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지영화속인문학
못생김의 이점
ㅡ 아름다운 외모는 축복일까, 저주일까
아름다운 말레나, 예쁜 게 죄?
멋지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사람들은 행복할까?
<말레나 Malena, 2000년>는 빼어난 외모를 가진 한 여인의 험난한 삶을 그린 이탈리아 영화이다. 2차 대전 중인 1940년 시칠리아의 한 작은 마을에 사는 아름다운 말레나는 남자들의 욕정에 찬 눈길을 한몸에 받지만, 마을의 여자들로부터는 질투와 시기를 받고 따돌림을 당한다. 관객은 시종일관 말레나를 짝사랑하는 사춘기 소년 레나토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녀의 삶을 엿보게 된다.
눈을 살포시 내리깔고 검은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말레나(모니카 벨루치 Monica Bellucci 분)가 거리를 걸어갈 때, 모든 남자들이 감탄과 욕망의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리고 12세의 소년 레나토 역시 그 가운데 있다. 그녀가 자신의 빼어난 외모를 과시하거나 교만한 것 같지는 않다. 그냥 그렇게 타고난 것일 뿐. 그녀의 미모는 오히려 가까운 친구나 말동무 하나 없이, 그녀를 외로움이라는 감옥에 가두어 버린다.
전쟁에 나간 남편의 갑작스러운 전사 소식이 들려오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말레나는 직업소개소를 전전하지만, 여자들의 등쌀에 아무도 그녀에게 선뜻 일자리를 주려하지 않는다. 생계가 막막한 말레나에게 수많은 남자들이 몰려들어 하룻밤을 제안한다. 어느 순간, 말레나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빨간색으로 물들이고 짙은 화장을 하고 광장에 나타난다. 그리고 남자들이 담뱃불을 붙여주려 몰려든다. 말레나의 창녀 같은 차림새와 진한 메이컵, 담뱃불을 붙이는 행위는 매춘을 의미한다. 이때부터 그녀는 먹을 것을 가져오는 마을 남자들과 마을을 점령한 독일군에게 몸을 팔기 시작한다.
마침내 전쟁이 끝나고, 독일군이 물러가자, 마을 여자들은 그녀를 거리로 끌어내 독일군에게 몸을 판 매춘부라고 욕설을 하며 집단 구타를 한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머리칼을 자르고, 때리고, 옷을 찢는 광포한 여인들의 히스테리칼한 폭력.
뭇사람들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 그녀는 너무도 무력하다. 모든 남자를 사로잡았던 그 치명적인 매력도 그녀를 구해주지는 못했다. 도도했던 눈빛은 이제 공포와 불안감에 흔들리며 주변을 불안하게 두리번거린다. 그 아름다움은 순식간에 추한 몰골로 무너진다. 누구 하나 나서서 도와주는 이 없는 고립무원이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악을 쓰며 울부짖는다.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마을 여자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온갖 험담을 들어온 그간의 설움과 억울함이 마치 한순간에 폭발한 듯이. 처연한 울음소리 속에 이 말이 배어 나오는 것 같다. "내가 뭘 잘못했나요? 나한테 왜들 이래요?"
밀레나의 불행한 삶은 원래는 그녀에게 축복이었던 아름다운 외모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남자들은 그녀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단지 성적 욕망을 위해 그녀의 육체를 이용하려고 했고, 여자들은 자신들이 갖지 못한 아름다움을 질투하고 증오했다. "예쁜 게 죄"라는 기막힌 말을 누가 만들어냈는지.
일반적으로 우리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사람들을 좋아하고 부러워하며 찬미한다.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이 평범하거나 못생긴 사람들보다 더 성공하고 더 나은 일자리를 얻으며 돈도 많이 번다는 사회학적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최근 한 연구에 의하면,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못생긴 외모가 그다지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것도 아닐 뿐 아니라, 심지어 이점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 평범한 외모를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위안과 희망을 주는 리포트가 아닌가.
그런데 왜 그럴까? 왜 못생김이 유리한 점으로 작용하는 것일까?
연구자는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매력적인 사람들보다 오히려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후천적으로 더 노력하고 더 열심히 교육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많은 것을 선물 받았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그는 빌 게이츠가 조지 클루니 같이 생겼다면, 마이크로소프트사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반문한다.
한편, 우리 인간에게는 약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여성들은 자신보다 빛나지 않은 여성을 더 곁에 두고 싶어 할 것이다. 어느 누구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는 않겠지만, 내심 자신보다 예쁘고 똑똑한 친구나 동료를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매력적이지 않다면, 주변 사람들을 무장해제시키고, 더 많은 도움과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못났다고 생각하는 독특하게 생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더 재미가 있다.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정말 재미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그렇지 않은가. 뚱뚱하고 못생긴 개그맨들만이 소화할 수 있는 웃긴 역할과 독특한 외모의 배우만이 할 수 있는 배역이 있다. 장동건이 유해진의 촌놈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유해진, 그의 얼굴에서 말할 수 없는 어떤 친근감, 혹은 호감을 느끼지 않는가.
그렇다면 아름다운 외모가 가진 불리한 점은 무엇일까? 멋진 외모가 지닌 장점은 이미 충분히 이야기되어 왔으니, 역발상적으로 생각해보자.
멋진 외모의 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늘 신경을 쓴다. 어떤 이들은 아름다움에 집착하여 화장을 하지 않거나 꾸미지 않고 외출조차 하지 못한다. 여배우나 여자 아이돌의 사진이 인터넷 포털에 뜨면, 사람들이 모두 한마디씩 한다. 살이 쪘느니, 얼굴이 급노화 했다느니, 주름이 있다느니. 이 악플을 대하는 그들의 심정은 어떨까. 사진이 찍힐 때마다 극도의 신경쇠약 증세를 느끼지 않을지. 사진을 찍어보면 뜻하지 않게 아주 이상하게 나올 때가 많다. 사람인 이상 그때그때 상태와 상황에 따라 예쁘게 나올 때도 못생기게 나올 때도 있건만, 조금만 이상해도 벌떼 같이 몰려들어 물어뜯는다. 그러나 평범한, 혹은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이러한 변덕스러운 미모 혹평에 민감할 일이 없다. 자신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이미 받아들였으므로 서글픈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다. 나쁜 것이 다 나쁜 것도 아니며, 좋은 것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지혜의 말씀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아름다움은 금방 사라진다. 우리 모두는 늙고 추해지겠지만, 아름다웠던 사람들은 늙어가면서도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아름답다는 소리를 들어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풀 메이컵을 하고, 성형 시술과 안면 리프팅을 하며, 보톡스와 필러를 주입하면서, 떠나가는 미모를 붙잡으려고 사투를 벌인다. 그러나 그런 방편은 결국 시간을 거스르지 못하고 곧 좌절에 도달할 것이다. 원래부터 아름답지 못한 사람들은 좀 더 쉽게 노화와 추함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좀 더 자유로울 것이다.
만약 당신이 선택할 수 있다면, 미움과 시기를 당하더라도 말레나나 송중기 같이 빼어난 외모로 살아보고 싶은가, 아니면 평범한 얼굴로 사는 게 뱃속 편하다고 생각할 것인가. 어려운 선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