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28. 큐티
시편 147: 1 ~ 6
위로자 되시는 여호와를 찬양함이 마땅하도다
관찰 :
1)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 1절a. “할렐루야" => 본 시편은 할레루야 시편으로서 다른 할렐루야 시편과 마찬가지로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의미의 “할렐루야”로 시작하고 “할렐루야”로 마치는 시편입니다. 본 시편은 언제, 누가, 어떤 배경에서 지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2절과 13절의 표현을 보면 예루살렘 성벽과 성문이 재건된 상황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토대로 본 시편이 성전 재건과 성벽 재건을 모두 마치고 나라가 안정이 된 후 익명의 저자가 이러한 회복이 인간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인한 것임을 자각하고 이스라엘의 회복자 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찬양하기 위하여 지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 1절b.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 본 시편은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 찬양의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대한 찬양을 세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선함이여”, “아름답고”, “마땅하도다”입니다. “선함이여”(טוֹב, 토브)는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 형용사입니다. 본문에서는 ‘좋은’, ‘선한’, ‘줄거운’, ‘아름다운’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표현은 이 “토브”(טוֹב)를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름답고”(נָעִים, 나임)는 ‘아름다운’이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유쾌한’, ‘기쁜’ 등 매력적이며 기쁨을 주는 것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마땅하도다”(נָאוָה, 나와)는 ‘알맞은’, ‘적합한’이라는 의미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본문은 ‘찬양을 하는 것은 선하다 왜냐하면 찬송은 기쁜 것이며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본문에서 찬양을 하나의 의무나 규례, 혹은 어떤 수단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찬양 그 자체가 기쁨을 가져다주는 아름다운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2) 위로자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
- 2절.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 시편 기자는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을 포로에서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행적과 전능하신 능력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본 절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배성들을 위하여 역사 속에서 섭리하시는 모습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세우시며”라는 표현은 일차적으로 포로 시대 이후의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관한 언급입니다. 즉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대적들의 숱한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성전과 성벽 재건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음을 구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종교, 정치, 경제의 중심지이므로 이스라엘의 종교적 회복과 부흥, 국가 경제의 재건, 그리고 완전한 국정 능력의 회복에까지 확장하여 이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은 포로기 이후의 이스라엘의 역사적 정황과 관련된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흩어진 자”는 바벨론 침공으로 포로로 끌려가 세계 각처로 흩어진 ‘디아스포라’된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온 세상에 흩어지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회복시키실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또한 이 의미는 하나님께서 친히 거룩한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가 분열되고 타락하게 되었을지라도 다시 회복시키시고 다시 일으키시는 역사를 이루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3절.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복에 대하여 노래한 이후에 이스라엘의 회중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상심한 자”는 ‘마음이 깨어져서 조각난 자들’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포로기의 생활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고통과 슬픔을 가져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고통과 슬픔은 사실상 자신들의 범죄행위로 자초한 것이었기 때문에 응당한 댓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이들의 마음을 고쳐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고치신다는 것은 위로와 격려의 의미를 넘어서서 완전한 회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시편 기자는 상처를 싸매주시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스스로 회복할 수 없는 깨어진 마음과 상처를 모두 온전하게 치료하시는 분이시라는 고백입니다.
3) 지혜가 무궁하신 하나님
- 4절.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온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고백하는 내용은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능력으로 어떻게 이스라엘에게 자비와 은혜를 베푸시는가를 암묵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표현입니다. 본 절에서의 “별”은 인간이 닿을 수 없는 하늘에 위치한 실체이며, 이스라엘 주변 민족들의 경배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능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숫자를 나타낼 때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별들의 수효를 다 세신다는 것과 그 이름을 부르신다는 것은 그것들을 다스리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별들 뿐만이 아니라 우주 만물 모든 것들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또한 그 모든 것들을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불가능이 없는 분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별과 같이 아무리 멀리 흩어져 있을지라도, 아무리 많은 숫자라 할지라도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하나님이 다 보고계시고 통치하고 계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5절.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속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위대하시며”는 “광대하시며”로 번역되기도 한 표현입니다.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권능과 위대하심을 표현하는 용어입니다. “위대하시며”는 “능력이 많으시며”와 “지혜가 무궁하시도다”로 부연 설명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어떤 일도 다 이루실 수 있는 무한하신 능력과 지혜에 초점을 맞추어 찬양하고 있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께 대한 소 망을 잃거나 절망하지 않도록 격려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4) 겸손한 자를 붙드시는 하나님
- 6절.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들은 붙드시고 악인들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 => 하나님의 통치의 면모가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들을 도와주시고, 악인들을 멸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일차적으로 포로로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 받음과 그로 인해서 선민의식으로 교만하던 이스라엘이 온유하고 겸손하게 된 상태가 된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을 붙드셔서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포로가 되어 고통을 받고 겸손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회복시켜 높이시고 예루살렘은 다시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교만하게 행한 바벨론과 그 도성은 무너져 내리고 그 백성은 파멸에 이르게 하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팔레스타인에 국한 되지않으며 그 어떤 강력한 제국도 모두 다 다스리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공의의 통치는 이스라엘의 역사 뿐만 아니라 온 세계의 모든 역사과정과 온 우주를 다스리심을 아우르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일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존귀하신 분이시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진정으로 존경받고 찬양받으시기에 가장 합당한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름답다는 표현으로도 묘사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찬양받으셔야 하는 아름다운 일로 이스라엘의 위로자가 되심을 예로 들어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뿐만이 아니라 연약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진정으로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선하신 하나님,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분이 위로하시기에 하나님의 위로는 진실되고 가장 은혜로운 것입니다. 진정한 회복과 치유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지혜는 우주의 모든 별을 다 헤아리시고 그 이름을 다 아시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우주의 모든 별들을 다 세고 그 이름을 아는 분은 우주의 모든 지혜를 소유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그 모든 것들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아시고 인간을 아시고 인간 세상을 아십니다. 하나님의 장중에 거하는 것이 복되고 가장 안전하며 지혜로운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선민의식으로 교만하던 이스라엘을 낮추셔서 포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은 겸손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하나님은 그들을 높이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의 패턴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쓰임받은 바벨론이 강력하고 무시무시한 존재였지만 교만하게 되자 하나님이 심판하셨습니다. 그러자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는 파멸을 겪었습니다. 그것이 또한 하나님의 일하시는 패턴입니다. 겸손한 자는 높여주시고 교만한 자는 박살내시는 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패턴입니다.
적용 :
1)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선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루 중에 가장 잘하는 일은 언제나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며 하나님을 전심으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2) 하나님은 위로자이십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위로가 나의 삶을 회복하게 하고 든든하게 하고 두렵지 않게 하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3)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가겠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보다 더 뛰어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지혜를 추구하고 갈망합니다. 세상의 모든 지혜를 배설물로 여기겠다는 바울의 결단이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가장 지혜로운 것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4) 하나님은 교만한 자는 멸하시고 겸손한 자를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제가 그것을 철저하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가장 낮은 자리로 나를 이끄시는 하나님이 또한 높여주시는 분이시기에 주님을 찬양합니다.
5) 아내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새 힘으로 이 시기를 극복하도록 인도해 주실 것을 간구드립니다. 고통을 이기고 새 힘으로 회복시켜 주시기를 주님께 간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