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식
올해도 수능 시험이 다가왔다. 수험생이 예전보다 줄긴 해도 정부가 주관하는 규모가 가장 큰 시험이다. 일반계 고등학교는 한 해 교육활동에서 수능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크다. 비록 하루에 치르는 시험일지라도 수험생 본인과 가족들에겐 12년간 이수한 제도 교육의 지적 능력을 측정 받는 날이다. 수험생을 직접 지도한 담임을 비롯한 여러 교사들도 마음이 쓰이긴 마찬가지다.
관련부서에서는 이미 한두 달 전부터 방송시설 상태를 몇 차례 점검했다. 담당자는 일주 전 사전 교육에 참석해 수능 당일 소요될 물품들을 수령해 왔다. 고사실로 지정받은 학급 교실들은 규정 따라 한 치 어긋남 없도록 해야 한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 인접은 주택가가 아니라 소음 민원은 걱정 없다. 극동방송국 뒤 산언덕 누군가 키우는 수탉이 울까봐 교감이 미리 조치까지 했다.
학교에서는 수능 시험장을 마련하느라 관련 업무 담당과 담임들은 며칠 동안 무척 바빴다. 시험실에 쓰일 책걸상 수량과 높낮이 상태를 점검했다. 실내등과 난방기와 블라인드 상태도 살펴야 했다. 타종 벨소리도 평소와 달리 설정했다. 시험실 배치도를 뽑아 현관에 부착하고 감독관 입실 배정 순서도 짜두어야 했다. 이런 업무에서 내가 도와줄 일이 없어 나는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장도(壯途)는 중대한 사명이나 장한 뜻을 품고 떠나는 길이다. 언제부터인가 수능이 있는 11월 중순이면 한 풍속도가 되다시피 한 장도식이다. 싸움터에 나가기 전에 갖는 의식인 출정식인 셈이다. 선생님들도 참석해 고3 수험생들을 격려하는 자리지만 1·2학년 후배들이 선배들을 응원하는 의식이다. 해마다 대물림되기에 올해 고3이 졸업해 나갈 내년은 그 다음 2학년들이 주인공이다.
십여 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내가 개교 역사가 짧은 시내 어느 신설학교 근무 때였다. 아무도 인성부장을 맡으려는 이가 없어 내가 떠밀려 일을 보았다. 그해 이전까지 수능 시험장 교문 앞에서 후배들의 선배 응원이 너무 과열되어 관내 인성부장들이 그해부터 그런 의식을 갖지 않기로 합의 보았다. 학교마다 후배들은 좋은 목을 차지하려고 추운 날씨 밤을 새워 교문 앞 진을 쳤다.
“수능장 주인공은 나야, 나! 오늘만 기다려온 나야, 나! / 꿈꾸는 대학 가는 나야, 나! 마지막 단 한 사람은 나야, 나! (재학생 일동)” “꿈을 향한 발걸음, 마지막 순간까지 처음처럼 / 여러분의 선택을 응원합니다. 토닥! 토닥! (교직원 일동)” “얘들아! 우린 너희들을 믿는다. 수능대박 주인공은 너야, 너! - (3학년 담임 일동)” 공모를 거쳐 선정된 올해 격문으로 보름 전 교사 벽면 걸렸다.
수능고사 전일이다. 1교시 수업을 끝낸 학생들은 모두 운동장으로 모였다. 여름까지 파릇했던 교정의 잔디가 갈색으로 바뀌는 즈음이다. 전체 학생들이 모인 운동장 행사는 일 년에 그리 많지 않다. 지난 오월 알록달록한 반티를 입고 교내 체육대회를 치렀다. 나머지 행사들은 대개 강당에서 이루어졌다. 아무래도 수험생을 위한 장도식은 실내보다 넓은 교정에서 진행함이 알맞았다.
날씨가 좀 쌀쌀했지만 교정에 모인 학생들의 얼굴은 무척 밝았다. 인성부장의 사회로 수험생을 위한 격려식이 거행되었다. 국민의례에 이어 학교장 격려 말씀이 있었다. 그간 학업을 갈고 닦느라 수고한 고3들을 치하하고 좋은 결과가 있기를 성원하였다. 학교운영위원회에서는 수험생을 격려는 기념품도 전했다. 학생회 2학년 대표는 선배들의 수능 대박을 기원하는 글을 낭독했다.
연단에서는 아직 남은 절차가 있었다. 후배 귀염둥이들이 언니들의 수능 대박을 기원해주는 공연을 펼쳤다. 경쾌한 리듬에 맞추어 날렵하게 펼쳐 보인 율동에서 선후배들은 잠시 긴장을 풀고 손뼉을 치며 함께 어우러졌다. 이어 후배들은 운동장 트랙을 따라 줄지어 서서 선배들을 교문 바깥까지 전송했다. 내일이면 학교를 달리해 지정 받은 시험장으로 갈 언니들을 박수로 배웅하였다. 17.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