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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순경은 벌컥 성이 나 마침 길 옆 상점의 유리창으로 환히 비치는 불빛에 바싹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단박 한 대 올려붙일 듯이 재우쳐
"무어야, 이 자식아."
"지끔, 번연히 사람더러, 무어야 허구 묻잖었소?"
"그래서?"
"그래서, 난 빨갱이니깐, 빨갱이요 허구 대답할밖에요."
"이 자식아, 네 이름이 빨갱이야?"
"우리 아버지가 날 그렇게 이름지었다우."
미상불 문태석은 맨처음으로 빨갱이라고 부른 것은 그의 부친 문영환이었었다.
"네 애비가 누구야?"
"알면, 당신 뒤루 벌떡 나가자빠지지."
"이 자식이, 누굴 히야까실 하는 심인가아?…… 누구야, 이 자식아, 네 애비가."
"문, 영, 환."
"무어? 문영환? 저 ××××당, 그 문영환 씨?"
순경은 뒤로 벌떡 나가자빠지지는 않았어도, 저으기 의외로와하면서 등등하던 서슬이 차차로 풀어졌다.
빨갱이를 빼놓고는 이 일판에서 너나 할것없이 정치적으로 최고의 존경을 바치고 있는 문영환 씨였다. 뒷서장(背後署長)이라는 별칭이 있는 만큼 경찰과는 표리일체의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서장의 명령 즉 문영환씨의 명령이라고까지 하는 그 문영환 씨였다.
그 문영환 씨의 아들에 빨갱이로 지목받는 중학생이 하나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던 것도 동시에 비로소 생각이 났다.
"예이 여보"
순경은, 겨누었던 총부리는 어느 겨를에 벌써 거두었고, 피깃이 웃으면서
"진작 그렇다구 할 것이지, 사람을 막 놀려먹는담! …… 어여 가슈."
하고는 또 무슨 생각이 나 흐트렸던 얼굴을 도로 순사 나으리답게 준절히 하여 가지고, 말도 준절히
"원은 서(署)루 동행해서 며칠 유치처분이라두 시킬 것이지만, 아버지 문영환 선생의 얼굴을 보아 특별 용서하는 것이니 이댐 그리지 말아요."
"……"
"다아, 아버지의 덕인 줄 알아요. 그런 휼륭한 아버지를 두었으면, 그 아들다웁게 행동을 해야지."
이 말인즉은, 너는 어째서 그런 나쁜 빨갱이냐, 이 뜻이었다.
문태석은 돌아서는 순경을
"여보시요."
하고 불렀다.
순경은 걸음을 멈추고 돌려다본다.
문태석은 잠깐 그대로 썼다가 퍼뜩, 곰곰한 말로
"당신은 지끔 나더러, 훌륭한 아버지를 두었다구 그랬지요?"
"문영환 선생이야 조음 훌륭하신 양반이요?"
"그리구…… 우리가 지끔 오늘 저녁에 서루간 겪은 이 사건만 하드래두, 사소하나따나, 아모튼 불상사(不祥事)는 불상사렷다요? 피차에 불행은 불행이렷다요? 그렇지요?"
"그렇다구두 하겠지…… 그런데?"
"그렇다면 말이지요. 우리들의 아버지가 당신은 그런 아버지를 훌륭한 아버지라구 했는데…… 우리들의 아버지가 그런 아버지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구태라 방금 우리가 서루간 겪은 그런 불상사두 불행두 아니 겪었으리란 그 말이요. 우선 야간통행금지두 없었을 것. 따라서 당신은 그 야만스런 물건을 들여대면서 번연히 사람을 마치 짐승이나 그런 것 다루드끼, 무어야 허구 고함을 칠 필요두 없을 것이구. 나는 당신을 그렇게 멸시하구 조롱하구 할 며리가 없는 것이구…… 서루 반목하구 잡아먹지 못해 으릉거리구, 필경엔 잡아먹구……그러는 대신 우리는 다같이 존경하구 위해 주구 도읍구 하면서, 의좋게 평화롭게 살아갈 수가 있으리란 그 말이요. 우리들의 아버지가 소위 그런 훌륭한 아버지들이 아니었다면 말이요. 어여 가시우."
이번에는 문태석이 먼저 돌아섰다.
순경은, 어둠속으로 뚜벅뚜벅 멀어가는 그림자를 멍하니 서서 바라보았다. 말의 뜻을 선뜻 이해하지는 못하였으나, 그 조용하니 다정스런듯, 어쩌면 구슬픈 듯, 곰곰이 흐르는 음성과 여운이 이상스럽게도 가슴에 맞히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덕(德 : 人格)과 애정이 반드시 일치하라는 법은 없는 것이었다. 덕은 없어도 애정은 따로이 있을 수 있도록 마련이었다.
최씨부인은 남편 문영환과는 달라, 아들에게 그처럼 애정이 없어 하지는 않았다.
최씨부인은 남편 문영환이 아들에게 그와 같이 야속히 굴고 미워하고 하는 것을 항상 슬퍼하고 불평하고 항거하고 하였다. 곧잘 아들을 편역들어
"대체 그 애는 내가 데리고 온 자식이란 말이요? 그 얘가 어디가 미운 털이 백혔단 말이요. 무슨 내력에 당신은 그 애라면 그렇게두 원수척으루 미워만 하러 드시우?"
하면서 대들고. 그 끝에 일쑤 부부싸움이 한바탕씩 벌어지고 하였다.
부친에게 그처럼 부당한 구박과 미움을 받는 아들인만큼, 최씨부인은 남의 어머니답게 그를 안고 도는 애처로운 정으로 하여도 다른 자녀에 비하여 애정이 살뜰한 것이 없지 아니하였다.
당자 문태석은 그러나 이 모친에게도 별양 농후한 애정은 가지는 줄을 몰랐다.
물론 어머니였고, 어머니인 만큼 부드럽고 임의로운 것이 있고, 그리고 저를 안고 돌면서 다른 자녀들보다도 알아보게 사랑을 하고 하는 것으로 하여 부친에게와 같이 전혀 애정이라는 것이 싹도 없거나 하던 바는 아니요, 매양 일맥의 애정이 드리워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그 도(度)란 매우 희박하여, 도저히 곡진한 것이 되질 못하였다. 문태석은 모친의 하나도 진실성이 없는 신앙(信仰), 위선, 야심, 교만, 무지한 것, 넉살스런 것, 허겁, 히스테리, 강짜, 그리고 부대한 살집 이런 것에 일종의 육체적인 혐오와 불쾌감을 느껴, 도무지 착 안기는 정이 가지질 않던 것이었었다.
둘째누이 명자. 남매 가운데 제일 보기 싫고 배짱이 안 맞는 게 둘째 누이 명자였다.
모든 성격과 행동이 모친 최씨부인을 그대로 복사(複寫)하여 놓았는데, 거기에 건방진 것을 한 가지 더 얹은 것이 둘째누이 명자였고, 그러기 때문에 문태석은 그가 보기 싫고, 배짱이 안 맞는다는 것이었었다.
이 남매는 그래서 어려서부터 유난히 의가 좋지 못하였고, 출가를 한 시방도 어쩌다 얼굴을 맞대면 으레껏 티격티격 싸움을 하고라야 말았다.
지나간 4월 그믐, 명자가 돈 백만 원과 종이 40만 원어치를 짊어지고 부친 문영환의 선거응원을 오던 바로 그날이었다.
이 집으로는 드물게, 더우기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식탁에 외인이 몇씩은 참여하지 않는 끼나가 없었는데, 이 날 저녁만은 어떡하다 외인은 아무도 없고, 가족끼리만의 저녁밥을 먹고 있었다. 바깥 대주 문영환은 저녁밥이라는 것을 집에서 먹는 적이란 별로이 없는 사람이었고, (그래도 교회는 그를 독실한 신자로 존경하기를 인색치 아니하니, 과연 하나님의 사도(使徒)다운 너그러움이었고.)
식탁의 화제는 자연 선거 등록에 대한 것이 중심이 되어, 명자는 서울 형편을 이야기하고, 최씨부인은 이곳 ××부의 형편을 이야기하고, 그러다 명자가 문득 막내동이 상석과 맞상을 하여 밥만 파고 있는 태석더러
"석이 넌 참 만 스물한 살 안직 못됐지? 그럼 등록두 못했겠구나?"
하고 물었다.
문태석은 거듭떠보지도 않고 밥만 파면서 잔뜩 비꼬는 투로
"우리 친애하는 하지중장 각하께서, 만 19세버틈 선거자격을 주었으면 할걸…… 천추유감이우."
명자는 눈이 샐룩해 가지고 한참이나 오랍동생의 옆볼을 흘겨보다가 혀를 차면서
"저앤 무슨 아이가 갈수록 점점 더 저래갈까?"
"이댐 선거 땐, 나도 사랑하는 우리 아버질 위해 다정한 1푤 던져 드리게 될 테니깐 실망이나 비관은 아니허우마는."
"사람이 그렇게 히네꾸레루 허믄, 신상에 해룬 법이란다. 우선두 보렴. 네가 고 따위루 못되게 구니깐, 아버지가 널 미워하시잖아?"
"옳아 ! 그럼 내가 요 따위루 못되게 굴두룩 만들어 준 건 누군지, 그건 연구 아니해 보았수?"
"남의 자식 돼. 너 겉은 불효도 없드라. 저런 속에 학문은 들어 무얼해. 진작 작파하지. 우리 아버진 참말 불쌍하신 이야."
"염려 없어. 사내자식 열몫이두 더 하는 누나 같은 효녀딸이 있으니깐."
"그럼, 너 겉을 줄 아니?"
명자는 그만 악이 나서 얼굴에 핏대를 세워가지고 소래기를 지른다.
문태석은 그러나 종시 침착하고 음성이나 얼굴이 한결같다.
"뽐낼 만두 하지. 현금 백만 원에다, 40만 원에치 종이를 짊어지구, 선거응원을 하러 반천리길을 머다 아니하구 서울서 예꺼정 왔는데. 가만 있어요, 내 인제 효녀문(孝女門) 세워 주께시니."
"그럼 효녀 아냐? 전 머 허다못해, 학교 동무루 동록된 아이래두 찾아댕기믄서 얘 너, 이번에 우리 아버지헌테 투표 꼭 해주어예지 한다. 이런 말이래두 했어?"
"난 감투가 필요치 않으니깐."
"누군 그럼, 감투 쓸 영으루 그리는 줄 아는감?"
"가령, 대한토건공사(大韓土建公司) 황종택 씨 같은."
"아니, 무엇이 어째?"
명자는 밥 먹던 수저를 내박치듯 놓으면서, 한무릎 이편으로 다가앉는다. 필경 아픈 자리를 건드렸던 것이다.
"그래, 황종택이가 언제 누구더러 감투 쓰겠다구 했드냐? 으응?"
"감투뿐이우?"
"그럼, 또 무어냐?"
"문영환 씨가 정견발표 연설을 하면서, 무어 농촌을 깡그리 전화(電化)하구, 농민들의 주택을 죄다 헐구서 문화주택으루 곤쳐 짓구, 수리공살 대규모루 일으켜 천수답(天水畓)이란 걸 하나두 없이하구, 다 그럴 테라구 했답디다. 그리구 그 말 끝에 ‘허되, 그 건설과장은 황종택씰 임명하구, 그 공산 대한토건공사에다 전부 청불 맡기구 할 테라구’ 언명은 아니했지만서두, 우리 위대한 문영환 씨가 서랑 황종택 씨의 현금 백만원과 종이 40만 원에칠 투자한 이익 배당을 저바릴 이치야 없잖우? 당선이 돼서, 국회의원 자리에 앉기만 앉는 날이면 아마 모르면 몰라두 1백 40만 원의 백곱절 1억 4천만 원은 이익을 보두룩 마련해 줄걸. 대통령을 국회의원에서 뽑는다니깐, 문영환 씨가 대통령이래두 되는 날인다 치면, 머 제주도 하나쯤 떼줄 영으루 들 것이구, 그럼 황종택 씬 제주도 대통령, 누나는 제주도 대통령 부인…… 조음 좋수?""자알 한다, 잘해. 잘해. 아굴찌루다 아무렇다 지껄이면 말인 줄 알구…… 그래 어떤 황종택이가 그랬다든? 어떤 황종택이가 감투 쓸 엉으루 토목공사 청부 맡을 양으루 그런 야심으루다 어떤 황종택이가 우리 아버지 선거에 돈 대구 했대드냐? 응? 말을 해봐."
"대한토건공사 주인 황종택 씨라구, 알으켜 줘두 그리는구려. 더 자상하게 대주리까?…… 문명자 여사의 부군 황종택 씨. ××××당 ××부당부 부장 문영환 씨의 서랑 황종택 씨. 그래두 어떤 황종택 씬지 몰라? …… 그럼, 일정시대에 일본군에다 물자납품(物資納品)하구서 큰돈 모은 황종택 씨. 이번 선거에 당당히 입후볼 하군 싶어두, 조선말이 도무지 서투르구 무의식중에 자꾸만 일본말루다 지껄여지군 해서, 망신이나 하구 말까 바서 유감인 대루 입후볼 단념하군, 장인영감의 선거에다 방퉁일 했다는 황종택 씨. 이 사실은 방금 15분 전에 당자 황종택 씨의 영부인의 입으루부터 그 친정 모친에게 이야길 했는데, 그래두 몰라요? 자아, 최후루 그럼, 출생지는 함경남도 함흥, 나이는 마흔 살, 얼골은 뿜떡형, 그리구 왼편 눈이 약간 불완전하다는 특증을 가진 그 황종택 씨…… 어때요? 그래두 어떤 황종택 씬지 몰라요?"
"무엇이 어쩌구어째? 눈이 불완전해? 눈이 불완전해? 오냐 잘한다. 잘해. 허다허다 못하니깐 인전 황종택이 눈병신인 거꺼정 해폐하구. 오냐 잘한다. 잘해, 잘해. 얼마든지 해폐해라, 얼마든지."
"사실의 정확한 지적과 비방과는 다른 줄 알았드니……"
"얼마든지 해폐해, 얼마든지. …… 그래, 황종택인 애꾸야. 사팔뚜기야. 그런데 어쨌단 말야? 으응? 어쨌단 말야? 말이?"
"눈이 하나가 약간 불완전하다군 했어두, 눈처럼 사람이 심보두 삐뚤어졌느니란 건 말을 아니했으니깐……"
"황종택이가 애꾸면, 네게 무슨 상관야? 상관이. 매형 녀석이 애꾸면, 제가 출셀 못해 걱정야? 그 잘난 공산주일 못해 걱정야? 무슨 걱정야, 걱정이. 독립 방핼 못해 걱정이야? 소련에다 나랄 못 팔아먹어 걱정이야? 음? 응? 아, 황종택이가 애꾸눈인 말구, 참붕이면, 무슨 상관야, 글쎄 상관이."
방바닥을 땅땅 치면서, 들이 몸부림을 치면서 조촘조촘 다가들면서, 그러다 마침내 최후의 고함과 더불어 밥상을 한머리를 불끈 들어 엎어버린다.
문태석은 툴툴 털고 일어서면서 혼잣말로 두런두런
"이론으루 지면, 욕설, 욕설 끝엔 테로. 백색 테로의 발생학(發生學)한 막을 실연(實演)해 구경시켜 주느라구, 수고하섰소."
최씨부인은 그동안, 어느 편을 편역 들고, 어느 편을 꺾누르고 할 수가 없는 사세여서, 아들을 타이르다, 딸을 만류하다, 팡져서 그만 역정을 내고 물러앉아 푸념과 신세자탄을 한바탕 떨이하였고, 마지막 엎드려서 주께 기도를 올리는 동안에 클라이맥스, 밥상은 테러를 맞았던 것이었다.
최씨부인은 그만 분통이 터지고 말았다.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손뼉을 두드리면서, 대체 이판이 어느 판이길래, 집안의 흥망이 오락가락하는 이판에 앉아서 마수없이 방정맞게 싸움들을 하고 있단 말이냐고. 누이를 누이로 여기지 않고 불측하게 구는 동생놈이나, 아무리 손아래 동생이라도 사내동생인데, 먹는 밥상을 둘러엎는 누이년이나 다같이 목을 썰어 죽여야 하지야고, 들이 집안이 떠나가도록 고함을 쳐 욕하고 저주하고 하였다.
문태석은 이내 저의 방으로 건너와 책상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것이나 책을 한 권 뽑아 들고 앉았다. 그러나 최씨부인의 야료 소리를 듣지 아니하려고 책을 읽자던 것이, 결국은 그 야료 소리에 방해되어 책은 한 줄도 제대로 읽어지지가 않았다.
이윽고 여자 특공대가 모여드는 기척이 들리고, 그러면서 최씨부인의 고함은 슬며시 그쳤다.
계속하여 여자 특공대가 패패이 모여들었고. 상당 수효가 모여가지고도, 그러나 전에 없이 조용한 가운데 한동안의 시간이 지나더니. 별안간 찬송가 소리가 일었다.
해방 직후에 문영환은 지금 그가 관리 경영하는 고무공장과 함께 이 일산주택을 접수하였다. 문영환에게는 좀 협착한 편이었으나, 집이 원체 이 ××부에서는 제일 간다고 이르던 잘 진 집이요, 특히 정원이 10만 원이 넘는다는 훌륭한 물건이어서, 장차 빈터에다 딴채라도 한 채 질 요량을 하고서, 그런 대로 제것을 만든 것이었었다.
현관을 들어서면 복도를 사이에 두고 바른편이 응접실, 사랑을 겸해서 쓰는 대주 문영환의 방, 주장 문태석이 쓰는 아이들의 공부방, 식모랄지 아래청 사람이 쓰는 방, 조그마한 광방, 그리고 왼편이 아동실, 안방, 부엌, 찬방 대강 이러하였다.
이렇게 된 집이요 방들이기 때문에, 가령 문태석이 제 방에 앉았노라면 어떤 방에서나 소곤거
리는 귓속말 외에는 환히 다 들리곤 하였다.
문태석은 안방으로부터 좌악 이는 찬송가 소리에 와락 구역질이 넘어오려고 하였다.
보나마나 경자와 최씨부인, 여럿의 앞에서 방금 아까의 죄를 뉘우치는 고백을 하였고, 그래서 여럿과 함께 하나님께 죄의 용서를 비는 기도를 올렸고, 그러고 나서 죄를 뉘우치고 기도를 올렸으니, 죄를 용서 받았다는 안도(安堵)와 기쁨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죄를 지고라도 그를 뉘우치고 하느님을 부르며 용서의 기도를 올리면 사(赦)함을 받는다…… 그러하되, 죄를 지는족족 뉘우치기만 하고 하느님만 부르며 기도만 올리면, 그 번번이 다 사함을 받도록 죄의 반복에 있어서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아니한 이 규정은 일종의 안전지대의 설정이라 할 것이었다. 이러한 안전지대의 설정은 경우에 따라서는 죄악의 장려제도로 통용이 될 수가 있었다.
가령 경제상의 이해관계로 남을 속여야 할 경우라고 하자. 남을 속이는 것이 번연히 죄악인 줄을 알기는 아나
"쯧, 나중 가서 회개하고 하느님께 용서해 줍시사고 기도드리지."
하고, 그대로 죄를 짓는 수가 얼마든지 있을 것이었다.
이와 같이 편리하고도 교활한 안전지대를 등뒤에다 숨겨가지고, 그리스도교 본연의 계명(戒命)을 방자로이 범하되 조금치도 거리낌이 없는 무리들. 그들에게는 보다 더 엄흑한 마약취체령(痲藥取締令)이나 그렇지 않으면 한 그램씩의 청산가리(靑酸加里)를 안기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문태석은 손에 펴들었던 책을 내팽개치고 벌떡 드러누웠다.
찬송가가 끝나자 비로소 이야기판이 벌어졌다. 연방 그 욕망스런 웃음소리가 어우러져 터져오르면서 주거니받거니 쉴새없이 지껄이는 내용이란, 모두가 권유를 다니면서 겪은 이야기, 권유를 하던 솜씨 자랑, 그리고 다른 입후보의 운동 내막을 스파이한 이야기 이런 것들이었다.
때를 같이하여 자동차가 두 대나 들이닿고, 문영환을 비롯한 남자패들이 10여 명은 넉넉 되는 듯 요란히 떠들어대면서 사랑방으로 몰려들었다.
문태석은 저의 집이 전에 살던 집이었다면 멀찍이 뒤채의 딴 방에가들어박혀 있고, 이런 시궁창같이 불결하고 장거리같이 시끄런 소음은 듣기를 면하였으련만 싶으면서 저절로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아니 저앤, 물 건너 즈이 첩장인 죽었나아…… 얘, 태석아?"
윤상수가 그렇게 소리를 질러서야 문태석은 정신은 들었으나, 대답도 않고 돌려다보지도 않는다.
꼬마 고영달이 윤상수의 옆구리를 꾹 지르면서 손가락으로 문태석을 가리키고 제 포켓을 가리키고 한다. 문태석의 포켓 속에 돈이 있다는 그 뜻이었다.
윤상수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싱글싱글 웃으면서 문태석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얼마 전에 시험한 교내의 생도 인기투표에서 7할─6백 몇십 표를 득표한 윤상수였다.
앞뒤로 요란스럽게 내솟은 남북 대가리에, 어웅한 눈에, 주먹 같은 들창코에, 넓죽한 입과 기다란 주걱턱, 이 얼굴 생김새 그것부터가 우선 익살스럽기에 충분한 것이 있었다.
하는 짓, 하는 소리가 다 구성지고, 그러나 그러한 외에 의리와 남을 포용하는 너그러움이 있고, 그리고 당당할 때는 마호멧처럼 당당하고, 두루 이러한 것으로는 그는 전교 생도의 인기를 한몸에 지고 있던 것이었었다.
"자넨, 무슨 근심이 기신가? 혹은 사식을 골똘히 하구 기신가?"
윤상수는 문태석의 어깨에 한손을 얹으면서 연극조로 그렇게 수작을 붙인다.
문태석은 윤상수의 하는 소리는 못 들은 척, 바깥을 내다보는 채
"훨훨 여행이나 댕겼으면…… 맑은 하늘, 풍부한 햇볕, 그리구 신록(新錄) 다 좋잖으냐?"
"난, 자연이 아름답기 전에 배가 고프니, 아무 그런 경황두 없으이. 문도령, 우릴 질겁게 해줄 의사는 없는가?"
"우리, 자행거나 한 채씩 구해 타구, 여행이나 떠날까?"
"딴전 말구우, 요 막난아아……"
그러면서 윤상수는 덤쑥 문태석의 목을 그러안고, 수염 거슬거슬한 기다란 턱을 문태석의 볼에다 쓱쓱 비빈다.
"지겨워, 이 망할 것아."
"빵 좀, 사줄늬? 안 사줄늬?"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