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명작 "뭉크의 절규" ,그 뒷 사정은?
2023년,신림동 흉기 난동 사건에 이어 8월 어느날 분당 서현역에서 일어난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격과 공포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범인이 조현병이란 무서운 정신병을 앓고 있던 은둔형 외톨이 피해 망상 환자라는 점과 이런 류의 모방
범죄가 증폭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데 더욱 우려가 된다는 것이 우리 모두의 염려일 것이다
더구나 나홀로 세대가 폭증하여 이런 지런 사회. 문제가 빈발하는데 우리 현실은 마땅한 대비책이 없다
는데도 그 심각성이 있다고 본다 .범인의 칼부림에 공포에 질려 살기 위해 도망치는 시민들을 지켜보면
서 나(여경)는 언뜻 뭉크가 그린"절규"가 생각났다
그런데, 때 마침 2023.8.11. 한국경제신문에 최지희기자가 쓴 뭉크 이야기가 아주 마음에 와 닿는다
그래서 다소 사족을 첨삭하여 옮긴다
"마귀를 쫒으러면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 것 같다.오늘 밤에는 너희 중 누구도 잠들지 말아라"
1868년, 뭉크는 어머니를 잃었다.고작 다섯살(5), 5 남매의 둘째인 뭉크는 폐병으로 피를 토하며 죽
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 보았다.당시는 페병을 고치는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다
어머니가 죽은 후 의사인 그의 아버지는 거의 정신이 나간 듯 종교에 모든 것을 맡겼다
의사인 아버지는 환자를 수술한 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수술복을 벗지도 않고 자식인 뭉크와 누나
그리고 여동생 둘 , 모든 가족을 불러 모았다.그리곤 아무 이유없이 소리를 지르며 자식들을 마구잡
이로 때렸다. 뭉크의 아버지는 첫머리에 나온 것처럼 밤마다.귀신,죽음,살인 등 공포스러운 내용의
책을 읽어준다며 지식들을 못 자게 하며 괴롭혔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너희들은 매번 신의 뜻을 어기는 악마이기 때문에 충격 요법을 줘야 천국에 갈 수 있다"
믕크는 그때마다 공포에 떨었다 .한 손은 두려움에 떠는 누나 소피에의 손을, 다른 한 손으로는 여동
생 라우라의 손을 꼭 잡아줬다.그렇게 죽음에대한 두려움,귀신에대한 공포는 평생 뭉크를 따라다니
는 망령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죽음보다 뭉크를 더 미치게 한 건 누나 소피에의 죽음이었다. 사인은 폐결핵.
그즈음 아버지의 광기와 폭력을 이기지 못한 여동생 라우라는 완전히 미쳐 버렸다. 혼자 울다가 웃다
가 침을 흘리며 땅바닥을 기어다녔다. 엄마와 누나,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을 잃은 뭉크는 매일 죽음
에대한 공포를 참으로 가까스로 극복하고 1879년 오슬로 기술대학에 입학한다.
그러나 병약한 몸 때문에 학교 성적은 엉망이었다
자존심 마저 상실한 뭉크는 수시로 자살과 지옥에 대해 생각했다. 외톨이가 된 그는 낙서를 하며 죽
음의 공포를 밀어냈다. 그런데,말이다. 주위의 시선은 낙서만 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 아
니라 '낙서 하나는 봐 줄 만한 놈'이었다. 그는 그 한 마디에 자신을 이겨 단 1년 만에 노르웨이 왕립
드로잉아카데미의 문턱을 넘었다. 그리고 우울과 공포를 열심히 그려 우울증과 공포를 이겨냈다.
트라우마를 숨기지 않고 들어냄으로써 그 고통을 치유하려고 애썼다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긍정의 메시지가 뭉크를 살리고 명화를 남기게 되었다는 점이다
장자의 말씀처럼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씀도 새겨 볼만하다.
하여튼 특이한 작가로 인정받은 뭉크는 1892년 독일~프랑스 간 전쟁(보불전쟁)에서 이긴 독일이 이
를 기념하기 위해 뭉크를 초청해 개인전을 열어줬다.하지만 전시회를 본 독일 시민들은 "악령의 사주
를 받은 그림"이라며 맹 비난했다.첫 개인전 8일만에 그림 55점을 조기 철수할 수 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급기야 뭉크는 "악마의 노예"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죽음을 그리는 해골같은 화가가 베를린을 뒤집었다"는 소문이 유럽에 퍼졌다.
인생사 "새옹지마"다.처음에는 뭉크의 그림에 부정적 시각이었던 프랑스인들에게 독일사람들이 뭉크
의 그림을 맹 비난하자 역으로 뭉크의 그림에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뭉크 후원 팬클럽까지 생겼다.독일과 프랑스의 관계는 우리와 일본 비슷하다
믕크는 이때부터 "내가 바로 악마를 그리는'지옥의 화가다"며 스스로를 홍보했다
낙담하던 그가 인생 처음으로 자신감을 얻이 1893년에 내 놓은 그림이 바로 세기의 명화 "절규"다
그의 나이 서른이었다.뭉크는 일약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가 되었지만,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벗
어날 수 없었다.평생 사람과 신을 두려워했다.그는 수염을 길러 얼굴을 가리면 사람도 신도 자신을 알
아보지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뭉크는 죽을 때가 되어서야 죽음과 악마의 망령에서 벋어 났다고 한지
1주일에 두 번씩 바닥에 쓰러져 거품을 문 뭉크는 80세까지 장수했다.
독신으로 외롭게 산 그는 작품을 자신이 낳은 자식이라며 무척 아꼈다.작품이 팔리면 똑같은 작품을
만들고 다시는 그 작품을 천금을 준다고 해도 팔지 않았다.그가 죽은 후 그의 집에서 2만점의 미공개
작품이 쏟아졌다.그렇게 인류에게 남긴 커다란 선물이 탄생되었다.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