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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라면 외로워!
그렇다면 둘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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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겠지!
그 둘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월정사 선재길)
제목 : 둘(TWO), 이상옥
둘이란 것은
하나 앞에 하나를 두는 것이야.
내 앞에 나를 또 하나 두는 것이지
또 하나의 나는
나일 수도 있고, 나를 닮을 수도 있고
내가 그리는 것일 수도 있지
둘이 나라면
엄청 반가울 거야! 내 마음을 알아주니까!
때론 미울 수도 있지!
둘이 나를 닮았다면
마음이 잘 맞을 거야! 내 거울일 수 있으니까!
때론 지겨울 수도 있지!
둘이 내가 그리는 것이라면
나는 꿈을 이룰 수도 있어! 원하면 되니깐
때론 울어버릴 거야! 그림이 엉망이라!
그 그림이
사랑이라면! 우정이라면! 돈이라면!
나는 어떻게 그릴까?
(인터넷 사진)
내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보자
근세 학문은 서양에서 이루어지고 들어왔다. 그래서 우리의 모습을 그 학문에 맞추어보고 틀리면 우리가 ‘뭔가 잘못되었구나!’하고 살았다.
그런데 살다 보니 그들과 우리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중에 심리학도 그렇다. 그들이 말하는 개인주의 합리주의적인 사고가 우리와는 맞지 않는다. 더구나 그들이 주장하는 동양의 집단주의도 일본에는 맞을지 모르나 우리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천 직지 문인송, 인터넷 사진)
최근에 우리 학자들이 우리의 심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슬슬 우리들의 심리를 알아 갈 수 있게 되었다. 그중에 하나 나온 것이 사회심리학자 허태균이 주장하는 한국인의 심리이다.
1. 가족주의(가족의 확장성)
2. 관계주의
3. 주체성이다.
첫째, 가족주의에서 가족의 확장성이다. 가족이란 것이 내 가족만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을 가족으로 끌어들인다. 서양에서는 가족 외에는 다 ‘너, 나’인데 우리는 다 언니, 오빠, 이모, 고모, 삼촌이 된다. 가족주의 좋은 점은 일체감을 얻을 수 있고 금방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 외에는 적대 관계가 형성되기 쉽다는 것이다. 내 편 아니면 네 편이 된다. 그래서 사회통합을 얻기가 어렵다. 같은 민족인데도 불구하고 북한이 한 가족으로 들어오지 못하니 죽여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사람들이 많다.
(인터넷 사진)
둘째, 관계주의이다. 관계주의는 나의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내 태도가 바뀌는 것을 말한다. 관계에 따라서 짜장면을 좋아하기도 하고 짬뽕을 좋아하기도 한다. 관계에 따라서 상대에게 따뜻한 배려를 베풀 수도 있다. 관계를 맺은 사람과 온정을 나누며 살아갈 수가 있다.
문제는 원칙이 깨진다는 것이다. 예전에 큰 병원에 입원하려면 빽(관계)를 썼어야 했다. 이것은 누구에게는 관계에서 오는 온정이나 누구나 공평한 의료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이 깨지는 것이다. 병원과 관계가 없는 서민은 죽어나갈 수도 있었다.
(상원사 입구)
셋째, 주체성이다. 주체성이란 내가 주인이 되고 푼 마음이다. 당연히 주인이 되고 푼 것이 인지상정인데 뭐가 문제냐 싶은데 문제가 된다. 어찌 보면 주체성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좋은 자기 관리이며 자기 행복의 지름길이 된다. 이 주체성은 창의적이고 자발적으로 일을 추진해 나가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주체성이 다른 사람들의 주체성과 만날 때 문제가 된다. 개인주의는 개인의 역할만큼만 주장한다. 집단주의는 집단에서 자기 위치에 맞는 것만 주장한다. 그런데 우리의 주체성은 그 범위가 없다. 때에 따라서 직원이 부장의 관점에서 떠들고 다니는 일도 있다.
(인터넷 사진)
우리가 누구를 만나면 만남의 자리에서 만남의 목적에 맞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놈은 돈 자랑하고, 어떤 년은 자식 자랑하고, 어떤 놈은 출세 자랑하고, 어떤 년은 옷 자랑하고 어떤 이는 자기 고생한 것만 말하면서 우위에 서려고 한다. 이게 자기 주체성을 확장하려고 하는 행위이다. 자랑하고 대화하고는 다르다.
모임에 맞은 대화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 주체성을 높일 수 있는 다시 말해서 자기의 영향력을 넓힐 수 있는 말들을 늘어놓는 것이다. 그래서 일방적인 설득이나 흉이 아니면 대화가 잘 안 된다.
우리가 자기 주체성을 높이려는 행동 중의 하나가 “내가 한턱 쏠게!”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임에서 지위나 나이 등을 떠나서 내가 오늘은 주인공이 되겠으니 침범하지 말라는 뜻이란다. 한턱 쏘는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예의이다.
(신안 부부송)
며칠 전에 버스 정류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할머니 두 분이 의자에 앉아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말문이 트였다.
할머니 A :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할머니 B : 칠십(70)인데요
할머니 A : 애덜이구만! 새파란 애덜여!
할머니 B : 좀 당황한 기색으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할머니 A : 일흔아홉(79)여! 일흔아홉!
이 대화에서 보면 나이로 애들과 어른이라는 가족확장성으로 묶어버리고, 원치도 않은 언니 동생 또는 조카 고모의 나이 차이로 관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동생에게는 하대해도 된다는 나의 주체성을 확장시킨다.
내가 보기에는 70세나 79세다 다 까마득한 노인인데 왜 반말을 찍찍 해대는 걸까? 70세 할머니가 돈이 더 많을 수 있고, 인격이 더 훌륭할 수도 있고 한데 말이다. 우리는 자기가 가진 우월한 것을 가지고 자기의 주체성을 확장시키려고 해서 또 다른 주체성과 충돌된다. 그래서 끼리끼리가 아니면 대화가 잘 안 된다. 단절된 사회를 만든다.
(홍성 백월산)
또한 대화가 잘 안 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대화를 승부 게임으로 몰고 간다는 것이다. 대화는 즐겁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지면 패배감을 주기 때문에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기기에 들어간다.
대화에 대한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성장 과정에서 지면 비난을 받았다. 공부 못하면 선생이 두들겨 패고, 부모는 은근히 비난을 했다. 그래서 우리 마음 속에는 지면 비난을 받아야 된다는 것이 내재되어서 틀리던 맞던 웬만하면 지지 않으려고 한다.
특히 우기는 것은 답이 하나라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답이 하나 이기 때문에 내 말만 옳은 것이다. 답은 다양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자! 세상은 답이 여러 개 있다.
(인터넷 사진)
우리나라의 특징은 뭐라고 해도 관계주의이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그 관계가 일관된 원칙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변한다는 것이다. 관계라는 것은 나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있는 것이라서 많은 갈등을 초래하기도 한다.
또한, 관계에 집중하다 보면 ‘나“라는 사람을 잃어버리기에 십상이다. 자칫하면 남이 나의 의사(생각)를 결정해 버린다. 나와 너의 경계가 무너져 버린다. 그것은 좋아한다는 이유로 사랑한다는 이유로 발생하기도 한다.
심리학자 권수영의 관계의 모습을 보면 다음과 같다.
관계의 여러가지 유형
(잘 그렸지요)
다른 관계는 다 감이 올 것이다. 여기서 친밀관계와 밀착 관계만 보자. 친밀관계와 밀착 관계는 구분하기 어렵다. 밀착 관계란 나와 너의 경계선이 무너진 것을 말한다.
심리학자 권수영의 관계 테스트를 살펴보면,
1. 관계 테스트
ㅇ 카톡 ‘1’이 없어지기를 뚫어지게 응시한 적이 있다? 없다?
ㅇ ‘1’이 없어지자마자 전화 오기를 기다린 적이 있다? 없다?
ㅇ 전화가 안 오면 기분이 상하고, 열이 받은 적이 있다? 없다?
ㅇ 그러다가 SNS에 가보니 ‘활동 중’ 표시가 떠서 꼭지 돈 적이 있다? 없다?
ㅇ 그렇지만 다음에 만나면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한 적 있다? 없다?
(괴산 옥녀봉)
2. 관계 테스트
ㅇ 나는 우리 엄마와 엄청 친하다.
ㅇ 집에 오자마자 그날 있었던 일을 모두 보고한 적이 있다? 없다?
ㅇ 엄마가 전화로 “너 어디니?‘ ”뭐하니?“ ”누구랑 있니? “매시간 체크한 적 있다? 없다?
ㅇ 나는 하루 중 여러 차례 보고하다가 시간을 놓치면 엄청 불안한 적이 이 있다? 없다?
위 테스트에서 한 개 또는 그 이상에서 ”있다“가 나오면 그 사람과 밀착 관계의 위험이 큰 것이다.
(인터넷 사진)
밀착 관계가 뭐가 문제냐 하면 보시다시피 줄이 세 개다. 당기기도 어렵지만 끊어지면 그 충격이 크다. 혹시 끊어질까 노심초사하고 그러다가 보면 분노가 폭발한다. 한국 사람이 분노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네가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내가 널 얼마나 좋아(사랑)하는 줄 알아!“
”내가 너한테 해준 것이 얼만데!“
우리는 무한 경쟁에 내몰리며 살아왔다. 학교에서도 1등이 최고고, 공부 못하면 두들겨 맞으며 살았고, 집에서 아들이 최고고, 최고, 최고만을 추구하다 보니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늘 소외와 불안 속에서 살아왔다. 소외와 불안이 우리의 마음에 내재해 있다.
(지리산 와운 마을)
나도 인정받고 싶은데, 누구 하나 인정을 잘 안 해준다. 그래서 나를 조금이래도 인정해 주는 사람 또는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파고든다. 그러다 보면 밀착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집착하고 매달리게 되고 나와 너의 경계가 무너지게 되면 ’나‘라는 사람이 없어지게 된다. 따라서 나를 찾고 행복해지려면 이와 같은 상태를 벗어나야 한다. 벗어나기 위해서는 경계선을 침범해 들어오면 거절할 줄 알아야 하는데 관계가 틀어질까 봐 겁이 난다. 그래서 용기를 가져야 한다.
주변을 잘 살펴보시라 나도 그런 사람이 있는지, 대개가 다 있다. 엄마가 될 수도 있고, 딸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인터넷 사진)
재가 나를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된다면, 재가 다른 사람들과 사귀는 게 싫다면, 딸의 시간표를 관리하고 있다면 내가 밀착 관계의 주범일 수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런 심정은 어릴 때 존중받지 못하고, 소외되고, 외롭고 불안한 마음이 내 안에 내재 된 일종의 정신문제이다. 이를 극복할 길을 찾아봐야 한다.
그렇다고 한국인의 특성 가족주위, 관계주의, 주체성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러한 특성이 거지 나라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대단한 장점으로 작용했다. 즉, 수당도 받지 않으면서 사장의 일이 나의 일이라고 우리는 한 가족이라고 자발적으로 물불 가리지 않고 일한 결과이다. 우리 노인의 자랑스러운 과거의 모습이기도 하다.
(강릉 제왕산)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우리나라를 망하게 하는 특성이 되고 있다. 예를 든다면 아기를 꼭 가족 구성원 안에서 낳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 미혼모들이 애를 낳으면 몰래 버리게 만든다.
미혼모가 아기를 버리는 것은 미혼모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 사회의 죄가 더 크다. 어떤 나라는 이미 싱글 맘, 싱글 대디의 자녀가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단다.
가족주의 사고로 가족 내에서만 출산을 계속 주장한다면 망하는 길밖에 없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싱글 맘, 싱글 대디가 마음껏 얘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줄 때 나라가 산다. 난망한 일이다.
(강릉 제왕산)
이와 같은 일들이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과거 엄청난 성공의 경험한 구시대 사고를 하는 우리 같은 노인들이 자신들이 정의라고 하면서 정권도 잡고, 돈권도 잡고, 집권도 잡고 흔들고 있다. 성공의 경험이 망하는 지름길인 것처럼, 우리나라는 그렇게 망해가고 있다. 한번 뒤돌아보고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할 시기가 도래했다.
친구란 만나서 허접스러운 말을 주고받고 웃고 헤어지는 것이란다.
(홀로 우뚝 서 보시라. 강릉 제왕산)
(홀로 서 보시라. 강릉 제왕산)
(인터넷 사진)
첫댓글 내 마음의 작동원리 알아야
인생이 즐거워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