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랑 열차
박수현
“왜 아직까지 피가 안 멈출까?”
수술이 잘 된 줄로만 알았던 아이의 귀에서 보름이 지나도록 피고름이 멈추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 가던 대학병원을 두 번씩 가야 했고, 그마저도 남은 요일은 이틀에 한 번꼴로 동내병원에서 소독을 했다. 그러자 수술만 하면 잘 들리고, 더 이상 병원에 다닐 일도 없을 줄 알았던 아이는 절망감에 몸부림을 쳤다.
“겨울방학을 이렇게 끝낼 수는 없어!”
그렇게 우리는 해랑 열차를 탔다. 코로나로 멈췄던 운행이 3년 만에 재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불과 이틀 만에 내린 결정이었다. 다행히 출발 전 아이의 달팽이관은 눈물을 멈춰주었고, 우리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2박 3일간의 전국 일주를 떠났다. 삼백만 원이라는 지출이 큰 부담이었지만 집과 병원이 전부였던 아이에게 진짜 방학을 선물할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결정적으로 ‘국내 유일의 호텔식 관광열차’라는 매력적인 문구가 한몫했다.
해랑 열차는 국내에 단 두 대만 운행한다. 노선도 세 개뿐. 2박 3일간의 전국 일주와 각각 1박 2일로 진행되는 동부권, 서부권이 그것이다. 면허가 없는 나에게 아이와 함께하는 전국 일주는 오롯이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범주의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침대 딸린 열차 정도는 타 줘야 가능했다는 말씀.
열차는 서울역을 출발해 전라도를 향해 달린다. 그리고 순천을 시작으로 광양, 부산, 경주, 정동진과 태백을 거쳐 다시 서울에 도착한다. 열차에서 내려 대형 버스로 다 같이 이동하고, ‘해랑 플래너’라 불리는 담당 직원의 안내를 받는다. 코로나로 운행이 멈췄던 시절이 있었고, 높은 비용과 제한적인 공간으로 탑승객이 적다 보니 기존 영상이나 자료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준비하며 같은 영상을 몇 번이고 다시 봤다. 다음 장면에서 나올 자막이 예상되었고, 해랑 열차의 마크는 눈앞에서 이문증처럼 아른거렸다.
“엄마, 우리가 침대에서 잠을 자는데 열차는 계속 달리고 있고, 아침에 눈을 뜨면 다른 지역에 와 있고, 막 그렇다는 거지? 응? 그리고 그 안에서 식당도 갈 수 있고!”
발갛게 상기된 볼 위로 아이의 두 눈이 연신 깜빡거린다. 객실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다더니 나는 이미 보고 있었구나. 여행은 이미 너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야.
집에서 챙겨온 그림 도구와 책, 장난감 몇 개를 객실 선반에 올려둔 아이는 집에서 가져온 슬리퍼를 꺼내 신고는 객실을 나갈 채비를 한다.
“대성이 어디가?”
“응. 나 식당에 좀 갔다 올게!”
몇 번째 칸에 있는지 안다며 호기롭게 문을 나섰던 아이는 십여 분 후 양손 가득 간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엄마의 핀잔을 뒤로한 채 떠났던 간식 탐방. 사실 아이가 지퍼백에 담아온 쿠키와 초콜릿은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먹기 딱 좋았다. 그 덕에 틈만 나면 식당칸을 찾던 아이는 직원들 사이에서 유명 인사가 되어버렸지만.
“엄마, 이 장면을 아빠도 봤으면 좋았을 텐데.”
“에이, 아빠는 더 잘 보이는 데서 보고 있을걸?”
얼마 전 3주기가 된 아빠의 빈자리가 여실히 느껴지는 찰나, 공기마저 고요해진다.
남편이 떠나고 다양한 장소로 여행을 떠났다. 아이가 좋아하는 지역, 공간, 먹거리로의 목적이 있는 여행이었지만 우리는 늘 한 사람을 추억했다.
“맞아. 아빠가 있는 데서 제일 잘 보이겠다!”
설득이 되었다니 다행이다.
열차에서 내린 지 한 달이나 지났지만 아이의 무용담은 여전히 전국을 달리고 있다. 여행지에서 한껏 신이 난 아이의 사진을 꺼내 볼 때면 짐을 싸던 날의 설렘이 다시 한번 피어오른다. 서울역을 향해 달리던 택시 안에서 바라본 새벽녘의 한강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밤새 내린 눈으로 새하얀 옷을 입은 두타산은 얼마나 환상적이었는지, 얇게 저민 양념불고기를 돌판에 구워 먹던 광양불고기는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든 순간이 선물이었다.
수많은 작가의 책에서 일관된 비유를 본 적이 있다. 바로, 인생을 여행이라 말하는 것. 내가 남편을 소개할 때 ‘하늘여행자’라고 하는 이유 또한 같을 테다. 누렸던 멋진 순간들이 여행이라는 명목하에 이뤄진 것임을 안다. 그래서 그 또한 가장 멋진 장면 속의 주인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본다.
일주일 전, 우리와 함께 살던 고양이가 여행을 떠났다. 길에서 살던 시절 중성화수술 잘못되어 술부가 터진 채 돌아다니던 것을 누군가가 구조했다. 수술에 연이은 약물치료로 아이는 대발작이 오고, 경계성 최대치의 상태로 여러 인연을 거쳐 마지막으로 우리집에 오게 되었다. 처음 키워보는 고양이라 뭐가 맞는지 틀린 건지 알지 못한 채 그냥 지켜주겠다는 마음 하나로 가족이 되었다. 손길을 허락하진 않았지만, 늘 나의 근처를 맴돌았고, 한밤중에 커튼을 찢는 등의 귀여운 사고들도 곧잘 쳤다. 그리고 8개월 후, 아이는 가장 좋아하던 장소에서 잠이 든 것처럼 여행을 떠났다.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말했다. 이들의 최종 목적지인 고양이 별은 차도 없고 소음도 없고, 그저 아이들이 마음껏 먹고 자고 뛰어놀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라고.
살면서 수많은 여행의 순간을 마주한다. 얼마의 속도로 걸음을 걷다 어떤 풍경을 만나게 될지 전부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어떻게든 떠나려 할 테고, 힘든 순간에는 숨 고를 여유를 찾게 될 것이다. 덜거덕덜거덕. 늦은 밤 객차 안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본다. 가장 밝게 빛나는 걸 찾아 아빠의 이름을 붙여주고, 그 옆에 작은 별에는 고양이 이름을 붙인다. 그렇게 우리는 또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