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타임스퀘어 광고 이후로 많은 국민들 '독도 알리기'에 관심같은 꿈 가진 후배들 많아 보람
◆에펠탑 앞에서 시작된 한국 알리기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교수.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그의 진로가 바뀌게 된 일생일대의 사건은 1995년 광복절에 일어났다. 유럽 배낭여행 길에 오른 그는 8월 15일에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앞에서 특별한 기념식을 열었다. "유럽 각지에 흩어져 있는 우리나라 학생들을 모아 광복절을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는데, 놀랍게도 300명의 학생들이 모였어요." 당시만 해도 해외에 나가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국인이세요, 아니면 일본인이세요?"라는 질문을 받기 일쑤였다. 그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그들에게 우리나라를 알리고 싶었고, 그 작은 소망은 '에펠탑 기념식'을 통해 소박하게나마 이뤄졌다. "그날 그곳에 모인 300명의 학생들과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고, '아리랑목동'과 '아리랑'도 불렀어요. 어느새 주위에 있던 외국인들까지 함께 어울려 둥글게 원을 그리고 있더군요." 이 일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는 운명처럼 한국 알리기에 나서기 시작했다. 2005년 세계를 놀라게 한 뉴욕타임스의 '독도 광고'는 그가 한국 홍보 전문가로 널리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제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자비를 털어 뉴욕타임스에 6분의1 광고를 실었죠. 세계 유력 언론인 뉴욕타임스에 일본의 부당함을 알리는 광고를 실으면 분명 효과가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너도나도 한국 알리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광고가 나간 후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교민들도 십시일반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20년간 세탁소를 운영하던 한 교민은 광고 원본 파일을 세탁물을 보호하는 비닐에 인쇄해 사용했고, 택배회사를 운영하던 또다른 교민은 택배 포장 박스에 이를 인쇄해 세계 사람들에게 독도가 우리의 땅임을 알리는 일에 앞장섰다. ◆타임스퀘어에 걸린 비빔밥 광고 이후 그의 활동 반경이 점차 넓어졌다. 독도 캠페인을 시작으로 한글, 한식, 한복을 알리는 일도 쉬지 않고 이어갔다. 그를 찾는 사람들도 늘어갔다. 가수 김장훈씨도 그중 한명. "독도 관련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있었는데, 김장훈씨가 독도 광고를 자비로 진행하고 싶다는 제안을 해왔어요. " 현재 그를 돕는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다. 디자이너 이상봉, 미술가 강익중은 대표적인 인물. 기업의 지원도 빼놓을 수 없는 고마운 손길이다. 한국 알리기에 나선 지 16년. 그는 지난해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비빕밥 광고'를 상영한 일을 최고의 사건 중 하나로 꼽았다. "MBC '무한도전'의 김태호 PD가 타임스퀘어에 비빔밥 광고를 틀면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했어요. 무척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죠." 타임스퀘어에 단일 국가를 상징하는 광고가 걸린 것은 '비빔밥 광고'가 처음이었다. "파장이 정말 대단했어요. 유튜브에 올려진 비빔밥 광고는 100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지요."
간접화법 독도 마케팅 우리땅 굳이 강조할 필요 없어…그저 자주 놀러가는 것이 최고 재외동포는 외교 첨병들 뉴욕서 세탁소 운영하는 한인, 배달용 비닐에 독도광고 인쇄 만난 사람 = 김철수 오피니언부장 서경덕 교수가 서울 미근동 독도체험관 내 독도 모형 앞에서 효과적인 독도 홍보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굳이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칠 필요없이 자주 놀러가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광고에 나를 밝히는 게 민망해 이름 빼고 실어 달라고 했더니 NYT 광고국이 나를 의심… 신문에 싣는 데 다섯 달이 걸려" "뉴욕타임스 기자들이여 기사에 중요한 실수가 있다… '일본해' 아닌 '동해'가 맞는다" 이것이 실수시리즈 광고의 시작 “아픈 역사 서린… 국내 강제징용 현장에 안내판 세울것” 2016-02-19 03:00 동아일보 > 사람속으로 | 김호경 기자 서경덕 교수 인터넷모금 나서… “무관심한 현실 너무 안타까워” 일제강점기 전범기업들이 운영… 인천 삼릉마을-부산 닛코광산에 추진 일제강점기 미쓰비시 군수공장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이 머물던 사택 일부가 남아 있는 인천 부평구 ‘삼릉마을’을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둘러보고 있다(맨위 사진). 현존하는 사택은 87채에 불과하지만 1940년대에는 약 900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맨아래 사진). 서경덕 교수 제공 |
출처: 하늘나라 원문보기 글쓴이: 하늘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