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울렁대는 독도 여행
정한효
시월의 마지막 날은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다. 올해는 30주년이 되는 해이니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여행지를 물색하다가 작년에 세 번이나 시도했으나, 기상 악화로 번번히 가지 못한 울릉도를 가기로 했다. 여행사의 모집 일정에 맞추다 보니, 10월 25일 후포항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후포항(厚浦港)은 도탑다. 항구를 찾아오는 누구라도 반기지만, 나가는 뱃길이 조금이라도 걱정이 되면 가는 길을 말린다. 오늘의 후포항은 잠잠하고, 가을 하늘은 높고 푸르다. 하늘이 내려앉은 듯, 바다 또한 짙푸르다. 일 년 중 백여 일은 갈 수 없는 곳, 그러기에 가는 날은 늘 선택받은 날이다. 후포의 갈매기가 배웅을 끝내고 뭍으로 돌아가는 지점부터가 동해다. 여객선을 가득 메운 선실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단어는 하나로 모아진다. "망망대해(茫茫大海)". 가눌 수 없는 바다는 너무나 아득하고 아득하여 오히려 숨이 막힐 듯 하다. 거대하게 꿈틀거리는 바다를 보고서도, 저 깊은 곳에 용왕님이 계신다는 전설을 믿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심기가 불편해지면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바다이기에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하지만 오늘 만큼은 과속방지턱 넘듯 가볍게 출렁이며 바닷길을 달린다. 이런 날이 일 년 중 흔치 않다는 안내원들의 이야기는, 모두가 자신이 쌓은 공덕 때문이라는 여행객들의 표정 속에 묻히고 만다. 두 시간 가까이 내달리니, 어렴풋이 섬의 실루엣이 보이고, 미리 연통을 받았는지 저만치 울릉도 갈매기가 마중 나왔다. 울릉도 성산봉은 구름으로 햇볕을 가리면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울릉도 수문장은 사동항(沙洞港)이다. 항구를 내려다 보는 수목(樹木)은 언제부터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는지, 육지의 차림새와 다를 게 없다. 울릉도가 얼마나 육지를 사모하고 있는 지 알 듯하다.
내일의 기상(氣象)이 좋지 않다는 예보가 있어, 일정을 바꾸어 먼저 독도로 향한다.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독도로 향하는 여객선을 바라보는, 울릉도은 울적하다. 한 점 외로운 섬, 독도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요즈음 들어 온통 독도에 대한 관심 뿐이다.
10월 25일. 독도의 생일이다. 1900년 10월 25일, 고종황제가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명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날을 독도의 날로 지정했다. 좀 머쓱하다. 독도의 생일이라는 것을 독도로 가는 배 안에서야 알았기 때문이다. 오늘 이렇게 파도가 잔잔한 것은 생일잔치에 찾아오는 손님을 위한 독도의 배려가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독도에는 방파제가 없어 여울성 파도가 조금만 높아도 접근할 수 없다. 그러기에 독도 땅을 밟을 수 있는 날은 일 년에 육십여 일. 이쯤되면 삼 대가 덕을 쌓아야 독도에 오를 수 있다는 너스레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시간이다. 천우신조(天佑神助)의 의미를 새기면서, 독도에 첫발을 내딛었다.
독도(獨島). 결코 외로운 섬이 아니었다. 동도(東島)와 서도(西島) 그리고 이름없는 작은 섬 등 89개의 바위섬이 오목조목 모여 사는 오봇한 섬마을이었다. 돌섬, 석도로 불리우던 이름을 전라도 남해안 출신의 울릉도 초기 이주민들이 ‘독섬’으로 불렀다고 한다. 전라도 방언에서 ‘돌’을 ‘독’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문헌에 따르면 처음 독도에 거주한 인구의 80%가 전라도 출신이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누군가 한자(漢字)로 표기하면서, 외롭게 보인다고 생각을 했는 지, 홀로 독(獨) 자를 붙였다.
뿐만 아니라 독도는 결코 작은 섬이 아니다. 독도의 해발고도는 동도 98.6m, 서도 168.5m로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작은 바위섬으로 보인다. 하지만 독도는 해면 아래에 수심 2km 정도, 바닥이 25km 정도인 원추형으로 한라산 보다 더 높은 섬이다. 말그대로 빙산의 일각(一角)인 돌산의 일각이 독도인 것이다. 또한 독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태어난 화산 섬이다. 울릉도 보다 200만년 정도 먼저 형성되었다고 한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부지런한 섬이자, 맏형 격인 섬이다. 사람들은 알량하게도 눈으로 보이는 게 전부라고 생각한다. 해발(海拔)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척도(尺度)에 불과하다. 독도를 가엽게 보지 말자.
독도의 숨겨진 위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니, 돌아서는 발걸음은 든든하다. 하지만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눈 앞의 것들은 늘 애잔하기만 하다. 배 뒷전으로 가물가물해지는 섬을 지켜 보다가, 홀로 독(獨), 독도(獨島)라고 이름을 지은 사람의 생각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다시 돌아 온 울릉도 사동항(沙洞港), 꼬깃꼬깃 숨겨 둔 비밀을 들킨 것처럼 독도의 깊은 이야기를 알아버린 나를 보고 울릉도는 술렁대고 있었다.
풍랑주의보가 발효되어 일정을 하루 앞당겨 돌아가야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무언가에 쫒기듯 울릉도를 돌아보고, 이튿날 사동항을 출발했다. 바람은 거세지고 울릉도의 앞바다는 사나워졌다. 울릉도의 울렁대는 소리가 귓전에 가득한 독도 여행이었다.
첫댓글 30주년 결혼 축하합니다 덕분에 멋진 독도 잘 보고감니다
고맙습니다. 김춘자 선생님!
이렇게 축하까지 해 주시니...
늘 댓글로 주시는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늦었지만 30주년 축하 드립니다. 3년전에 다녀 왔는데 선생님 덕분에 다시 그려 봅니다.^^
이미 3년전에 행운을 누리셨군요.
꾸준하게 남겨 주시는 흔적이
장미처럼 아름답습니다.
같이 독도 여행을 한 것 같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몇년전 독도를 배위에서 보고 온적이 있지요
" 독도의 숨겨진 위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니, 돌아서는 발걸음은 든든하다. 하지만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눈 앞의 것들은 늘 애잔하기만 하다. 배 뒷전으로 가물가물해지는 섬을 지켜 보다가, 홀로 독(獨), 독도(獨島)라고 이름을 지은 사람의 생각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다시 돌아 온 울릉도 사동항(沙洞港), 꼬깃꼬깃 숨겨 둔 비밀을 들킨 것처럼 독도의 깊은 이야기를 알아버린 나를 보고 울릉도는 술렁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