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29. 큐티
시편 147: 7 ~ 11
인자하심으로 통치하시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관찰 :
1) 자연만물을 다스리시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 7절.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 => 시편 기자는 “노래하며”, “찬양할지어다” 두 개의 명령형 동사를 통해서 보다 강력하게 찬양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노래하며”(עֱנוּ, 에누)의 원형 “עָנָו”(아나)는 일반적으로 ‘대답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노래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찬양할지어다”(זַמְּרוּ, 잠메루)의 원형 “זָמַר”(자마르)는 악기와 관련된 찬양에도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노래하다”는 “감사함으로”, “찬양할지어다”는 “수금으로”라는 표현으로 각각 어떻게 찬양을 할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감사함으로”는 하나님의 특성 및 사역에 대한 고백을 담아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맹목적이거나 의무적인 것으로서의 찬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과 그를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샘솟는 감사의 마음으로 찬양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수금으로”의 “수금”은 일반적인 축제와 기쁨을 드러낼 때에 사용된 악기로 마음으로부터 솟아오르는 기쁨과 모든 능력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 8절. “그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준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 찬양의 방법을 소개한 시편 기자는 이제 찬양의 이유를 말하기 시작합니다. 자연 질서를 통제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과 이를 의지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풀”은 성경에서 아침에 자라서 저녁에 시들어 버리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입니다. 보잘것없고 무가치해 보이는 것의 대명사입니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무가치하고 보잘 것 없는 풀들에 대해서조차 하늘을 구름으로 덮으시고 땅에 비를 내리시어 그 생명이 유지되고 성장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이 결코 헤아릴 수 없는 모든 자연 만물을 다 운행하고 계시며 동시에 지극히 작은 풀과 같은 존재들을 위하여 하늘을 덮고 비를 내리는 것과 같은 큰 일들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택하신 이스라엘에게는 얼마나 대단하고 놀랍게 하나님의 은총이 드러나지 않겠느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 9절.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 =>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극히 작은 미물에게까지 자비를 베푸시며 모든 피조물들을 섭리하신다는 것을 보다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들짐승”은 인간의 보호나 공급을 받을 수 없는 야생 동물이라는 의미입니다. “까마귀”는 팔레스타인에서 부정한 새로서 황폐와 저주의 상징으로 언급되는 조류입니다. 유대인들의 우화에서 까마귀들은 새끼를 낳자마자 어린 것들을 내어버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까마귀 새끼들이란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매우 하찮고 거리낌을 받는 존재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러한 야생 동물과 까마귀 새끼들에게까지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은총이 공급되어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에 대한 무한하신 사랑과 섭리가 어떠한 것인지를 암묵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와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 여호와
- 10절.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바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말의 힘이 세다하는 것은 군대의 힘이 강력함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건강과 활동력 있는 힘을 의미합니다. 마땅히 기뻐할 것을 여호와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신다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가진 강력한 군사적 능력이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며, 오히려 그것들을 의지하거나 자신의 힘과 능력에 대한 교만과 오만을 가지고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 11절.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 10절에서는 부정문을 사용하여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군사적 능력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이와 대조를 이루며 시편 기자는 긍정문을 사용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들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자기를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의 엄위와 권능과 실제적 역사하심을 알므로 하나님께 대한 존경을 품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기를 경외하는 자”란 하나님을 믿는 경건한 성도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바라는 자들”은 세상의 힘과 군사력과 능력을 의지하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자신을 구원하시고 보호하실 것임을 확신있게 소망하고 그를 간절히 기다리는 자들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벨론 포로로 사로잡힌 경험이 있는 이스라엘 회중들에게 군사적 능력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몹시 사무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말을 달리며 창칼을 휘두르는 맹렬한 전사들의 영상과 그들로부터 말미암는 목숨의 위협을 그 누구보다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던 그들에게 군사력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구원만을 소망하며 하나님만 기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 곧 하나님의 임재를 두려워 할 수 있는 이들에게 군사적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구원하심만을 소망하고 하나님만을 기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 곧 하나님의 권능과 실제적 역사하심을 진실로 믿는 자들이라면 눈에 보이는 군사적 능력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이 지혜라는 것을 아는 자들인 것입니다. 까마귀 새끼들이 우는 모습을 보시고 그것들에게도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상황을 다 아시고 지키실 것이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소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자비하심만을 기대하고 기다리라는 권면의 말씀인 것입니다.
가르침 :
1)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자연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아버지 되시는 이유이고, 언제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신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장엄한 통치를 행하시는 분이시지만 그렇다고 하찮은 동식물을 보호하지 않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야말로 하찮은 들풀도, 모두가 경멸하는 까마귀의 새끼도 하나님은 다 보호하시고 섭리로 다스리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사람은 얼마나 더 보호하시고 섭리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거기다가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어찌 세밀하게 보호하시고 지키시지 않으시겠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하나님의 백성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흔적을 지닌 자들을 더더욱 얼마나 더 귀하고 소중하게 지키시고 보호자시지 않으시겠냐는 것입니다.
2) 할렐루야 시편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크심을 말하며 하나님의 섬세함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 우리를 기뻐하시고 다스리시고자 하시는 놀라운 섭리를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전제하고 하나님 찬양을 올려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헤세드로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향한 참된 소망입니다. 그 어떤 어려움과 고통 속에 있을지라도 여호와를 바래야 하는 더더욱 간절한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적용 :
1) 지금 저는 참 힘든 가운데 있습니다. 미얀마에서 탈출하듯이 나오게 되었고, 아내의 치료의 과정이 쉽지 않은 상황에 있습니다. 내 인생 전체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감당이 되지 않을 지경입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더욱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합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반드시 나를 위경에서 건지시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는 지식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여호와는 하찮게 여겨지는 들풀도, 까마귀의 새끼도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저와 제 아내를 왜 돌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섭리를 기대하고 또 기대합니다.
2) 여호와를 경외함이 축복입니다. 여호와의 인자를 갈망하는 자가 여호와의 헤세드를 누리게 됩니다. 제 인생의 가장 험난한 순간으로 여겨지는 상황이지만 주님의 은혜가 가장 빛나는 순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