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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천일결사 기도를 생방송으로 한 후 오전에는 농사일을 하고, 저녁에는 온라인으로 열린 정토회 모둠장대회에 참석해 즉문즉설을 했습니다.
새벽 4시 30분, 맑은 종소리가 생방송 주소줄을 타고 전국으로 울려 퍼졌습니다. 예불을 정성껏 한 후 카메라를 향해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오늘은 제10차 천일결사, 3차 백일기도 20일째 정진을 하는 날입니다. 함께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새벽 5시 정각에 천일결사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4천여 명의 대중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 독송까지 마친 후 스님이 오늘 읽은 경전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기도 잘하셨습니까? 벌써 3차 백일기도를 시작한 지 3주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요즘 저희가 읽는 경전은 아주 초기경전으로 알려져 있는 숫타니파타입니다. 오늘은 숫타니파타 중 부처님이 '파멸의 길'을 설하신 내용을 읽었는데, 이 내용은 사람이 어떻게 망하는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네 종류의 사람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밝은 곳에서 밝은 곳으로 가는 사람입니다. 둘째,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가는 사람입니다. 셋째,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가는 사람입니다. 넷째, 어두운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가는 사람입니다.
밝은 곳이란 경제적으로도 상황이 좋고, 가족 관계도 좋고, 여러 가지 사회적 환경이 좋다는 의미예요. 현재 좋은 조건에 처해있다는 뜻입니다. 현재 좋은 상태에 있는 사람이 계속해서 복을 지으면 그 밝음이 계속 유지가 됩니다. 즉, 밝은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의해서 점점 나쁜 곳으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현재 좋은 조건에 있는 사람이 성추행을 해서 감옥에 가거나, 욕설이나 거짓말을 해서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현재 복을 받는 사람도 그것을 유지하려면 계속해서 복을 지어야 합니다. 지금 좋다고 해서 방심을 하게 되면 복을 다 까먹고 결국 어려운 나락으로 빠지게 됩니다.
반면 현재 나쁜 조건에 있는 사람은 우선 현재의 조건이 나쁘기 때문에 복을 짓기가 어렵습니다. 가난해서 보시하기가 어렵고, 바쁘니까 봉사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처럼 현재의 조건이 나쁘면 계속해서 나쁜 곳으로 가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신라시대에 불국사를 지은 김대성은 이렇게 다짐합니다.
‘자신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보시를 하지 못하니 다음 생에도 다시 가난해지지 않겠는가. 반면 주인은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지금도 부자로 살고, 또 부자로서 다시 복을 많이 지으니 내생에도 부자로 살겠구나. 이제는 내 운명을 바꾸자. 비록 지금은 가난하지만 가난한 가운데 보시를 해서 내생에는 복을 받자.’
이렇게 마음을 먹고 자신의 운명을 바꿉니다. 이런 것이 바로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현재 밝은 곳에 있는 사람이 계속 밝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현재 어두운 곳에 있는 사람도 앞으로는 밝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비록 지금은 밝은 곳에 있으나 어두운 곳으로 나아가는 것과 지금도 어려운 곳에 있는데 계속해서 어두운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 파멸의 길입니다.
귀하고 천함은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가
오늘 읽은 경전의 내용은 부처님이 어느 바라문 집에 갔을 때의 일화입니다. 바라문은 신성한 제사를 지내고 있었어요. 제사를 지내는 도중에 부처님이 오니까 바라문은 신성한 제사에 천한 사람이 오면 부정을 탄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부처님은 왕족 출신인 크샤트리아 계급이기 때문에 바라문의 입장에서는 제사장인 자신보다 신분이 낮으니까 천하게 본 거예요. 그래서 가까이에 오지 말라고 하니까 부처님이 오히려 되묻습니다.
‘무엇이 천한 것이고, 무엇이 귀한 것입니까?’
바라문은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무엇이 천하고 무엇이 귀한지 알려달라고 청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무엇이 귀하고 무엇이 천한 지를 주욱 말씀하십니다.
‘귀하고 천한 것은 태어남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바라문 계급이라고 해서 귀하고, 수드라 계급이라고 해서 천한 것이 아니다.’
지금 들으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부처님 당시인 혈통 사회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이야기입니다. 당시는 태어나면서부터 성스러운 존재가 있고, 태어나면서부터 천한 존재가 있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신분제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계급에 의해서 귀하고 천한 것이 결정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경전에는 계급에 대한 말씀이 나오지만, 이는 성별에 의해서 천하거나 귀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피부 빛깔에 의해서 천하거나 귀하게 되는 것도 아니라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남성이라고 귀하다고 할 수 없고, 여성이라고 천하다고 할 수 없고, 백인이라고 귀하다고 할 수 없고, 흑인이라고 천하다고 할 수 없다는 거죠. 어떤 종교를 믿느냐를 갖고도 귀하다 천하다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이 말씀은 당시 사회 분위기를 감안하면 가히 혁명적인 이야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계급에 의해 귀하고 천함이 정해지지 않고,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거예요. 이것을 부처님께서는 이렇게도 설명합니다.
‘브라만도 눈이 두 개이고, 수드라도 눈이 두 개이다. 브라만도 귀가 두 개이고, 수드라도 귀가 두 개이다. 브라만도 밥을 먹고, 수드라도 밥을 먹는다. 브라만도 결혼을 하고, 수드라도 결혼을 한다. 브라만도 아이를 낳고, 수드라도 아이를 낳는다. 여기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이렇게 세세히 비교를 해주면서 모든 사람은 똑같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만약 귀하고 천함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가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말씀하셨어요.
이미 2,600년 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지위가 높으면 귀하고, 지위가 낮으면 천하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출생에 의해 귀하고 천함을 나누었다면, 요즘에는 사회적 지위에 의해 귀하고 천함을 나눕니다. 돈이 많으면 귀한 사람이라고 하고, 돈이 없으면 천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지식이 많으면 귀한 사람이라고 하고, 지식이 없으면 천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인기가 있으면 귀한 사람이라고 하고, 인기가 없으면 천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 사람 모두가 다 귀합니다. 굳이 천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자신을 해치고 남을 해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세상에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이 천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성스럽고 귀한 사람
여러분처럼 정토회의 일원이 되어 자신을 위하고 세상을 위하는 사람들은 인도말로 ‘바가반(婆伽伴, bhagavat)’, 즉 성스러운 사람들입니다. 계율을 잘 지키고, 남을 괴롭히거나 남에게 손해끼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행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남도 행복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보시하고 봉사하며 살아가는 여러분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성스럽고 귀한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들의 가는 길이 바로 수행 정진이고, 보살행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만약 천국이 있다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의하면, 가벼운 기름은 물에 안 뜰래야 안 뜰 수 없는 것처럼 선행을 행하는 사람은 천국에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습니다. 악행을 행하는 사람은 무거운 돌이 물에 저절로 가라앉는 것처럼 지옥에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어요. 이것은 신에게 빈다고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고 사는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여러분들이 수행 정진을 통해 지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즉 이 생에서도 천국에 사는 것처럼 살 수 있다면,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천국에 안 갈 수가 없습니다. 누가 막으려고 해도 저절로 가게 됩니다. 그러니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 따질 필요가 없어요. 천국이 없으면 그만이고, 천국이 있다면 반드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믿음과 확신을 갖고 살아간다면,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습니다.”
합장으로 인사를 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오니 아침 해가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산 윗밭에 들깨를 수확했습니다. 들깻잎이 누렇게 물들어 수확할 떄가 되었습니다.
대중보다 일찍 밭으로 나온 스님은 밭으로 바로 가지 않고 주변에 떨어진 밤을 주웠습니다. 밤을 물에 담가놓고 산 윗밭으로 올라갔습니다.
밭에 거의 다다랐을 때, 행자들이 연장을 챙겨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벌써 마쳤어요?”
“예, 스님. 울력 마칠 시간이 됐습니다.”
울력을 마치는 시간인 9시 30분이 이미 지났습니다. 행자들이 밭 아랫단에 심은 들깨는 모두 수확해두었습니다.
윗 단에는 시간이 부족해 들깨를 수확하지 못했습니다.
“윗 단은 제가 벨게요. 시기를 놓치면 깨가 다 떨어져요. 내일은 제가 울력할 시간이 없어요.”
내일은 아침부터 외국인을 위한 즉문즉설을 하고, 오후에는 새터민을 위한 즉문즉설을 한 후 저녁에는 일요 명상이 있기 때문에 울력을 할 수 가 없습니다.
행자들은 다른 업무가 있거나, 병원에 가야 해서 스님 혼자 들깨를 베기 시작했습니다. 들깨 향기가 물씬 풍겨났습니다.
아직 보식기간이라 그런지, 지주대가 너무 단단하게 박혔는지 지주대를 뽑는데 힘이 많이 들었습니다.
“여기도 다 영글었네!”
땅이 아까워서, 모종이 아까워서 밭 가장자리에 심은 들깨도 키는 작지만 꼬투리가 다 영글었습니다.
산 쪽에 두 줄을 다 베고 도라지 두둑 옆 한 줄도 다 벴습니다.
마을 쪽에 심은 두 줄도 다 벴습니다.
들깨 줄기는 밭 한쪽에 가지런히 두었습니다. 이렇게 7~10일 정도 말린 후 들깨를 털면 됩니다.
“그래도 다 했네.”
밭을 내려가다 또 밤을 주웠습니다.
지난 태풍에 쓰러졌던 대나무를 베어서 길 한쪽에 치워두었었습니다. 그 중 두 개를 꺼내서 낫으로 잔가지를 자르고 손질해서 가져왔습니다.
“빗자루를 더 만들어야겠어요.”
대나무를 들고 텃밭으로 향했습니다.
“손댄 김에 일을 더 해야겠어요.”
스님은 텃밭에 조금 심은 들깨도 다 베어서 널어두고 11시 30분이 되어 울력을 마쳤습니다.
농사일을 마치고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온 스님은 사무실에서 여러 업무들을 처리했습니다. 26일에 있을 니와노 평화상 수상식 관련해서 온라인 방송 준비 상황을 점검한 후 두북 농사팀 행자님들과 내년 농사일에 대해 회의를 했습니다.
올해 농사를 지어보니 밭작물을 더 다양하게 확대할 필요가 있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스님도 의견을 말했습니다.
“아랫밭은 감자와 고구마, 배추를 심어보니까 괜찮은 것 같아요. 고구마를 심기 전에 시금치를 심는다거나 이모작을 해서 땅이 놀지 않게 하면 좋겠어요. 윗밭에는 콩이나 더덕을 심으면 괜찮을 겁니다. 올해 농사를 지어보니까 노지 밭이 부족해서 다양하게 수확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노지 밭을 어떻게 더 구할 것인지 방법을 찾아봅시다.
산 위쪽으로 올라가면 밭을 구하기가 더 쉬워요. 매일 산으로 올라가는 게 힘들어서 그렇지 무공해 농사를 짓기에는 산 위쪽이 더 낫습니다. 논밭을 좀 더 확보하게 되면 이제 사람 손으로 일일이 농사를 짓기는 어려워요. 트랙터라든가 기계도 좀 마련해야 해요.”
올해 농사를 어떻게 마무리 지을지 세부 계획을 세운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이어서 오후 4시부터는 내년 봄에 개원 기념법회 때 사회사상 강의를 어떤 내용으로 할지 서울에 있는 평화재단 실무자들과 온라인으로 연결하여 회의를 했습니다. 먼저 평화재단 실무자들이 준비한 기획서를 발표하자 이에 대해 스님이 의견을 말했습니다.
“사회사상에서 다루어야 할 대부분의 내용들이 잘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내용이 빠져 있는지 더 세세하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회의 제 현상 중에는 그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애매한 문제들이 있거든요.
무엇이 법률이고, 무엇이 윤리인가
기획서에서 빠진 내용을 대략 살펴보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법률과 윤리의 구분 문제도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법률에 위배되는 것은 범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처벌이 되는 것이지만, 윤리에 어긋나는 것은 비난을 받지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니거든요. 법률과 윤리 사이의 관계에 대해 조금 더 정확한 관점을 갖는 게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스님이 결혼한 것은 법률을 어긴 것은 아니고, 윤리 문제에 해당합니다. 성인 남녀가 연애를 하는 것도 간통죄가 폐지된 이후에는 윤리적인 문제가 될 뿐이지 국가가 공권력으로 개입할 문제는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런 법률과 윤리의 문제는 그 시대와 사회가 어떤 조건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계속 달라지는 문제입니다.
선과 악은 왜 생겨났는가
그리고 전쟁과 평화라는 주제를 다루기 전에 선과 악은 왜 생겨났는가 하는 주제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선악 개념이 없거든요. 인간이 만약 숨겨진 공간이 없이 100퍼센트 열린 공간에서 무리 생활을 한다면, 그 누구도 공동체에 손해가 되는 행동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설혹 그런 행동을 누가 하더라도 후대로 전승은 되지 않습니다. 전승이 되면 서로 해치게 되기 때문이에요. 도둑질이 일어날 수는 있겠지만 후대로 전승은 되지 않습니다. 투명한 공동체에서는 악이 전승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남의 물건을 훔치고, 사람을 죽이고,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일이 인류 문화 속에 생겨나게 되었을까요? 이것은 집단과 집단 간의 경쟁에서 생긴 문제입니다. A공동체 안에서는 도둑질이 일어나도 후대로 전승이 안 되는데, B공동체의 물건을 훔쳐오는 것은 A공동체에게는 전 성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전승이 될 수가 있는 겁니다. 노력하지 않고 손쉽게 이익을 얻게 되니까 C공동체도 약탈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집단과 집단 간의 갈등과 저항이 생기게 되고, 심지어 전쟁으로까지 확대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동물을 사냥해서 먹었는데, 잡아서 가축으로 사육을 하니까 훨씬 유리한 것과 같이 다른 공동체의 성원을 잡아와서 밑에 가축을 사육하듯이 부리니까 훨씬 더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니까 거기서 노예제가 발생한 겁니다. 같은 공동체 안에서는 계급이 발생할 수가 없어요. 전쟁을 통해 공동체를 합병하면서 규모가 커지고 계급이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인류 문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이런 차별 세계를 평등 세계로 바꿔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민주주의라든가 인권이라든가 하는 문제는 모두가 평등했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어서 스님은 미래 30년을 내다봤을 때 지금은 문제가 안 되지만 미래에는 문제가 될 수 있는 다양한 사회 문제들을 하나씩 열거하며 이번 개원 기념법회 사회사상 강의 때 다뤄보면 어떻겠는지 제안했습니다.
“총론, 각론, 실천론, 이런 순서로 기획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사회, 역사, 세계관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총론을 먼저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각론에서 평화 문제, 인권 문제 등을 다뤄보면 되겠죠. 마지막 결론에서는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실천론을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아요.”
더 세부적으로 기획을 해서 다시 화상회의를 열기로 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네, 스님. 감사합니다. 오늘 이야기해주신 내용을 바탕으로 내용을 더 보완해 보겠습니다.”
5시 55분에 회의를 마친 후 6시에 곧바로 정토회 모둠장대회에 참석했습니다. 강당에서 화상 회의를 하다가 다시 수련실로 이동해 생방송을 했습니다.
정토회 모둠장대회
오늘은 정토회의 모둠장들이 모두 온라인으로 접속해서 함께 얼굴을 마주하는 날입니다. 여는 영상, 즉문즉설, 나누기 순서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습니다.
전국의 활동 모둠장 570여 명과 해외 모둠장 13명이 함께 참석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웃으며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안녕하세요, 모둠장 여러분. 요즘 힘드시죠? 여러분들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직접 귀에 들리지는 않지만 여러분의 원성이 자자한 것 같습니다. (웃음)
요즘 여러분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참 용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동시에 여러분이 대견하기도 하고, 정말 소중하고 귀한 존재로 느껴집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여러분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건 정토회의 희망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희망, 우리 대한민국의 희망입니다.
모둠장은 정토회의 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야말로 정토회의 가장 기초단위에서 가장 실천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여러분 각자가 스스로의 소중함을 잘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저와 나누는 대화는 민원을 해소하거나 무언가를 결정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과 고충에 대해 대화를 나누어보는 자리입니다. 대신 이 자리에 행정처장님과 모둠활동 국장님도 함께 하고 있으니까 우선 대화를 나눈 다음, 구체적인 해결책은 대의원 회의나 행정처 집행회의를 통해서 모색해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스님과 대화를 나눴다고 해서 나중에 ‘스님과 이야기가 됐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오늘 이 자리는 무언가를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 다 같이 모여서 좋은 점은 계승하고 부족한 점은 시정해나가자는 이야기를 나누어보는 자리입니다.”
다음은 활동 모둠 운영 현황과 모둠장님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고민과 어려움 속에서 활동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모둠장대회를 준비하면서 많은 모둠장님들이 사전 설문을 통해 질문을 해주었습니다. 그중에서 여섯 명의 사전 질문자를 선정했습니다. 생방송 중에 질문하고 싶은 사람은 화상회의 채팅창에서 질문 신청을 했습니다.
총 6명이 스님과 화상으로 연결되어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생방송 중에도 6명이 질문을 더 신청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모둠장 소임을 맡고 나서 활동이 많아지니까 가족들의 불만이 크다며 어떻게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봉사활동이 많아지니까 가족들의 불만이 큽니다, 어쩌죠?
“모둠장 소임을 맡고 나서 봄불교대학 소임, 수행 법회, 법당 운영회의, 일요명상에 참여하다 보니까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 많은 제약이 따릅니다. 그래서 요즘 가족들에게 많은 불평을 듣고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불편한 마음입니다. 제가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다닐 때보다 가족들의 정토회에 대한 거부감이 커진 것 같아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아쉬워하는 생각들이 수행적 관점을 바르게 갖지 못해 생기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건 잘하고 잘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입니다. 나는 모둠장이 아니라 일반회원이 되어서 참가만 하겠다는 입장을 선택하면 가족들의 불만이 없어질 거예요. 일반회원이 되면 책임질 일도 없고 법문만 듣거나 시간이 될 때 법당에 나가서 봉사를 하는 정도만 해도 됩니다.
‘저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더 중요합니다. 그걸 더 우선적으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자기의 입장을 정하면 돼요. 다만 이런 입장이 되면 우리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소비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소비하는 입장이 되면, 명상수련이 있을 때 명상수련에 참가하고, 법문이 있으면 법문을 듣고, 활동이 있을 때 체크해뒀다가 시간이 맞을 때 참여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모둠장은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입니다.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할 사람을 모으고, 필요한 내용을 교육해서 새로운 수행자를 육성해내는 생산자 활동을 하는 거예요. 이미 직업이 있는 사람은 비록 파트타임으로 활동하게 되지만, 자신의 직업 외에 생산하는 또 다른 일이 하나 더 하는 겁니다. 소비자는 채소가 필요할 때 시장에 가서 채소를 구매하면 됩니다. 그것처럼 직장에 다니면서 수행에 관련한 각종 법문이나 수련이 필요할 때 필요한 내용을 구매하기만 하면 됩니다. 반면에 모둠장이 되면 자기가 직접 밭에서 채소를 키우고, 그것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공급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이것은 파트타임으로 새로운 직업이 하나 더 생긴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일상적으로 직장에 다니면서도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예를 들어, 남편이 일요일마다 골프를 치러 다니면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주말을 가족과 보내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골프에 미치면 주변 이야기를 듣지 않고 매 주말마다 골프를 치러 나갑니다. 정토회 활동은 골프를 치거나 춤추러 다니는 것보다는 훨씬 더 보람 있는 활동이에요. (웃음)
가족이 아무리 말려도 등산을 다니거나 춤추러 다니는 사람들도 많은데,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이런 활동을 하는 건 나쁜 게 아닙니다. 그러니 가족이 불평을 하면 이렇게 말하세요.
‘엄마가 하는 일은 이런 일들이다. 내가 골프를 치거나 해서 돈을 소비하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이런 활동은 직장에 다니는 것보다 내 인생에서 더 보람 있는 일이다.’
이렇게 설명을 한 후 방 청소는 아이들에게 맡기세요. 남편과도 가사 일을 분담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신 한 달에 한 번 주말에는 같이 여행을 가든지 해서 타협을 할 수 있겠죠. 이런 건 가족 간에 회의를 해서 결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가족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해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이렇게 설득을 해야 합니다.
‘정토회 활동은 나의 삶에 있어서 파트타임 직장과 같이 중요한 활동이기 때문에 계속해야 한다.’
질문자가 여기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늘 무언가를 돈으로 계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도 한 번 물어보세요.
‘내가 만약 정토회 활동을 해서 한 달에 5백만 원을 벌어온다면, 그건 허락할 거예요?’
그러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토회 활동하는 것을 괜찮다고 여길 거예요. 그러면 이렇게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은 비록 우리 집에 돈이 들어오지 않을 뿐이지 우리 사회와 인류에게 5백만 원 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활동이다.’
저도 강연을 할 때 일체 돈을 받지 않고 강연을 합니다. 그 이유는 제 강연은 돈으로 그 가치를 계산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그만한 값어치를 못 낼 테니 저는 아예 계산을 하지 않아요.
‘내 강연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이렇게 자부심을 갖고 무료 강연만 하는 거예요. 무료로 해주는 게 아니라 돈으로 그 가치를 따지고자 하면 너무나 귀하기 때문에 어차피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니 아예 계산을 안 하는 겁니다. (웃음)
그것처럼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이 활동도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구 환경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하는 활동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생활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 가 보면 우리나라의 생활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습니다. 도로, 차, 통신은 말할 것 없이 먹고 싶은 게 있을 때도 주문하기만 하면 금방 나오잖아요. 이렇게 생활수준이 높은데도 마음 속에는 불평불만이 가득합니다. 그러니 이런 불만이 어떻게 경제 문제만으로 해결되겠어요. 이렇게 경제적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국민들의 행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여러분이 정토불교대학 운영을 통해 하고 있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정토회가 자기 세력을 키우려고 활동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우리들을 볼 때 ‘돈도 안 받고 왜 그런 일을 하느냐?’ 하는 관점을 많이 가집니다. 여러분도 다른 데 가서 이렇게 열심히 활동을 하면 한 달에 몇 백 만원씩 받을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이렇게 봉사를 하는 거잖아요. 우리가 하는 활동은 돈을 받는 활동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돈을 받지 않고도 사회 환원을 하면서 하는 겁니다.
적어도 이 정도의 자기 소신을 가지고 활동을 해야 합니다. 자기 소신이 없으면 정토회에 와서도 속으로 갈등만 하게 됩니다. 가족들은 같이 시간을 보내자고 하지, 정토회 활동은 해야 하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는 거예요.
만약 이 정도의 확신이 생기지 않으면 모둠장을 그만두고 모둠원으로만 활동을 해도 됩니다. 모둠원도 부담이 되면 일반 법회에 가서 활동을 해도 괜찮습니다. 소비자로만 활동을 하면 생산 활동은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가끔 시간이 될 때 봉사를 하고, 경제적 상황이 괜찮을 때 보시하는 정도로 해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소비자는 봉사를 하거나 도와주면 칭찬을 듣습니다. 그런 걸 안 해도 되는 손님인데 도와주기 때문에 칭찬을 듣는 거예요. 그런데 모둠장으로 활동을 하게 되면 칭찬보다는 대부분 비판을 받게 돼요. 이제는 주인으로 활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언가 부족하면 사람들이 주인에게 와서 불평을 하는 겁니다.
모둠장이 되고나서부터는 세상과 인류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생산자의 입장에서 활동을 하게 되는 거예요. 세상의 행복에 기여하기 위해서 생산자 역할을 이제 하는 겁니다. 저는 여러분이 직장에 나가는 것보다 이 활동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직장에 별도로 다니지 않고 이 일에만 전념하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제일 좋습니다. 그러나 이건 본인의 선택입니다. 가족이 계속 불평을 하면 이 정도로 강하게 말해 보세요.
‘그러면 너희들끼리 알아서 잘 살아라, 나는 이게 더 소중하니 그냥 떠나겠다.’
그러면 가족들도 입장이 정리가 될 거예요. 그런데 아직 질문자가 이런 말을 할 정도로 입장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주변에서 하는 말에 끌려다니는 겁니다.
결국 내가 어떻게 살 거냐의 문제입니다. 골프니 등산이니 하는 취미생활도 마음대로 하면서 살아가는 요즘 시대인데, 세상을 위해 좋은 활동을 하는 게 뭐가 그리 문제가 되겠어요. 왜 좋은 일을 하면서도 이 일에 대한 자신감이 그리 부족해요?”
“네, 이 질문을 하면 아마도 야단을 맞을 거라고 예상을 했습니다.” (웃음)
“지금 실컷 격려를 해줬는데, 이게 왜 야단을 맞은 거예요? 격려를 해줬더니 오히려 야단을 쳤다고 하네요.” (웃음)
“소비자와 생산자로 비유를 들어서 말씀해주시니 무슨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주간반과 저녁반을 통합해 지역중심으로 모둠을 편성하니 함께 모이기가 어렵습니다. 원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모둠 편성을 재고해주시기 바랍니다.
- 법당 총무에 온라인 경전반 진행자까지 하게 되니 법당 정회원, 일반회원에다 경전반 학생까지 챙겨야 할 사람이 많습니다. 사람을 잘 챙긴다는 의미가 무엇인가요? 또, 온라인 정토회로 변해가는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 모둠장 소통방을 만들고 회의를 하면 좋겠다고 건의했는데 모둠장은 만들 필요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왜 안 되는지 이해가 잘 안 됩니다.
- 모둠장과 온라인 불교대학 진행자를 겸임하니, 교실에 더 마음이 쏠려 모둠에 약간 소홀해졌습니다. 차라리 모둠장을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 공지사항과 문서를 소통하는 체계를 몰라서 헤맬 때가 많습니다. 또 소임을 중복해서 하니까, 확인해야 할 공지가 너무 많아요.
- 모둠장의 비전은 무엇인가요? 모둠장을 1년씩 돌아가면서 하면 어떨까요?
- 정회원 활동모둠방 소통범위가 너무 제한적으로 느껴져요.
스님은 행정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행정처장과 활동모둠국장에게도 발언할 수 있도록 해서 함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질문자뿐만 아니라 대화를 지켜보는 모둠장들도 실시간 채팅창에 활발하게 의견을 제안했습니다.
생방송 중에도 질문이 계속 올라왔습니다. 7명을 선정해 더 질문을 받아보려고 했지만 마칠 시간이 되어서 답변을 다 하지 못했습니다. 스님은 질문이라도 해보라며 마이크를 넘겼습니다. 질문자로 선정된 분들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마지막으로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문제 제기를 해주지 않으면 저도 현장에 이런 문제가 있다는 걸 알기 힘듭니다. 제가 시간 조절을 못해서 채팅창에 올라온 질문 내용에 대해서는 답변을 다 못했습니다. 행정처장님과 모둠활동 국장님은 오늘 다루지 못한 네 명의 질문에 대해서는 모둠장 모임에서 회의를 하거나 개인적으로 소통을 해서 답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직 이야기할 내용이 많은 것 같으니까 다음에 또 이런 시간을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를 하면 여러분이 바로 정토회의 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정토회의 희망입니다. 정토회가 실천하는 활동의 최소 조직이 모둠입니다. 여러분이 운영하는 모둠은 우리 몸의 세포와 같습니다. 여기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활동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오늘 활동모둠장대회에 함께한 모둠장님들의 소감이 어떠신지 세 분의 나누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다른 모둠장들의 고민을 듣고 그들의 고민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이 과도기인데 오히려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저는 모둠장이 체질인가 봅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갈 길은 이 길이라고 100프로 확신하지만, 일이 너무 많다 보니 3년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 서두에 여러분은 정토회 꽃이고, 소중하고 귀한 사람들이라고 하니까 그런 말이 쏙 들어갔어요. 되든 안 되든 제가 할 수 있는 데 까지 해보겠습니다.”
“모둠장으로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행정적인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해가는 과정이 감동스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하나, 둘, 셋, 하고 외치자 다 같이 양손으로 얼굴에 꽃받침 모양을 만들며 활짝 웃었습니다.
“다음에 또 봐요.”
스님은 카메라를 향해 양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방송을 마치고 복도를 걸어 나오는데 함께 모둠장대회 생중계를 시청한 무변심 법사님이 스님에게 말했습니다.
“스님, 오늘 모둠장들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현장의 고충이 정말 가슴으로 느껴졌어요.”
내일은 오전에 영어 통역 즉문즉설을 한 후 오후에는 새터민들과 온라인 통일축전을 하고, 저녁에는 온라인 일요명상을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