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김두식 교수의 『불편해도 괜찮아』에는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법칙”
이른바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것이 나옵니다.
김 교수의 ‘지랄 총량의 법칙’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전제로 합니다.
첫째, 우리는 성장하면서 '지랄'을 떨어야 한다는 것으로
즉, 욕망을 억누르지 말고 자연스럽게 분출하면서 에너지를 써야 한다고 합니다.
둘째, 그렇지 않으면 이 '지랄 총량의 법칙'에 따라
'훌륭한 어른'이 된 후에 (성장기에 떨지 않은) '지랄'을 떨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정해진 양을 사춘기에 다 써버리고
어떤 사람은 나중에 늦바람이 나서 남은 양을 소비하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죽기 전까지 그 양은 반드시 다 쓰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지랄’은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어릴 때 지랄을 떨면 "개구쟁이"라 하고
젊어서 떠는 지랄은 "청춘"이라 하고
중장년에 떠는 지랄은 "그냥 지랄"이라 하고
늙어서 떠는 지랄은 "노망"이라고 한다는데
언젠가 분출될 지랄이라면 어쩌면 개구쟁이가 되는 것이 좋을듯합니다.
그게 다 주어진 ‘지랄’을 쓰는 것이려니 생각하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고 충고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실상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른바 '훌륭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지랄'을 억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여전히 '4당 5 락'
‘선수학습’ 등 할 수만 있으면 아이들을 경쟁사회로 몰아붙이며
엉뚱한 행동(지랄)을 하지 못하도록
어렸을 때부터 점잖고 말 잘 듣는 아이로 양육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다 아이들이 견디지 못하고 반항을 하거나
곁길로 조금이라도 갈려고 하면
부모들은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하며 큰일이라도 생긴 양
더욱 아이를 몰아붙이고 조이기 시작하며 갈등을 키워나갑니다.
우리가 어려서 자주 들은 말 가운데
쥐도 도망갈 구멍을 놓고 쫓으라는 말이 있듯이
자녀들도 마찬가지로 조금 거리를 두고
오늘의 ‘지랄’이 내일의 ‘평화’를 위한
일시적 시련이라 생각하면 의외로 쉽게 답이 풀릴 터인데
우리는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론 어린 시절 지랄하지 않고도
겉으로는 멀쩡한 '훌륭한 어른'이 되기도 합니다만
언젠가는 그들의 내면에 억눌려 있던 '지랄'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면
더 큰 낭패를 당하는 모습을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성공한 40~50대 남성들이 여성편력을 자랑하고
돈과 권력에서 자신들의 삶과 존재의 의미를 찾는 행태가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랄 총량의 법칙’은
학문적인 입장을 떠나 많은 것을 우리에게 시사합니다.
꼭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지랄의 총량이 있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지랄하고 싶은 생각이 우리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지랄총량만 아니라
스킨십총량, 대화총량, 스트레스총량 등
모든 것은 총량이 정해져 있어서 어느 정도가 넘어가면
반드시 폭발하게 되어있고 그것을 못하게 막으면
엉뚱한 곳에서 반드시 터지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스킨십도 육아에 시달리는 아내는
남편의 스킨십을 거부하게 되고 스트레스도 쌓아두면
우울증이나 과격하고 공격적인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대화도 통상 남자는 하루 1만 5천 단어를
여자는 2만에서 2만 5천 단어를 말하는데
직장에서 대화총량을 다 사용한 사람은
집에서 대화를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 어디에서나 보면 개뿔이나
팔불출에 잘난 척, 자랑질에 남을 가르치려 하고
뭐가 어쩌고 저쩌고 뇌피셜로 단정하며
이래라저래라 하는 지랄을 떨고 있는데
늙어서 떠는 지랄은 "노망"이라고 한다면
그는 분명히 노망 난 늙은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첫댓글 억제된 GR
죽기전
반드시 폭발한다~~~~공감합니다
ㅎㅎ
다 늙으막이 카페같은 데서 폭발하면......끔찍합니다
글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