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글〉
스포츠 세계를 다룬 영화를 보면, 〈우리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s)〉이라는 노래가 곧잘 배경 음악으로 흘러나온다. 실제로 이 노래는 미국과 영국에서 스포츠 시합이 끝날 때면 경기장에 울려 퍼지곤 한다. 승리의 찬가로도 유명한 이 곡은,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까지 전세계 음악 팬들을 사로잡았고, 2001년에는‘로큰롤 명예의 전당’공연자(performers) 부문에 오르기도 했던 전설적인 록 그룹‘퀸(Queen)'의 대표작이다. 오늘은 네 명의 멤버가 빚어 내는 놀라운 화음과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멜로디로 유명한 영국의 록 그룹 퀸에 대해 알아보자.
1. 1970년대 록 음악계의 지형도를 바꾼 그룹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음반 직배사들 중 메이저급 회사인 EMI는 끊임없이 새로운 외국 가수의 앨범을 발매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꾸준히 팔리는 앨범의 주인공은 그 옛날에 활동했던 ‘비틀스(Beatles)’와 ‘퀸(Queen)’이라고 한다. 이미 활동을 접은 역사 속의 그룹들이지만, 두 그룹의 앨범이 요즘 스타들의 앨범보다 판매량에서 앞선다는 것이다. 그래서 “EMI는 비틀스와 퀸 때문에 버틴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퀸은 1970년대 중반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로 처음 소개될 때부터 국내 팝 음악 팬들을 사로잡아 버렸다. 그 당시엔 외국 음악을 즐겨 듣던 사람이라면 거의 대부분 록 그룹‘딥 퍼플(Deep Purple)’이나‘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음악에 빠져 있었다. 10대, 20대 초반의 록 마니아들은‘딥 퍼플파(派)'와 ‘레드 제플린파(派)'로 나뉘어 서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그룹이 연주 실력이나 음악성 면에서 최고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경쟁하곤 했다. 그런데 홀연히 퀸이라는 그룹이 등장하면서 천하 이분(二分)의 시대는 끝났다. 새로이‘퀸파(派)'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 퀸이 들고 나온 음악은 너무나 새롭고 경이로웠다. 초기 작품인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오페라를 연상시키는 부분은 일찍이 상상하지 못했던 괴이한 보컬 하모니를 들려주었고, 특히 리드 보컬인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는 남자 가수로서는 드물게 옥타브(octave, 음계상의 어떤 음에서부터 8음정이 되는 음 또는 그 둘 사이의 간격)를 넘나드는 가창력을 과시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최소한 3옥타브는 쉽게 넘나들 정도로 놀라운 음역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곡도 소화해 낼 수 있었다.
2. 매혹적인 보컬과 멜로디의 힘
퀸의 인기야 우리 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꾸준한 것이지만, 우리 나라에서 퀸이 변함없이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는 멜로디가 우리의 음악적 정서에 잘 맞기 때문이다. 리듬이나 연주보다는 멜로디 중심으로 노래를 듣는 우리의 음악적 정서에 멜로디를 중요하게 여기는 그들의 곡이 부합했던 것이다. 실제로 퀸의 음악은, 가사는 상당히 무겁고 어두운 내용일지라도 멜로디 면에서는 언제나 듣는 사람을 매혹시킨다. 그리하여 그들의 노래는 한번 듣고 나면 쉽게 잊을 수 없다.
그런데 퀸의 음악에서 특히 멜로디가 돋보일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 덕분이었다. 대중 음악에서 멜로디의 전달력을 높이는 것은 가수의 몫이다. 그러니까 음악 팬들이 퀸의 노래를 좋아했다는 것은 프레디 머큐리가 선보인 뛰어난 가창력과 카리스마에 취했다는 말과 같다. 그는 마치 화가가 붓을 가지고 머리 속에 떠오른 영상을 캔버스에 옮기듯 능숙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다루었다. 국내 팬들이 너무도 좋아하는 〈내 일생의 사랑(Love Of My Life)〉에서 그의 목소리는 애절했고, 〈보헤미안 랩소디〉에서는 곡예사처럼 변화 무쌍했으며, 〈사랑이라는 이름의 작은 미친 것(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에서는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기름진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런가 하면 〈또 한 사람이 쓰러지네(Another Bites the Dust)〉에서는 마이클 잭슨처럼 리드미컬하게 살아 꿈틀거리는 목소리를, 〈난 자유롭고 싶어(I Want Break Free)〉에서는 힘이 넘치는 목소리를 팬들에게 선사했다.
프레디 머큐리의 매혹적인 보컬 덕분에 퀸의 음악에서는 클래식의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지난 2000년 〈난 다시 사랑할 거야(I Will Love Again)〉라는 히트 곡을 낸 벨기에 출신의 여가수 라라 파비안(Lala Fabia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퀸이야말로 록과 클래식의 결합을 주도한 그룹이며, 나도 그들처럼 클래식의 분위기가 감도는 팝송을 부르고 싶다.” 이처럼 뮤지션들 중에는 퀸의 클래시컬한 분위기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리드 보컬로서의 프레디 머큐리의 역량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록 음악 비평가들이 그랬다. 비평가들은 그의 보컬(발성)이 정통을 벗어난 것이며, 특이함만을 앞세운 나머지 자연스럽지 못하다며 비판했다. 프레디 머큐리 개인뿐 아니라, 퀸 전체의 음악도 비슷한 이유로 공격을 받았다. 그런 까닭에 지금까지도 퀸의 걸작 앨범이 비평가들이 선정하는 명반에 드는 일은 매우 드물다.
하지만 비평가들과 달리 대중은 퀸과 프레디 머큐리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그것은 마치 “평론가는 평론가고, 우리가 듣기에는 너무도 환상적인데 어쩌란 말이냐?”는 식이었다. 퀸만큼 대중의 호의와 평론가들의 적의 사이에 낀 그룹이 없다는 설명도 그럴듯해 보인다.
어쨌든 퀸은 유명 음악 잡지와 평론가들의 비난에 무척이나 불편해 했다. 프레디 머큐리는 자신을 조롱하는 듯한 기사를 몇 차례 읽고 난 뒤로는 대부분의 인터뷰를 거부했다. 그 때문에 퀸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다른 인기 그룹들에 비해 신기할 정도로 멤버들의 사생활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퀸을 둘러싼 극단적인 평가는 대중과 비평가의 차이, 그리고 그것이 지닌 의미를 분석하는 데 더없이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3. 절정에서 해체까지
퀸은 1971년 영국 런던에서 프레디 머큐리, 브라이언 메이(Brian May, 기타), 존 디콘(John Deacon, 베이스), 로저 테일러(Roger Taylor, 드럼)의 4인조 그룹으로 결성되었다. 그들의 음악에는 주로 인간 소외, 인간성 회복, 희망, 순수한 사랑 등의 내용이 담겨 있는데, 그룹을 이끌었던 프레디 머큐리와 브라이언 메이가 대부분의 곡을 작사, 작곡했다.
그들이 처음에 발표한 두 장의 앨범 〈퀸Ⅰ(QueenⅠ)〉과 〈퀸Ⅱ(QueenⅡ)〉는 연거푸 실패했다. 그러나 그들은 1974년 세 번째 앨범 〈완전한 심장 마비(Sheer Heart Attack)〉에 실린 〈킬러 퀸(Killer Queen)〉으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그 이듬해에는 앨범 〈오페라의 밤(A Night At The Opera)〉과 여기에 담긴 〈보헤미안 랩소디〉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단번에 스타로 떠올랐다. 한 번 정상에 선 뒤부터 퀸은 줄곧 정상 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로 서서히 퀸의 인기가 떨어졌다. 프레디 머큐리가 솔로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1985년 라이브 에이드 자선 음악회(The Charity Concert Live Aid) 공연을 계기로 다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퀸은 어느덧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91년 11월에 프레디 머큐리가 45세의 나이로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다. 음악 활동을 하는 동안 언론을 멀리했던 그는, 죽기 하루 전날 자신이 후천성 면역 결핍증(AIDS) 환자임을 언론에 공개했다. 프레디 머큐리가 죽은 이듬해 4월, 남은 멤버 세 명과 엘튼 존, 데이비드 보위, 액슬 로즈(그룹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보컬) 등 쟁쟁한 뮤지션들이 참여한 가운데 프레디 머큐리 추모 공연이 성대하게 열렸다. 영국 웸블리 경기장에서 열린 이 공연은 세계 10억 인구가 텔레비전으로 시청했다. 이와 동시에 〈보헤미안 랩소디〉가 다시 인기를 얻어 전미(全美) 음반 순위 2위, 영국 음반 순위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그만큼 그 당시의 추모 열기는 대단했다.
프레디 머큐리의 죽음은 잊혀져 가던 그룹 퀸을 잠시나마 부활시켰다. 1995년에는 프레디 머큐리가 죽기 전에 아픈 몸을 이끌고 녹음한 유작 앨범 〈천국에서 만든(Made In Heaven)〉이 공개되어 또 한차례 퀸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병세가 악화된 상태에서도 이를 악물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팬들에게 비장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그는 몇 주 동안 휠체어를 타고 곡을 녹음했다. “오늘 몇 시간은 스튜디오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노래를 하게 해줘. 뭐든 써 주면 노래를 할게. 가능한 많이.” 프레디 머큐리는 음반 하나를 만들 정도의 곡을 노래하고 나서 죽음을 맞았고, 퀸의 남은 멤버들은 각자 솔로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이 앨범의 마무리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렇게 4년의 시간이 걸려서 탄생한 것이 바로 〈천국에서 만든〉이라는 앨범이었다.
비록 일시적으로 부활의 조짐을 보이긴 했으나, 퀸은 프레디 머큐리의 죽음과 함께 사실상 그룹으로서의 수명을 다했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기록 중에는 후배 록 그룹의 추월이 불가능할 만큼 화려한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그들은 700회가 넘는 라이브 콘서트를 열었는데, 이 횟수는 지금까지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또한, 록 그룹 최초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대형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했으며, 1986년 독일에서는 7만 8,000명이라는 사상 최대의 관객 앞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게다가 퀸의 히트 곡 모음집 〈Greatest Hits〉(1981)가 영국 음반 순위에 550주, 즉 10여 년 동안 머물렀다는 점, 뮤직 비디오를 처음으로 선보인 것이 바로 퀸이라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퀸은 지금으로부터 27년 전 〈보헤미안 랩소디〉를 발표할 때 홍보용 비디오를 함께 만들었는데, 그것이 뮤직 비디오의 시초라 할 수 있다.
퀸의 노래는 지금도 쉬지 않고 전파를 타고 음악 팬들의 귀를 적시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인터넷 팬 클럽에서 활동 중인 사람들만 해도 3,000명이 넘는다. 놀랍게도 그들은 대부분 10대와 20대의 신세대들이다. 이것은 40대의 음악적 정서를 결정한 퀸의 음악이 계속해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퀸은 영국과 미국을 넘어 전세계의 대중들이 사랑했던, 그리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대표적인 록 그룹이다. 음악에 관한 한 그들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20세기의 유산’이다.
〈잊을 수 없는 퀸의 노래들〉
1. 〈Killer Queen〉 ― 앨범 〈Sheer Heart Attack〉(1974)의 수록곡
2. 〈Love Of My Life〉, 〈You’re My Best Friends〉, 〈Bohemian Rhapsody〉 ― 앨범 〈A Night At the Opera〉(1975)에 수록된 곡들
3. 〈Somebody To Love〉, 〈Good Old-Fashioned Lover Boy〉 ― 앨범 〈A Day At The Races〉(1976)에 수록된 곡들
4. 〈We Will Rock You〉, 〈We Are The Champions〉, 〈Who Needs You〉 ― 앨범〈News Of The World〉(1977)에 수록된 곡들
5 〈Don’t Stop Me Now〉 ― 앨범 〈Jazz〉(1978)의 수록곡
6.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Another One Bites The Dust〉 ― 앨범 〈The Game〉(1980)에 수록된 곡들
7. 〈Under Pressure〉, 〈Body Language〉 ― 앨범 〈Hot Space〉(1982)에 수록된 곡들
8. 〈I Want To Break Free〉, 〈It’s A Hard Life〉 ― 앨범 〈The Works〉(1984)에 수록된 곡들
9. 〈A Kind Of Magic〉, 〈Who Wants To Live Forever〉 ― 앨범 〈A Kind Of Magic〉(1986)에 수록된 곡들
10. 〈The Miracle〉 ― 앨범 〈The Miracle〉(1989)의 수록곡
11. 〈The Show Must Go On〉, 〈I’m Going Slightly Mad〉 ― 앨범 〈Greatest HitsⅡ〉(1991)에 수록된 곡들
12. 〈Heaven For Everyone〉 ― 앨범 〈Made In Heaven〉(1995)의 수록곡
〈음악 관련 직업에 대하여(다섯 번째) - 음반 직배사 직원〉
1. 음반 직배사란?
‘직배’란 ‘직접 배급’의 준말로, 외국 음반사가 국내 음반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외국 가수의 음반을 국내 시장에 유통·배급하는 것을 말한다. 옛날에는 엘튼 존이나 마이클 잭슨 같은 외국 가수들의 음반이 지구 레코드, 오아시스, 서울 음반, 성음 등 국내 음반사를 거쳐 발매되었으나, 지금은 외국 음반사가 국내에 세운 직배사들을 통해 발매되고 있다. 이들 음반 직배사가 우리 나라에 진출한 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였다. 현재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 직배사로는 유니버설, EMI, 소니 뮤직, 워너 뮤직, BMG 등 5대 대형 직배사와 자이브 레코드, 록 레코드가 있다.
2. 직배사 직원은 어떤 일을 하는가?
직배사 직원의 업무는 외국 음반사의 레이블(label, 특정 장르의 음악을 취급하는 음반사의 전문 브랜드)을 담당하는 것과 음반에 대한 홍보와 판매(마케팅)를 담당하는 것으로 크게 나뉜다. 레이블 담당자는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앨범 중에서 국내에서 출시할 만한 앨범들을 골라내거나 기획한다. 한편, 마케팅 담당자는 다시 세부적으로 신문사 담당, 방송사 담당, 레코드 매장 담당으로 나뉜다.
3. 직배사에서는 외국 가수의 음반만 나오나?
직배사라고 외국 가수의 앨범만 출시하는 것은 아니다. 직배사에도 흔히 ‘로컬(local)’이라고 하는 가요부가 있어서 우리 나라 가수의 음반도 출시한다. 처음에는 외국 직배사라는 이유로 꺼리는 경우도 있었으나, 요즘은 국내 음반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체계가 잘 잡혀 있는 직배사를 선호하는 음반 제작자들이 많아졌다. 판매량에 따른 인세 지급이나 계약 조건 등에서 상대적으로 믿을 만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4. 직배사 직원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은?
직배사 직원이 되고 싶다면 단순히 음악을 좋아하기만 해선 곤란하다.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에 대한 깊이 있는 상식을 갖추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레이블 담당자는 외국 음반사의 관계자들과 수시로 만나야 하므로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회화에 능통해야 한다. 또 마케팅 담당자의 경우에는 적극적인 사고와 활동성까지 함께 요구된다.
5. 직배사 직원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음반 업계가 호황을 누렸던 1990년대 중반까지는 1년에 한 번꼴로 직원을 모집했고 더러 수시로 채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음반 업계는 1997년 말에 불어닥친 IMF 한파로 인한 불황의 타격에서 아직까지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직배사들이 직원을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또 사원을 채용한다고 해도 직배사 업무가 특수성과 전문성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입 사원보다는 경력 사원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직배사 직원 중에는 서너 군데의 직배사에서 근무한 경력자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반드시 직배사에 입사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인터넷과 관련 서적들을 통해 최신 정보를 수집하면서 기회를 포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