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법 연구> 수필의 감동과 형식미
**학술적 이론이 아니라 필자가 창작과정에서 익힌 경험론적 견해를 적은 것입니다. **창작론은 개인마다 특징이 다르므로 참고만 하시면 좋겠습니다.
1.수필의 감동과 형식미
*문학은 언어예술이며 문인은 언어의 연금술사라고 한다. 즉, 언어를 미적(美的)으로 구현하는 기술자란 뜻이다. 이를 현대적 감각으로 바꾸면 ‘문인은 언어디자이너’가 된다.
*문학의 목적은 ‘언어의 미적 구현을 이용한 감동 전달’이다. 그러므로 철학, 사상, 종교적 글은 아무리 감동이 크더라도 문학이 아니다. 문학과 비문학의 변별적 자질은 언어의 미적 구현 여부로 구분된다.
*같은 문학이라도 각각의 양식마다 감동의 핵심이 다르다. 이는 곧 그 양식의 정체성과 연관된다. 시는 서정양식이므로 서정적 감동, 서사양식인 소설은 서사적 감동, 극양식인 희곡은 극적 감동, 교술양식인 수필은 지성적 감동이다.
*문학 양식마다 다른 감동 전달 핵심의 차이가 곧 그 형식이다. 시의 형식은 리듬, 소설은 긴축구성, 희곡은 극적구성(현장감), 수필은 무형식으로 정립된 것이다.
<참고> : 수필 지식만으로는 수필의 핵심을 이해할 수 없으므로 각 장르의 형식적 변별성을 간략히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시의 형식은 운율, 시의 내용은 정서와 사상이다. 시에서 이미지를 매우 중시하지만 시의 차별성은 이미지가 아니다. 이미지는 시 창작의 고도한 기술적 방편 중의 하나일 뿐이며 시의 본질은 리듬(운율)이다. 자유시란 리듬(정형성)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리듬을 배격하면 시의 정체성이 상실된다. 그래서 만들어낸 말이 내재율(內在律)이며 자유시는 내재율을 형성한다고 말하고 있다. 내재율의 반대는 외형률(外形律)이다. 자유시의 상대어는 정형시다. 정형시는 외형률(外形律)을 형식으로 삼는다. 현대시조는 ‘3장 6구 12음보’의 정형시다. 소설과 희곡은 구성법의 제약을 받는다. 소설 구성에는 과거적 갈등을, 희곡 구성에는 현재적 갈등이 수반되어야 한다. 현대문학 양식에서 제약이 가장 강력한 장르는 현대시조, 가장 자유로운 장르는 수필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왜 수필만 ‘무형식’인가. 무형식을 ‘형식이 없다.’로 인식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다. 무형식이란 엄밀히 말하면 ‘무형식의 형식’이란 뜻이다.
*‘무형식의 형식’이란 무슨 의미인가.
*위에서 교술양식인 수필은 지성적 감동이 핵심이라고 했다. 이 말은 맞는 말이다. 그래서 많은 평론가들이 수필은 고백 문학, 체험의 비전환적 양식, 비전문 문학, 토론 문학 등등으로 성격을 특징지었고, 수필가는 지성적 내용 중심으로 수필을 창작해 왔다. 문제는 수필의 문학성을 외면한 판단이다. 지성적 감동도 문학적으로 구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지 못한 것이다.
*반성적 자세로 따져보자. 지성적 감동은 철학, 사상, 역사 등의 요소도 강하게 작동한다. 성경이나 불경 등의 경전만큼 감동적인 글이 또 있는가. 교술양식인 수필은 지성적 감동이 핵심이라면 이들과 수필의 차별성이 무엇인가. 그 극명한 변별성은 곧 언어의 미적 구현이다. 즉 글을 쓰는 사람이 문학(언어예술)으로 짓는냐, 아니면 철학으로 쓰느냐의 문제다. 문학은 짓는 작업이고 철학은 쓰는 작업이다. 그래서 시는 짓고, 일기는 쓴다고 말한다. 작문(作文)과 기록(記錄)의 극명한 차이다.
*예컨대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수필이 아니다. 난을 기르면서 얻은 경험을 생각나는 대로, 언어의 미적 기교를 생각하지 않고, 당신의 깨달음을 썼을 뿐이다. 법정 스님은 당신이 수필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모르겠다. 수필로 등단을 하셨는지는.^^ 수필가의 자세로 지었다면 수필이 된다!) 흔한 수필 작품보다 더 감동적이고 잘 써진 글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스님의 훌륭한 깨달음이나 필력(筆力)의 문제일 뿐이다.
<참고> : 예술과 비예술의 차이는 미적 가치 개입의 유무(有無)이다. 미적 가치 개입의 제1 조건은 제작자의 의도 문제이다. 예컨대 도기회사의 밥그릇과 도예가의 밥그릇은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미적 개입이 없으면 <제품>, 있으면 <작품>이라 부른다. 그래서 전자는 기술자(장인), 후자는 작가라 칭한다. 기술의 고급, 저급은 상관이 없다. 다만 기술이나 기교의 수준에 따라 제품이나 작품 위상의 천차만별이 생길 뿐이다. 그럼 제품과 작품의 목적은 무엇인가. 제품은 실용 목적, 작품은 미적 목적이다. 그래서 앙드레 김의 런웨이(runway) 의상은 일상에서는 입지 않는다. 밥그릇으로 사용하던 이도다완(일본 국보26호)은 애초에는 진주에서 실용을 위해 만든 막사발 <제품>이었다. 다만 미적 안목이 달라져서 예술품으로 격상되었을 뿐이다.(사진 참조)
그래서 이런 말도 있다. <내(작가)가 시라면 그것은 곧 시다!> 맞는 말이다. 아닌가? 왜? 그럼 초등학생이 쓴 시는 시라고 하지 않고 뭐라 할 건가? 도예 초보가 만든 밥그릇은 제품인가? 아무리 저급한(용어 사용을 용서하시길~) 수필도 문학작품이 된다. 남들이 ‘태작, 졸작, 잡초, 신변잡기’ 또는 ‘명작, 걸작’이라고 하는 논의는 작품의 여부가 아니라 평가의 영역이므로 별개의 문제다. 다만 작가는 자기만족과 아울러 객관적으로 높은 평가를 얻기 위해 나름대로 최고의 창작을 위해 노력할 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문답의 ‘잡초론’을 지지하지 않는다.)
***수필의 정체성을 다시 정리하자. (1)교술양식인 수필은 지성적 감동이 핵심이다. (2)수필은 문학이다. 위의 (1)(2)를 통합하면 된다. 즉, ‘수필은 언어예술의 기법으로 지성적 감동을 창출하는 양식’이 된다. 그러면 철학 사상과 구별되어 수필가의 정체성도 정립된다.
따라서 수필가는 ‘무엇을 쓸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심하는 사람이다. 전자는 지성적 감동을, 후자는 미적 감동을 구현하기 때문이다. 다만 수필은 장르의 특성상 지성적 감동이 다른 장르보다 중요한 특징을 지닌다.(극단적으로 시에서는 지성적 내용이 없더라도 훌륭한 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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