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첫째 주 그룹큐티나눔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세아 6:1-11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돌아와 돌아와(찬송 525장, 구 315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봅시다.
12월의 주제는 ‘종말의 시대를 사는 성도에게’입니다(1주 ‘힘써 여호와를 알자’, 2주 ‘회복의 새날을 고대하며’, 3주 ‘더 늦기 전에’, 4주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 5주 ‘하나님을 찬양하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라시는 것은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호 5:15).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호세아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자고, 힘써 하나님을 알자고 호소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떠난 적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꼬박꼬박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하나님을 떠났다며 한탄하십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호세아가 백성에게 여호와께로 돌아가자고 호소합니다(1-3절).
1) 호세아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고 권면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1, 2절)?
이스라엘을 징벌하신 분도, 그들을 살리고 일으키실 분도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호세아 6:1-3에 대한 해석이 크게 세 가지 있다. 첫째, 6:1의 ‘우리’는 호세아가 빠진 백성을 의미한다는 해석이다. 이 해석에 의하면 6:1-3은 이스라엘 회중이 곤경에 처하자 급하게 여호와를 찾아 부르짖는다는 것이다.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둘째, 호세아가 당대(현재)의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한다는 해석이다. 이 해석에 의하면 현재 백성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은혜로 품어주실 것이다. 셋째, 호세아가 미래 세대의 백성(북이스라엘 멸망 이후 유배지에 있는)의 구원을 말하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5:15의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는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죄로 인해 포로가 되는 시간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6:1-3은 5:15의 문맥과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님께서 멸망의 시대를 넘어 회복의 시대를 준비하신다는 것이다. 첫 번째 해석은 타락한 백성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주장하기에(6:3)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두 번째, 세 번째 해석은 가능한 해석들이다. 호세아는 현재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할 뿐 아니라, 미래 세대 백성의 구원까지 내다보며 예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여호와를 힘써 알자고 권면하는 선지자는 어떤 소망을 품고 있습니까(3절)?
하나님이 새벽빛같이 어김없이 나타나시고 늦은 비와 이른 비같이 임하실 것이라는 소망이다.
‘새벽 빛’, ‘이른 비와 늦은 비’는 때에 맞게 일어나는 자연현상이다. 밤이 깊어 새벽이 되면 아침 해가 떠오른다. 이스라엘에서 이른 비는 우기가 시작되는 10월부터 겨울에 내리는 비며, 늦은 비는 3-4월 봄에 내리는 비다. 이른 비와 늦은 비는 씨의 파종과 열매 수확에 꼭 필요한 비다. 하나님께서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때에 맞춰 내려 자연 만물을 소생시키듯이 그의 백성에게 다시 돌아와 구원하실 걸 약속하신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이런 신실한 성품을 백성들에게 소개하면서 회개를 촉구한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더 이상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시험하지 말고 회개하기를 촉구한다.
나눔 1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재난이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 회복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하는 삶의 모습은 무엇인지, 하나님을 알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이야기해보고 회복을 위해 서로 기도합시다.
2. 하나님의 기대와 달리 백성은 죄에서 떠나지 못합니다(4-11절).
1) 하나님이 백성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까닭은 무엇입니까(4절)?
그들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기 때문이다.
6:1-3에서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아오라고 말씀하셨는데 백성의 반응은 그 호의를 무시하는 것이었다. 그때 하나님은 마치 아버지가 자녀의 패역에 어떻게 할 수 없어 괴로워하듯이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라며 탄식하신다. 하나님으로서도 백성의 패역에 더 이상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백성의 인애가 아침 구름과 쉽게 없어지는 이슬처럼 변덕스럽다.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의 메시지를 무시하고 여전히 음란한 삶을 추구하는 백성들의 모습이다. 이들에게 남은 것은 심판밖에 없다(5절).
2)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원하시지 않는 것은 각각 무엇입니까(6절)?
하나님은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으시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건 단지 형식적인 제사가 아니라, 마음과 말과 행동이 수반된 삶의 예배다. 선지자는 호세아 4:1-2에서 이미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어서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과 피 흘림이 가득하다’고 말했다. 삶은 온갖 음행과 불의와 폭력으로 가득하면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는 건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행위다. 하나님은 백성에게 제사에 합당한 거룩한 삶을 살라고 촉구하신다.
3) 백성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7-10절)?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저버리고 폭력과 살인과 음행을 저지른다.
호세아서에서 언약이라는 단어는 총 다섯 번 등장한다(2:18; 6:7; 8:1; 10:4; 12:1). 이 중 6:7과 8:1은 언약을 어긴다는 문맥에서 나온다. 8:1에서 언약은 모세의 율법을 의미한다. 문제는 6:7에서 ‘아담처럼 언약을 어긴다’고 할 때 ‘아담’이 무엇/누구를 지칭하느냐이다.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 ‘아담’을 인명으로 볼 수 있다. 이 경우 이스라엘의 반역은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에 비교된다. 둘째, ‘아담’을 요단강 근처 지명으로 볼 수도 있다(참조. 수 3:16). 이 경우,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을 건너온 첫날부터 불순종하였다는 것이다. 8-11절의 죄 목록 문맥에서 볼 때 두 번째 해석이 더 타당해 보인다. 즉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하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후 줄곧 음행과 폭력과 불의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나눔 2 하나님은 형식적인 예배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인애(사랑)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인애의 삶으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내게 나타나는 인애는 어떤 모습입니까?
나눔 3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폭력, 살인, 사악, 가증, 음행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을 삼키는 죄악들이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모르거나 잊을 때 빠지기 쉬운 유혹은 무엇인지 이야기해봅시다.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아가고 하나님을 참되이 알게 하소서.
공동체 _ 형식적인 예배가 아닌, 인애의 삶이 수반된 예배를 드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