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흰 구렁이
박정애
냉동실을 뒤지다 곶감을 발견했다. 검은 비닐봉지에 담겨 저 안쪽으로 밀려나 있었다. 언제 넣어두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도 오래전에 보관해 둔 모양이었다. 그런데 곶감은 얼어있지 않았다. 오랜 시간 영하 18도의 냉기 속에서도 얼지 않은 비결이 무엇일까? 한 개를 꺼내 한 입 베어 물었다. 응축된 단맛의 정수가 씹혔다, 쫄깃하게.
곶감을 먹다 말고 갑자기 핸드폰을 뒤적였다. 일정표를 살펴보니 엄마 면회 순번이 다가오고 있었다. 8년 동안 온갖 노환에 시달린 엄마. 그런데도 엄마는 자식들 집이든 요양병원이든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을 극구 거부했다. 혼자서 고향 집을 지키고 있는 엄마를 위해 은퇴한 오빠들이 차례대로 내려가 몇 개월씩 같이 살기도 하고 그럴 형편이 안 되는 자식들은 순번을 정해 매주 고향에 내려가며 그 긴 시간을 버텼다. 그러다 결국 ‘길어봐야 6개월’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고 고향 근처 요양병원에 들어가게 되셨다. 하지만 엄마는 벌써 4년째 꿋꿋하게 생을 유지하고 계신다.
곶감 한 개를 더 베어 물다 문득 또 하나의 궁금증이 일었다. 코로나로 면회까지 전면 금지되기도 했던 그 동토의 나날들 동안 엄마를 버티게 해준 힘은 무엇이었을까?
드디어 엄마 면회 가는 날, 언니한테 전화가 왔다. 혼자 삭히고 있다가 동생의 충격을 덜어주기 위해 전화를 한 것 같았다.
“엄마가 자꾸 흰 구렁이가 보인다고 하신다. 똬리를 틀고 계속 엄마를 쳐다보고 있다고.”
언니가 말을 맺지 못하고 잠깐 숨을 고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나한테, 너는 저 구렁이가 안 보이냐고 묻더니 자기는 구렁이가 왜 여기 있는지 다 안다고 하더라.”
아마도 엄마한테 그 하얀 구렁이는 자신을 저승으로 인도할 저승사자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언니의 말을 듣는 순간 항상 죽음을 염두에 두며 살 수밖에 없는 노인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해 왔다. 언니는 엄마의 말을 듣고 소름이 끼쳤다고 했지만 나는 전해 들어서 충격의 여파가 덜했을 수도 있지만 두려움보다는 가여움이 앞섰다.
사전 정보를 준 언니 덕분에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엄마를 만났다. 엄마의 모습은 살아 있는 미라처럼 보였다. 그 까맣고 반짝였던 두 눈동자도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탈색되어 있었다. 혹시 나를 못 알아보면 어쩌나 했는데 그래도 나를 보고 ‘왔냐?’ 하고 먼저 인사를 건네주었다. 하지만 기운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였다.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은 뒤 설마? 했던 질문을 나에게도 건네셨다.
“너한테도 저 흰 구렁이가 보이냐?”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엄마에게 되물었다.
“엄마, 구렁이가 어디 있어?”
엄마가 축 늘어져 있던 손목을 기운차게 들어 병실 창가 구석을 가리켰다.
“저기, 저기 있냐, 안?”
병실 구석에는 냉장고 한 대가 세워져 있을 뿐이었다.
“엄마, 어디? 저 냉장고 앞?”
내가 다시 물었다.
“그래, 거기.”
엄마는 자기 말에 처음으로 귀 기울여주는 어른을 만난 어린 소녀처럼 처음 나를 맞이했을 때와는 달리 조금은 힘이 있는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엄마가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은 환자들에게 친절하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면회 때 보면, 어린 아기가 엄마를 보고 좋아하듯이, 엄마가 요양 보호사분을 반기며 양팔을 뻗는 모습을 종종 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분한테는 구렁이가 보인다는 얘기를 왜 하지 않으셨을까? 만약 그 얘기를 했다면 분명히 보호자한테 엄마의 증세를 전해주었을 것이다. 게다가 육 남매이다 보니 언니와 나뿐만 아니라 네 명의 올케들도 순서대로 면회하는데 흰 구렁이 얘기를 들었다는 말이 없었다. 아마도 흰 구렁이가 보이는 것이 엄마한테는 쉽게 말하기 힘든 자신만의 심각한 문제였고 그래서 나름으로 가장 편하고 믿을만한 두 딸한테만 구렁이 얘기를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엄마가 가리키는 곳으로 걸어가 엄마한테 여기? 여기 맞아? 하며 되묻다가 냉장고 문을 열어보았다. 냉장실이든 냉동실이든 텅텅 비어 있었다. 엄마를 비롯해 지금 같은 병실에 누워계시는 어른들 모두 외부 음식을 드실 상황들이 안 되어 보였다. 그중에는 콧줄을 끼고 있는 분도 계셨다.
엄마가 처음 입원했을 때만 해도 냉장고 안에는 환자의 이름이 쓰인 음료와 과일 등이 많이 들어 있었다. 그중에는 엄마 것도 큰 몫을 차지했다. 자식들이 면회를 오고 맛있는 것을 냉장고에 쟁여놓고 가면 그다음 자식이 올 때까지 그 음식을 맛보며 살 힘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등도 긁어드리고 온몸에 로션도 발라 드렸다. 그리고 흰 구렁이가 엄마 데리러 온 것 아니니까 아무 걱정 하지 말라고 안심시켜 드렸다. 지금까지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한 것 보면 알 수 있지 않으냐고 납득갈 만한 근거까지 들어주었다. 엄마가 편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엄마 면회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마음이 담담했다. 내 힘으로 엄마의 흰 구렁이를 쫓아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모시고 나올 용기도 나지 않았다. 감당할 수가 없으니 그냥 외면할 수밖에…. 이런 체념의 마음을 인정하려는 찰나, 문득 어떤 의문이 떠올랐다. 혹시 냉장고를 구렁이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전에는 냉장고에 항상 엄마의 간식이 있어서 그것을 냉장고로 인식할 수 있었지만 이제 텅텅 빈 채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그 냉장고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흰 구렁이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는 당장 병원에 전화해서 전후 사정을 얘기한 뒤 냉장고를 다른 곳으로 옮겨주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드렸다. 병원에서는 콘센트가 거기밖에 없어서 다른 곳으로 옮길 수는 없다고 했다. 나는 또 궁리 끝에 그럼 칸막이 같은 것으로 냉장고를 가려주기라도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리고 다음 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냉장고를 칸막이로 가렸다고. 엄마가 이제 흰 구렁이가 안 보인다고 하셨다고.
그 말을 들은 뒤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냉동실 문을 열었다. 혹시 또 저 안 깊숙이 넣어두고 까맣게 잊어버린 그 어떤 존재가 없는지 냉기 속으로 손을 뻗어보았다. (원 : 16. 8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