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 이 시집
유고 시집 유감有感, 유감遺憾
이동재(시인·소설가)
― 오탁번, 『속삭임』 (서정시학, 2024)
― 서 하, 『외등은 외로워서 환할까』 (걷는 사람, 2024)
― 이성복, 『그 여름의 끝』 (문학과지성사, 1990)
유고 시집이란 시인이 생전에 미처 발간하지 못한 유고를 모아서 발간한 시집을 의미한다. 유고 시집 하면 먼저 이육사의 『육사시집』이나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와 같은 시집을 떠올리거나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그 이후 꽤 여러 시인의 시집이 유고 시집으로 발간이 되기도 했다. 유고 시집이라 하면 시인의 사후에 가족이나 주변의 지인들에 의해서 발간되는 시집을 상상하기 쉬우나 죽기 직전 시인이 직접 자신의 유고집을 준비하는 경우도 근래엔 적지 않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의료 기술의 발달로 어느 정도는 자기 죽음을 어느 순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속삭임』은 2023년 2월 14일에 세상을 뜬 오탁번 시인의 열두 번째 시집이자 유고 시집이다. 시인은 자신의 몸에 심각한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은 후 2달 남짓한 시간 동안 자신의 마지막 시집이 될 이 시집을 정리한 듯하다.
내가 오탁번 시인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그의 열한 번째 시집인 『비백』(문학세계사, 2022.4)이 나온 직후, 수유리에서 김포로 이사한 오태환 시인의 집에서였다. 그날 사형인 오태환 시인의 집엔 오탁번 시인과 평론가 이경호, 박수현 시인, 그리고 송상욱 시인 부부가 모였다. 오태환 시인의 새집 집들이를 겸한 그날의 모임에 어떻게 그 사람들이 모인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마도 오태환 시인이 집들이 겸 오탁번 시인을 모시고자 한 것 같고, 오탁번 시인이 박수현 시인과 송상욱 시인을, 이사하기 전 수유리에서 함께 살던 평론가 이경호는 오태환 시인이 초대했을 듯싶다. 그리고 나는 김포에서 파주가 가깝다고 생각한 오탁번 시인이 겸사겸사 부르라고 한 듯싶었다.
내가 사는 파주와 김포는 인접해 있지만, 대중교통 편이 불편하여 운전하고 갔던 나는 술을 마실 수 없었다. 몇 잔의 술이 오가고, 송상욱 시인의 기타 반주와 노래가 있었고, 전통춤을 전공한 그의 부인의 살풀이춤 공연이 있었다. 그리고 난 후 오탁번 시인은 나를 불러서 싸인한 『비백』을 사람들에게 돌리게 했다.
술자리가 파하고 나는 오탁번 시인과 일행을 버스 정거장에 내려드렸고, 오탁번 시인은 택시를 불러서 타고 사라졌다. 나는 그가 탄 택시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걸 지켜봤지만, 그것이 시인과의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너나들이 시인들아
하고한 잘난 제자들아
다들 뭐 하고 자빠졌냐
한 마디 해주면 덧나냐?
맘먹고
열 한번 째 시집을 냈더니
서울이
아주 조용해졌네, 나, 참!
― 「조용한 서울」 부분
이 시를 읽고 난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날 『비백』을 받아오고 나서도 잘 읽었다고 전화 한 통 드린 적이 없었다. 그저 잘 계시겠지 싶었고, 평소 건강하신 분이시니 내내 안녕하리라 생각했다. 백 세가 코 앞인 노부모의 뒷수발에 지쳐있었던 나는 내 코가 석자였고, 백 세 시대라니 선생님의 수명도 어지간하시려니 했다.
해가 바뀌어 ‘복은 토끼처럼 연세는 거북이처럼 드세요.’라고 계묘년 새해 인사를 문자로 드렸더니 답이 없었다. 평소 같지 않았지만, 연초라 바쁘셔서 그러려니 했다. 그때는 이미 당신의 몸의 심각성을 알고 병원 여기저기를 다니실 때라 경황이 없었을 때였을 것 같다.
「꿈」을 보면 시인은 『비백』을 출간한 후 저승에 계신 당신의 어머니 목소리를 꿈에서 듣는 등 어떤 예감이 있었던 듯하다.
유고 시집의 4부인 ‘속삭임’에 있는 아홉 편의 시는 시인이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돌아가시기 전까지의 일을 기록한 병상일지인 셈이다. 「속삭임1」은 2022년 연말에 몸에 이상 징후를 느끼고 고향인 제천의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후 쓴 시로 보인다.
췌장, 담낭, 신장, 폐, 십이지장에
혹 같은 게 보인단다
아아, 나는 삽시간에
이 세상 암적 존재가 되는가 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1초쯤 지났을까
나는 마음이 외려 평온해진다
갈 길이 얼마 남았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가는 것보다야
개울 건너 고개 하나 넘으면
바로 조기, 조기가 딱 끝이라니!
됐다! 됐어! ― 2023.01.05.
― 「속삭임1」 부분
이 시에서 시인은 병원의 의심스러운 진단을 받은 후 천연덕스럽게 ‘세상 암적 존재’가 됐다고 너스레를 떨고 있다. 그리고 한 달 후, S병원과 K병원에서 자신의 병이 돌이킬 수 없는 것임을 확인한 후 퇴원해서 평소 그가 거처하던 제천의 원서헌으로 돌아가며 ‘-아, 살 것 같다!’라고 다시 너스레다.
정월 대보름은 온다
올 쥐불놀이는 없다
12주일 후 2월 9일
목요일 오후 3시 반
주치의 앞에 선다
징역 80년 만기 출소!
암, 그렇다마다!
Oh, cancer, of course!
살든 죽든, 밸 꼴리네
To be or not to be, that’s not the question.
- 2023.02.04.
― 「속삭임8」 전문
사실상의 사망 선고를 받고 병원에서 나오며 ‘징역 80년 만의 만기 출소’라고, ‘암, 그렇다마다!/Oh, cancer, of course!’ 라고 유머러스하게 너스레를 떨고 있는 시인은 이 시를 쓴 지 10일 만에, 마지막 시인 「속삭임9」를 쓴지 8일 만에, 병원의 검사 결과도 미처 다 확인하기 전 저세상으로 갔다. ‘To be or not to be, that’s not the question.’이 시인의 묘비명처럼 읽힌다.
시인의 죽음으로 나와 고인과의 40년 인연도 일단 막을 내렸다. 그는 나의 학사, 석사, 박사과정의 지도교수였다. 하지만 나는 강의실에서 그로부터 뭔가를 배운 것 같지가 않다. 그로부터 뭔가를 배웠다면 그건 모두 그와의 술자리를 통해서였다. 그는 사범대나 문과대에 어울리는 교수가 아니라 문창과에 어울리는 교수였고, 교수보다는 시인이나 작가가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는 교수로서보다 『시안』이란 잡지의 발행인으로서 더 큰 사회적 공헌을 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학연이나 지연,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시인을 발굴하고, 시인들과의 교류에 힘썼던 고인의 공은 결코 적지 않다. 문단 활동에 소극적인 나 같은 사람조차 선생의 잡지 발간으로 그나마 그 주변을 얼쩡거리며 많은 시인의 얼굴이나마 직접 볼 수 있었으니 전적으로 그의 덕분이다.
오탁번 시인은 가셨지만 그를 매개로 만났던 학교 선후배들과 문단 시인들과의 인연은 당분간 계속될 듯하니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와의 인연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셈이다.
김포에서 마지막으로 뵙던 날 나는 마트에서 ‘서울의 달’이라는 증류식 소주를 두 병 사서 들고 갔다. 그것이 선생님께 올린 마지막 술이 되고 말았다. ‘서울의 달’이란 소주를 볼 때마다 생각이 날 듯하다.
서하 시인은 오탁번 시인이 발행했던 잡지 『시안』을 통해 등단한 시인이다. 서하 시인의 시를 보면 고인이 된 오탁번 시인도 잡지를 발행하여 신인을 발굴한 보람을 느낄 듯싶다.
서하의 시집을 읽다가 첫 장부터 눈이 번쩍 뜨이는 구절을 발견하고 놀랐다. “입이 저지른 일을 똥구멍으로 씻어내는 중이라 하면 믿겠니”(「오랜만에 걸려온 전화」 중) 라는 구절이었다. 시의 맥락과는 상관없이 ‘바이든’을 ‘날리면’, ‘명품 쇼핑’을 ‘호객행위 피해자’로, ‘대파 한 단’을 ‘대파 한 뿌리’ 식으로 운운하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떠올라 다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서하 시인의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시는 역시 그의 고향 사투리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엄마, 누에고치 팔아서 진짜 시계 하나 사 주면 안 돼? 윗마을 자야도 있고 계순이도 있다 카이…
엄마는 부릅뜬 눈으로 “와” 손모가지가 머라 카더나?
누에가 숨 쉬는 하얀 방에 누워 잠든 척했다 점점 야위어 가는 뽕잎을 째깍거리는 벽시계가 토닥여 주었다 먼 나라에서 온 친구와 함께 시곗바늘을 타고 은하까지 갔다 온 꿈을 꾼 날은 비가 왔다
뜨거운 손목을 꺾어 우산처럼 들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다녔다 초침 소리를 이슬밭처럼 밟고 누군가 째깍째깍 걸어오는 소리 들렸다
― 「시계초」 전문
시인은 저마다의 특장이 있다. 그것은 대개 자신의 뿌리와 관련된 것이기 쉽다. 그 부근에선 오랜 시간 무의식적으로 몸에 배고 곰삭아진 삶의 흔적이 묻어나게 마련이다. 정치 사회적 차별의 문제 때문에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함부로 고향을 묻는 일이 무례한 일이 돼버렸지만, 인간에게 고향은 어쩔 수 없는 각자 삶의 원형적 공간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 원형을 파헤치는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시인이나 작가에게 고향은 창작의 저수지인 셈이다.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시인의 언어와 삶의 풍경이야말로 머리를 쥐어짜서 써낸 어떤 글보다도 감동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성복 시인하면 먼저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980)에 실려 있는 「정든 유곽에서」, 「그날」, 「어떤 싸움의 기록」과 같은 시나 『남해 금산』(1986)에 실려 있는 어떤 시편 들을 떠올리기 쉽다. 나 역시 그랬다. 「남해 금산」을 읽고는 남해의 금산을 여러 번 찾아가기도 했었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 「남해 금산」 전문
망부석 이미지부터 떠오르나 한 여자가 돌 속에 묻혀 있다는 남해 금산의 그 돌이 어떤 돌인지 끝내 알 수는 없었지만, 이성복의 시는 내게도 그런 식으로 아련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군 입대 전에 읽었던 이성복의 세 번째 시집 『그 여름의 끝』을 30여 년 만에 다시 읽다가, ‘이게 이런 시집이었던가?’ 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내 지금 그대를 떠남은 내게로 오는 그대의 먼 길을 찾아서입니다”(「숨길 수 없는 노래3」) 란 구절 정도가 가슴에 와닿을 뿐이었다. 일기 같고 편지 같은 사적인 감정의 넋두리나 고백 같은 시들은 특별히 이성복이나 그의 시를 연구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다시 읽을 만한 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대의 시대적 배경이나 시인의 개인적인 전기를 잘 모르고 그냥 시집을 집어들 수 있는 요즘의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기는 힘들 것 같기도 했다. 시인으로서의 그의 명성을 믿고 이 시집을 고른 독자가 있다면 고개를 갸우뚱하기에 십상일 듯도 하다.
여기서 잠시 내 고민이 깊어졌다.
‘과연 어떤 시가 세월의 풍화를 좀 더 오래 견뎌낼 수 있을까?’
고민은 시인 각자의 몫이다. 결국, 각자의 깜냥대로 쓰고, 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일이기는 하나 그래도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모든 시가 시인의 명성에 묻어갈 수는 없으며, 당대의 명성이나 인기가 후대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도 아님을 문학사는 가르쳐 준다. 물론 거품이 걷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부화뇌동하는 시인이나 비평가, 독자들이 많을수록 더욱더 그렇다.
어쩌면 고인이 된 모든 시인의 시가 모두 유고고, 유고 시집이 된다. 하지만 모든 시를 유고처럼 쓸 수는 없다. 하지만 후대의 독자들이 무엇으로 나를 애도하며 기억할 것인지 가끔은 생각하며 시를 써도 좋을 듯싶다. 모든 것을 운에 맡기거나 독자들을 탓하기엔 요즘 독자들은 볼 것도 많고, 할 일도 많다. 동료 시인이나 비평가, 연구자들도 그렇다. 자기검열이 중요한 이유다.
이 모든 것이 인쇄 매체를 매개로 한 근대문학의 시대가 가고, 잘해야 끝물인가 싶은, 밤새워 넷플릭스의 드라마를 볼지언정 더 이상 소설이나 시를 읽지 않게 된 시대를 사는 ‘근대문학인’의 자괴감에서 비롯된 넋두리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