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보증 요건 강화 석달… 빌라 절반이 보험 못들어
5월부터 공시가 126%이하만 가입
“세입자들 보증금 떼일 위험 커져”
직장인 박모 씨(32)는 올해 5월 서울 강동구 A빌라(전용 26㎡)를 전세로 계약했다. 보증금이 2억9000만 원이어서 빌라치고는 보증금이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신축에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5분 걸리는 초역세권이어서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문제는 계약서 작성 후에 터졌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보험(전세보험)에 가입하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문의하니 전세금이 매매가 대비 비싸다고 가입을 거절당했다. 그는 “기존 세입자가 비슷한 보증금에 전세보험에 가입했다고 해서 문제없을 줄 알았다”며 “불안하지만 다른 집 찾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발을 굴렀다.
올해 5월부터 7월까지 전세 계약된 전국 빌라 2채 중 1채는 전세보험에 가입이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사기에서 세입자를 보호할 안전장치인 전세보험 사각지대로 내몰리는 세입자가 급증하는 것이다. 올해 주택 공시가격이 급락한 데다 HUG의 전세보험 가입 보증금 기준이 공시가격의 150%에서 126%로 강화된 영향이다.
동아일보가 11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등록된 올해 5∼7월 빌라(연립·다세대) 전세 거래 2만7407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1만2486건(45.6%)의 보증금은 전세보험 가입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25%)과 비교해 가입 불가 비중이 약 2배로 뛰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가입 기준을 완화하되 보증금 규모에 따라 보증료율에 차등을 두거나, 일부 보증금이라도 전세보험 보호를 받도록 하는 완충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인천 전세 빌라 63%가 보험 가입 불가… “세입자 계약후에야 알아”
[불안한 빌라 전세]
“전세사기 방지” 가입기준 높이자
인천 ‘가입불가’ 1년새 19%P 급증
세입자 울며겨자먹기 계약 속출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B빌라는 올해 6월 1억6000만 원에 전세 계약됐다. 올해 이 빌라의 공시가격은 1억1400만 원. 올해 5월 이전에는 전세보험 가입에 아무 문제가 없는 거래였다. 보증금이 공시가격의 1.5배(1억7100만 원)를 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계약 시점인 6월에는 전세보험 가입이 불가능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전세보험) 가입 기준에 따라 보증금이 공시가격의 1.26배(1억4364만 원)를 넘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전세보험 가입 신청 자체가 계약서를 작성하고 나서야 가능해 세입자들이 가입하고 싶어도 가입을 못 하게 되는 상황”이라며 “전세보험 가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도 신축이거나 입지가 좋은 빌라 보증금은 가입 기준을 넘는 경우가 많아 세입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가입 불가 빌라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 전세사기 피해 컸던 인천, 빌라 전세 62.8%가 보험 가입 불가
전세사기 사건이 잇따르면서 전세금을 지키기 위한 전세보험 가입이 필수로 여겨지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전세보험에 가입되지 않는데도 전세 계약을 맺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HUG에서조차 전세금을 받지 못하게 되며 전세금 떼일 위험을 세입자 개인이 떠안게 되는 것. 빌라 세입자의 주거 안정성이 더 떨어지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올해 5∼7월 거래된 빌라 전세 중 2채 중 1채꼴만 전세보험에 가입될 정도로 전세보험 가입이 까다로워진 것은 올해 5월부터 전세보험 가입 기준이 강화된 영향이 크다. 정부는 5월부터 전세사기범들이 ‘무자본 갭투자’를 하지 못하게 전세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보증금 기준을 매매 가격의 100%에서 90%로 강화했다. 빌라는 매매가 잦지 않기 때문에 공시가격의 150%를 매매가격으로 인정해 왔는데, 이 역시 140%로 낮췄다. 기존엔 공시가격의 1.5배까지였던 전세보험 가입 기준이 올해 5월부터는 공시가격의 1.26배로 강화됐다는 의미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시작된 집값 하락세가 올해 빌라 공시가격에 반영되면서 전세보험 가입 기준이 한층 강화됐다.
지역별로는 전세보험 가입 불가 빌라 비중은 특히 전세 사기가 기승을 부렸던 인천에서 높았다. 인천의 빌라 전세 거래 2295건을 분석한 결과 1442건(62.8%)의 보증금이 전세보험 가입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43.9%) 대비 약 20%포인트 높아졌다. 서울은 전세보험 가입 불가 빌라 비중(41.1%) 자체는 낮았지만, 빌라 거래량 자체가 많아 전세보험에 가입 못한 빌라 수(6357건)가 나머지 시도를 모두 합한 것(6124건)보다도 많았다.
이는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의 5∼7월 빌라 전세 거래를 전수 분석해 나온 결과다. 전세보험 가입 가능 여부를 판단할 때 사용한 올해 빌라 공시가격은 지난해 공동주택 공시가격 1453만6936건에 올해 빌라 공시가격 평균 인하율(6%)을 대입해 추산했다.
● 세입자들 “전세보험 가입 안 돼도 대안 없어”
빌라 세입자들은 전세보험 가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약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다른 빌라로 가고 싶어도 비슷한 조건이라면 보증금에 큰 차이가 없어 같은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최근 1년(지난해 7월∼올해 7월)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16.3% 하락했지만, 빌라는 3.9% 떨어지는 데 그쳤다. 애초에 전셋값에 큰 변동이 없는 상태에서 전세보험 가입 기준만 강화됐다는 뜻이다.
보증금은 전세보험 가입 기준에 맞추고, 월세를 일부 내는 반전세로 전환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집주인이 기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때 일부를 본인의 현금으로 마련해야 하는데,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집주인이 많기 때문이다.
서울 송파구 C빌라에 거주하다 올해 8월 은평구 아파트로 이사한 정모 씨(35)는 “빌라 전세 보증금이 2억7000만 원이었는데, 7월 계약 만기 시점에 맞춰 신규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서 애를 먹었다”며 “보증금을 좀 낮춰서 세입자를 찾아 달라고 집주인에게 몇 번이나 부탁했지만, 본인도 현금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고 했다.
일반 서민이나 젊은층이 많이 사는 빌라 특성상 월세 지출이 늘어나는 것을 꺼리는 경향도 있다. 특히 최근 빌라 월세가 상승하고 있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7월 서울 빌라 월세통합가격지수(월세·준월세·준전세 포함)는 0.01% 올랐다. 지난해 꾸준히 상승하다 11월(0.01%) 이후 하락세였지만, 8개월 만에 상승세로 전환된 것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우병탁 신한은행 압구정역기업금융센터 부지점장은 “빌라의 공시가격이나 면적을 고려해서 주거 약자가 거주한다고 판단되면 전세보험 가입 기준을 완화해주는 등의 탄력적 제도 운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주택 공급 확대를 서둘러서 세입자들의 선택지를 넓힐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순구 기자, 송진호 기자, 오승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