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심경 210 /용아거둔 선사 2 /불교공부는 소를 찾는 일과 같다
又云호대 尋牛에 須訪跡이요 學道에 訪無心이라 跡在에 牛還在요 無心에 道易尋을
거둔 선사가 또 게송으로 말하였다. “소를 찾는 데는 모름지기 발자국부터 찾아야 하고 도를 배우는 데는 무심을 찾아야 한다.
발자국이 있으면 소는 있게 마련이고 무심하게 되면 도는 쉽게 찾으리라.
해설 ; 거둔 선사의 이 게송은 도를 배워가는 점차를 목동이 소를 먹이러 갔다가 소를 잃고 나서 다시 그 잃은 소를 찾아가는 일에 비유하였다.
이와 같은 표현은 일찍이 심우도(尋牛圖)니 십우도(十牛圖)니 하는 제목으로서 사찰의 벽화에 그려왔다.
옛날 중국 복주 땅 대안(大安) 선사가 백장(百丈) 화상을 찾아가 뵈옵고 물었다.
“학인(學人)이 부처를 알고 싶은데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백장 선사가 대답하였다.
“마치 소를 타고 소를 찾는 것과 같으니라.”라고 하였다. 대안 선사가 또 물었다.
“부처를 안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람이 소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것[騎牛還家]과 같이하라.”라고 하였다.
대안 선사가 다시 묻되, “어떻게 보림(保任)합니까?”라고 하였더니, “소를 먹이는 사람이 채찍을 들고 소를 지켜보되 남의 밭에 곡식을 뜯어먹지 못하게 할지니라.”라고 하였다.
이에 대안 선사가 게송을 남겼다. “소의 고삐를 버리고 문득 출가하여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었으니 어떤 사람이 나에게 조사가 서쪽으로 온 뜻을 묻는다면 주장자를 옆으로 메고 라라리를 부르리라
[放却牛繩便出家 削除鬚髮著袈裟 有人問我西來意 柱杖橫擔唱唱羅].”라고 하였다.
이 사연이 근거가 되어 후대에 유사한 글이 많이 만들어 졌다.
12세기경 중국 북송시대 곽암(廓庵) 선사가 지은 십우도(十牛圖)의 내용은 제목만 설명하면 대강 아래와 같다.
1. 소를 찾는다[尋牛]. 소를 찾아가는 첫 단계로서 인간이 불법을 구하고 자신의 본성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발심하는 단계이다.
2. 소의 발자취를 보았다[見跡]. 망상의 잡초와 번뇌의 숲 사이에 나 있는 소의 발자국을 발견한 정도이다.
즉 자신의 본성에 대한 그림자 정도를 본 경지이다. 본문의 거둔 선사는 무심의 경지라고 표현하였다.
3. 소를 발견하였다[見牛]. 목동이 소를 잃어버렸다가 마침내 깊은 숲속에서 스스로 방목되고 있는 소를 본 것이다.
즉 자신의 성품을 보아 견성(見性)한 것이다.
4. 소를 붙잡았다[得牛]. 본래의 성품을 보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본성을 보았다 하더라도 본성의 소가 함부로 도망치지 않도록 단단히 붙들어야 한다.
5. 소를 먹여 길들인다[牧牛]. 소의 야성을 길들이기 위해 코뚜레를 꿴 뒤 풀을 먹여 소를 길들여야 한다.
즉 자성을 키워 성인의 뜻에 맞고 중생들을 위해서 보살행을 열심히 하도록 잘 다스려야 한다는 뜻이다.
6.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騎牛歸家]. 잘 길들인 소를 내 것으로 하여 소를 타고 마음의 본향인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단계이다.
이제 번뇌 망상이 다 끊기고 욕망도 끊겨 소는 무심하고 그 등 위에 있는 목동 역시 무심하다.
7. 소는 없어지고 사람은 있다[忘牛存人]. 진리를 깨쳤다는 소, 즉 자성조차 사라진 경지를 의미한다.
깨쳤다는 병은 수행인이 뛰어넘어야 할 가장 무서운 덫이다. 깨쳤으면 그 깨침을 잊어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8. 사람도 없고 소도 없다[人牛俱忘]. 깨친 소도 잊어버리고 마침내 진리를 깨친 자기 자신마저 잊어버리는 경지다. 깨침도, 깨쳤다는 법도, 깨쳤다는 사람도 없으니 이는 모두 공(空)이다.
십우도에선 원으로 그려졌다.
9. 본래의 근원자리로 돌아간다[返本還源]. 그저 그대로의 모습이다.
깨쳤다는 성인의 모습과 범부의 모습이 다를 바가 없다. 산은 다만 산일뿐이고 물은 다만 물일뿐이다.
10. 시가지에 들어가 손을 드리우다[入廛垂手]. 이제 도시의 거리로 돌아가 깨달은 그 지혜와 자비를 작용하여 중생을 제도하는 경지이다.
불교에 대한 앎이나 느낌이나 깨달음을 얻었다면 자신이 아는 것만치라도 반드시 사회로 회향하여 세상과 더불어 아픔과 고통과 문제들을 함께하면서 요익중생(饒益衆生)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이 십우도는 간단한 그림으로 불교적 삶을 살아가는 길을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사찰의 벽화에는 반드시 이 그림을 그려서 사람들을 깨우치는 것이다.
거둔 선사는 소의 발자국을 찾은 것은 무심의 경지라고 하였다.
모든 존재의 실상을 텅 비어 공하게 보고 자기 자신마저도 공하게 된 것을 뜻하고 있다.
그러나 그림에서도 말했듯이 무심의 경지나 공(空)의 경지에 이른 것은 중간의 과정이다.
그래서 옛사람도 “무심을 일러 도라고 하지 말라. 무심은 아직 한 겹의 관문이 막혀있다
[莫言無心云是道 無心猶隔一重關].”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