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강. 일곱 머리 열 뿔의 비밀 (계 17:1-18)
계 17:1-18절.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2.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3.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4.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5.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6.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7. 천사가 가로되 왜 기이히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의 탄 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 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9.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10.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간 동안 계속하리라 11.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12.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13.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14.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15.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16.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17.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저희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니라 18. 또 내가 본 바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만물(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은 바 되었습니다.
이는 만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만물 속에는 그리스도를 알만 한 것들로 가득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교회에 맡기셨습니다.
교회는 만물을 통해서 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와 만물은 공동 운명체와 같아요.
왜냐하면,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교회도 없고, 교회가 없으면 만물인 이 세상도 없어요.
이러한 의미로 보면 이 세상은 교회와 운명을 같이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 시대 사회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요.
제국의 흥망성쇠를 보면 망할 때에는 극심한 타락이 일어났어요.
세상의 종말 때에도 마찬가지에요.
노아의 때처럼 온 세상이 타락의 극치를 보여주게 됩니다.
이 시대는 음란 문화가 온 세상을 뒤덮고 있어요.
이러한 사회 현상론이 그대로 교회 안에서도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말의 교회를 타락한 음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시대상을 보면 교회의 영적 모습을 알 수가 있어요.
교회의 타락을 통해서 세상의 타락고 멸망을 함께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보여주신다고 합니다.
즉 타락한 교회의 멸망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 이스라엘을 통해서 미리 맛보기로 보여주었어요.
국가적으로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남쪽 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당하는 것으로 보여주었어요.
타락은 반드시 종말을 몰고 오게 되어 있어요.
이를 소돔 고모라의 멸망과 노아 시대를 통해서 보여주었어요.
노아의 때를 일컬어 죄악이 관영하였다고 합니다.
창세기 6장을 봅시다.
창 6:1-7절.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 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죄악의 관영함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어요.
죄악의 관영함을 혼합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로 삼았다는 말은 영적으로 성도가 세상을 사랑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를 야고보서에서는 성도가 세상과 짝하는 것을 간음이라고 하였어요.
약 4:4절.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에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야고보가 누구에게 말합니까?
모든 성경의 수신자는 교회에요.
야고보가 교회들에게 “교회야! 세상과 짝하는 것이 영적으로 간음하는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에게 원수 되게 하는 것을 모르느냐”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가 세속화 되는 것은 멸망 받아야 할 타락임을 왜 모르냐 입니다.
야고보의 경고는 노아 시대의 경고와 같아요.
성경은 노아 시대를 뭐라고 하는가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삼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어구는 “자기들의 좋아하는” 입니다.
“자기들의 좋아하는” 이라는 말은 십계명 중에서 제 2 계명인 “너희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 속에 “너희를 위하여” 와 같은 말이에요.
“자기를 위하여” 신을 찾는 것을 우상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왜, 자기를 위하여 신을 찾는 행위를 우상 숭배라고 합니까?
이는 언약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이스라엘은 아브라함 언약의 후손이에요.
언약의 후손이라는 말은 언약을 위하여 선택을 입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언약을 위하여 살아가는 자로 부르심을 입은 겁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위하여 사는 것은 언약을 위반하는 것이고 죄가 되는 것입니다.
언약이 먼저이고 후손이 나중이에요.
이걸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로도 말할 수가 있어요.
피조물은 창조주의 필요에 의하여 창조가 되었어요.
피조물에게는 자기 인생은 없고 창조주를 위한 인생만 있어요.
왜냐하면, 창조주의 필요에 의하여 피조물이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구원도 이와 마찬가지에요.
하나님을 위하여 구원을 하였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계명을 정의하기를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는 너희의 목숨은 너희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니까 하나님을 위하여 바치라는 말입니다.
너희는 하나님 것이라는 말입니다.
왜 그런가요?
구원은 순전히 하나님의 필요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뭐냐?자기를 위하여 사는 것이에요.
자기를 위하여 예수를 믿으면 우상숭배가 되어요.
자기를 위하여 예수를 믿는 것은 노아 시대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데로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는 것과 같아요.
예수님은 종말의 모습을 노아 시대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노아 시대를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 팔고 라고 합니다.
이건 자기 몸을 위하여 사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에서 먹고 사는 데만 치중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종말의 교회 모습도 노아 시대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기들의 좋아하는 대로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맞이한 것과 같이 자기를 위하여 예수를 믿고 있다는 뜻입니다.
교인들이 교회에 와서 세상 것을 구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노아 시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하나 되는 것은 행음과 같고,
신약 시대에는 성도가 세상과 짝하는 것을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간음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종말에 교회가 세속화 된 것을 행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행음이란? 종자가 다른 것이 하나 되는 것을 말해요.
이건 마치 사람이 짐승과 교합하는 것과 같아요.
성경에서는 짐승을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으로 말합니다.
그래서 율법에서는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을 짐승과 교합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레위기에 보면 이방인들의 문란한 성 생활을 짐승과 교합하는 것과 같이 동일시하여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그들의 성 생활을 본받지 말라고 합니다.
짐승과 교합하지 말라는 것은 영적인 의미로 믿지 않는 자와 혼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아들은 사람이고, 사람의 딸은 짐승이에요.
이러면 노아 시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혼인을 한 것은 사람이 짐승과 교합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게 음행이고 타락이고 죄에요.
그래서 노아 시대를 일컬어 죄악이 관영하였다고 합니다.
관영하였다는 것은 그 사고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는 뜻입니다.
이는 그 시대의 영적 상태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현상론적으로 보면 이 시대는 음란 문화가 온 세상을 뒤덮고 있어요.
음녀가 많은 물 위에 앉은 것을 음행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가 세상의 모든 사상을 다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입니다.
물은 사상을 말해요.
음녀가 많은 물 위에 앉았다는 말은 교회가 세상의 가치와 비진리에 빠져있다는 뜻이에요.
이건 창세기 1장 2절의 모습과 같아요.
창 1:2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神)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고 하지요.
이건 죄와 사망 아래 가두어진 이 세상의 모습을 말합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은 죄와 사망 아래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초림으로 오셨을 때 흑암에 앉은 백성들이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것이 흑암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 2절의 모습은 죄 아래 있는 이 세상의 모습을 말합니다.
이 세상은 각종 더러운 영들로 가득해요.
각종 더러운 영들이 뒤덮고 있어요.
이러한 곳에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면이란? 물 위란 뜻입니다.
왜,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깊음을 수면이라고 합니까?
이는 비진리가 물처럼 온 세상을 뒤덮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세기의 창조를 하나로 섞여 있는 물을 궁창 윗물과 궁창 아랫물로 갈라내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진리 속에 있는 자기 백성들을 끄집어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을 물에서 건짐 받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종말에도 비진리에서 빼내는 것을 구원으로 말하고 있어요.
요한계시록 18장을 보면 교회를 일컬어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이는 귀신의 처소라고 합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들의 죄에 참예치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여서 귀신의 처소가 된 타락한 교회의 모습을 많은 물 위에 앉아 있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을 보면 용이 하늘에서 땅으로 쫓겨나서 여자의 남은 자손들에게 뱀이 물을 강같이 토하여서 떠내려가게 하려고 하지요.
이것은 교회 안에 뱀 사상이 강물처럼 엄습해 올 것을 말해주고 있어요.
그래서 창세기 1장 2절에서 혼돈과 공허와 깊음에 빠진 세상을 물에 덥혀 있는 것으로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물의 깊음 속에서 빛을 불러냅니다.
이게 구원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에서 창조를 섞여 있는 곳에서 불러내어서 빛과 어둠이 분리되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가 섞임에서 분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타락은 역으로 분리에서 섞임이 되는 것입니다.
분리 된 것이 하나로 섞이는 것을 혼합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종말에는 온 세상의 종교가 하나로 통합이 되는 혼합주의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혼합시대에요.
종교도 혼합종교로 나타나고,
인종도 혼합하고,
문화도 예술도 혼합된 것이에요.
사회에 나타난 것으로 쉬운 예로 든다면,
짐승도 사자와 호랑이를 이종교배 하여 라이거로 만들고,
농산물도 오이와 고추를 이종 교배하여 오이고추를 생산하고,
음식도 한식과 양식이 섞어서 퓨전 음식으로 나타나고,
음악도 국악과 양악이 섞여서 퓨전 음악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사회 전반에 섞임이 보편화 되어서 나타나고 있어요.
심지어 사람도 인간의 과학으로 성전환을 하여서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이 모두가 종말의 징후들이에요.
구원이란? 섞임에서 분리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 이스라엘을 섞임으로부터 분리하셨어요.
이게 출애굽으로 나타났어요.
출애굽은 이스라엘과 애굽 사람을 분리 시킨 것입니다.
홍해를 중심으로 야곱과 광야로 나누어진 것입니다.
이건 마치 궁창을 사이에 두고 궁창 윗물과 궁창 아랫물로 나누어진 것과 같아요.
하나님은 출애굽 한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어서 삶 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가지고서 혼합주의를 경계시키셨어요.
이방인과 결혼을 금하고,
두 가지 직조된 옷을 입지 못하게 하였고,
한 밭에 두 가지 종자의 씨를 뿌리지도 못하게 하였어요.
이러한 것들은 거룩을 가르치기 위한 시청각 교제들이에요.
너희는 이방인과 다른 거룩한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섬기는 신을 섬기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방 신을 섬기는 것은 음행하는 것과 같으니까 멀리하라는 겁니다.
엘리야 시대에 바알을 하나님으로 섬겼어요.
겉은 하나님인데 속은 바알인 것입니다.
이걸 혼합이라고 해요.
이것이 신약에서는 진리와 비진리가 섞이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의로 말하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난 의에다가 인간의 행함도 의로운 것이라고 섞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걸 다른 복음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와 갈라디아 교회에 다른 복음, 다른 영, 다른 예수가 있다고 하였어요.
이름은 같으나 속이 다르다는 겁니다.
무엇이 다른 복음이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다가 율법 지킴이라는 것을 섞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바울은 율법에 특심한 사람이었습니다.
율법 지킴으로 의로워진다는 것을 신봉하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사람이 의로워지는 것은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율법에는 하나님의 의가 없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하나님의 의가 있다고 증거하기 시작하였어요.
가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난 의를 증거하였어요.
그런데 바울이 지나간 자리에 유대교 거짓 선지자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에다가 유대교 율법 신앙을 섞는 일을 하였어요.
이것이 예수도 믿고 율법도 지켜야 온전해진다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결국 두 가지 의가 섞이게 된 것입니다.
이게 갈라디안 신앙이에요.
그러자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 외에 다른 것을 섞는 자는 하늘로부터 온 천사로부터 시작하여서 자기 자신까지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 두 가지 의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된다고 하면 예수님이 오실 필요가 없어요.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은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신앙의 초점을 주 예수를 믿는 것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나고 난 후 율법주의와 싸우기 시작합니다.
율법으로 의롭게 된다고 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마귀의 미혹으로서 다른 복음이라고 규정을 하였던 것입니다.
신앙이 뭐냐?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 붙잡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인간의 공로가 섞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 지킴으로 의로워진다는 구약 교회를 허물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만 의롭게 된다는 신약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오직 은혜, 오직 예수, 오직 믿음을 기치로 내세운 신앙으로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마귀는 인간의 의를 섞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도를 훼손시키는 일을 합니다.
이것이 종말에는 교회 안에 혼합주의를 몰고 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혼합주의로 나타난 교회를 일컬어 음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음녀가 많은 물 위에 앉았다는 것은 온 세상의 사상을 다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 종교 통합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음녀가 앉은 많은 물을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이라고 하지요.
이는 온 세상 모든 인간들의 사상을 다 포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온 세상 신을 다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 모든 종교에는 구원의 길이 있다고 하면서 종교 간의 담을 허물고 하나가 되자는 종교 통합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을 적그리스도가 주도해요.
적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나라를 큰 음녀라고 합니다.
그래서 큰 음녀를 일컬어 땅의 음녀들의 어미라고 하고 큰 성 바벨론이라고 하는 겁니다.
큰 음녀라고 하는 종교통합을 일으키는 음녀 노릇을 하는 교회들의 총본산이라는 뜻이고,
큰 성 바벨론이라고 하는 것은 바벨론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이 놈을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이라고 합니다.
큰 음녀가 붉은 빛 짐승을 타고 있지요.
붉은 빛 짐승은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오는 용이에요.
붉은 용은 옛 뱀 마귀 사단이에요.
이 놈이 13장에서는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 개인 땅의 짐승으로 나타납니다.
용이 땅의 짐승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계시록 17장에서는 붉은 빛 짐승을 타고 있는 큰 음녀로 나타난 것입니다.
13장의 일곱 머리 열 뿔을 가진 짐승이나,
17장의 붉은 빛 짐승을 타고 있는 큰 음녀는 같아요.
용은 가상 동물입니다.
가상 동물이란? 인간들에게 감지되지 않는 동물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용을 일컬어 옛 뱀 마귀 사단이라고 하는 겁니다.
마귀는 영적 존재에요.
육의 눈으로는 볼 수가 없어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實在)해요.
이것이 역사 속에서 마귀의 사상으로 무장하여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적그리스도의 국가로 나타나고 있어요.
마귀가 국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큰 음녀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이라는 많은 물 위에 앉아 있다는 것은 온 세상의 종교를 하나로 통합하는 일을 주도적으로 행사하는 집단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마귀의 지배 아래 있는 것으로 나타난 제국들을 일곱 머리 열 뿔로 말해주고 있어요.
이것이 종말에는 적그리스도 국가로 나타나는데 이 놈이 바로 큰 음녀에요.
큰 음녀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을 죽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성도들의 피와 예수 증인들의 피에 취한 일곱 머리 열 뿔 가진 짐승인 큰 음녀의 비밀을 알려주신다고 합니다.
6-7절을 봅시다.
6-7절.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7. 천사가 가로되 왜 기이히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의 탄 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사도 요한이 성도들과 예수 증인들의 피에 취하여 있는 큰 음녀를 보고 크게 기이히 여깁니다.
교회가 성도들을 죽이고 있으니까요.
놀랄 수밖에 없지요.
그러자 천사가 요한에게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허락 하에서 일어나는 종말론적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종말 때 일어나는 교회의 타락은 하나님께서 용에게 허락한 사건이에요.
이는 교회 안에 땅에 거하는 자들과 하늘에 속한 자들을 갈라내기 위한 것입니다.
이걸 심판이라고 하고 추수라고도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마귀로 하여금 참 성도와 가짜 성도를 갈라내서 참 성도는 하늘 곡간에 들이고 가짜 신자는 땅 곡간에 들이는 추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교회의 타락을 이야기하면 의아해합니다.
어떤 목사님과 대화를 하였는데 제가 교회의 타락을 이야기하니까 그 분은 교회는 분명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가 타락을 할 수가 있느냐고 동의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분은 하나님이 교회를 마귀에게 붙인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 17절과 다니엘 7장을 봅시다.
계 17:17절.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저희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니라”
단 7:25절.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하나님이 큰 음녀에게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주어서 한 뜻을 이루게 하신다고 하지요.
언제까지 하느냐 하면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에서는 하나님이 성도들을 적그리스도에게 붙여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나게 하신다고 하지요.
이건 마치 요셉이 차꼬에 채워져서 감옥에서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 저를 단련하였다고 하는 것과 같아요.
요한계시록 13장을 봅시다.
계 13:4-8절.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5.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 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지요.
용이 짐승에게 주는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권세에요.
용은 자기 독자적으로 일하지 못해요.
사단도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어요.
욥기 1장을 봅시다.
욥 1:6-12절.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7.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 8.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9.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1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하나님이 사단에게 욥을 시험하라는 명을 내리지요.
사단은 하나님으로부터 명을 받고서 욥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잘 보셔야 할 것은 하나님은 사단에게 욥을 여러 가지 고난으로 시험을 하여도 그의 생명은 손대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사단은 성도를 시험은 하여도 구원은 어쩌지 못해요.
성도는 시험 들어 넘어질 수는 있어도 구원에서 잘려나가는 일은 없어요.
즉 구원의 즐거움은 빼앗을 수 있어도 구원은 빼앗을 수가 없어요.
우리의 구원은 은혜로 주어진 것이에요.
그러므로 행위로 인하여 취소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도는 징계는 당해도 멸망당하진 않아요.
이게 믿어져야 해요.
그래야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아요.
사단도 마찬가지에요.
시단도 하나님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권세를 자기 종인 짐승에게 주는 것입니다.
이 짐승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큰 음녀에요.
이 놈이 용으로부터 받은 권세로 무얼 하나요?
하나님을 훼방하고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지요.
또한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방언과 나라와 민족을 다스리게 되지요.
각 족속과 방언과 나라와 민족은 큰 음녀가 앉은 물이에요.
여기서 잘 보세요.
짐승이 성도들과 싸워서 이기게 되지요.
성도를 이긴다는 것은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인다는 것입니다.
교회로 말하면 교회를 타락케 한다는 말이에요.
8절을 보면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다가 죽임당하지만 땅에 거하는 자들은 짐승을 경배하고 살아남지요.
이게 무슨 뜻입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사단을 풀어서 하늘에 속한 성도와 땅에 거하는 교인을 갈라낸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늘에 속한 자와 땅에 거하는 자로 갈라지는가요?
뱀이 거짓 종들의 입을 통해서 성경을 가지고 땅에 말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인본주의로 해석하면 하늘에 속한 자들은 동의하지 않지만 땅에 거하는 자들은 은혜 받았다고 해요.
지금 식으로 말하면 마귀가 교회 안에서 종교통합을 이야기하면 하늘에 속한 성도들은 반대하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은 환영해요.
이건 지난번 WCC 총회를 통해서 너무나도 극명하게 잘 보여주었어요.
한국교회가 WCC를 옹호하는 자들과 반대하는 자들로 나누어졌어요.
기독교 방송들은 일제히 WCC 찬성 일변도로 보도를 하면서 WCC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마치 마귀의 세력처럼 매도하였어요.
이게 이 시대 교회의 현실이에요.
계시록 13장이 그대로 교회 안에서 응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WCC는 기독교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만든 단체에요.
그래서 세상의 모든 종교를 하나로 통합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WCC를 로마 교황청이 주도하고 있어요.
이 일을 교회 안에서는 가짜 목사들이 주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을 땅에 음녀들이라고 해요.
이 놈들이 교회를 혼합주의로 몰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 시대 이러한 일들이 온 세계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가요?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재림 때가 가까웠기 때문에 마귀로 하여금 교회 안에 진짜와 가짜를 추수하기 위하여 허락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가짜 목사들이 대 놓고 종교 간에 대화를 하고 인류 평화를 위해서 연대를 해야 한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일컬어 참람된 말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려 가는 시나리오에 의하면 지금 이 시대는 세상 끝에 다다랐어요.
세상 끝에는 종말의 징후들이 모든 것으로부터 나타나요.
인간들의 모습 속에서도 종말의 모습이 나타나고,
사회의 현상 속에서도 종말의 모습들이 나타나고,
교회 안에서도 타락의 모습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간들 입에서 세상 말세라는 말이 터져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신자나 불신자가 이구동성으로 다 세상 말세라고 해요.
왜 그런가요?
온 세상이 말세의 징후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알 것은 요한계시록은 영적인 의미에서는 어느 시대 온 세상에 대한 것이지만 시대 상황적으로는 종말에 일어날 장차 될 일이에요.
장차 될 일이란? 미래적인 것이므로 단정적으로 ‘이것이다’ 라고 말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장차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 이 시대 나타나는 상황으로 보아서 ‘지금은 이렇게 본다’ 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영적인 의미에서는 어느 시대이고 일어나는 일이지만 사건적으로는 장차 될 일을 담고 있어요.
이는 종말에 되어질 사건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해석을 하여야 하지만 여기에 그치면 안 되고 역사의 종말에 일어날 실제적 사건으로도 해석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음녀의 음행도 영적으로는 우리가 세상과 짝하는 것으로 적용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음녀의 음행을 가지고 성도들에게 세상과 짝하지 말라고 설교 할 수가 있어요.
하지만 여기에 그치면 안 되어요.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은 장차 될 일에 관하여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차 될 일이란? 장차 나타날 사건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교훈적으로는 우리의 신앙으로 말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장차 일어날 적그리스도 세력들에 의한 교회의 타락과 이 세상 종말을 동시적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영적입니까?
장차 일어날 실제적 사건입니까?
실제적 사건이지요.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이 영적입니까?
실제적 사건입니까?
실제적 사건이지요.
그럼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예수님의 재림과 이 세상의 종말과 적그리스도 세력들은 영원한 불 못인 지옥으로 가고 성도는 영원한 천국으로 가는 것이 영적인 겁니까?
실제적으로 일어날 사건입니까?
실제로 일어날 사건이지요.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요한계시록 해석은 교훈과 사변적으로 흐르게 되어요.
실제적으로 일어날 사건으로 보지 않을 것 같으면 요한계시록을 볼 필요가 없어요.
실제 일어날 사건도 아닌 것을 왜 봅니까?
공상 소설 같은 것인데,,,,
분명히 말하지만 예수님의 재림도 실제로 일어날 사건이고,
성도가 천국에 가는 것도 실제적 사건이고,
이 세상이 멸망당하는 것도 실제로 일어날 사건입니다.
음녀도 실제로 사건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실제로 일어날 사건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은유로 표현하였다고 해서 사실이 아니란 뜻이 아니에요.
사실을 은유로 표현하는 것은 자기 백성들에게만 알게 하고자 하심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자기 백성들에게 주신 비밀의 책인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우리 안에서 성령이 몰고 온 영적인 천국을 우리가 영적으로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예수님이 재림하여서 실제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 승천 후 성령 강림으로는 영적인 천국을 누리고 예수님의 재림 때에는 실제 천국을 누리게 되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재림과 천국은 영적이면서도 실제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재림과 천국을 영적인 해석과 실제적 해석 두 가지로 해야 합니다.
그럼 오늘 우리가 살펴볼 일곱 머리 열 뿔에 관한 이야기도 영적인 해석과 육적인 해석 두 가지를 다 하여야하는 것입니다.
음녀나 일곱 머리 열 뿔에 대한 해석이 다양합니다.
개혁주의자들은 영적인 것으로 보는 반면에 세대주의자들은 실제적으로 보아요.
누가 옳고, 누가 그르냐 하면 둘 다 맞고 둘 다 틀려요.
왜냐하면, 육적으로도 보아야 하고, 영적으로도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은 구약적 배경을 바탕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오늘 우리가 살펴볼 일곱 머리 열 뿔도 구약적 배경을 깔고 있겠지요.
다니엘 7장을 봅시다.
단 7:1-28절. “바벨론 왕 벨사살 원년에 다니엘이 그 침상에서 꿈을 꾸며 뇌 속으로 이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2. 다니엘이 진술하여 가로되 내가 밤에 이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3.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니 4.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5.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잇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6.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넷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7.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8.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9.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10.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11. 그 때에 내가 그 큰 말하는 작은 뿔의 목소리로 인하여 주목하여 보는 사이에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그 시체가 상한 바 되어 붙는 불에 던진 바 되었으며 12. 그 남은 모든 짐승은 그 권세를 빼았겼으나 그 생명은 보존되어 정한 시기가 이르기를 기다리게 되었더라 13.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15. 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며 내 뇌 속에 이상이 나로 번민케 한지라 16. 내가 그 곁에 모신 자 중 하나에게 나아가서 이 모든 일의 진상을 물으매 그가 내게 고하여 그 일의 해석을 알게 하여 가로되 17.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18.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19. 이에 내가 넷째 짐승의 진상을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고 그 이는 철이요 그 발톱은 놋이며 먹고 부숴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20.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동류보다 강하여 보인 것이라 21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22.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 23.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네째 짐승은 곧 땅의 넷째 나라인데 이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며 24.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25.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26. 그러나 심판이 시작된즉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끝까지 멸망할 것이요 27.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가 다 그를 섬겨 복종하리라 하여 28. 그 말이 이에 그친지라 나 다니엘은 중심이 번민하였으며 내 낯 빛이 변하였으나 내가 이 일을 마음에 감추었느니라”
다니엘이 이상을 봅니다.
이상이란? 영적인 계시와 같아요.
사도 요한이 성령의 감동으로 장차 될 일을 본 것처럼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장차 될 일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상을 보니까 하늘에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부는 겁니다.
그러자 바다에서 큰 짐승 넷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바람이 하나씩 불 때마다 바다에서 각양의 큰 짐승이 그 때 그 때마다 나오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네 바람이 부니까 나타나는 짐승이 각양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시대마다 영적인 상황들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오순절 날에 성령이 불의 혀같이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임하였지요.
성령을 바람으로 묘사하였습니다.
그럼 다니엘이 보았던 하늘에서 부는 네 바람은 성령을 상징한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러면 어느 시대고 성령의 주도 하에서 세상 역사가 진행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대마다 일어나는 영적인 일도 성령의 주도하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결국 이 세상은 영적 지배를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세상 역사는 어느 시대이고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서 운행되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필요에 따라서 제국을 일으키기도 하고 망하게도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옛날 어른들이 임금은 하늘에서 낸다는 말이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나라들을 각양의 짐승으로 말하는 것은 이 세상 나라는 모두가 짐승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짐승은 요한계시록 13장에서는 적그리스도와 그 세력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 역사 속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적그리스도 세력들을 순차적으로 출현시켜서 창세전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바람이 부니까 바다에서 짐승이 나오지요.
이는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은 하늘에서 허락하여서 일어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마치 드라마를 볼 때 악당 1이 주인공을 괴롭히다가 죽으니까,
악당 2를 일으켜서 괴롭게 하고,
악당 3과 악당 4를 일으켜 주인공을 괴롭히는 것과 같아요.
바다에서 나온 큰 짐승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창세전 언약을 펼쳐 가는데 그 시대마다 사용하는 사단의 세력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짐승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세상에 나타나는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은 짐승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뜻입니다.
짐승의 세계는 약육강식으로 살아가요.
그럼 이 땅에서 일어나는 적그리스도 세력들은 세상의 힘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힌다는 말입니다.
육적인 힘으로 영적인 일을 방해한다는 뜻입니다.
그럼 네 짐승이 어떠한지 살펴봅시다.
첫째 짐승은 사자 같고,
둘째 짐승은 곰 같고,
셋째 짐승은 표범 같고,
넷째 짐승은 이전의 짐승들과 다르게 어떤 한 짐승의 모습을 띠고 있지 않고 그냥 무섭고 사운데 이상 한 것은 열 뿔이 있는 것입니다.
17절을 보면 네 짐승을 세상에 일어날 네 왕이라고 합니다.
17절.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네 짐승은 각 시대마다 일어나는 왕이라고 하지요.
왕이란? 국가를 통치하는 자에요.
그럼 네 짐승은 세상에 나타날 네 제국이라는 뜻이 되겠지요.
다니엘이 이 환상을 본 것을 기점으로 해서 정확하게 역사 속에 네 짐승의 나라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어요.
첫째 짐승은, 사자로 표현을 했는데 이는 바벨론을 말하고,
둘째 짐승은, 곰으로 표현을 했는데 이는 메데 바사를 말하고,
셋째 짐승은, 표범으로 표현했는데 이는 헬라 제국을 말하고,
넷째 짐승은, 짐승은 짐승인데 열 뿔이 달린 짐승인데 이는 로마를 상징합니다.
네 짐승은 장차 이 세상에 일어날 제국들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사단의 국가들이에요.
그런데 넷째 짐승의 나라 때에 하늘에 옛적부터 계신 이가 오셔서 그의 성도들을 구원하여서 영원한 나라를 주신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오셔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되면 넷째 나라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배하는 나라 라는 뜻이 되겠지요.
다니엘이 본 환상은 넷째 짐승의 나라 때에 예수님이 오시니까 넷째 짐승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말해주고 있어요.
중요한 것은 넷째 짐승은 이전에 세 짐승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세 짐승은 사자 같다, 곰 같다, 표범 같다, 라고 표현을 하는데,
넷째 짐승은 그런 표현이 없고 특이하게 모든 것을 부서트릴 만큼 강한 철 이빨을 가지고 있는 머리에 열 뿔이 있는 짐승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전에 나타나는 짐승들은 한 왕의 지배 하에서 다스림을 받게 되지만,
넷째 짐승의 나라에서는 한 왕의 다스림이 아니라 열 왕의 다스림을 받는 시대라는 뜻입니다.
열 왕이란? 숫자적인 열을 말하는 것 보다는 세상 속의 여러 왕이라는 뜻이에요.
넷째 짐승의 나라일 때 하늘에 옛적부터 계신 이가 오신다고 하였지요.
예수님의 초림 때 이스라엘을 지배한 나라로 본다면 넷째 짐승은 로마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초림으로 오셨을 당시에 로마는 각 나라마다 분봉왕을 두어서 다스리게 하였어요.
로마는 큰 음녀가 되고 분봉왕들은 열 왕으로서 땅의 왕인 땅의 음녀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열 뿔로 나타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음녀를 다니엘에서는 넷째 짐승의 나라라고 합니다.
그럼 예수님이 재림하는 종말 때에도 예수님의 초림과 같은 넷째 짐승의 나라의 모습으로 세상의 구조가 짜여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에서 넷째 짐승을 요한계시록에서는 큰 음녀라고 하고 땅의 음녀들이 어미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땅의 음녀들을 땅의 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 큰 음녀는 땅의 나라들을 다스리는 큰 나라라는 뜻입니다.
이걸 종교적으로 말하면 큰 음녀는 세상의 모든 종교를 통합하여서 다스리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그럼 예수님 초림 당시 온 세상을 지배한 로마처럼 예수님의 재림 때에도 온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나라가 나타나겠지요.
지금은 온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그러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겠지요.
어느 날 갑자기 이러한 나라가 생기진 않아요.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요.
그럼 이 시대 온 세상의 종교를 지배하는 나라가 어디인가요?
세상의 모든 종교의 어머니 노릇을 하는 곳이 어디인가요?
교회이면서 나라인 나라가 어딘가요?
로마 카톨릭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제정일치의 나라에요.
교회이면서 국가에요.
그래서 각국에 교황청의 대사관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 교황은 세상 모든 종교의 어머니와 같아요.
그래서 교황이 각 나라를 방문할 때면 그 나라의 모든 정치와 종교지도자들이 그 품에 안기는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교황은 가는 곳마다 자신의 치마폭으로 온 세상을 감싸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는 넷째 짐승이 세상 나라를 지배하는 국가적으로 나타났지만,
예수님의 재림 때는 넷째 짐승이 세상의 모든 종교를 지배하는 종교집단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을 보면 넷째 짐승의 나라 때에 하늘에서 인자가 오셔서 넷째 나라를 멸망하고 성도의 나라를 만들어 주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초림으로 오셔서는 로마를 멸망시키지 않았어요.
구약의 타락된 율법주의 종교로부터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일을 하셨어요.
다니엘이 본 넷째 짐승 속에는 이중 계시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로 보건데 넷째 짐승은 예수님의 초림 때에는 국가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예수님의 재림 때에는 타락된 종교집단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럼 큰 음녀를 통해서 예수님 초림 때 나타난 넷째 짐승의 나라와 예수님의 재림 때 나타날 넷째 짐승의 나라가 어떤 것이 같고 어떤 것이 다른지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3절.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성령이 요한을 광야로 데리고 갑니다.
광야에서 음녀를 보여주는데 음녀가 붉은 빛 짐승을 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 된 이름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습니다.
참람이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니까 참람하다고 하면서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성경에서 참람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짐승의 몸에 참람 된 이름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이러면 붉은 빛 짐승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단에게 붙어 있는 참람 된 이름은 무엇을 말할까요?이는 거짓 신들을 말합니다.
우상으로 가득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큰 음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림을 잘 그려 보세요.
붉은 빛 짐승이 있습니다.
이 붉은 빛 짐승은 요한계시록 12장에서는 하늘에서 미가엘과의 싸움에서 지고 땅으로 쫓겨난 붉은 용이라고 하였습니다.
붉은 용을 일컬어 옛 뱀 마귀 사단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12장을 봅시다.
계 12:3-4절.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4.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 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붉은 용이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입니다.
그런데 그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습니다.
면류관은 왕이 쓰는 관입니다.
그럼 붉은 짐승에게 있는 일곱 머리는 일곱 왕이란 뜻이지요.
왕은 국가를 상징합니다.
이렇게 되면 일곱 머리는 일곱 제국(帝國)을 뜻합니다.
붉은 짐승은 옛 뱀 마귀 사단이라고 하였으니 붉은 짐승에게 있는 일곱 왕은 사단의 제국이라는 뜻입니다.
다니엘서에서는 적그리스도 국가를 네 짐승으로 말하였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붉은 빛 짐승을 일곱 머리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넷째 짐승에게는 열 뿔만 있는데,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는 음녀가 탄 붉은 빛 짐승에게는 일곱 머리에 열 뿔이 있다고 합니다.
왜 다니엘서에는 넷째 짐승에게 열 뿔이 있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음녀가 탄 붉은 빛 짐승에게 일곱 머리 열 뿔이 있다고 하는가요?
이는 다니엘은 예수님의 초림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다고 한다면,
요한계시록을 예수님의 재림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7장에서는 넷째 짐승에게 열 뿔이 있어요.
그러나 요한계시록에서는 일곱 머리에 열 뿔이 있어요.
이러면 다니엘의 넷째 짐승이 요한계시록에서는 일곱 머리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초림 때는 넷째 짐승인 로마에게 각 나라에 분봉왕이라는 열 왕들이 있었지만,
예수님 재림 때는 일곱 머리 짐승에게 붙은 수많은 땅에 음녀들이 왕노릇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성경의 결론을 말해주고 있어요.
이 세상 역사 전체를 아우르고 있어요.
그래서 이 역사 속에 나타나는 적그리스도 국가들을 일곱 머리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곱 머리는 역사 속에 나타난 이스라엘을 괴롭힌 큰 제국들이에요.
알다시피 이 세상은 창세전 언약을 위하여 창조가 되었어요.
창세전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을 저희 죄에서 건져내어 천국으로 데리고 가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걸 구약에서는 아브라함 언약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아브라함 언약을 보면 언약의 후손들이 이방에 객이 되었다가 풀려나는 것으로 되어 있어요.
이 때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괴롭힌 나라를 징치한다고 하였어요.
자기 백성들을 괴롭힌 나라를 징치하는 것을 애굽의 열 가지 재앙과 장자의 죽음을 가지고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나타나는 종말의 재앙들을 애굽에 내려진 열 가지 재앙과 동일시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이 세상 자체가 애굽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장차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자기 백성들을 다 구원해 내시고 이 세상 나라를 멸망하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면 창세전 언약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의 이 세상 멸망은 온 세상 멸망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역사 속 전반에 나타난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혔던 적그리스도 국가들을 붉은 짐승에게 붙은 일곱 머리와 열 뿔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고 대적한 큰 나라가 일곱이라는 뜻입니다.
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데와 바사,
헬라,
로마,
큰 음녀입니다.
이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배한 제국들입니다.
인류 마지막 때에 일어날 붉은 빛 짐승을 타고 있는 일곱 머리 열 뿔을 가진 짐승인 큰 음녀는 온 세상의 적그리스도 세력을 모두 포함한 끝판 왕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서에서는 넷째 짐승은 이전의 셋째 짐승과는 달리 포학하고 무자비하면서 잔인한 모습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큰 음녀를 끝으로 이 세상 나라는 종말을 고하게 됩니다.
그래서 큰 음녀의 멸망을 맷돌이 바다에 빠져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일곱 대접 재앙에서도 완전한 멸망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천사가 요한에게 알려준 일곱 머리 열 뿔을 봅시다.
계 17:7-8절. “천사가 가로되 왜 기이히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의 탄 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천사가 큰 음녀가 탄 붉은 빛 짐승에 대하여 알려줍니다.
붉은 빛 짐승은 모양을 달리하여서 어느 시대이고 있어 왔었습니다.
그래서 전에 있었다가, 시방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서 멸망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붉은 빛 짐승은 전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다시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과거에 성도들을 괴롭혔던 것이 지금은 없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없는 것이 아니라 장차 나타나서 괴롭히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요한이 본 이 그림은 일곱 대접 심판 속에 포함된 내용입니다.
1절에 음녀가 받을 심판을 보여주신다고 한 것입니다.
이는 곧 이 모습은 장차 이 세상 끝에 관한 이야기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전에 있었다가 시방은 없지만 장차 일어날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지금 성령의 감동으로 종말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초림 때 나타난 넷째 짐승인 로마를 종말의 시점에서 보면 과거의 나라이므로 “전에 있었고” 라면서 과거 시재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로 말하면 예수님 초림 당시의 적그리스도의 나라를 상징하는 로마는 멸망당하고 없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전에 있었는데 시방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오순절 성령 강림 후 교회 시대가 시작된 이래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어느 시대이고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럼 교회 시대가 종말을 맞이할 때까지로 보면 로마는 과거에 멸망당한 국가이므로 전에는 있었지만 시방은 없음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원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장차 일어날 것입니다.
그럼 없음이 아니라 숨겨져 있음이 됩니다.
숨겨져 있다가 때가 되면 다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 말은 곧 예수님의 재림 때 영적인 상황이 예수님의 초림 때와 같아진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초림 때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힌 세력들이 예수님의 재림 때에도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9-11절을 보세요.
9-11절.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10.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간동안 계속하리라 11.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라고 하지요.
일곱 산을 흔히들 로마가 일곱 개의 산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여자를 로마로 해석을 합니다.
이것은 초대교회 당시에는 그렇게 해석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종말에는 과거적 해석보다는 미래적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자체가 장차 될 일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곱 대접 심판은 장차 종말에 일어날 세상의 멸망을 말하는 것이지 로마의 멸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적인 해석으로는 로마의 멸망으로 이해 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종말론적으로 하나님을 배도하는 적그리스도 세력으로 해석을 하여야 합니다.
음녀가 앉은 일곱 산을 일곱 왕이라고 하였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한 제국들을 큰 산으로 묘사하였어요.
이는 역사 속에서 나타났던 적그리스도 국가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곱 머리를 일곱 왕이라고 하지요.
이는 일곱 제국을 뜻합니다.
일곱 왕 중에서 다섯은 망하였다고 하지요.
망한 다섯 왕은 다섯 제국을 말합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 계시록을 쓸 당시인 로마가 지배하던 시대에 구약의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다가 멸망한 대표적인 다섯 제국은 어디입니까?
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데 바사,
헬라가 되겠지요.
다섯은 망했는데,
하나는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있고’ 라고 나라는 어디인가요?
요한계시록이 쓰여질 당시로 보면 로마입니다.
그리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직 이르지 아니한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요?
이는 예수님의 재림 때 나타날 로마의 성격을 가진 종교적인 로마인 큰 음녀를 말합니다.
현재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아서 로마 카톨릭으로 생각 할 수가 있습니다.
장차 예수님 재림 때에 일어날 큰 음녀인 적그리스도 세력인 카톨릭은 로마에 뿌리를 두고 있어요.
그래서 다니엘서에서는 넷째 짐승에게는 이중계시가 담겨져 있다고 한 것입니다.
장차 일어날 큰 음녀는 로마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이걸 요한계시록 13장에서는 칼에 상하였다가 다시 살아난 것으로 말해주고 있어요.
로마 카톨릭은 죽은 것 같다가 다시 재건 되었어요.
로마 카톨릭은 로마의 멸망과 함께 쇠퇴하는 것 같았어요.
종교개혁이 일어나서 카톨릭은 그 힘을 잃어버렸어요.
그런데 지금 이 시대는 강력한 힘을 가진 집단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 시대 로마 카톨릭은 예전에 로마 시대 때 카톨릭보다 힘이 더 막강해졌습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이는 종말에 큰 음녀가 되어서 온 세상의 힘을 모아서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세력으로 나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종말의 때를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노아의 때를 죄악이 관영한 때라고 합니다.
이는 비진리가 진리를 가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거짓이 참을 가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적그리스도를 새끼 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그리스도를 어린 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적그리스도를 새끼 양이라고 하여서 어린 양을 모방하고 있는 것입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을 속이기 위하여 어린 양으로 위장한 새끼 양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자들은 어린 양과 새끼 양을 분별치 못해요.
육적 신자들은 개신교회와 카톨릭 교회를 구분하지 못해요.
카톨릭과 개신교회를 같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교인들조차도 카톨릭을 큰 집이라 하고 개신교를 작은 집이라고 해요.
교회라는 이름을 가졌으니 다 같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니에요.
전혀달라요.
카톨릭과 개신교회는 어린 양과 새끼 양처럼 전혀 달라요.
카톨릭은 껍데기는 교회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알맹이는 개신교회와는 완전히 다른 교리를 가지고 있어요.
개신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해 주는 메시야로 가르치지만,
카톨릭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회의 권력으로부터 힘없는 자들을 해방시켜주는 구원자로 보아요.
개신교는 개인 구원을 말하지만, 카톨릭은 사회 구원을 말해요.
개신교는 이 세상은 소망이 없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라고 하지만,
카톨릭은 이 세상을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 이 땅에 지상 낙원을 이루자고 해요.
종교개혁을 통해서 개신교가 카톨릭으로부터 나온 것은 그들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고 나온 개신교회가 카톨릭이 되고 말았어요.
개신교 안에서 진보주의 목사들이 카톨릭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개신교 안에 인본주의 목사들이 적그리스도 세력인 WCC의 정강 정책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모든 종교는 구원의 길이 있으므로 종교간 연합을 이루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종교간 통합이 대세가 되고 말았어요.
그래서 종말에 일어날 적그리스도 세력은 예수님 초림 때 로마와 같이 강력한 힘을 가진 종교 집단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은 로마 카톨릭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카톨릭은 전에 있다가 시방은 없고 장차 일어나는 일곱 머리에 속한 자에요.
전에 있다가 시방은 없고 장차 일어날 나라는 잠깐 동안 있다고 하지요.
이는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하여서 적그리스도 세력이 강력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할 것을 예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놈을 일컬어 여덟째 왕이라고 합니다.
여덟째 왕이지만 일곱에 속하였다고 하지요.
이는 일곱과 속성이 같은 여덟째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말에 적그리스도 국가를 재생 로마라고 하는 것입니다.
과거 로마를 근거로 해서 죽었던 것 같다가 종말에 다시 살아나서 적그리스도 제국 노릇을 하는 나라이면서 교회인 곳이 어딘 인가요?
로마 카톨릭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제정이 일치하는 나라이면서 교회에요.
큰 음녀를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이는 귀신의 처소라고 하는 것은 재생 로마 카톨릭은 세상의 모든 신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므로 참람 된 이름이 가득한 붉은 빛 짐승을 타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곱에 속한 여덟째 왕을 일컬어 멸망으로 들어갈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음녀를 큰 성이라고 하는 것은 온 세상을 부서뜨릴 만큼 큰 힘을 가진 큰 세력이란 말입니다.
이는 온 세상 사람들이 따르는 강력한 지도자란 말입니다.
지금 이 시대적 상황으로 본다면 로마 카톨릭의 교황으로 볼 수밖에 있는 것입니다.
교황은 온 세계 나라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온 세계의 나라들이 교황의 방문을 사모하고 있어요.
그런데 종말의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여덟째 왕을 멸망으로 들어갈 자라고 합니다.
왜 로마 교황을 멸망으로 들어갈 자라고 하는가요?
이는 모든 신들을 통합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우상을 만든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 온 세상을 좌지우지할 힘을 가진 교회라는 이름을 가지고서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종교통합을 이끌 자가 누구일까요?
지금으로 보면 로마 카톨릭의 교황 밖에 없어요.
로마 카톨릭은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든 종교는 구원의 길이 있으므로 종교간 화합을 하여서 하나가 되자고 외치는 큰 음녀 노릇을 하고 있어요.
예수님의 재림은 예수님의 초림과 영적 상태가 동일해요.
초림 때는 구약 교회의 타락으로 나타났고,
재림 때는 신약 교회의 타락으로 나타납니다.
초림 때 로마가 국가적으로 이스라엘을 식민지화 하여 억압을 하였어요.
그러나 재림 때에는 로마에 뿌리를 두고 교회라는 이름으로 이방신들을 모두 품에 안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을 훼손하는 혼합주의 종교집단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지금 로마 카톨릭 교회로 나타난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종교 집단이면서 큰 성 바벨론처럼 국가이며 땅의 음녀들의 어미처럼 세상의 모든 종교를 자기 품으로 끌어당겨서 하나 되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요한계시록은 구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럼 큰 음녀도 구약적 배경을 하고 있겠지요.
구약의 음녀와 카톨릭을 비교하면 로마 카톨릭이 왜 큰 음녀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럼 구약 마당에 나타난 큰 음녀의 모습을 먼저 보고 갑시다.
구약 시대에 나타난 큰 음녀는 아합 왕의 부인인 시돈 여인 이세벨을 들 수가 있습니다.
이세벨은 시돈 왕 “엣 바알”의 딸입니다.
엣 바알이란? “바알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엣 바알은 원래 아세라 신전의 제사장 이도발이라는 이름으로 있다가 두로 왕을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어서 이름을 엣 바알로 개명을 한 후에 시돈을 42년간 통치한 사람입니다.
이세벨은 그의 딸이에요.
그런데 이스라엘의 왕 아합이 이 시돈 왕과 동맹 관계를 맺고 정략적으로 그의 딸인 이세벨을 왕후로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정략결혼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신앙을 타락케 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이세벨은 아합 왕에게 시집을 오면서 자기가 섬기던 이방 신을 데리고 왔어요.
그게 바알과 아세라에요.
바알은 남자 신으로 농사의 풍년을 준다고 하여서 풍요의 신이라 하였고,
아세라는 아이를 많이 낳게 해 주는 여자의 신이에요.
이게 신약으로 오면 에베소와 고린도 지역에서 섬겼던 아데미로 나타납니다.
바알과 아세라는 이 땅에 복을 주는 신이에요.
이건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이 사십일을 주리실 때 마귀가 찾아와서 주겠다고 하던 떡과 세상 부귀영화와 권세들이에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들입니다.
바알과 아세라는 마귀를 상징해요.
이세벨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땅에 마귀를 데리고 온 겁니다.
아합 왕이 이들을 불러들인 것이나 다름없어요.
이세벨이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게 하였는가 하면 거짓 선지자들을 회유하여서 바알과 아세라를 하나님이라고 둔갑을 시켜서 백성들에게 소개를 시켰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면서부터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어요.
이러한 사람들에게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라고 하면 안 섬겨요.
그래서 거짓 선지자들이 바알과 아세라는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포장을 해서 백성들에게 소개한 것입니다.
겉 포장은 하나님인데 그 속은 바알이고 아세라인 겁니다.
짝퉁 하나님인 겁니다.
이건 마치 겉으로는 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로마 카톨릭과 같아요.
사람들은 로마 카톨릭을 교회라고 하니까 일반 개신교회와 같은 교회인줄 알고 다니고 있는 것과 같아요.
카톨릭은 겉은 교회이지만 속은 바알과 아세라에요.
카톨릭은 세상 잡신들로 가득해요.
지금도 바알과 아세라가 있어요.
교인들이 섬기고 있어요.
거짓 목사들이 예수를 바알과 아세라처럼 가르치고 있어요.
예수 잘 믿으면 복 받고 자식들도 잘 되고 사업도 번창하고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가르치는 것은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게 하는 것과 같아요.
왜 백성들이 바알과 아세라를 쉽게 받아들이고 섬겼는지 아세요?
이는 땅에 복을 준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의 관심사는 떡에 있어요.
이름하여 이 세상의 부귀영화에요.
인간은 떡을 주는 신을 좇아가요.
땅의 왕들과 땅의 음녀들이 큰 음녀를 따르는 것은 큰 음녀가 세상의 부와 사치와 쾌락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건 마치 이 시대 교인들이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목사들의 말을 좇아가는 것과 같아요.
이런 면에서 우리도 이세벨의 교훈을 쫓아간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아요.
실제로 아시아의 일곱 교회 안에도 이세벨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있다고 하였어요.
이세벨의 교훈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땅의 음녀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세벨의 교훈은 이 땅에서 복 받고 잘 사는 것이에요.
그럼 이 시대 예수 믿고 복 받고 잘 산다는 목사들의 말을 따르는 자들은 이세벨의 교훈을 따르고 있는 땅의 음녀들인 것입니다.
이세벨은 나중에 비참하게 죽어요.
개들이 그 시체를 뜯어먹었어요.
이건 종말의 큰 음녀인 카톨릭의 사상에 동조하는 교회들인 땅의 음녀들도 그대로 당하게 되어 있어요.
종말의 땅의 음녀들도 이세벨처럼 버림을 당하고 찢김을 당하게 되어 있어요.
계 17:16절.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여기서 잘 보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한다고 하지요.
음녀가 열 뿔과 짐승으로부터 분리가 되지요.
열 뿔과 짐승은 큰 음녀이고,
짐승이 미워하는 음녀는 땅의 음녀들이에요.
큰 음녀인 열 뿔과 짐승이 땅의 음녀를 미워하고 죽이지요.
이는 이용 가치가 다하고 나면 버린다는 뜻이에요.
큰 음녀가 땅의 음녀들을 이용하고서는 버리는 것입니다.
토사구팽이라는 말과 같아요.
즉 큰 음녀가 땅의 음녀들을 이용하여서 온 세상의 종교를 하나로 묶는 종교 통합을 하는데 이용하고서는 버린다는 말입니다.
큰 음녀가 땅의 음녀들을 가지고 자기의 통치 기반을 닦는 것입니다.
그 기반이 다 닦아지면 용도가 다하여서 폐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세상 이야기로 하면 정치가 종교를 이용하고 버리는 것으로 나타나요.
음녀는 타락한 교회를 말하고 열 뿔과 짐승은 세상 권력을 말해요.
이는 세상 권력이 교회를 이용하고서 버린다는 뜻입니다.
항상 정치는 종교를 이용하여 왔어요.
로마의 황제 콘스탄틴은 기독교를 정치에 이용한 사람이에요.
정치를 하려면 모든 종교를 다 포용을 하여야 해요.
여기에 카톨릭을 이용한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정치와 야합하면서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렸어요.
그래서 종말에 나타나는 타락한 교회인 큰 음녀가 손에 금잔을 들고 각종 보석으로 꾸미고 사치와 연락을 누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주시러 오신 분이 아니에요.
이 세상에서 빼내서 하늘로 데리고 가려고 오셨어요.
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아요.
왜 성도를 이 세상에서 나그네라고 합니까?
이는 이 세상을 떠나 하늘로 가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나그네는 모든 것을 누릴 수가 없어요.
나그네로 산다는 것은 육신이 불편해요.
사람들은 육신이 불편한 걸 원치 않아요.
어떻게 하든지 육신의 편안함을 추구하고자 해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복 받고 잘 산다고 하는 소리에 잘 넘어가는 것입니다.
종말에 교회가 음녀가 되는 것은 교인들이 세상의 복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이 예수 믿으면 복 받고 잘 산다고 해야 좋아라 해요.
예수 믿으면 고난 받는다고 하면 싫어해요.
인간들은 삶의 질을 높여주고 인간의 가치를 긍정해 주어야 좋아해요.
그래서 항상 하늘에 참 복음을 전하면 외면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소속은 하늘이에요.
교회의 타락은 땅의 것을 추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이 되어요.
인간을 긍정하고 인간의 가치를 챙겨주고 이 세상에 대한 소망을 주면서부터 교회의 타락은 시작이 되었던 것입니다.
흔히들 카톨릭을 교회라고 합니다.
그런데 카톨릭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거부해요.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착한 사람이 되어서 구원을 이루라고 합니다.
카톨릭은 개인 구원에 방점이 있지 않고 사회 구원에 있어요.
카톨릭에서는 예수는 사회 해방자에요.
로마 카톨릭에서 말하는 해방은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고, 사회의 구조적인 억압과 가난으로부터의 해방을 구원이라고 해요.
그래서 로마 카톨릭에서 해방 신학이 나오고 민중 신학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는 가난한 자들 편에 서서 종교와 사회의 기득권층들과 싸웠다고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적 기득권층들은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었고,
사회적으로는 로마와 같은 권력 지배계층이었는데,
예수님은 이들과 싸워서 억압당하고 눌린 가난한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였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육적으로 성경을 보는 자들의 성경관이에요.
그러니 육에 속한 자들이 성경을 표피적으로 보고서 사회 개혁을 부르짖고 교회 개혁을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사회를 개혁하고 교회를 개혁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해방 신학은 로마 카톨릭의 사상을 그대로 담고 있어요.
카톨릭은 인간 존엄 사상을 그 바탕에 두고 있어요.
이걸 인본주의라고 합니다.
인본주의에서 신을 이해하는 겁니다.
인본주의로 성경을 보게 되면 인간을 위한 신이 되는 것입니다.
해방 신학은 인본주의를 바탕하고 있어요.
해방 신학은 하나님은 가난 한 자들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은 가난한 자의 편에 서서 그 사회의 기득권층과 로마의 정권에 항거 하다가 죽임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럼 교회도 약자 편에 서서 국가 권력이나 사회의 가진 자들로부터 억압당하는 것으로부터 해방 시켜 주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게 사회 구원이에요.
이게 사회주의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들의 논리대로 라면 예수는 사회 구원을 위하여 죽임당한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가 사회 해방자가 되어야 자신들의 정치 활동을 합리화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카톨릭은 모든 종교는 사회 평등과 자유를 외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겨난 기독교 단체가 바로 세계교회협의회 라고 하는 WCC에요.
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반교회적인 단체에요.
우습지요.
교회라는 이름을 가지고 반교회적인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왜 교회라는 이름을 가지고 반교회적인 일을 할까요?
이는 WCC 태동자체가 교회를 무력화시키기 위하여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육에 속한 자들은 세계교회협의회라고 하니까 교회를 위한 단체인 줄 알지만 그 속은 정 반대로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한 단체인 줄을 몰라요.
WCC 배후에는 카톨릭이 있어요.
그래서 카톨릭에서는 십계명 중에서 제 2 계명인 너희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계명을 삭제한 것입니다.
이를 두고서는 온 세상의 모든 신들을 통합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이 땅에 속하였어요.
그러므로 온 세상의 모든 종교를 하나로 통합하여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땅에 거하는 자들은 박수치면서 따르고 경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WCC는 모든 종교는 하나가 되어서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혁파하여 모두가 더불어 잘 살아가는 유토피아를 건설하여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 카톨릭과 진보주의 개신교 목사들은 교회는 권력에 맞서서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것이 올바른 신앙이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기에 육에 속한 자들이 환호하는 겁니다.
교회 안에 땅에 속한 자들이 환호하는 것입니다.
교황이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환호하는 것은 땅에 평화를 주겠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반대하는 자들은 공공의 적이 되는 것입니다.
교황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신적 존재에요.
교황은 이념과 사상을 초월하여서 온 세상에 메시야로 군림하고 있어요.
그래서 스스로를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황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해요.
교황이 다스리는 신정국가를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3장에서는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이상하게 온 세상이 그를 따르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로부터 경배와 찬송을 받는 것입니다.
모두가 평등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하잖아요.
이상이야 얼마나 좋습니까?
여기에 반대하는 세력이 누가 있겠습니까?
없어요.
그러므로 땅에 속한 자들이 다 교황의 품으로 몰려드는 것입니다.
땅에 속한 교회들도 그 품에 안기게 되는 것입니다.
큰 음녀의 품에 안기는 이들을 일컬어 땅의 음녀들이라고 합니다.
결국 지금까지 나타나는 정황으로 보아서는 로마 카톨릭이 땅의 음녀들을 품은 큰 음녀로서 큰 성 바벨론으로 서게 될 것으로 보여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노파심에서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로마 카톨릭을 비판하는 것은 그들의 교리와 사상이 비성경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여 이 글을 잘못 이해하여서 카톨릭 신자들을 비판하거나 정죄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되어요.
왜냐하면,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들의 죄에 참예하지 말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음녀에게도 들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 소리를 듣고 카톨릭 교회 안에서도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암튼 지금은 완전한 그림이 그려진 상태가 아닙니다.
그려져 가고 있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확정적으로 단정하지 마시고 눈 부릅뜨고서 잘 지켜보시길 바랍니다.
때가 이르면 그 그림이 다 그려져서 세상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참 종들이 두 증인이 되어서 외쳐줄 것입니다.
지금은 빛의 아들들에게는 예수님의 재림이 까까이 오고 있어서 어둠이 깊고 낮이 가까이 오고 있는 때이지만, 어둠의 아들들에게는 큰 음녀와 땅의 음녀들의 멸망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때이므로 빛이 지나고 어둠이 깊어지는 때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하늘에 속한 성도에게는 기쁨이지만 땅에 속한 음녀들에게는 슬픈 소식이에요.
적그리스도 세력이 창궐한다는 말은 그만큼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졌다는 징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적그리스도 세력들이 일어난다고 해서 두려워하지 마세요.
다 하나님의 정한 시나리오에 의한 것이에요.
창세전 언약이라는 시나리오는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의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어서 반드시 구원해 주신다는 것으로 되어 있어요.
그러므로 종말의 징조들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고 도리어 예수님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소식으로 들으시고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지혜와 계시의 정신으로 이 시대를 분별할 수 있는 영안을 열어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시대에 염병처럼 번지는 종교통합운동 속에 감추어진 사단의 궤계를 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시대의 징조를 통하여서 주님 오실 날을 소망으로 삼고 이 세상을 이겨 낼 수 있도록 힘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지혜가 깊은 사람은 자기에게 무슨 이익이 있음으로 해서 누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군요,
누구를 사랑한다는 그 자체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랍니다.
어머니에 조건 없는 사랑, 우리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조건 없이 누구를 사랑하는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