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잘나가는 것들? 아이돌 그룹 워너원, 신조어 ‘소확행’, ‘짠테크’가 떠오른다. 재생공간도 그 대열에 동참한다. 서울 곳곳에서 서울로7017, 문화비축기지, 경춘선숲길 등 재생의 물결이 인다. 오래된 공간을 다시 들여다보는 이들이 많아지고, 버려진 물건에 새로움을 입히는 일도 늘고 있다. 세운상가와 서울새활용플라자는 녹슬었다가 다시 태어난 것들로 가득하다. 둘러보고 나면 알게 된다. 잘생긴 재생공간 하나, 새 건물 열 채도 부럽지 않다.
세운상가 입주 21년 차 나호선 장인
#다시 만난 세운상가, 안녕하세운?
세운상가만큼 희비를 겪은 건물이 또 있을까. 세운상가는 1968년 문을 연 국내 최초의 종합전자상가다. ‘세상의 기운이 모인다’는 이름에 걸맞게 1970~19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다. 우리나라 소프트웨어(SW)업계 자존심인 한글과컴퓨터, 국내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PC)를 만든 TG삼보컴퓨터, 국내 홈 네트워크 부문의 강자 코맥스 등이 이곳에서 몸집을 키웠다. 용돈을 받으면 쪼르르 달려와 비디오 게임기나 워크맨을 샀던 학생들에게는 ‘세운상가키즈’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상가는 급변하는 시대에 발목을 잡혔다. 용산전자상가, 강변테크노마트가 생겨나고 인터넷 쇼핑몰이 등장하자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세운상가는 점점 잊히는 듯했다.
그러던 2017년 9월, 세운상가가 새롭게 태어났다. 서울시의 ‘다시·세운’ 프로젝트로 말끔히 새 단장을 했다. 시민에게는 공중 보행교와 전망대가, 청년 창업가들에게는 작업공간이 생겼다. 올해 쉰한 살이 된 세운상가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왼쪽/오른쪽]새 단장을 한 세운상가 외관 / 입구에는 세운상가 상인들이 만든 로봇, ‘세봇’이 서 있다.
기판을 활용한 ‘다시·세운’ 프로젝트 안내판
3F #다시세운교 #걷다
다시세운교는 세운상가 3층 왼쪽 출구에서 시작해 청계상가, 대림상가를 잇는 58m 길이의 공중 보행교다. ‘다시세운교’라는 이름에서 다리의 역사가 짐작된다. 다리는 청계천 공사 당시 철거됐다 12년 만에 되살아났다. 다시세운교 위에서는 청계천 일대를 내려다볼 수 있다. 10여 년간 잊고 있던 풍경을 되찾았다. 3층 높이 다리 아래, 세로로 길게 뻗은 청계천이 흐른다. 청계천 변을 걷고 싶을 땐 세운상가에서 청계상가로 넘어가는 지점의 계단을 이용한다.
두 상가가 연결되는 구간에는 오래된 가게와 새로운 가게가 사이좋게 이웃한다. 빛바랜 간판의 조명가게에서 다섯 발자국만 걸으면 연보라색 간판의 카페가 나타난다. 젊은이 취향을 저격하는 카페와 밥집이 생겨나며 거리는 부쩍 활기를 띤다. ‘호랑이 라떼’로 입소문을 타고 있는 카페 ‘호랑이’는 진갈색 내부 인테리어가 고풍스럽다.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도 맛있지만, 진정한 세운상가표 산책을 원한다면 다방 커피를 추천한다. 다시세운교에서 일회용 인스턴트 커피와 종이컵을 얹은 양은 쟁반을 들고 다니며 커피를 타 주는 아주머니를 만날 수 있다. 커피 한 잔에 단돈 500원. 상인들이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는 커피에는 소박한 즐거움이 녹아 있다.
[왼쪽/오른쪽]세운상가와 대림상가를 잇는 ‘다시세운교’ / 청계천으로 내려가는 계단
새로운 카페와 오래된 조명 가게가 나란하다.
5F~8F #장인들 작업실과 ‘ㅁ’자 중정 #만나다
쉰한 살의 세운상가는 수많은 사람이 지켰다. 5층부터 8층에는 온갖 기술자들이 머무른다. 그들은 어엿한 장인이다. 등을 한껏 구부린 채 손톱만 한 부품을 들여다보고 수리한다. ‘세운상가에서는 부품만 있으면 로봇도 만들어낸다’는 말이 생긴 것도 이들 덕이다. 세운상가 6층 665호 나호선엘렉트릭의 나호선 대표도 그중 한 명이다. 이곳에 둥지를 튼 지 21년. X-ray 같은 의료기기, 공장 중장비, 실험실 분석기기 등 각종 산업장비를 고친다. 어릴 적 그의 가장 큰 행복은 세운상가에서 산 광속 라디오 키트를 조립하는 것이었다. 형과 밤새 라디오를 매만지다가 지지직~, 아나운서 목소리가 흘러나왔을 땐 팔에 소름이 돋았다. 청소년용 과학잡지에 부품 정보가 실리면 한달음에 세운상가로 달려갔다. 세운상가에 없는 부품이란 없었으니까. 라디오 키트를 조립하던 소년은 한국 제일의 수리공이 되어 세운상가와 함께 나이 들어간다.
8층 851호 KNOT 류재용 대표는 스피커, 오디오, 앰프 등 오디오 시스템을 만든다. 초면인 사람에게 대뜸 얼마 전 만든 진공관 블루투스 스피커를 자랑한다. 참 음질이 맑다. 절로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음악 소리에 빠져든다. 일흔이 넘은 장인은 자신이 만든 오디오로 음악을 들을 때 가장 뿌듯하다. 눈이 침침해도 일손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장인들 같은 맥가이버가 되고 싶다면 내려가는 길에 5층 ‘팹랩서울’에 들러보자. 팹랩서울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 제작소다. 준비할 건 설계 도면뿐이다. 펜치, 드라이버, 납땜 장비 같은 기본 공구부터 3D프린터, 컴퓨터수치제어(CNC) 머신 같은 디지털 장비까지 제작에 필요한 모든 게 잘 갖춰져 있다.
기판에 납땜질하는 나호선 대표
오디오 시스템을 만드는 류재용 대표
[왼쪽/오른쪽]온갖 공구가 가득한 작업실 책상 / 팹랩서울에 구비된 3D프린터
새로움 속에서도 옛 모습을 잃지 않은 세운상가. 건물의 백미라는 ‘ㅁ’자 중정도 여전하다. 8층에서 내려다보면 겹겹의 난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실 세운상가는 한국 최초 주상복합건물로 1~4층은 상가, 5~8층은 아파트였다. 5층부터 8층까지는 중정을 중심으로 양쪽에 집이 늘어선 당시 아파트 구조다. 요즘은 쉬이 볼 수 없는 건축 양식인지라 강동원·고수 주연 영화 <초능력자>의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 나무 난간은 긴 세월,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 윤이 난다. 반투명 아크릴 유리천장으로 들이치는 햇살이 눈부시다.
세운상가 건축의 백미, ‘ㅁ’자 중정
9F #세운옥상 #바라보다
도심 한복판에 숨을 고를 수 있는 전망대가 생겼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세운상가 꼭대기, 9층은 옥상이다. ‘세운옥상’이란 이름도 붙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에 내리면 북쪽으로 종묘, 남쪽으로 남산 N서울타워, 동서로 파란 슬레이트 지붕을 인 상가와 우뚝 선 고층빌딩이 360도로 펼쳐진다. 어디를 봐도 멋이 있지만 눈이 시원해지는 전망은 종묘 쪽이다. 엘리베이터 옆 나무데크 뒤에 아담한 도시 텃밭이 있다. 레몬밤, 애플민트 등 이름만 들어도 싱그러운 허브들이 파릇파릇 잎을 틔울 준비 중이다.
[왼쪽/오른쪽]전망대가 된 9층 세운상가 ‘세운옥상’/ 북쪽으로 종묘가 내려다보인다.
#재활용 말고 새활용, 서울새활용플라자
초등학교 때 바리바리 폐지를 싸 들고 학교에 갔던 기억이 있다. 아이들이 가져온 폐지 더미는 덤프트럭으로 휙휙 날아올랐다. 알고 싶었다. 폐지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아빠가 보던 신문이 공책으로 변하는 걸까? 그때 서울새활용플라자가 있었다면 궁금증을 풀었을 것이다. 서울새활용플라자는 2017년 9월, 성동구 중랑물재생센터에 개관한 업사이클링 문화공간이다. 재료 수거부터 가공, 제품 생산과 판매까지 ‘새활용’의 전 과정을 원스톱으로 보여준다.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 건물에는 소재은행, 전시장, 새활용 소재라이브러리, 새활용 제품을 전시하는 스튜디오가 갖춰져 있다.
‘새활용’은 ‘업사이클링(Upcycling)’의 순우리말이다. 새활용은 버려진 물건에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더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빈 맥주병에 꽃을 꽂으면 화병이 된다. 이건 재활용이다. 맥주병을 이어 붙여 조명을 만든다. 이건 새활용이다. 고장 난 우산이던 지갑, 해진 청바지였던 에코백 등 새활용플라자에는 과거를 재활용해 새 생명을 받은 제품이 가득하다. 세운상가와 서울새활용플라자에서 오래된 것의 숨은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다.
[왼쪽/오른쪽]서울새활용플라자 외관 전경 / 서울새활용플라자 내부
[왼쪽/오른쪽]우유팩으로 만든 지갑이 달린 대형 우유팩 / 폐자전거 체인을 새활용한 조명
B1/2F #소재은행 #새활용 소재라이브러리 #재탄생하다
폐가구, 폐목재, 공병, 헌책, 철물이 한자리에 모였지만 고물상은 아니다. 새활용 재료를 진열한 소재은행이다. 새활용 제품의 원재료와 작품을 전시한다. 입구의 문구 ‘새활용: 폐기물에 디자인을 더하는 21세기의 연금술’은 전시 성격을 잘 보여준다. 부러진 스키나 손상된 스케이트보드 같은 폐스포츠용품도 새로 태어날 수 있다. 스포츠용품은 재활용 기준이 없어 대개 대형 폐기물로 버려지지만 보드 부분을 다리 삼으면 멋스러운 의자가 된다.
2층은 새활용 소재 200여 종을 카테고리별로 보여주는 소재라이브러리다. 생활폐기물, 사업장 폐기물, 건설폐기물 등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한 다음 소재에 따라 각 카테고리 내에서도 종이, 목재, 금속, 비닐 등으로 세분화해 전시한다. 목판에 손바닥만 한 크기의 소재 샘플이 가지런히 배치되어 있다. 종이 코너는 우유팩과 달걀판을, 고무와 피혁 코너는 오리 장난감과 고무호스를 전시한다. 같은 재료, 다른 형태의 물건을 나란히 두고 만질 수 있게 했다. 체험을 통해 새활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플라스틱 상자와 합판으로 디자인한 입구
[왼쪽/오른쪽]버려진 주방용품을 새활용한 조명 / 낡은 스케이트보드를 새활용한 의자
새활용 소재의 물성을 파악할 수 있는 소재라이브러리
3/4F #새활용 스튜디오·쇼룸 #구경하다
2층에서 새활용 제품의 이전 모습(before)을 봤다면 이젠 달라진 모습(after)을 볼 차례다. 3~4층에는 디자이너들의 작업실이자 쇼룸 30여 개가 있다. LP판이 시계가 되고 낡은 PVC 포스터가 가방이 되는 연금술을 경험할 수 있다. 가방, 파우치, 스마트폰 케이스 등 실용적인 제품이 주를 이룬다. 쇼윈도로 낡은 천이나 빛바랜 청바지가 디자이너의 손에서 새로워지는 모습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평소 접하기 힘든 새활용 제품이 한자리에 모여 있어 소소한 쇼핑 플레이스로도 제격. 새활용에 담긴 의미도 좋지만, 예뻐서 자꾸 손이 간다. 한때 폐기물이었다고 믿기 힘들 만큼 컬러풀하다. 그 색, 봄의 화사함을 빼닮았다.
[왼쪽/오른쪽]청바지로 새활용 제품을 만드는 디자이너 / LP판으로 만든 시계와 스마트폰 케이스
여행정보
- 주소 :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159
- 문의 : 02-2271-2344
- 이용시간 : 09:00~19:00 (업체마다 영업시간 다름)
- 쉬는 날 : 일요일, 공휴일
- 주소 : 서울 성동구 자동차시장길 49
- 문의 : 02-2153-0400
- 이용시간 : 화~목요일, 일요일 10:00~18:00, 금~토요일 10:00~19:00
- 쉬는 날 : 월요일, 추석 당일
주변 음식점
- 계림 : 닭볶음탕 /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4길 39 / 02-2263-6658
- 육회자매집 : 육회, 육회비빔밥 / 서울 종로구 종로 200-4 / 02-2274-8344
- 진촌설렁탕 : 설렁탕 / 서울 성동구 천호대로 438 / 02-2248-0445
숙소
- 아미가인서울 : 서울 종로구 종로31길 46-8 / 02-3672-7970 / 한국관광품질인증
- 나포레호텔 : 서울 종로구 수표로18가길 17 / 02-2277-6511 / 한국관광품질인증
- 제이제이호텔 : 서울 성동구 자동차시장1길 29 / 02-2245-55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