 자동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모니터에 하얀 반점이 몇 분 동안 반짝이더니 화면에 나왔다. 한 여자가 홀딱 벗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부드러운 베개에 묻혀 있었다. 두 다리는 굽힌 채로 꼬여 있었다.
남자의 팔이 화면의 왼쪽에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팔과 이어진 어깨, 그리고 등짝 전부가 보였다.
마얼은 남자가 침대를 향해 가다 침대 끝에서 서는 걸 보았다. 그는 무릎걸음으로 침대에 기어올라가 여인의 꼬여 있는 다리를 풀고 그의 몸을 포갰다.
마얼은 으음 하는 희미한 소리를 들었다. 남자의 몸이 여자의 몸 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얼은 남자의 들썩거리는 엉덩이를 주시했다. 얼어죽겠다는 듯이 떨고 있었다. 마얼은 남자가 헐떡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때 여인의 거친 신음소리가 연달아 나왔다.
계속해서 화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침대 위에서 함께 포개진 채 떨고 있는 두 몸이 가볍게 흐느적거렸다. 이렇게 똑 같은 화면이 잠시 계속되었고 마얼은 그들의 신음소리만 듣고 있었다.
이윽고 포개진 두 몸이 정지했다. 마치 느닷없이 죽어버린 것처럼. 잠시 후 남자의 몸이 뒤집어지더니 여자의 몸에서 내려왔다.
마얼은 여인이 아양을 떨며 으음 하는 긴 소리를 들었다. 몸을 뒤집어 내려온 남자는 침대 위에 꿇어앉았다. 렌즈를 등진 채,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마얼은 그들의 일이 모두 끝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마얼이 중얼거렸다.
“왜 음악이 없지?”
정말 이상했다.
“황색 비디오에는 음악이 원래 없는 걸까?”
남자가 다시 누웠다. 여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누웠다. 두 사람은 다리를 치켜들어 함께 담요를 끌어당겼다. 벌거벗은 두 몸뚱이가 모두 가려졌다.
마얼은 남자가 묻는 소리를 들었다.
“어때?”
여자가 대답했다.
“정말 좋았어.”
잠시 침묵하던 남자가 돌연 마얼의 이름을 꺼냈다.
마얼은 깜짝 놀랐다. 마얼은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내가 마얼보다 세?”
여자의 목소리도 들었다.
“세고말고.”
마얼은 자기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의심했다.
남자는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꺼냈다.
“마얼은 어떻게 하는데?”
여자가 남자를 때리며 대답했다.
“지겨워. 자기한테 말했잖아.”
그래도 남자는 막무가내였다.
“한번 더 듣고 싶어.”
여자는 웃기 시작했다. 한참을 웃고 나서 말했다.
“그 사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아.”
“어떻게 조금도 움직이지 않아?”
“아유, 지겨워.”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남자는 계속해서 물었다.
“어떻게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데?”
“그 사람, 이불 속으로 들어오면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아이, 정말 지겨워 죽겠네.”
여자는 또 손을 들어 남자를 두들겼다.
“걔 몸은 어디에 있고?”
남자가 또다시 물었다.
“그 사람은 몸으로 나를 누르기만 해.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나를 누르는걸. 숨도 못 쉴 지경이라고……. 됐어?”
“걔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너를 얼마동안 누르고 있어?”
“어떤 때는 길게, 어떤 때는 짧게. 날 누르면서 잠들어버릴 때도 여러 번 있었어…….”
“걔가 잠들어버리면 넌 뭐해?”
“나는 있는 힘껏 몸을 뒤집어 그 사람을 밀어버리지 뭐……. 됐어?”
두 사람은 하하 웃기 시작했다. 한바탕 웃고 난 뒤, 남자가 갑자기 일어나 앉았다. 얼굴을 렌즈와 마주하고서 침대에서 내려왔다.
“우리가 찍은 비디오 보자.”
마얼은 걸어오는 남자가 궈빈의 얼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궈빈의 뒤에 여자가 앉아 있는데, 그렇게 앉아 웃고 있는 여자는 뤼이안의 얼굴이었다.
일주일 후, 뤼이안은 집에 돌아와 문을 밀고 들어서면서 베란다 앞 식탁에 앉아 있는 마얼을 보았다.
마얼은 마침 식사로 들어가고 있었다. 뤼이안이 두 개의 평행선을 본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수가 마얼의 얼굴을 붉게 익히고 있었다.
그녀는 핸드백을 소파에 내던지고 말했다.
“가방 들고 와.”
마얼은 머리를 들고 그녀에게 잠깐 눈길을 던지고는 계속해서 식사로 들어갔다.
뤼이안은 주방으로 가서 수도꼭지를 틀고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물을 끼얹은 다음 그녀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볍게 톡톡 두들겼다. 그 다음 선반에서 세안 로션을 내려 얼굴을 깨끗하게 씻었다.
세수를 마치고 거실로 왔을 때, 마얼은 여전히 조금도 빈틈없이 식사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사방을 살펴보았지만 자신의 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마얼에게 물었다.
“내 가방은?”
마얼은 여전히 식사로 들어가기만 했다. 이번에는 머리도 한 번 들지 않았다.
뤼이안은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내 가방!”
마얼은 그래도 대꾸하지 않았다.
뤼이안의 목소리가 느닷없이 커졌다. 그녀는 마얼을 향해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내려가란 말이야!”
마얼은 머리를 들어올렸다. 식탁의 냅킨 통에서 냅킨 한 장을 뽑아 문화인답게 입술을 닦았다.
그러고 나서 뤼이안에게 물었다.
“너, 왜 내가 조금도 들썩이지 않는다고 말했어?”
노기등등한 뤼이안은 마얼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여전히 무섭게 소리쳤다.
“내 가방 들고 오라니깐!”
그러나 마얼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너, 왜 내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어?”
뤼이안은 비로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개달았다.
그녀는 더는 소리지르지 않고 눈을 똑바로 뜬 채 마얼을 쳐다보았다. 냅킨 한 장을 다시 뽑아내어 문화인답게 이마의 땀을 닦는 게 보였다.
마얼이 조용히 말했다.
“사실, 나도 움직였다고…….”
마얼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제일 중요한 순간엔 나도 움직였어.”
말을 마친 그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마지막으로 두 입 남짓 남은 국수로 들어갔다.
뤼이안은 아무 소리도 못하고 침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침대 위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역시 아무 말 없이 내려가 스스로 가방을 들고 올라왔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 친구 마얼은 비디오 테이프 세 개를 궈빈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궈빈도 마얼에게 그 일을 끄집어내지 않았다.
이따금 궈빈은 예전에 하던 대로 회색 바바리를 입고 손을 주머니에 찌른 채 도시의 긴 거리가 끝날 때까지 걸어갔으며, 마얼의 집 대문 앞에 도착해서는 길쭉한 손가락을 굽혀 대문을 두드렸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