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6장 7 - 12절
7. ○사람의 수고는 다 자기의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채울 수 없느니라
8.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 살아 있는 자들 앞에서 행할 줄을 아는 가난한 자에게는 무슨 유익이 있는가
9. 눈으로 보는 것이 마음으로 공상하는 것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10. ○이미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오래 전부터 그의 이름이 이미 불린 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나니 자기보다 강한 자와는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
11.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들이 있나니 그것들이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있으랴
12.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를 누가 알며 그 후에 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
전도서를 보면서 계속 반복해서 말씀드리는 것 중에 하나가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7절 말씀에 보면 “사람의 수고는 다 자기의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채울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일평생 먹을 것, 마실 것을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하면서 사는데 그런데 우리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결국 만족하지 못한 상태로 마감하게 됩니다. 8절에 보면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질문을 하고 있는데 그 답은 만족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족할 줄을 합니다. 적당한 선에서 이 정도면 됐다는 마음을 가지고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우매한 사람은 끝까지 만족함 없이 살다가 후회하며 인생을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 봤던 영화 중에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Passion of christ)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영화였습니다. 영화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통곡을 하면서 회개를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만든 맬 깁슨은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엄청난 시련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영화의 내용이 비유대주의적인 색채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허리우드를 장악하고 있던 유대인들의 저항이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투자를 거의 받지 못하고 자신이 직접 영화사를 차려서 자기 돈 2천 5백만 달러, 그 당시 우리나라 돈으로 하면 3백 억 원 정도를 투자를 해서 완성을 했던 영화라고 합니다. 영화가 망하면 자신도 망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예수님의 은혜를 전하겠다는 한 가지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영화가 세계적으로 대박이 났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거둬들인 수익인 6억 1천 만 달러, 그 당시 우리나라 돈으로 7천 3백 2십 억 원 정도의 천문학적인 수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처음 영화를 만들 때의 마음이면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큰일을 했어야 했는데 제일 먼저 한 일이 남태평양 피지의 마고섬을 160억 원을 주고 매입을 했습니다. 여의도 크기의 2.5배 정도의 섬인데 오로지 자신의 휴양지로 사용하기 위해서 그 섬을 구입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인간은 욕심의 동물이구나. 욕심은 인간의 본능이구나.’ 이런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절대 자족함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리석게도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은 욕심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그 안에서 비참한 최후, 후회하는 최후,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다” 이런 고백을 할 수밖에 없는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서로 다른 것 같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 덩어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정욕, 욕심에 빠져 사는 사람은 안목의 정욕에도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9절에 보면 “눈으로 보는 것이 마음으로 공상하는 것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이런 말씀이 있는데 욕심에 사로잡혀서 자족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국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안목의 정욕에 사로잡혀서 살아가게 되는데 그 결과를 보면 헛되이 바람을 잡는 것밖에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생의 자랑에도 쉽게 유혹될 수 있기 때문에 이 세 가지는 다른 것 같지만 한 덩어리라고 말을 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는 것입니다.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3중고에 시달렸던 헬렌 켈러는 설리번 선생님의 도움으로 하버드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헬렌 켈러가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만약 내가 사흘 동안 앞을 볼 수 있다면 첫째 날엔 나를 가르쳐 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그 분의 얼굴을 바라보겠습니다. 그리고 산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겠습니다.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셋째 날에는 아침 일찍 큰 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싶습니다. 점심 때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저녁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저녁에는 집에 돌아와 사흘 간 눈을 뜨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3일 동안 눈을 뜰 수 있다면 하고 싶은 일들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굉장히 소박한 소원들이라서 책을 보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두 눈을 뜨고 언제든 볼 수 있는 평범한 일들인데 이 평범한 일들을 보면서 헬렌 켈러는 만족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니 단 3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만 세상을 보고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는 은혜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고 우리뿐만 아니라 우주만물의 모든 움직임까지도 다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같이 유한한 존재들은 지금 현재 하나님께서 부족함 없이 주시는 은혜를 온전히 깨닫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계속 불평, 원망을 하면서 살아가는 경우들이 많은데 10절 끝 부분에 나와 있는 말씀처럼 “자기보다 강한 자와는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 하나님과 이런 일로 다투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이고 손해 보는 것은 우리뿐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도 모르는 상황인데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우리에게 합당한 은혜를 주신 하나님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원망을 하고 비난을 하면 얼마나 기가 찬 모습이겠습니까? 그러니 그런 사람들을 우매한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만족하면서 하루, 하루 평안함 가운데 사는 것이 인생을 유익하게 사는 방법이고 지혜롭게 사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평, 원망은 우리보다 강하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징계를 내리실 수밖에 없습니다. 욕심 때문에 감사보다는 불평, 원망이 우리의 습관이 되고 있다면 오늘부터 잘못된 습관을 고쳐야 하고 이제부터는 감사와 기쁨의 언어가 우리의 습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면서 살아가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는 은혜를 반드시 내려 주실 것이기 때문에 오늘 하루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유익한 하루를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고 자족함으로 그 어떤 날보다 기쁘고 즐거운 하루를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