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암리(屛岩里)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에 있는 행정리(里).
면소재지에서 남으로 2㎞ 떨어진 마을로 들가에 자리잡은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웅천이 흐른다. 이진말 뒤에는 이진봉[231m]이 있는데, 여기에 임진왜란 때 쌓았다고 하는 성 터가 있고 북쪽의 깃대배기들은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깃대를 세운 곳이라고 한다. 만담리 북쪽에는 장자봉[192m]이, 안곤재 동쪽에는 월규산[일명 얼기산, 160m]이 있으며, 안곤재에서 석병무로 넘어가는 곳에는 망고개가 있다. 무수천이 생극면 관성리에서 병암리로 흘러 응천에 유입되고 있다. 이진말의 남쪽에는 광대봇들이, 남서쪽에는 새바지들이, 안곤재의 남쪽에는 뒷곤재들이, 북서쪽에는 신바지들 등의 들이 있다.
본래 경기도 음죽군 무극면에 속한 지역이었다.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경기도 음죽군(陰竹郡)의 생탕리(生湯里), 도관리(道寬里)와 충주군 생동면(省洞面) 곤지리(昆池里) 병산리(屛山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병산리와 곤암에서 이름을 따서 병암리라 하여 생극면에 편입하였다. 병산(屛山)의 ‘병(屛)’자와 곤암(昆岩)의 ‘암(岩)’자를 따서 현재의 이름이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곤재, 밧곤재, 안곤재, 석병무, 이진말이 있다. 곤재는 관성리 동쪽과 신양리에 걸쳐있는 마을로 밧곤재, 안곤재로 나뉜다. 밧곤재는 곤재 바깥쪽에, 안곤재는 곤재 안쪽에 자리잡은 마을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안곤재는 안곤재와 바깥곤재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1987.1.1 병암리 4구로 분구되었다. 석병무는 마을 뒷산에 석벽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진말은 이진봉 아래에 있는 마을로 이진봉이 임진왜란 때 진을 쳤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 마을로는 1970년대 말까지 이진말·곤재·안곤재·섬말·만담이·밧곤재·석병무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병암1리에 이진말(고진대·고전대), 병암2리에 만당이(만담리·맨담리), 섬말(도촌), 병암3리에 석병무(병산리), 병암4리에는 안곤재(내곤지암) 등이 있다.
특산물로는 생극참외가 있다.
생극면의 남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2007년 9월 30일 기준 면적은 5.14㎢이고, 2011년 8월 31일 현재 총 234세대에 525명(남자 272명, 여자 25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과 남쪽은 도신리, 서쪽은 관성리, 남쪽은 도신리, 북쪽은 신양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경지 면적은 밭이 0.48㎢, 논이 1.05㎢, 과수원이 0.66㎢, 목장 용지 0.23㎢, 임야 2.63㎢ 등으로 되어 있다. 주민의 대부분이 벼농사를 위주로 하나 고추·사과 등도 많이 생산하고 있고 양계업도 활발하다.
주요 기업체로는 모니터 케이스를 생산하는 후성산업(주), 렌즈와 프리즘 등을 생산하는 서울광학산업(주), 참기름·고추·겨자 등의 식품을 생산하는 오뚜기식제유(주), PP씨트를 생산하는 성신플라스틱(주), 유로폼과 갱품 등을 생산하는 성림정공(주), 니켈과 주석 등을 생산하는 진강자원 등의 제조업체가 있다.
문화 유적으로는 이진봉 동쪽의 산제당골에 산신각이 있어 매년 정월에 택일하여 제사를 지내고 있고 만담리의 색백제 산제당에서는 정월에 제사를 지냈으나 1993년 이후부터는 없어졌다. 주요 도로로는 병암리의 동부에 면리도 213번과 국도 37호선(원남면 구안리~금왕읍 무극리)이, 서부에는 면리도 203번 등이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고 남쪽에는 지방도 10번(생극면 도신리~삼성면 능산리), 북쪽에는 지방도 318번 등이 동서 방향으로 지나고 있다.
병암리(屛巖里)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에 있는 리(里).
병암리는 마을 앞 개울 건너에 병풍바위가 있으므로 병풍바위, 평바위, 병풍징이, 병암리라 했다. 자연마을로는 평바위, 오리송골, 상검, 하검, 강당말, 화임, 모산 등이 있다. 강당말은 전에 서당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검암서원이 있다.
병암리(屛岩里)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있는 법정리(里).
병암리의 남부는 구명봉(212.4m)을 중심으로 해발고도 210여m, 중부는 180여m, 북동부는 갈마산(渴馬山, 157m)을 중심으로 해발고도 150여m의 구릉성 산지를 각각 형성하고 있다. 중부에는 방고개가 있다. 북서부는 해발고도 40여m의 저평탄 평야 지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탑정저수지(塔亭貯水池)와 접하고 있다.
자연마을은 매오리, 병암, 병풍바위, 화천 등이 있다.
마을에 병풍처럼 생긴 병풍바위가 있어서 병암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마치 병풍처럼 생긴 병풍바위가 있어서 마을 이름도 병풍바위 또는 병암이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갈마면(葛麻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매오리(梅梧里)·신촌리(新村里) 일부와 가야곡면 조정리(釣亭里) 일부, 연산군(連山郡) 적사곡면(赤寺谷面)의 동상리(東床里) 일부, 모촌면(茅村面) 거사리(居士里)·신흥리(新興里)·신계리(新溪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병암리라 하여 가야곡면에 편입되었다.
-1996.3.1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가야곡면 병암리가 되었다.
가야곡면의 북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총 97세대에 184명(남자 93명, 여자 9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2008년 6월 기준으로 면적은 3.31㎢이다. 이 중 경지 면적은 0.48㎢로 밭이 0.20㎢, 논이 0.28㎢, 과수원이 0.03㎢ 등으로 되어 있다. 구릉성 산지의 완사면에서는 밭농사와 과수농사가 이루어지고, 평야 지대에서는 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주요 산업은 벼농사를 주로 하는 농림업이다. 구릉성 산지와 평야 지대 사이의 경사변환선, 구릉성 산지사이의 곡간, 도로변에는 마을이 들어서 있는데, 원촌·매오리·병암·화천 등이 대표적이다.
호남고속도로 지선 251호선이 중부에서 북서~남동 방향으로 지나는데, 북서쪽으로는 가야곡면 산노리와 남동쪽으로는 양촌면 신흥리에 연결된다. 지방도 68호선은 북부에서 굴곡하면서 북동~남서 방향으로 지나 북동쪽으로는 양촌면 거사리와 남서쪽으로는 가야곡면 산노리에 연결된다. 이 외에도 기타 도로가 중앙부에서 굴곡하면서 북서~남동 방향으로 지나, 북서쪽으로는 가야곡면 산노리와 남동쪽으로는 양촌면 모촌리에 각각 연결된다.
병암리(屛岩里)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에 있는 리(里).
가정, 병암, 신병암이 합쳐져 이루어진 마을이다.
병암리란 지명은 마을의 동남방에 병풍 같은 바위가 있다 하여 붙여졌다. 본래는 관촌역, 시기 마을과 함께 상업이 발달했던 곳이다. 산세로는 금당재에서 회룡이 도봉을 감고 남으로 가정이 산서골로 넘어가며, 동북인 큰골은 덕곡이 자리하고 두 갈래 산이 모두 그치는 아늑한 마을을 형성한다. 앞산인 남산이 병풍처럼 되었다 하여 병암리이며 긴축(長筑)은 북향이 덕곡천에 이르러 국철이 앞을 스치면서 비파소리가 끊임없이 주야를 타고 있는 것은 음률 이라고 해석 한다 하였다. 축(筑)자의 뜻은 비파이다.
이 지역 유명인물로는 전도성이 있는데 전도성은(1864) 고종으로부터 참봉교지를 받은 어전명창이다. 송우룡 박만순 김세종 이날치의 문하에서 공부한 그는 임실군 관촌면 병암리 태생이다.
병암리(屛岩里)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에 있는 리(里).
이안천과 오대저수지가 양옆으로 위치해 있다. 자연마을로는 북천마, 원병암, 이숫골 등이 있다. 원병암이란 명칭은 마을 뒷산에 병풍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하여 불리게 된 것이라 하고, 마을이 외따로 떨어져 있다고 하여 이숫골이라고도 불렸다 전해온다.
병암리(屛岩里)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에 있는 법정리(里).
병암리는 마을 주위가 구릉야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서쪽은 트인 평지로 되어 있다. 동남쪽은 대재리를 지나 그 뒤로 산이 가로막고 있다. 그 연봉이 끝나는 곳에 큰 못이 있다. 이 못에서 흐르는 개천이 마을 앞을 굽이쳐 흐르고 있다. 경관이 아름답고 물이 맑다. 병암리는 마을 주위가 구릉 야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서쪽은 트인 평지로 되어 있고, 동남쪽은 대재리를 지나 그 뒤로 산이 가로막고 있다. 그 연봉이 끝나는 곳에 큰 못인 우상제가 있으며, 우상제에서 흐르는 소하천이 서쪽으로 흐르면서 대창천에 합류하여 금호강(琴湖江)으로 들어간다.
병암리(屛岩里)는 병풍 바위가 있으므로 병암 또는 병풍바우라 하였다고 한다.
병암리는 조선 말 영천군 모사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모사면 대부분과 현재 금호읍인 창수면의 일부 및 흥해군 북안면의 일부가 합쳐져 대창면이 신설됨에 따라 영천군 대창면에 편입되었다. 이때 송구동·세동을 병합하여 병암동이 되어 영천군 대창면 병암동이 되었다.
-1988.5.3에는 동(洞)을 이(里)로 바꾸면서 병암리가 되었고,
-1995.1.1 영천시·영천군 통합으로 영천시 대창면 병암리가 되었다.
또 농산물의 생산이 양호하니 옛부터 사람 살기에 적합한 곳이다. 자연마을로는 세리, 칠전, 가는골, 꼽두리, 당솔, 병풍말 등이 있다. 병풍말은 바위 앞 남쪽에 동서로 길게 뻗은 절벽이 마치 병풍처럼 생겨서 병풍말이라 불린다. 세리는 골짜기가 가늘고 긴 곳에 마을이 있어서 이름 붙여졌다. 칠전은 옻나무가 많아서 칠전이라 부르다가 와전되어 칠(七)전으로 변하였다.
병암리는 대창면의 북단에 위치하며, 자연마을로 세리·송구동·칠전·가는골·못안·소바탕못·꼽두리·당솔·병풍말·병암·병풍바우·두지바골·아랫마을이 있다.
병암리의 면적은 2.84㎢이며, 인구는 86가구, 184명으로, 남자가 81명, 여자가 103명이다(2012년 4월 현재).
병암리의 주민 편익 시설로는 병암리 경로당과 병암리 회관이 있으며, 칠백로·공인길·금창로를 중심으로 도로명 주소가 부여되어 있다. 병암리에는 경부 고속 도로가 서쪽 경계를 통과하고 지방도 909호선이 지나고 있다.
병암리의 문화재로는 창녕 조씨 재실인 첨모재(瞻慕齋)가 있고, 조선 숙종 때 학자 병애(屛厓) 조선장(曺善長)이 강학하던 곳으로 1711년(숙종 33)에 건립하여 1943년에 이건된 병애 정사(屛厓精舍)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